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축제교회

 


TOTAL ARTICLE : 871, TOTAL PAGE : 1 / 44
기타 : 새 생명의 의미 4 - 새 생명과 하나님의 성품 (롬 1:18-27절, 고전 13:4-8절)
 이기남    | 2020·02·05 18:49 | HIT : 113 | VOTE : 3
* 새 생명의 의미 4 - 새 생명과 하나님의 성품 (롬 1:18-27절, 고전 13:4-8절)







제 3 과 『새 생명과 하나님의 성품』은 「하나님의 성품」(거룩, 사랑)을 드러 내므로, 「인간 구원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은혜)을 드러내는 과입니다..







* 제 3 과를 위한 준비..







1. 「새 생명의 의미」 성경 공부(전도 설교)는 그 전체의 목적이 「전인적인 구원의 확신」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과>에서는 「거듭남의 의미와 결과」를 다루었고, <두 번째 과>에서는 「인간의 죄된 모습」을 다루어서.. <인간이 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무능력한 존재>이고, 그 결과로 주어진 <인간의 처참한 모습>을 드러내어 「새 생명의 필요성」을 고조시켰습니다.. 이번 <세 번째 과>에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하나님의 성품>(거룩, 사랑)을 중심으로 다루어서, 「인간 구원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은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 십자가..




Karl Barth(칼 바르트, 1886–1968년, a Swiss Reformed theologian)는 십자가를 「Double image」(Double image of the Cross)로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 보면서, 우리는 먼저 나 자신이 얼마나 「지독한 죄인」인가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저토록 처참하게 죽어야만 해결될 수 있었던 자신의 「죄인된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십자가를 또 한번 바라 보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동시에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저토록 처참하게 죽어 가면서까지 구원한 자신의 「존귀한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Double image」로 보면서, 우리는 십자가 안에 동시에 나타난 하나님의 「거룩과 사랑」을 봅니다..







3. 그리스도인..




Martin Luther(마틴 루터, 1483-1546년, a German monk, theologian, university professor and church reformer)는 그리스도인을 「Justified Sinner」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편에서 이미 법적으로 의로워 졌지만, 아직도 여전히 죄인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의로워진 것이 아니라, 「의롭다고 여겨진 것」입니다.. 내용은 아직도 연약한 죄인입니다.. 우리는 의로워진 자이기에 「절망」할 수 없으며, 그러나 여전히 죄인이기에 「교만」할 수 없습니다..







4. 율법..




율법도 십자가 안에서 명예로워 졌습니다(롬 3:31절)..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율법>은 죄를 처벌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 지셨기에 「죄인을 대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율법의 원칙에 따라 죄의 처벌을 받으셨습니다..>




그것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십자가 안에서 율법도 명예로워진 것입니다.. 거룩을 대표하는 율법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진 사건이 십자가 입니다..







5. 하나님의 성품은 「선하심」인데, 이 선하심은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1. 1번 문제.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뜻이 무엇인지 다음 성경(롬 1:18절, 마 5:21-28절) 내용을 통하여 설명하십시오..




(1) 추적점 -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드러내므로 「인간의 처참함과 무력함을 통감케」하는 질문입니다..







(2) *(답) (롬 1:18절)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진노하심」으로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를 그냥 놔둘수 없고(호 8:5절),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 「진노」인 것입니다(롬 1:18-32절)..







* 「진노의 대상」은 「불경건과 불의」(롬 1:18절) 입니다..







① 「불경건」 -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죄」를 말하는 것으로, 그 대표적인 모습으로 사도 바울은 「우상숭배」(롬 1:19-23, 25절)를 제시했습니다..




「우상숭배」란 하나님을 형상화하는 것,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마땅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감사해야 하는데, 예배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으로 바꾸어서 섬기고 경배하고 있습니다(롬 1:23절)..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a. 「사람을 우상화」하는 것으로는.. 불교의 석가모니, 대종교의 단군, 일본의 일왕, 김일성, '당신 없으면 못살아' 등이 있습니다..







b. 「새와 짐승을 우상화」하는 것으로는.. 수 없이 많습니다.. 각종 동물들, 독수리 등 피조물을 신격화하고 있습니다..




(ex) 새점 - 새를 신격화 해놓고 거기에 심각한 기대를 걸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인간의 허약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잡아 온 새에게 인간이 우롱을 당하는 것>입니다..







c. 「버러지를 우상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ex) 몇년 묵은 '지네'를 '신'으로 섬깁니다.. 제단을 만들고 그곳에서는 경건하게 예를 표하고 소원을 빕니다..




절하는 사람이 아래입니다.. 버러지에게 절하는 것은 인간이 버러지 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습니다.. 인간은 이처럼 밑으로 내려가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이 「우상숭배」에 <진노>하십니다..







② 「불의」 -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의 죄」를 말하는 것으로, 그 대표적인 모습으로 사도 바울은 「성적 범죄」(롬 1:24,26,27절)를 제시했습니다..




「성」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로, 순리대로 사용해야 하는데, 대상을 가리지 않고 서로 향하여 정욕이 불일듯하여서 심지어는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한다고 했습니다..




「성은 합법적인 결혼 안에서만 순리적으로 사용될 때 행복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외의 방법으로 사용할 때 <자신에게 죄를 짓고>(26절), 이 세상에서 <상당한 보응>(27절)을 받습니다..







a. (창 6:3절)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창 6:1-7절)




인간이 「범죄하는 순서」를 보면, <하나님께 대한 범죄>(아담)가 먼저 있고, 그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진 상태가 심화되면서 <인간에 대한 범죄>(가인)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 인간과의 관계는 자동적으로 깨어집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은 부끄럽고 저질스럽고 동물적인 것이 됩니다.. 말초적이고 충동적인 삶이 됩니다.. 그리하여 성적 범죄가 점점 노골화되어 갑니다..




<우상숭배자들>이 반드시 거치는 타락의 모습이 바로 <성적 범죄>입니다.. <성적 범죄>가 그들의 범죄의 핵심입니다.. 인간 윤리의 <최후의 보루>는 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b. 성적 범죄는 이 땅에서 「상당한 보응」을 받습니다..




「성경적」으로는 <죄의식> 가운데 살게 됩니다.. 죄의식은 <심판 의식>을 가져오고, 심판 의식은 <사람을 두려움 가운데>로 몰고가서, 전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사회적」으로는 <부끄러운 인간>이 됩니다.. 사실이 드러나면 사회에서 발을 붙일 수가 없습니다..




「인격적」으로는 <비인격자>가 되어서, 노골적으로 드러내 놓고 죄를 범하는 철면피가 됩니다..




「과학적」으로는 <육체가 파괴> 됩니다.. 에이즈와 같은 병에 걸려 시달리게 됩니다..







성은 저수지의 뚝과 같은 것입니다.. 「선」(Line) / 이 뚝(정조)이 무너지면, 마음이 무너지고, 결과적으로 뻔뻔스러워 집니다..




결국 '버려두게'(롬 1:24,26,28절)되고 그 결과 「21가지」의 죄들이 나옵니다(롬 1:29-31절)..







하나님은 이제 이 「성적 범죄」에 <진노>하십니다..







* 하나님의 「진노의 방법」..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때리고 죽이고 망하게 하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고 <오래참음>으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그 <오래참음>의 실상은 「정확하고 섬세하고 두려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로마서 1,2장>에 나타난 진노의 방법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첫째로, <내어 버려둠> 입니다(롬 1:24,26,28절)..




하나님께서는 계속적으로 죄를 고집하는 자를 내버려두는 방법으로 진노하십니다(잠 3:12절)..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이것이 자유이고, 형통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하시는 방법입니다..




「죄」가 <하나님으로부터의「독립선언」> 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인간을 돌봄으로부터의 「포기 선언」> 입니다..




정욕(롬 1:24절), 욕심(롬 1:26절), 불신앙(롬 1:28절) 가운데 <내버려 두시는 하나님의 진노>는 아주 무서운 진노입니다..







② 둘째로, <쌓아둠> 입니다(롬 2:5절)..




벌을 유보한채 쌓아 둔다는 것은 「그 뒤에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징벌을 몰아서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ex) 삼풍 백화점, 성수 대교를 생각해 보면 그 결과가 상상이 갑니다..







③ 셋째로, <덮어둠> 입니다(롬 2:16절)..




은밀한 것이 <자발적으로> 「드러날 때까지」(민 32:23절) 폭로하지 않고 덮어두는 것, 그것 자체가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답) (마 5:21-28절)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뜻은 <하나님이 죄에 대해서 진노하신다는 것>(롬 1:18-32절)과 함께, 하나님은 인간의 드러난 겉모습 뿐만 아니라 「인간의 그 내면과 행동의 동기까지도 궤뚫어 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2. 2번 문제. 과연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까(롬 3:9-23절)?




(1) 추적점 -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 드러나므로 그 거룩의 기준에 누구도 도달할 수 없다는 <인간의 한계>와, 그로인해 전혀 새로운 차원의 <구원자>가 있어야 함」을 암시하는 문제입니다..







(2) <로마서 1장 18절-3장 22절>까지의 요약..




① (1:18-32절) <우상숭배와 부도덕과 반 사회적 행동에 빠져 있는> 「타락한 이방인 사회의 죄..」




② (2:1-16절) <고도의 윤리적 기준을 주장하면서, 그 기준들을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적용시키는> 「비판적 도덕론자의 죄..」




③ (2:17-3:8절)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자신들의 지식을 자랑하지만 그것에 순종하지 않는> 「자기 과신적인 유대인들의 죄..」




④ (3:9-18절) <죄에 대한 결론적 종합>으로 「죄의 일반적인 모습..」







- (9절)은 죄에 관한 한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차별이 없이 모두 죄인임..




- (10-12절)은 죄의 일반적인 상태에 대하여 핵심적으로 지적하는데 인간은 아무도 이 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의인은 많이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의의 기준(절대적 기준)에 미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음.. <깨닫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다 치우쳐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도 없다>고 했음..




- (13-17절)은 의인이 아닌 구체적인 증거들을 「언어상의 죄」(13,14절) 와 「행위상의 죄」(15-17절)로 예시하고 있음..




- (18절)은 전 인류의 타락의 결과로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고 고발하고 있음..







⑤ (3:19,20절) 의롭게 되는 것은 「인간의 노력(율법을 지킴)으로는 안됨.. 인간 스스로는 의롭게 될 수 없다고 강조함..




⑥ (3:21,22절) <복음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것>으로,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됨..







(3) *(답) <로마서 3장 23절>은 <로마서 1장 18절부터 3장 20절>까지 말해 왔던 「죄론」의 결론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하게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4) 율법은 하나라도 못 지키면 안됩니다(약 2:10절)..




천국은 100% 의인이 안되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90% 의인, 50% 의인은 모두가 불가능합니다.. <나는 누구보다 낫다>고 말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는 <좋은 것이지만> 그것이 구원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상대적인 관계가 아니라 절대적인 관계입니다..







(5) 비교..




① 하나님의 거룩 -> 율법 -> 행위 요구 -> 심판(심판관 필요) -> 멸망(결과) -> 지옥..




② 하나님의 사랑 -> 예수님 -> 믿음 -> 구원 -> 영생 -> 천국..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으로 나가면 <지옥>의 판결을 받습니다..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계약을 파기한 죄인들을 위해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의 사랑>에 호소해야 합니다..」







3. 3번 문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고전 13:4-8절, 벧후 3:8-9절, 요일 4:9,10절)?




(1) 추적점 -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을 드러내므로 「<죄 많은 인간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가능성이 있음」을 드러내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 앞에서는 무기력하였던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는 놀랍게도 살 길이 생겼음을 드러내는 문제입니다..







(2) 우리의 기도도 하나님의 이 두 성품을 놓고 볼 때 「하나님의 사랑에 호소」해야지 하나님의 거룩에 호소해서는 안됩니다..




"주님! 저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대하여 주시고, 불쌍히 여겨 주시고, 도와 주시옵소서.."







「모세의 기도」(출 32:32절) 는 하나님의 사랑에 호소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18장>의 「아브라함의 기도」(25절)는 <하나님의 거룩>에 호소한 기도로서 결국 불행을 자초했습니다..







(3) *(답) (고전 13:4-8절, 벧후 3:8,9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우리에게 대한 「오래 참음」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벧후 3:9절)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음」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해도 끔찍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노래한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한번 같이 불러 보겠습니다..







* 『호세아서』를 읽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이 호세아의 고멜에 대한 사랑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음란한 여인인 고멜을 아내로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습니다(이스르엘, 로루하마, 로암미)..




이남자 저남자를 사랑했던 고멜은 호세아와의 결혼에도 불구하고 틈틈히 결혼 전의 직업을 찾아가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로암미>라는 뜻은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인데, 호세아와의 정상적인 관계에서 낳은 자식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중간에 아르바이트 나갔다가 생긴 자식이라는 뜻입니다..




그래도 호세아는 계속 사랑을 하고 자식을 셋이나 낳으면서 삽니다.. 그 가운데 고멜은 점점 집에 찾아오는 시간이 뜸해지면서 급기야는 노예로 팔려가게 됩니다..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돌아올 수 없는 자리에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섭섭하고 아쉽지만 그 정도에서 단념하고 새롭게 출발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호세아는 다시 한번 하나님의 명령을 받습니다..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호 3:1절)




호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댓가를 지불하고 고멜을 다시 사옵니다.. 하나님의 끈질긴 참으심이 완벽하게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고멜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기회가 주어지면 예수님 믿기 전의 삶으로 돌아가서 거기에 파묻혀 세상의 열매들을 맺으며 세상과 짝하다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길을 잊어버리고 세상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구원 열차 C형)




하나님께서 다시 찾아 주시지 않는다면 더 이상 기대를 걸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멜을 버리지 않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고 찾아 오십니다.. 호세아는 고멜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부탁을 합니다..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행음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좇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호 3:3절)




하나님은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에게 대하여 이렇게 참아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한가지 더 생각할 것은 하나님의 사랑도 중요하지만, 「사랑을 받는 우리의 자세」(믿음)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고멜은 호세아의 초청에 자기의 비참한 처지를 들먹이며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고멜이 자격 운운하며 따라 갈 수 없노라고 거절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고멜은 <호세아의 사랑>을 믿고 다시 가정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고멜도 훌륭한 여자입니다.. 고멜은 하나님의 사랑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답) (요일 4:9-10절)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 편에서 「먼저」, 자기의 「독생자」를, 「화목 제물」로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이"(롬 8:32절)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자기의 아들을 내놓겠습니까?




더구나 문제의 원인은 인간 쪽에 있는데 해결하지 않으면 <죄 -> 사망 -> 심판 -> 지옥>의 길을 가야할 당사자가 문제 해결에 나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이 일을 해결하시기 원하신 것입니다..




엄청난 희생을 먼저 감행하신 것입니다..







4. 4번 문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성육신)과 하나님의 사랑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설명해 보십시오(요 1:14절, 히 1:1절, 빌 2:5-8절)..




(1) 추적점 - 하나님의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을 부각시키는 문제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심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순종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가시적으로 드러났고 그로인해 인간에게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3) *(답)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심은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요, 「인간 구원의 법적 근거」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5. 5번 문제. 이런 하나님에 대해 시편 기자(시 42:1,2,5절, 시 23:1-6절)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까?




(1) 추적점 - 하나님의 구체적인 사랑의 행위 앞에 「인간의 삶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는 문제입니다..







(2) *(답)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는..




첫째, (시 42:1,2,5절) - 하나님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생명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자연스럽게 하늘 나라를 소망하게 됩니다..







(기도)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시 42:1,2절)..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자 하는 갈망>,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자 하는 갈망>,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찬양하고자 하는 갈망>, 낙심하지 않고 불안해 하지 않고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자 하는 갈망>을 주시옵소서(시 42:3-5,11절)..」







둘째, (시 23:1-6절) -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도) 「여호와를 목자로 모시므로 인생의 갖가지 환난 풍파 속에서도 자유로웠던 다윗처럼(시 23편) <참 자유를 누리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1절) 한 것처럼 <욕망>으로부터 자유한 자가 되게 하여 주시고,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2,3절) 라고 한 것처럼 <방황>으로부터 자유한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4,5절) 라고 한 것처럼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한 자가 되게 하여 주시고,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6절) 라고 한 것처럼 <죽음>으로부터 자유한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윗이 가졌던 이 거부할 수 없는 자유를 맘껏 찬양하고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3) 찬양과 간증이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4) (ex) 아들을 바치고 가슴 아프게 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 모습..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자가 <잘난 척하고, 죄 짓고, 막 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히려 주님이 하시던 일, 하실 일이 무엇인가를 묻고 행해야 합니다..







(5) 찬송가 390장 "예수가 거느리시니..."
  
  새 생명의 의미 5 - 새 생명과 예수 그리스도 (눅 2:52절)  이기남 20·02·12 81
  새 생명의 의미 3 - 새 생명의 필요성 (창 3:8,23절)  이기남 20·01·29 94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GGAM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