대한예수교장로회 축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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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새 생명의 의미 3 - 새 생명의 필요성 (창 3:8,23절)
 이기남    | 2020·01·29 11:02 | HIT : 94 | VOTE : 3


* 새 생명의 의미 3 - 새 생명의 필요성 (창 3:8,23절)







제 2 과 『새 생명의 필요성』에서 다룰 내용과 그 결과 얻고자 하는 목표는 「인간의 죄인된 모습, 인간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무능력한 모습, 그 결과로 주어진 인간의 죽음의 상태를 극명하게 드러내서 <거듭남의 필요성>을 고조시키는 것」입니다..







* 제 2 과를 위한 준비..







1. 『성경』은 인간의 기원과 인간 삶의 의미와 인간의 궁극적인 모습을 말해 주는 「유일한 책」입니다..




생각하는 인간이 필연적으로 부딪치는 문제는 <자신이 누구며,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이며, <삶의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으며,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예전에도 있었고 오늘에도 있는 「영속적인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학문적으로 다루는 것이 철학이고 또 이러한 문제를 영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추구하고 만든 체계인 철학과 종교가 진정한 답을 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태어남과 죽음은 창조주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 대답은 창조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계시란 <드러내다>라는 뜻으로, 기록된 계시가 바로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성경만이 <인간의 근원과 결과 그리고 그 본질에 대하여> 말해 줍니다..







성경의 첫 책인 『창세기』는 모든 것의 기원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기원, 죄의 기원, 생명의 기원 등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러한 기원을 아는 것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시작입니다..







2. 진화론은 어떻게, 왜 나왔나? (창 1:1절, 히 11:3절)(창 1:1절)







성경의 첫 말씀, <창세기 1장 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세상의 기원과 인간의 의미에 대한 모든 그릇된 사상들을 배격>합니다..








첫째, 우주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으므로 <무신론>(atheism)을 배격합니다.. (無神論 / 신의 실재를 단언하고 그 존재를 증명하려고 하는 유신론과 반대되며 무신론은 신의 부재를 기정사실로 본다..)





둘째, 하나님은 자신이 지은 모든 것 위에 초월해 계시므로 <범신론>(pantheism)을 배격합니다.. (汎神論 / 자연과 신이 동일하여 일체의 자연은 곧 신이며, 신이 자연이라고 생각하는 종교관. 또는 그런 철학..)




셋째, 한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으므로 <다신론>(polytheism)을 배격합니다.. (多神論 / 여러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종교 이론..)







넷째, 하나님이 물질을 창조하셨으므로 물질을 제 1차적, 근본적인 실재로 생각하고, 마음이나 정신을 부차적, 파생적인 것으로 보는 <유물론>(materialism)을 배격합니다.. (唯物論 / 정신적인 것을 근원적이며 제 1차적이라고 하는 관념론이나 유심론에 대립되는 개념..)




다섯째, 만물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홀로 계셨으므로 선은 선신에게서 나오고, 악은 악신에게서 나왔다고 주장하는 <이원론>(dualism)을 배격합니다.. (二元論 / 세계나 사상(事象)을 두 개의 상호간에 '독립'하는 근본 원리로 설명하는 입장..)







여섯째, 하나님은 궁극적인 실재이시므로 모든 것을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는 <인본주의>(humanism)를 배격합니다.. (人本主義 / 인간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된다는 사상..)




일곱째, 계시를 통해서 얻는 지식을 부정하고, 인간의 이성으로 얻는 지식 체계를 그대로 인정하는 <이신론>(理神論, deism)을 배격합니다.. (理神論 / 성경를 비판적으로 연구하고 계시(啓示)나 기적 등을 부정하여 기독교의 신앙 내용을 이성적인 진리에 한정시킨 합리주의적인 종교관..)




여덟째,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진화론>(evolutionism)을 배격합니다.. (進化論)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진화론>을 생명의 기원에 대한 타당한 설명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생명의 기원에 대하여 19세기 중반에 다윈이라는 한 과학자가 만들어낸 이론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마치 정설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서 심지어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조차도 때로는 혼란스러워 할 때가 있습니다..







(1) 진화론이란?





진화론은 영국에서 찰스 다윈이 1859년에 발표한 <생명의 발생과 진화에 관한 하나의 학설>입니다..




진화론에 따르면 <생명의 근원은 어떤 무기 물질이 무작위적인 화학적 반응에 의하여 아주 우연하게 유기 물질이 되었으며 여기에서 생명의 기본 단위인 단백질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이 단백질은 단세포 생물로 발전하고 아메바에서 어류와 양서류 그리고 파충류와 포유류로 진화하였고 결국에는 원숭이에서 사람으로 진화해서 인류가 생겨났다는 가설입니다..








김정한 교수(전 연세대 생명공학과)가 쓴 『과학자와 함께 읽는 창세기 이야기』(1997년, IVP)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후 화석은 진화를 설명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진화되기 위해서는 '중간고리'(missing link)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제까지 너무나 많은 화석이 발견되었지만 중간고리로 인정된 것은 없다..







1. 한때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고리로 주장되었던 '시조새'는 지금 아마존 유역에서 지금도 살고 있다..




2. 인류 초기 조상으로 알려져 있는 '오스트랄스 피테쿠스'는 '우랑우탄'으로 밝혀졌다..




3. 어깨가 굽어 있었기 때문에 원숭이와 사람의 중간이라고 주장되어온 '네안 데르타인'은 '비타민 D가 결핍된 곱추병 환자'로 판명 되었다..







화석은 더이상 진화의 증거가 될 수 없다..」








(2) 진화론의 수용 배경..






진화론이 하나의 <가설>(이론)이면서도, 받아들여지기가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일부 지식층들 사이에서 마치 <정설인 것처럼 받아들여진 배경>에는 <서구 사회의 역사적 그리고 사회적인 배경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중세 이후에, 과학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에게 하나의 습성이 생겼습니다.. <미지의 영역들>, 즉 <신의 영역으로 남겨 두었던 것들>, <인간이 설명할 수 없는 경지>를 설명하려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리하게 설명하려고 시도하다가 미련함과 교만함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중의 대표적인 것이 「진화론」입니다..







<생명의 발생에 대해서>, 물론 정답은 <신에 의해서 창조 되었다> 인데, 이를 배제하고, <인간의 과학적인 지식이나, 생물학적인 지식>으로 설명하려고 하다가 미련함과 오만함에 빠진 것이 「진화론」입니다..








진화론(Evolutinary theory)은 <이론>(theory)이지 정설은 아닙니다.. 이론이 정설이 되려면, <검증>이 되어야 합니다..





「진화론」이 이론에서 정설로 받아들여 지려면 한번이라도 <무작위적인 실험>을 통해서 단백질이나 단세포가 생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한번도 실험에서 생성된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직까지 진화론은 <이론>(가설)입니다..







오히려 19세기 프랑스의 화학자이며 생물학자인 <파스퇴르>는 하나의 생명체가 그 모태가 되는 생명체가 없이는 생겨날 수 없다는 <생명 발생설>을 발표함으로써 진화론이 주장하는 <자연 발생설>을 정면으로 반박하였습니다..




<생명 발생설>에 따르면 생명체는 반드시 그 생명체의 모체에서만 생겨난다고 합니다..




이것은 생명체는 절대로 우연히 생겨날 수 없음을 주장합니다..







그런데 <파스퇴르의 생명 발생설>과 <다윈의 진화론>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많이 알려 졌습니까? <진화론>이 더 많이 알려졌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진화론이 왜 나왔습니까?











「진화론」은 <무작위적인 화학 반응>에 의해서, 생명체의 모체가 되는 <단백질이 생성>되고, 그 단백질이 진화와 발전을 거듭하다가, <아메바보다 더 열등한 단세포의 생명체>가 되고,  그 열등한 생명체가 진화를 거듭하다 보니, <가시적인 생명체>로, 즉 어류, 양서류, 식물, 포유류 등으로 종이 다르게 진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인간>이 식물이나 물고기나 개구리하고 조상이 같다는 것입니다..





<진화론의 도표>를 보면, <꾸부정한 원숭이>가 약간 어깨를 펴고 있다가, 점점 점점 더 <유인원의 모습>이 되고, <사람을 닮아 가는 모습>을 주욱 보여 주면서, 이것이 몇 백만년에 걸쳐서 이루어 졌다고 설명하는게 「진화론」입니다..








<다윈>이 자기 할아버지가 만든 초보적인 가설에 살을 붙여서 <1859년>에 <진화론>을 처음 발표했을 때, 물론 그 전에도 <라마르크>의 <용불용설>(用不用說, Theory of Use and Disuse, 1809년) 같은 이론들이 있었지만, <다윈 스스로도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발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윈 자신도 처음에는 별다른 반응을 기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진화론이 발표되자 의외로 서구의 일부 지식층들이 이것을 열렬히 환영하였고, 다윈의 기대보다 훨신 더 크고 우호적인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물론 진화론은 아직 어떤 실험을 통해서 그 가능성과 타당성이 한번이라도 검증된 적이 없는 가설인 상태입니다..







<확고하게 믿어서>가 아니라, <하나의 이론으로> 발표했는데, <왜 진화론이 갑자기 인기를 끌게 되었고, 지금은 정설화 되어서 교과서에서까지 가르치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의 「시대 상황」을 살펴 봐야 합니다..







당시, <왜 진화론이 받아들여 졌을까>를 추론해 보면, 황당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중세 시대는 정말 <암흑기> 였습니다..




그 암흑기를 대표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의 타락」이었습니다.. 교회에서는 <사제의 직을 매점매석 했습니다..>







우리가 알듯이 서구 사회는 오랜 동안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유신론적 사회>였습니다..




로마 카톨릭이 종교를 넘어서서 정치와 사회에 깊숙이 관여하였기 때문에 신을 배제한 세상이란 중세의 유럽 사회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16세기>에 와서 로마 카톨릭은 엄청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신의 이름으로 민중을 우매화하고 착취하는 로마 카톨릭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과 불신은 극에 달하였습니다..




이 <암흑기>란 인간이 인간 대접을 못 받고, 과학과 상식에 의존하기 보다는, 미신과 전해 내려오는 전통에 얽매여 사는, 굉장히 인간이 속박되는 불합리한 시기를 말합니다..







그 때는 어떤 동네에 살면, 어느 교회에 갈까,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그 동네의 교구에 있는 교회에 반드시 가야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교구의 교회의 사제직을 사게 되면, 거기에 들어오는 헌금이 다 자기 것입니다.. 그 중의 일부를 주교나 교황에게 바치는 그런 시스템이었습니다..







세계사 시간에 공부해서 알겠지만, 그 중의 대표적인 것이 <면죄부>입니다.. 면죄부를 팔면 어떻게 됩니까?




죽은 조상의 영혼이 연옥에 있다가 천국으로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면죄부>를 팔 때, 슬로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면죄부를 팔 때, <모금함>을 들고 다녔는데, 그 통 안에 은화나 금화를 넣으면 쨍그랑 소리가 나게 되어 있었습니다.. 헌금을 하면 소리가 다 들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몰래 못합니다..







그런데, 당시 슬로건이 무엇입니까? <이 헌금함 속에 쨍그랑 소리가 날 때, 연옥에서 한 영혼이 손을 번쩍 들고 천국에 올라 간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헌금함에 손을 넣으면서, 당신의 죽은 조상이나 죽은 가족을 위해서 기도하면, 그 가족이나 조상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직행합니다..> 라고 하면서, 효심을 자극하니, 사람들이 금화를 막 집어 넣었습니다..




사람들이 우매해서 이것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돈을 내는 만큼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며 면죄부를 팔기에 이르른 로마 카톨릭의 타락과 부패는 결국 <성경의 원래 진리로 돌아가자는 종교 개혁을 불러 왔습니다..>




16세기 초 루터를 필두로 칼빈을 비롯해서 교회 안에서는 종교 개혁이 일어났습니다..







개혁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진리로 돌아 가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에서 벗어 났으므로 개혁해서 원래로 돌아 가자..> 그래서 <성경으로 돌아 가자는 운동>이 교회 내에서 일어 납니다..




교회 밖에서는 철학 사상과 과학 분야에서도 신을 두려워하며 신에게 얽매였던 이전의 종교적 세계관에 의한 지배에 대한 <반작용들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신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이성으로는 납득할 수 없었던 각종 불합리한 관행들 또 당시에 발달하기 시작한 과학의 눈으로 볼 때 납득하기 어려운 유신론적 세계관에 대한 일부 지식층의 도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들이 거부하려던 신의 형상은 <성경 속에 나타난 신의 형상>이라기 보다는 <부패한 중세의 교회가 만들어 낸 비뚫어진 신의 형상>을 향한 반란의 시도였습니다..








이 후 수세기에 걸쳐서 기독교적인 바탕 속에 지탱되어 왔던 서구 사회는 계몽주의, 합리주의, 이성주의 등의 새로운 시대적인 사조들의 출현과 더불어 마치 철옹성 같았던 <유신론적인 세계관이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 하였습니다..>








이들은 신을 배제하고 인간 이성과 과학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이러한 노력과 움직임들은 그 당시 종교라는 이름 아래에 눌려 있던 많은 지식 계층과 민중들의 호응을 얻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상식을 많이 의존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신의 존재가 불편했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중세 시대에 신이 너무나 불합리했는데, 신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학대와 많은 불합리한 일들이 이루어 졌는데, 신이라는게 불편한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사를 보면, <합리주의 이성주의>가 이 때 나옵니다.. 인간의 이성으로서 유토피아를 건설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에 뭐가 빠졌습니까? <하나님>이 빠집니다.. 합리주의 이성주의는 <인본주의>입니다..




세상의 중심이 <인간의 이성>입니다.. 지식인들은 신을 부담스러워 한 사람들입니다.. 지식인들이 종교에 대해 제일 먼저 반기를 듭니다..







중세는 기독교를 떠나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중세에 기독교인이 아니면 미친 사람입니다..




로마 카톨릭 신자가 아니면 다 미친 사람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알던 모르던 간에 성당에 안 다니면 미친 사람이고, 세례를 안 받았으면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종교의 타락을 통해서, 종교 개혁이 나오면서, 역사가 발전하면서, 인문학이 발전하고,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의술이 발전하면서 지식인들이 뭘 생각하겠습니까?







<신이 없어도 세상을 설명하고 세상을 합리적으로 건설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게해서 나온 것이 <합리주의 이성주의>입니다..







합리주의 이성주의 대표적인 철학가들은 신이라는 존재를 어쩔 수 없이 인정은 했지만, <있기는 있다..> 그러나 잠시 세상에서 밖으로 신을 내 몰았던 것입니다..  




<신이 있으니까 너무 귀찮습니다, 신이 있으니까 인간이 너무 제약됩니다, 쓸데없이 정치와 종교가 결탁해서 사람을 학대합니다..>




그래서 신을 인간의 세상 속에서 몰아 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이성과 합리를 통해서> 모든 것들을 마구 설명해 나갑니다..







그러다보니 문제가 있습니다.. 신이 성가십니다.. 신을 완전히 없애고 싶은데, 없애자니 가장 커다란 문제가 뭡니까?




신이 창조주입니다.. <인간을 창조한 신을 없애고 어떻게 인간이 세상을 설명할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그 당시의 신의 개념은 <이신론>(理神論) 또는 <자연신론>(自然神論)의 개념이었습니다..




이신론의 사상은 <신이 세계를 창조한 후에는 직접 세계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마치 시계 태엽을 감아 놓으면 자동적으로 시계는 가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상식과 자연 법칙과 섭리에 의해서 그냥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감겨진 태엽대로.. 그리고, 정작 하나님의 관심은 다른데 있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가질 수 밖에 없었던 한 가지 커다란 딜레마는 바로 <신의 존재와 역할에 관한 개념 정립>이었습니다..




신을 바탕으로 했던 중세의 어두운 암흑기를 벗어나려고 신을 잠시 배제 시키기는 하였지만, 과연 세상과 그 안의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의 근원을 신과 연결시키지 않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다윈은 진화론을 발표하였으며 이 이론은 그 당시 신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개념 정립을 원했던 무신론적 성향의 지식층들의 딜레마를 완벽하게 해결해 줄 돌파구처럼 보였습니다..







이들은 신을 완전히 배제한 상태에서의 세상을 생각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딜레마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시대적인 배경 속에서 다윈의 진화론은 이들의 딜레마를 완벽하게 해결해 줄 이론처럼 보였습니다..








굉장히 황당한 이야기라서 <다윈>도 쭈삣 쭈삣하면서 발표했는데, 이것을 쌍수를 들고 환영한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유럽의 지식층들, 특별히 철학자들 입니다..





이 이론이 나오자마자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무신론적 명제를 내어 놓기에 이릅니다..










신을 완전히 없애버린 무신론적인 철학과 사상의 흐름은 그 뒤에 거침없는 행보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신을 없애버린 무신론적인 세계관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신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졌던 도덕적인 삶의 틀을 벗어나 <낭만주의>라는 시대 사조를 만들었으며, 이전에는 숨어서 짓던 부도덕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삶을 공공연하게 드러내 놓기 시작하였습니다..







더 이상 신의 눈치를 보거나 심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며 부덕한 쾌락 추구의 삶을 <자유 연애>라는 이름으로 전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신을 배제한 이들의 추구는 절대적인 의미와 목적을 상실한 <허무주의>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영혼은 없고 물질만 남은 상태에서 인간의 노력으로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다는 이상은 <공산주의>를 만들게까지 이르렀습니다..







결국 진화론은 여전히 무신론적이며 과학 신봉적인 삶을 추구하는 오늘날의 사람들 사이에도 지배적인 신념으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3) 진화론 중에서 긍정할 수 있는 부분은 없습니까?





진화론의 주장들 중에서도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처럼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명체의 기능이 발달하거나 퇴화한다든지 또는 모양이나 색깔이 변한다든지 하는 진화는 인정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인간의 경우에도 수 많은 세월을 거치면서 진화의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인류 최초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로부터 나온 인간은 삶의 지역이나 환경에 따라 각기 다른 인종들로 변하였으며 같은 인종 속에서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인간은 그 모양이나 신장에 변화가 있어 왔습니다..








하지만 종과 종을 넘나드는 진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과학적인 정설입니다.. 이 때까지 종과 종을 넘나드는 변화의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즉 원숭이가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만약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생명체는 지금도 진화의 과정 중에 있어야 하고 특히나 원숭이가 사람으로 진화했다면 지금도 원숭이와 사람 중간 단계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많은 형태들의 유인원들이 존재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중간 단계의 생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생명의 근원이 우연발생적이라는 것은 과학적으로 도저히 설명하거나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4) 진화론이 가지는 문제들 - 모든 것이 우연이라면?





<진화론>은 창조주의 존재를 부정하며 이 우주와 지구 그리고 그 안의 모든 생명체들이 우연히 발생했다는 가설입니다..





이 가설을 받아들일 경우 <창조론>을 받아들이는 것보다도 훨신 더 많은 문제들이 생기게 됩니다.. 그 중의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① 태양과의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공전과 자전을 하며 우주의 수 많은 은하계 속을 떠돌고 있는 지구가 일정한 속도와 방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모두가 우연일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② 진화가 종을 넘어서 발생하였다면 지금도 종과 종 사이의 진화 과정에 있는 생명체들이 있어야 할 것인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 원숭이와 사람 사람 사이의 진화 과정에 있는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③ 어떤 열대어들은 원색에 가까운 몸 색깔들을 지니고 있으며 좌우가 색깔 별로 정확한 대칭을 이루는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④ 진화론을 받아들이게 되면 인간은 절대적인 도덕이나 선악의 기준을 상실하게 됩니다..




약육강식의 동물 세계와 인간을 구별하는 기준은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 낸 것이 되기 때문에 언제라도 바꿀 수 있는 기준들이 됩니다..




그렇다면 인간 양심에 내제된 도덕과 선악에 대한 본능적인 잣대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노력으로 이러한 내제된 양심이나 선악의 개념을 없앨 수 없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⑤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은 단지 우연히 태어나 일정 기간을 살다가 영원히 사라지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영원한 목적도 의미도 없는 삶을 살다가 가는 우연의 부산물일 뿐입니다..




이러한 인생 속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⑥ 인간의 삶을 좌우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기 보다는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힘이 훨씬 큽니다..




예를 들면 사랑, 미움, 인정 받고 싶은 욕망, 수치감 등의 원초적인 감정들이 인간의 삶의 상당 부분을 지배합니다..




이런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갈망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생명체의 우연한 발생과 진화가 이러한 영적인 부분도 만들고 발전시켰을까요?






성경은 영적인 세계가 분명히 존재하며 이 눈에 보이는 세상을 움직이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눈에 보이는 세계와 그 안의 오묘한 질서와 섭리는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창조주의 존재와 능력에 관한 너무나도 명백한 증거들입니다.. <로마서 1장 20절>을 보십시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5) 진화론의 허구를 비유하자면..




<진화론>은 모든 생명체가 우연히 만들어지고 변화의 과정도 우연히 겪다가 인간도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아프리카의 원시인이 비행기에서 떨어진 라디오를 주워서 만지고 소리를 듣다가 "과연 이것이 어디에서 왔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지만 "이것은 하늘에서 먼지들이 부딪혀서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야" 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우리 문명인이 원시인이 내린 결론을 듣는다면 뭐라고 말할까요?




너무나도 무지하고 터무니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라디오라는 단순한 기계도 만든 사람이 당연히 있는데, 이 복잡하고 광활한 우주와 그 안의 온갖 생명체 그리고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가 계심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교회 제도」와 「지도자의 타락」이 사람들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진화론의 수용은 「시대적 배경」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단의 출현, 종교 다원주의의 부각, 토착화 논쟁의 심화 등이 다 이런 이유에서 상당한 설득력을 갖게 된 것들입니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하나님의 일에 종사하는 기관과 지도자들의 타락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은 버리지 말았어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목욕물이 더럽다고 물 속에 있는 어린 아이까지 같이 버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비참해 졌고, 급기야 세계 제 1차. 제 2차 대전을 초래하고서야 그 후에 사람들은 다시 하나님을 진지하게 찾게 되었습니다..







(질문) 당신은 「진화된 고등 동물」(원숭이) 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까?







1. 1번 문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후 인간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창 1:26-29절)?







(1) 추적점 -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목적」을 묻는 질문입니다..







(2)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말보다 더 엄청나고, 놀랍고, 좋은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선언> 합니다.. 설명하지 않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3) *(답) 명령 - 노동 명령(문화 명령)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28절) - 인간은 「만물의 영장」, 「하나님의 대표」입니다..







(4) 선교는 「복음 전파」를 통해서 인간의 영적인 결핍을 채우고, 인간의 그 밖의 결핍을 채우는 「사회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5) 「청지기 정신」은 창조자의 창조 목적, 즉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① 달란트 비유 (마 25:14-30절)




이 비유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한 달란트 받은 종이,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 놓고 「자기 인생을 살았다는 것」이고, 그에게 「주인의 책망과 심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의 결정적인 잘못은 주인이 맡긴 일은 땅에 묻어 두고, 자기의 인생을 살아간 것입니다..」







② '짐 엘리엇' 선교사의 말..




"결코 놓쳐서는 안될 것을 위하여, 결코 붙잡고 있을 수 없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잘하는 것이다.."







③ 한 선교사(당시 25세의 자매 선교사)의 기도 편지 내용 중..




"나의 이 젊음이, 나의 이 싱싱함이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닳아 진다니 이보다 기쁜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2. 2번 문제.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인간이 창조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창 1:26절)?







(1) 추적점 - 「창조물 중에 인간만이 갖는 독특함이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입니다..







(2) 여기서 「형상」이란 <Form>이 아니라 <Image> 입니다..




이것은 육체의 모양, 얼굴 모양이 닮았다는 뜻이 아니라, 그 속성이 같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Spirit'(영), '인격적 존재'(지.정.의), '육체'(예수님)」입니다..




이 가운데 동물은 영이 없고, 천사는 육체가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만 없어도 치명적인 상태가 됩니다.. 그러나 사람은 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3) *(답)




① 인간만이 하나님과의 「전면적인 교제」가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 하나님과의 「참된 만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우리를 「예배자」로 지으셨습니다..







② 인간만이 「하나님의 대표자」라는 의미입니다.. / 하나님은 처음부터 우리를 「선교사, 전도자, 기도의 응답자(마 7:7-12절)」로 지으셨습니다..







③ 인간은 「의존자」 즉 「하나님께로부터 독립할 수 없는 자」라는 뜻입니다.. / 하나님은 처음부터 우리를 「기도자」로 지으셨습니다..




「죄」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의 독립」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에게 이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는 것입니다..」







④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모델」이 되어 주셨다는 뜻입니다(마 5:48절, 눅 6:36절).. / 하나님은 처음부터 우리를 「수도자, 제자」로 지으셨습니다..







3. 3번 문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후 '심히 좋았다'고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창세기 6장 5-8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1) 추적점 - 이 문제는 「하나님의 창조의 완전성과, 인간의 타락」을 부각시키기 위한 질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의도하신 대로, 목적하신 바 그대로 천지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만족해 하셨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6장>에서는 죄악이 관영함을 보사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셨습니다(5-7절)..







『창세기』는, <1,2장>은 「하나님의 선한 창조」, <3-50장>은 「인간의 죄」로 구분할 수 있는데..




<3-6장> 사이에는 「인간들이 얼마나 쉽게 타락의 길에 들어 섰는지」와, 「그 죄의 타락상이 얼마나 더 깊어지는지」와, 「그 결과가 얼마나 비참해졌는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선악과>, <가인과 아벨>, <라멕>, <유발>, <두발가인> 등을 점검 할 수 있습니다..







(2) 한탄 - 이 말은 <죄는 하나님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슬프게 한다>는 뜻이지, 하나님이 뭔가 무지하셔서 후회하고 실수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3) 선악과..







① 전제 / 선악과의 의미를 생각할 때 전제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 「사랑」입니다..







② 의미 (선악과를 주신 이유) /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만들어서 인간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드셨는가?> 라고 묻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로보트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시고, 또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시므로 인간들이 자유롭게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 선악과를 두신 의미가 무엇입니까?







a. 선악과는 「임마누엘」로 주신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함께하는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보면서 하나님의 동행과 임재를 경험한 것처럼, 선악과를 동산 중앙에 두셔서 어디서나 그곳을 볼 수 있게 하셨고, 볼때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확인」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과 늘 함께 계심을 확증하는 증표」로 선악과를 주셨습니다.. 얼마나 안전하고 든든합니까.. 우리는 늘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인식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b. 선악과는 「선」(Line)으로 주신 것입니다..




권위 질서에서의 「인간의 위치 확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세운다는데 비중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잘 아시기 때문에 <인간을 위해서 배려하신 조치>라는데 비중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복된 소식입니다.. 인간이 능력도 없는데 하나님의 위치에 서게 되면 큰 불행을 자초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악과는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배려로 그어주신 「선」입니다..




그래서 이 선을 넘으면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절)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있는가를 항상 확인해야 합니다..







c. 선악과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입니다..




다른 말로하면, 선악과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삶의 방식>을 결정하라는 요구」입니다..




<네가 네 삶의 주인이 되어 네 마음대로 사는 사람이 될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이 네 삶의 주인인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대로 사는 사람이 될 것이냐>를 결정하라는 말씀입니다..







선악과는 「삶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결정하라고 강력하게 촉구하는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요구」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하신 세상에서 가장 잘 살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 뿐입니다..




그렇게 살 때 하나님이 형통케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의 방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d. 선악과는 「인간의 삶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선악과가 말씀하려는 것은 인간의 「삶의 기준」은 동물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더 풀이한다면 '인간은 말씀대로 살아야지 본능대로 살면 안된다'는 뜻입니다..




동물들은 보암직하면 보고 즐기고, 먹음직하면 먹어버리면 그만입니다.. 탐스러우면 탐욕을 부리면 됩니다(창 3:6절).. 동물들은 본능대로 삽니다..







그러나 인간은 보암직하다고 즐기고, 먹음직하다고 먹고, 탐스럽다고 탐내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먹지 말라 하면 아무리 탐스러워도, 보암직해도, 먹음직해도 따먹지 않는 것이 인간의 삶의 기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겠는가?> 라고 선악과는 우리에게 확성기가 되어 묻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야 합니다..







e. 선악과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사랑을 증명해 보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은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고 했습니다..




<신명기 13장 3절>에는 「시험의 목적」이 나옵니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선악과는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유혹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를 증명해 보일 수 있는 기회」인 셈입니다(창 22장)..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헌신의 기회」를 제공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주어진 헌신의 기회를 잘 살려야 합니다..







f. 선악과는 「십일조」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 동산의 관광객으로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동산의 관리자로, 일꾼으로 부르셨습니다(창 2:15절)..




아담과 하와는 이 동산에서 노동력을 제공했고, 하나님은 그에 대한 후한 보수로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실과를 마음껏 먹도록 하셨습니다(창 2:16절)..




그러면서 하나님은 이들의 수확에 대해 권리를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그 권리의 주장이 바로 「선악과」인 것입니다..







에덴 동산은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그 동산의 관리자였고, 그 수고의 댓가로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도록 하셨습니다..




그들은 여타 모든 나무에 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이 선악과 나무에도 노동력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나무의 열매 만큼은 하나도 먹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창 2:17절)..







선악과는 아담과 하와의 「수확의 십일조」였습니다.. 선악과는 하나님의 몫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도 십일조를 요구하셨습니다..




모든 세대가 뒤따르기 원했던 「모범」을 처음부터 두신 것입니다.. 우리는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말 3:10절)..







③ 종합 / 선악과는 「복 자체」에 빠져서 「복을 주신 자」를 잃어 버리지 말라고 두신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입니다..







(4) *(답) 하나님이 의도하신대로 지어졌기 때문에 좋아하셨습니다.. 그러나 죄가 관영하자 한탄하셨습니다..







4. 4번 문제. 성경은 죄의 근원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창 2:16,17절, 3:4-8절, 롬 5:12절)?







(1) 추적점 - 이 질문은 「죄의 출발점」을 묻는 질문입니다..







(2) *(답) (호 6:7절)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아담은 언약을 어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근원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입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네 가지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말씀에 대한 「경건한 접근」, 「정확한 숙지」, 「절대적 순종」, 「명확한 전달」입니다..







5. 5번 문제. 죄의 결과로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창 3:8,23절)?







(1) 추적점 - 이 문제는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은 인간의 비참한 모습」을 드러내는 문제입니다..







(2)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절)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게 됩니다.. 성경은 죽음을 <분리>라고 설명합니다.. "반드시 죽으리라"는 이 말의 히브리어의 뜻은 "죽어가다가 죽으리라"는 뜻입니다..







(3) *(답) 성경적 죽음의 개념..







① 1단계 - 「영적 죽음」, 하나님과의 분리 (엡 2:1-3절)




나무로 비유한다면, 나무가 대지에서 뿌리가 뽑힌 상태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 현상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바로 생겨났습니다(창 3:8,23절)..







② 2단계 -「육적 죽음」, 정신과 육체의 분리 (히 9:27절)




나무로 비유한다면, 뿌리가 뽑힌 나무가 말라 비틀어지는 상태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첫째 사망」이라고 합니다..







③ 3단계 - 「전인적 죽음」, 천국과 지옥의 분리 (계 20:11-15절)




나무로 비유한다면, 말라 비틀어진 나무를 불타는 아궁이에 집어넣은 상태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 끝날 심판을 받아 영원한 고통과 슬픔에 처하게 된 상태로서, 성경에서는 이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합니다(계 20:14절,「마 10:28절」)..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 10:28절)(눅 12:5절)







(4) 죄의 결과로 죽은 인간이 회복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뿌리가 뽑힌 나무를 속히 대지에 다시 박는 것입니다..




즉 이 땅에 육체 가운데 있을 때에만 오직 하나님과 다시 연합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이 「유일한 기회」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과 다시 연결되어야만 합니다.. 우리의 과원지기이신 예수님만이 뽑힌 나무의 뿌리를 다시 내리게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눅 13:6-9절)..







6. 6번 문제. 영적으로 죽었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엡 2:1-3절)?







(1) 추적점 - 이 문제는 「범죄한 인간의 비참한 모습의 그 절정」을 드러내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 즉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모습이 어떠했는가」를 찾아내야 합니다..







(2) *(답) 에베소서 2장 1-3절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① 1절 - 허물과 죄로 죽어있는 상태..




② 2절 - 세상 풍속을 좇는 상태,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상태..




③ 3절 -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는 상태,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는 상태, 본질상 진노의 자녀인 상태..







(3) 참고로, <로마서 5장 6,8,10절>을 살펴보면, 거기에도 영적으로 죽었다는 의미가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① 6절 - 연약한 상태, 경건치 않은 상태.. ② 8절 - 죄인된 상태.. ③ 10절 - 하나님과 원수된 상태..







(4) <에베소서 2장 8절>에는 이런 영적인 죽은 상태를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새 생명의 의미 4 - 새 생명과 하나님의 성품 (롬 1:18-27절, 고전 13:4-8절)  이기남 20·02·05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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