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축제교회

 


TOTAL ARTICLE : 880, TOTAL PAGE : 1 / 44
기타 : 새 생명의 의미 7 - 새 생명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요일 4:9,10절)
 이기남    | 2020·04·29 18:38 | HIT : 87 | VOTE : 1
* 새 생명의 의미 7 - 새 생명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요일 4:9,10절)







* 제 6 과의 목표..




6과는 「인간 구원의 법적 근거인 십자가 사건의 실재(實在)와 목적을 드러내는 이 교재의 제일 핵심적으로 중요한 과」입니다..







** 제 6 과를 위한 준비..







1. 예수님의 3중(重) 사역..




(1) 계시 /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가르쳐주는 사역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요 1:1절, 14:6,7절)..




(2) 제자 훈련 / 제자들에게 본을 보이시고 훈련시키는 사역입니다..




(3) 십자가 /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사역입니다..







2. 십자가 사역..




(1) <십자가 사역>은 그것이 「성경의 기록 목적」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합니다(요 20:31절).. (존 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 1장 참고.)




(2)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은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는 결코 소홀히 다룰 수 없고, 상식적인 수준으로 다루어서도 안됩니다.. 「깊이, 인격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 십자가에 대한 「인격적인 고백」이 있어야 하고, 이 십자가의 복음을 의미있게 잘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십자가 사건」은, 그것이 「역사적 사건임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로마가 이스라엘을 점령했을 때 일어났습니다..




십자가 사건을 「사실적인 사건」으로 받아 들여야 하고, 「관념적」으로나 「전설」로 받아들이면 안되겠기에, 예수님은 「로마 사람」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습니다..







(1) 당시 로마 원로원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인들을 멸시하기 때문에, <민감한 지역>으로 여기고, 이스라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똑똑하고 「실력있는 자」를 이스라엘 총독으로 보냈습니다.. (ex) 영화 「벤허」




(2) 로마가 이스라엘을 비롯한 이방 나라들을 오랜동안 지배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들이 생명과 같이 여겼던 「기록」(보고서, 문서 등) 이었습니다.. 그들의 기록에는 「사실성, 정확성, 신속성」이 있었습니다..







① 로마와 관계된 모든 사건을 정확하게 기록하여 신속하게 전달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② 이스라엘의 핵심인 민감한 지역인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사건은 반드시 기록되어 보고 되어져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기록의 정확성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3) 십자가의 사건을 추상적으로 믿는 오류를 범하면 안됩니다..




십자가 사건은 사실인데 그 객관적인 신빙성을 보존하는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로마 통치하」에 이 사건을 배열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사건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ex) 「빌라도 보고서」 / 빌라도는 황제에게 이것을 보고해야 하겠기에 모든 것을 사실대로 정확하게 기록하였습니다..




거짓 보고서는 상상도 안됩니다..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4.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자는 누구입니까?







(1) 십자가의 역사성 / 역사적 사실을 중심으로..




① <가롯 유다>는 「탐욕」 때문에 예수님을 <제사장들>에게 넘겨 주었습니다(막 14:10,11절)..




② <제사장들>(가야바)은 「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 주었습니다(막 15:1-5절, 10절)..




③ <빌라도>는 「비겁함」(자기 이익) 때문에 예수님을 <군병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막 15:6-15절)..




- 빌라도는 사도신경으로 신앙 고백 할 때마다 거론되는 십자가의 실질적인 책임자입니다.. 그는 자신의 직무를 유기하고 무책임하게 처리했습니다..




④ <군병들>은 「의무감」 때문에 예수님을 <백성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⑤ <백성들>은 「무지」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주었습니다(참고 / 호 6:3절)..







(2) 십자가의 현재성 / 개인적 적용을 중심으로..




내가 지금.. 유다처럼 「탐욕」을 부린다면, 제사장들처럼 「시기」한다면, 빌라도처럼 「야망」을 쏟아 낸다면, 군병들처럼 「의무감」에 젖어 있다면, 백성들처럼 「무지」가운데 갇혀 있다면.. 나는 지금 예수님을 십자가에 다시 못 박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결국 「내가」 죽인 것입니다(찬송가 147장)..







(3) 십자가의 영원성 / 하나님의 계획을 중심으로..




① 예수님은 순교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발적」으로, 「의도적」으로 십자가를 향해 가셨습니다(막 10:45절, 마 20:28절)..




②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 준 것입니다(요 3:16절)..




돈(유다), 두려움(빌라도), 시기(제사장들), 의무감(군병), 무지(백성)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성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겨준 것입니다(옥타비아누스 윈슬로우)..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하나님의 복음」, 롬 1:1절)..







1. (1번 문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상태를 설명하십시오(막 15장, 눅 23장, 마 27장, 요 19장을 미리 자세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으십시오..)..







(1) 추적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실재>를 보여주므로, 「십자가가 역사적인 사건」임을 드러내서 <인간의 구원이 실재이며 역사적인 것>임을 확증하려는 질문입니다..







(2) 답..







① 재판에서 죄가 발견되었습니까? (막 15:9-14절, 눅 23:14절 참조)




「죄를 찾지 못했습니다」(눅 23:4,13,14,22절)..




빌라도는 당대의 최고의 재판관이었습니다.. 로마 원로원과 황제에게 책임져야하는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빌라도가 무죄를 선포했습니다..




세상의 <법대로>하면 석방 되어야 했지만, 「예수님은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본인의 죄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닙니다..」







최후의 보루인 재판석(법정)마저 거짓을 말한 것입니다.. 공의가 성립되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는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공정하게 재판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영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십자가는 「법적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법>에 의해 죽으셨습니다(롬 6:23절).. 우리의 죄를 대신 지셨기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감정적>으로 느끼려고 접근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십자가를 대하면서 눈물을 흘리거나 슬퍼해 하면서 경건을 짜내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십자가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사건이며, 그 안에 지독한 배반과 외면이 있었다는 것을 더 자세히 묘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하지 않은 이유는, 더 중요한 것은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냉정하게 <십자가의 의미>를 명백히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눈물을 흘리고 슬프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그 의미를 깨닫고 개인적으로 적용하여 구원 받게 하기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법정」은 감정이 앞서는 곳이 아닙니다.. 사실에 입각한 냉정한 곳입니다.. 골고다 언덕은 세상에서 두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하나님의 법정」입니다..







② 예수님께서 어떤 「고난과 조롱」을 받으셨습니까? 자세히 설명해 보십시오.(막 15:16-32절 참조)




십자가는 죽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기 전에 많이 때려서 피를 많이 흘리게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다가 쓰려지셨습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자신이 지고 가려고 하셨습니다.. 꾀를 부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당하신 <고난의 항목들>을 살펴 보는 것은 경건과 헌신에 아주 유익합니다..




<마가복음 15장>을 읽으면서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의 항목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배반」입니다..




「제자들의 배반」입니다.. 「마가복음」 내내 제자들은 예수님의 길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더니 급기야 예수님을 버려두고 도망가고, 부인하고, 배반하는 것으로 마감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이 바로 이 배반 당하시는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의 배반과 함께, 「백성들의 배반」도 주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더 가중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습니다.. 배반 당해 보셨습니까?







배반 당하신 주님을 기억하며, 남은 생애, 주님께 죽도록 「충성하는 자」로 살기로 결심합니다..







둘째, 「조롱」(嘲弄)입니다..




사람들이 사랑의 주님을 비웃고 깔보고 놀렸습니다.. 조롱 당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참담한 일입니다..




조롱 당하신 주님을 생각하며, 남은 생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로 결심합니다..







셋째, 「육체적 고통」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힘에 부쳐서 이리 넘어지고, 저리 쓰러지는 주님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러다가 무릎이 으스러지기도 합니다..




채찍에 맞을 때 그 으스러진 무릎으로 또 다시 쓰러지시고, 채찍에 맞은 자리마다 살이 찢어지고, 찢어진 곳에서는 피가 솟구쳐 올라 옵니다..




가시관이 주님의 머리에 씌워졌을 땐 얼굴이 피로 물드셨다고 찬송가 가사는 전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소리가 들리십니까?




세 개의 장대못은 주님의 손과 발목을 깊숙히 찔러, 살과 뼈를 통과해서 나무에 박혔습니다..




한 군병이 창으로 주님의 허리를 찔렀을 때는 주님의 몸 안의 모든 액체가 내장과 함께 다 쏟아져 나왔습니다.. 예수님의 온 몸은 완전히 망가지셨습니다..







<시편 22편>에서 기자는 이렇게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고통 당하신 주님을 묵상하며, 남은 생애, 묵묵히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며 살기로 결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몸에 채운 대표적인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고후 11:22-33절).. 사도 바울은 수고를 넘치도록 했다고 했습니다..







넷째, 「모욕」입니다..




사람들이 마구 주님을 깔보고 욕되게 합니다.. 주님이 당하시는 모욕, 더 이상 볼 수 없어서 눈물만 흘립니다..




주님이 겪으신 모욕을 생각하며, 남은 생애, 주님을 명예롭게 하는 삶, 주님을 높이 높이 「찬양의 삶」을 아름답게 살아 드리기로 결심합니다..









다섯째, 「유혹」입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통 중에 가장 견딜 수 없는 가혹한 고통이, <십자가를 지지 말라>는 유혹을 받는 것입니다..




주어진 능력을 발휘하지 않고, 절제한다는 것은 정말 참기 어려운 큰 고통입니다..







견디기 어려운 유혹을 받으셨던 주님을 기억하며, 남은 생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의) 십자가를 「단 마음으로」지고 주님을 따라 가기로 결심합니다..







여섯째, 「죽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앞에 두고 절규하시는 모습을 묵상합니다.. 죽음 앞에서의 그 「절대적인 고통」을 느끼려고 몸을 기울여 봅니다..




저 자신이 대신할 수 없는 죽음이기에, 무익한 종은 그냥 눈물만 흘릴 뿐입니다..







죽음과 그 죽음을 앞에 둔 예수님의 「극단적인 긴장」을 생각하며, 남은 생애, 한 알의 썩어져 가는 밀알이 되어서 <산 죽음>의 「순교적인 삶」을 주님 앞에서 겸손하게 살기로 결심합니다..







일곱째, (하나님으로 부터의)「외면 당함」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을 향한 외면, 이것이야말로 예수님의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입니다.. 예수님은 부르짖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버림 받음>의 고통을 당하신 주님을 생각하며, 남은 생애,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살기로 결심합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이 모든 고통의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모두 다 「나의 죄」 때문입니다.. 갖은 고통을 다 당하신 주님을 영원히 사랑하고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을 살기로 결심합니다..







③ 예수님은 얼마동안 십자가에 달리셨습니까? 그 때 일어난 사건들을 말해보십시오..(막 15:23,24,29,32,33,34,37절 참조)(10가지 이상 찾아 보십시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금방」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 있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감정을 앞세워 십자가를 대하려는 시도」를 거절하십시오..







예수님은 군병들에게 온갖 희롱을 다 당한 후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 이르렀습니다.. 군병들이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지만 예수님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군병들은 아침 9시가 되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계시는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습니까?







「십자가 위에 있는 죄패에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씌어 있고, 강도 둘이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 같이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기 머리를 흔들며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예수님을 <모욕>했고,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조롱> 했습니다..




양 옆의 강도들도 같은 말로 예수님을 욕했습니다..







낮 12시가 되자, 온 땅에 어둠이 덮혀 오후 3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오후 3시에, 예수님께서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큰 소리로 외치셨고, 어떤 사람이 달려가서 신 포도주를 해면에 묻혀, 막대기에 매달아 예수님께 마시게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다 이루었다"(요 19:30절)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이 말씀은 엄청난 말씀입니다.. 엄청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법적 선언」 입니다.. <우리의 구원의 법적 근거>가 완성된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의 「원 복음」으로부터 시작해서 「아브라함 언약」(창 22:18절), 「다윗 언약」(삼하 7:12-16절)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이제 <십자가에서 완성된 것>입니다..




<이 때> 성전의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중풍병자에게 "네 죄가 사하여 졌다"(막 2:1-12절) 고 한 것, 간음하는 현장에서 잡힌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요 8:1-11절) 고 한 것 등등..




우리들의 모든 죄가 용서 받았다는 선언과 선포들의 「법적 근거」가 바로 이 말씀 안에 있습니다.. 할렐루야..







<히브리서 9장 16,17절>에 나오는 「유언」의 말씀, 우리의 「모든」(양적) 죄를 「완전히」(질적), 「영원히」(시간적) 용서하신다는 <유언의 말씀>이, 십자가 상에서 "다 이루었다"는 예수님의 선포 속에서 드디어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간음하는 현장에서 잡힌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요 8:1-11절) 고 말씀하시기 전에 예수님은 여인 앞에서 침묵했습니다..




그 시간에 예수님은 십자가를 생각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침묵하실 때, 우리도 십자가를 생각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2. (2번 문제)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는지 다음 구절을 통해 설명해 보십시오..







(1) 추적점..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는지를 물어서, 십자가 사건이 얼마나 많은 부분에 다양한 결과들을 초래했는가를(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어 놓으신 전인적인 구원의 역사들을) 드러 내려는 질문입니다.. (ex) 롯데월드 - 자유 이용권..







(2) 답..







① 요한일서 4장 9,10절..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9절>을 보시면, 예수님은 「죽은자를 살리려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셨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0절>을 보시면, 예수님은 「하나님과 원수된 자를 화목되게 하려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셨습니다..




<로마서 5장 10절>을 보십시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② 고린도후서 5장 21절..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죄인을 의인되게 하려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③ 고린도후서 8장 9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가난한자를 부요케 하려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셨습니다..







* 세상의 부요함의 이유 - 우리에게 대한 경고(신 32:17-21절) 입니다..




* 「부요케」 / <빌립보서 4장>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모든 부요들을 찾아서 정리해 보십시오.. /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다」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해석해 보십시오..







④ 베드로전서 3장 18절..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예수님은 우리를 「지옥에서 천국으로(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은 단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한 정도가 아니라, 물론 죄인이었던 우리에게 있어서 이것 하나만으로도 최고의 은혜이지만..




그러나 그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은 모든 분야에서의 「전인적인 구원」의 사역 이었습니다(자유 이용권)..







3. (3번 문제)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까?







(1) 추적점..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의 사역은, 인간 쪽에는 조금도 <구원받을 만한 꼬투리가 없었다는 것>과, 그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사건>임을 드러내려는 질문입니다..







(2) 답..




<엡 2:1-3절>에서 6가지 이상 찾아 보십시오..




<롬 5:6,8,10절>에서 4가지 이상 찾아 보십시오.. / 2가지 공통점 「우리가」(범죄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죽으셨습니다)..







4. (4번 문제)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를 위하여 돌아가셨습니까?(벧전 3:18절)







(1) 추적점..




예수님께서 불의한 자를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음을 드러내서, 예수님께서 「불의한 인간」을 사랑하고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설명하려는 질문입니다..







(2) 답..




<베드로전서 3장 18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예수님은 「불의한 자」를 위하여 돌아 가셨습니다..







불의한 자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면, 궁극적으로 의로운 자로 만들어야 합니다..




박영선 목사님은 「구원의 적극적인 모습」은 「한 조각가가 공사판 드럼 통 속에서 불타고 있는 나무를 보면서 "내가 저 나무로 비너스 상을 만들어야지"라고 결심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조각가는 드럼 통 속에서 타고있는 나무를 꺼내고, 물을 껸져서 불을 끄고, 잘 말려서, 정으로 쪼고 빼빠로 문질러서, 비너스 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자기 자신을 혼자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6장 25-32절>은 예수님이 하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여기서 이방인들이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자기를 자기 자신 밖에는 책임질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지극히 이기적이 되고 자신의 안전을 위한 보장책으로 돈을 추구하고, 움켜쥐고, 권세를 확보하기 위해 사력을 다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우리의 삶에 필요한 먹고 마시는 것을 붙잡아서 우리의 삶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 있어야 할 가치 있는 것」으로서 우리의 삶이 보존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장 33절>의 약속의 말씀을 다시 한번 굳게 붙잡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5. (5번 문제) 이사야서 53장 4-6절을 설명하십시오..







(1) 추적점..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의 핵심이 무엇인지와, 십자가 사역의 그 사랑과 은혜를 느끼고 감격하게 하기 위한 문제입니다..







(2) 답..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어린 양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 지심>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이 <대속적, 형벌적 속죄>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을 읽으면서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하고, <그>는 <예수님>으로 <나>는 <자신의 이름>으로 바꾸어서 읽어 보십시오..







(3) John Stott 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일독을 권합니다..







6. 결론..







(1) 6과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역사적 사건인 것과, 그 십자가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이 모든 사실을 믿는 「믿음」입니다..




「아주 가난하고, 가족이 많은 한 사람이 콩나물 배달을 하는데 오토바이 사고를 냈습니다..




검사가 고민한 끝에 <벌금형>으로 처리했으나 이 사람이 돈이 없었습니다.. 검사들끼리 식사를 하면서 이 이야기를 했는데, 그 곳에서 같이 식사를 하던 한 노신사가 이 말을 듣고 <벌금>을 대신 지급했습니다..」







이 콩나물 배달하는 사람은 이 벌금을 위해서 한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또한 벌금을 내 준 사람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 사람이 벌금이 지급되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받아 들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문제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도록 성령님께서 역사해 주셔야 합니다..







(2) 십자가 사건은 「법적인 보장」입니다..




사랑의 극치인 이 십자가의 사랑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또한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3) 초청..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창세기 32 -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17:1-27절)(1절)  이기남 20·05·09 97
  새 생명의 의미 6 - 새 생명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마 9:12,13절)  이기남 20·04·29 106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GGAM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