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축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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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 창세기 28 - 구별된 경쟁력 (14:1-24절)(20절)
 이기남    | 2020·02·15 10:09 | HIT : 98 | VOTE : 0
* 창세기 28 - 구별된 경쟁력 (14:1-24절)(20절)







우리는 <창세기 13장>을 <다투지 말자> 라는 제목으로 함께 나누었습니다..




아브람은 롯과 다투지 않기 위해 선택권을 양보했고, 롯은 자기 눈에 보기에 좋은 땅을 골라 아브람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롯이 이사를 간 땅이 전쟁에 휩쓸립니다.. 롯은 그 땅의 풍요를 맛보기도 전에 전쟁으로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포로로 끌려갑니다..




고대 시대의 전쟁 포로는 곧 노예를 의미했습니다.. 그의 앞에는 비참한 노예의 삶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1-12절>은 롯이 휩쓸리게 된 전쟁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자세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동방의 네 나라와 네 왕이 있습니다.. 시날(바빌로니아) 왕 아므라벨, 엘라살 왕 아리옥, 엘람 왕 그돌라오멜, 고임 왕 디달이 그들입니다..







이 중에서 엘람 왕 그돌라오멜이 맹주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돌라오멜은 서방의 다섯 나라의 왕들로부터 12년 동안 조공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 나라들과 왕들은 소돔 왕 베라, 고모라 왕 비르사, 아드마 왕 시납, 스보임 왕 세메벨, 그리고 벨라(소알) 왕입니다..




서방 왕들은 조공을 바친지 13년째에 들어서서 그돌라오멜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돌라오멜은 다른 세 왕들과 연합(그돌라오멜 동맹군)하여 14년째에 정복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동방에서 <왕의 대로>(King’s Highway)를 따라 요단 동편의 나라들, 곧 아스드롯 가르나임에서 르바 사람들을, 함에서 수스 사람들을, 사웨 기랴다임에서 엠 사람들을 차례로 정복하며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들은 곧바로 서방 다섯 나라와 맞부딪히지 않고 남쪽으로 더 내려가 세일 산에서 호바 사람들을 치고, 엘바란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엔밋밧(가데스)으로 방향을 돌려 아말렉과 아모리 사람들을 쳤습니다..







아마도 서방 다섯 나라(소돔 고모라 동맹군)의 배후를 먼저 치는 전략을 수행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고 난 후에, 그들은 역청 구덩이가 많은 싯딤 골짜기에서 소돔 고모라 동맹국의 군대와 마주했습니다..







전투는 금세 판결이 났습니다.. 소돔 고모라 동맹군은 힘도 써보지 못하고 도망쳤고, 그 와중에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은 역청 구덩이에 빠졌습니다..




역청 구덩이에 빠지면 자칫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데, 뒤에 소돔 왕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소돔 왕은 목숨을 건진 것 같은데, 고모라 왕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소돔 고모라 동맹군의 배후가 될 나라들을 친 것, 싯딤 골짜기를 전투의 장소로 정한 것 등을 보면 그돌라오멜은 전술에 매우 뛰어난 왕이었던 것 같습니다..




소돔 고모라 동맹군은 그 앞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전투에서 승리한 그돌라오멜과 그의 군대는 소돔 고모라를 약탈했습니다.. 사람들의 모든 재산과 음식을 빼앗았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줄줄이 엮어서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이 와중에 롯도 끌려갔습니다.. 롯의 재산도 다 빼앗겼습니다..




<1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소돔에 거주하는 롯> 그런데 <아브람의 조카 롯>이라고 밝힙니다..




롯이 전쟁에 휩쓸리게 된 이유, 모든 재산을 적군에게 빼앗기고 포로로 잡혀간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그가 소돔에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롯은 그 땅이 보기에 좋아서 갔습니다.. 자신의 가축을 늘려주고, 자신을 부자로 만들어 줄 것 같아서 갔습니다..




그런데 그 땅은 전쟁에 휩쓸렸습니다.. 모든 것을 빼앗겼습니다.. 자신은 노예로 전락했습니다..




노예에게는 삶도 미래도 없습니다.. 눈에 보기에 좋은 선택이 얼마나 허망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우리는 롯의 경우를 통해서 보게 됩니다..







우리의 선택은 어떨까요?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을 해야 할까요?




사람들의 선택 기준은 분명합니다.. <눈에 보기에 좋은 곳>입니다.. <내게 유익 되는가 아닌가, 내 눈에 보기에 좋은가 아닌가, 다른 사람들도 좋다고 하는가 아닌가>... 이런 것이 선택의 기준입니다..







그러나 내 눈에 보기에 좋고,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직장에 간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눈에 보기에 좋은 사람하고 결혼한다고 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보기에 좋은 대로 산다고 해서 인생이 잘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언약이 있는 곳,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육안으로는 그곳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내 눈을 열어 주셔서 하나님의 언약이 있는 곳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 자녀들의 눈을 열어 주셔서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을 선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 형제 자매들의 눈을 열어 주셔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하나님께 묻고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선택은 반드시 옳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







롯은 자신의 눈에 보기에 좋은 땅을 선택했는데, 그 땅에 전쟁이 났습니다.. 모든 것을 빼앗겼습니다.. 자신은 포로가 되었습니다..




절망입니다.. 모든 꿈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아브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브람의 조카>입니다..







아브람은 롯이 떠난 후 헤브론으로 정착지를 옮겼습니다..




그는 약속의 땅에 남고자 결심했고 그 실천의 표시로 가나안 땅의 중심부인 헤브론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곳에는 아모리 사람 마므레와 그의 형제들인 에스골과 아넬이 유력자들로 있었습니다..







아브람은 이들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아브람은 이들과 동맹을 맺을 정도로 어느덧 족장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많은 가축과 식솔들이 딸려 있었습니다.. 그의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종들 중에서 318명(구별된 경쟁력)을 뽑아 훈련 시킬 정도로 세력이 있었습니다..







롯과 함께 포로로 끌려가던 한 사람이 도망쳐 나왔는데, 그가 롯의 소식을 아브람에게 전했습니다(13절)..




이 사람이 롯과 아브람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이 아브람을 찾아와 롯의 소식을 전한 것을 보면, 그가 도망칠 때 롯의 부탁을 받았을 것이라는 가정도 해 볼 수 있습니다..




도망친 사람을 통해 롯은 아브람에게 <구조 요청>(SOS)을 보냈습니다..







롯이 포로로 끌려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브람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우리>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은혜를 저버리고 미련 없이 떠난 사람이 이렇게 비참한 상태가 되어 구조 요청을 해 왔을 때,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될까요?




각자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나 아브람의 생각은 분명했습니다.. <롯을 구해야 한다..>




롯의 소식을 들은 즉시 아브람은 집에서 훈련 시킨 <318명의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구별된 경쟁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돌라오멜 동맹군을 쫓아 단까지 갔습니다..







그 날 밤에 아브람은 자기 부하들을 둘로 나누어 기습 공격을 펼쳤고, 도망치는 그돌라오멜 동맹군을 다마스커스 북쪽의 호바까지 쫓아냈습니다..




<16절>에 보면, 아브람은 그들이 빼앗아 간 재산을 모두 되찾았습니다.. 자기 조카 롯과 롯의 모든 재산을 되찾았고, 여자들과 다른 사람들도 되찾았습니다..







<되찾았다>는 말은 정확히는 아브람이 되찾은 게 아니라 <되찾아 주었다>는 뜻입니다..




아브람은 전쟁의 승리로 롯의 삶을 되찾아 주었고, 그의 재산을 되찾아 주었습니다.. 소돔 고모라와 수 많은 사람들의 삶을 되찾아 주었고, 그들의 재산을 되찾아 주었습니다.. 아브람이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싸움이 아브람에게 얼마나 위험한 싸움이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돌라오멜 동맹군의 전투력은 상대할 나라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돌라오멜 왕의 전략도 대단합니다.. 서방의 부족 국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소돔 고모라 동맹군조차 박살을 낸 연합군입니다..




이런 군대와 싸움을 벌인다는 것은 무모하기 이를 데 없는 일입니다.. 패배가 뻔한 싸움입니다..







아브람이 이 사실을 몰랐을까요? 잘 알았을 것입니다.. 그가 집에서 태어난 종들 중 318명을 훈련시킨 것을 보면, 아브람도 전쟁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가 이 무모한 전쟁에 뛰어들 수 밖에 없었던 동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조카 롯>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롯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롯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다면 아브람은 전쟁에 뛰어들 이유가 없었습니다.. 롯은 아브람을 서운하게 하고 떠난 사람입니다.. 아브람을 섭섭하게 한 사람입니다.. 아브람의 은혜를 저버린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롯이 곤경에 처하게 되었을 때, 아브람은 롯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외면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목숨을 걸고 뛰어들었습니다..




<롯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밖에는> 아브람의 행동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승리했습니다.. 불가능한 전투에서 이겼습니다.. 이 승리는 엄청난 승리였고, 사람의 상식을 뛰어 넘는 승리였습니다..




물론 이 승리는 뒤에서 멜기세덱이 말한 대로, 가장 높으신 하나님께서 원수를 아브람의 손에 넘기셨기 때문에 거둔 승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승리는 아브람의 승리였고, 롯에 대한 사랑의 승리였습니다..




아브람은 자신을 섭섭하게 한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은혜를 저버린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자기를 떠나 버린 사람을 끝까지 사랑했습니다..




이 사랑이 승리를 주었고, 이 승리가 모든 사람에게 삶과 재산을 되돌려 주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승리의 공식을 배웁니다.. <사랑하면 승리한다!>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다!>







인생은 전쟁에 비유되곤 합니다.. 매일 매일의 삶이 곧 전투입니다.. 특별히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영적인 전투를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전투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우리가 승리해야 다른 사람에게도 삶과 재산을 되돌려 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인생의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미워하고 비방하고, 원수 맺고, 빼앗고, 다툽니다.. 자기 시간, 자기 돈, 자기 것만 챙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승리의 비결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것이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특별히 우리에게 섭섭하게 한 사람, 은혜를 배반하고 떠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그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 아무 조건 없이 도와주고 사랑을 베푸는 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우리는 전쟁의 승패가 우리의 능력이나 군사력이나, 무기나, 재능에 있지 않고 여호와께 있음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삼상 17:47절)입니다..







사랑하면 승리합니다..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십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면 가정이 승리합니다.. 직장 동료들이 서로 사랑하면 그 회사는 승리합니다.. 학생들을 사랑하는 선생님은 승리합니다.. 목회자가 성도들을 사랑하면 승리합니다..







사랑하면 우리가 지는 것 같고, 낮아지는 것 같고, 손해보는 것 같고, 심지어 죽을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승리를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승리를 주십니다..




복음 사역이 힘들지만 우리가 영혼들을 사랑하면 승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독생자를 주심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사탄의 결박을 풀어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우리도 사랑하면 승리한다는 확신을 얻어 실제 삶에서 체험하고 실천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람을 두 왕이 맞았습니다.. 하나는 소돔 왕입니다..




그는 아브람에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21절) (쉬운 성경) “저에게는 붙잡혀 갔던 사람들만 돌려주시고 재물은 다 가지십시오.”







그러자 아브람이 단호하게 말합니다.. <22-24절>을 (쉬운 성경)으로 보십시오..




“나는 하늘과 땅을 지으신 가장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나의 손을 들어 약속합니다. 나는 당신의 것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겠습니다. 나는 실오라기 하나도, 신발 끈 하나도 가지지 않겠습니다. ‘내가 아브람을 부자가 되게 만들었다’ 는 말을 당신이 하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나의 젊은이들이 먹은 음식 말고는 그 외에 아무것도 가지지 않겠습니다. 다만 나와 함께 싸움터에 나아갔던 아넬가 에스골과 마므레의 몫만은 그들에게 주십시오.”







언뜻 보면 소돔 왕의 요청은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아브람이 왜 이토록 단호하게 말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고대 시대에 전쟁의 승자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전리품에 대한 권리가 승자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에게는 소돔의 사람들뿐 아니라 재물에 대한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돔 왕은 이 권리 중 재물에 대한 권리만 인정합니다..




사람은 달라고 합니다.. 이 요청의 의미는 아브람이 소돔 고모라 동맹군에 가입하여 맹주 역할을 하는 자신의 보호하에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소돔 왕의 줄을 잡으라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이것을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는 가장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만이 자신의 보호자임을 분명히 선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으신 가장 높으신 여호와이심을 믿는 아브람에게는 당당함이 있습니다.. 그는 사람의 줄에 기대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줄에만 서겠다고 말합니다..





아브람을 맞으러 나온 다른 한 왕은 살렘 왕 멜기세덱입니다(18절)..




멜기세덱은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제사장이 아브람을 마중나왔습니다.. 멜기세덱은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승리의 잔치를 벌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멜기세덱은 아브람을 보자마자 그를 다음과 같이 축복합니다..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19,20절)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며,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보낸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대사입니다.. 하나님의 대사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멜기세덱의 축복은 하나님의 마음이며, 하나님의 뜻입니다..







멜기세덱은 아브람을 보자 마자 축복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복을 빌어 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람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 하나님이 복 주시기를 원하는 사람, 하나님이 칭찬할 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누가 우리를 보면, 복 빌어 주고 싶은 사람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도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 2:52절)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약 성경 『히브리서』 <5-8장>에 보면, 멜기세덱은 정의의 왕이며 평화의 왕으로서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 모형으로 제시됩니다..





예수님은 왕이시면서 동시에 제사장이셨는데, 아브람의 후손인 레위인의 혈통을 따른 제사장이 아니라 멜기세덱을 따른 제사장이셨습니다..







그러므로 멜기세덱이 아브람을 마중 나온 이 사건은 고대의 어느 날 사웨 골짜기에서 일어난 사건인 동시에, 예수님께서 아브람의 발자취를 따르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하시는 행동의 모형이 된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롯에 대한 사랑으로 하나님의 승리를 체험하고 돌아오는 아브람에게 멜기세덱이 한 것처럼, 사랑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를 얻는 우리 모든 신자들에게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중 나오셔서 어떻게 하신다고요? 멜기세덱처럼 하십니다..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ooo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우리를 칭찬해 주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의 승리가 우리의 능력이나 준비나, 계략이나 지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 가장 높으신 그분께서 주신 것임을 가르쳐 주시고, 그분을 찬양하게 하시는 분,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인생의 전투에서 사랑으로 승리할 때마다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오셔서 복 주시고, 승리의 잔치를 베풀어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최후의 승리의 날에 주님께서 우리를 맞아 주십니다..







달란트 비유(마 25:14-30절)에서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 받았던 종들을 주인이 칭찬한 것처럼, 예수님은 인생의 전투를 사랑으로 승리하고 돌아오는 우리를 맞으시면서 칭찬하실 것입니다..




<참 잘했구나.. 너는 착하고 신실한 종이다.. 네가 적은 것에 최선을 다했으니, 내가 훨씬 더 많은 것을 너에게 맡기겠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







멜기세덱의 축복에 대한 아브람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아브람은 특별한 반응을 보입니다.. <20절 뒷 부분>에 보면, 아브람은 멜기세덱에게 가지고 있던 모든 것 중에서 십분의 일을 주었습니다..




이것의 의미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셨다는 아브람의 신앙 고백입니다..







여기에서 십일조 헌금의 의미가 나왔습니다.. 십일조 헌금은 우리가 얻은 것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오해하기를,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돈이고, 십분의 구는 내 돈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열 가운데 하나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열이라는 전체를 하나로 대표해서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나의 소득의 전부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에게 내 돈은 없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돈으로 음식을 사먹고, 하나님의 돈으로 공부하고, 하나님의 돈으로 자녀 양육하고, 하나님의 돈으로 사업하고, 하나님의 돈으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여기에서 내 돈으로 사는 사람과 하나님의 돈으로 사는 사람이 갈립니다.. 내 돈으로 사는 것이 좋을지, 하나님의 돈으로 사는 것이 좋을지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내 돈으로 음식을 사 먹는 것이 좋은지, 하나님의 돈으로 음식을 사 먹는 것이 좋은지, 내 돈으로 자녀 교육시키는 것이 좋을지, 하나님의 돈으로 자녀 교육시키는 것이 좋을지 판단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돈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은 십일조를 합니다.. 그리고 그 삶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재물로 하는 신앙 고백입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가장 높으신 여호와 하나님이 나에게 모든 것을 주시고, 인생을 승리하게 하실 것 입니다..>







우리를 맞으러 나오실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사랑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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