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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 창세기 45 - 당신은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 입니다 (23:1-20절)(6절)
 이기남    | 2020·06·22 19:06 | HIT : 93 | VOTE : 1
* 창세기 45 - 당신은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 입니다 (23:1-20절)(6절)





예수님은 교회 혹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어떤 존재이며, 세상과 어떤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마 5:14절)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절)








소금의 짠맛, 빛의 숨겨질 수 없는 특징은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선한 행동>(good deeds)을 비유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기 아주 오래 전에 이미 이 말씀을 실천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오늘 본문의 주인공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오랫동안 헷 사람들 속에서 나그네로, 거류하는 자로 살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방인, 외국인은 자주 배척과 무시와 경멸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그런데 헷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배척하거나 무시하거나 경멸하기는커녕,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6절) 라고 존경을 표시합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이방인으로서, 이민자로서, 나그네로서 본토인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은 사라의 죽음으로 시작합니다.. 사라가 누린 수명은 127년이었습니다..




사라는 가나안 땅 <기럇아르바>(네 개의 도시) 라고도 불리는 「헤브론」에서 127세에 죽었습니다..







사라는 6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남편을 따라 가나안 땅에 이민을 왔습니다.. 그 당시 사라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처량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라는 <남편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남편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주신 것으로 믿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아브라함의 여정은 대체로 <아브라함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사라가 어떤 생각으로 가나안에서 살았는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단지 사라가 남편 따라다니느라고 참 고생 많이 했겠구나라고 추측할 정도입니다..







남편이 자신을 누이라고 속여서 한 번은 애굽 왕에게, 다른 한 번은 그랄 왕에게 불려 갔다 왔을 때 <사라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하나님의 약속이 더딘 것 같을 때, 아니 자신에게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사라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남편에게 준 여종 하갈로부터 되레 멸시를 받았던 때 <사라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낯선 가나안 땅으로 이민을 와서, 반평생을 집 한 채 장만하지 못하고 옮겨 다녀야 했던 <사라의 고달픔>은 어떠했을까요?







평생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으며 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라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이런 사라에 대해 뭐라고 평가합니까? <히브리서 11장 11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쉬운 성경) “사라 자신도 아이를 낳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았으나, 믿음으로 후손을 얻는 힘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약속해 주신 하나님을 신실한 분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사라의 인생을 한마디로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살았다>고 평가합니다..




그가 <남편을 믿고 살았다면>, 바로의 궁이나 아비멜렉의 왕궁에서 돌아와서 아브라함의 얼굴을 할퀴었을 것입니다..




그가 <자신을 믿고 살았다면>,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현실에 절망하고 주저 앉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사라처럼 죽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인생은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하실까요?




사라처럼 우리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살았다>고 평가받는 인생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위해 슬피 울었습니다.. 원문을 보면, 아브라함이 사라의 죽음을 단지 슬퍼한 것뿐만 아니었습니다..




관습에 따라 겉옷을 찢고, 수염을 깎고, 머리를 밀고, 머리에 재를 뿌리고, 금식을 하는 전통적인 애도 방식을 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사팟’, ‘바카’)..








아내요, 동역자요, 순례 길의 동반자요, 사랑하는 자를 잃은 아브라함의 슬픔은 무척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슬퍼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사라의 장례를 치러야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대부분이 여기에 할애되어 있습니다..







<3절>부터 사라를 장사하기 위한 매장지를 사는 이야기가 길게 이어집니다.. 그리고 <19절>에 가서 마침내 사라의 장례가 마무리 됩니다..







그러니까 사라의 장사를 지내는 일과 관련하여 매장지를 사는 일이 오늘 본문의 핵심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오늘 본문의 중요한 메시지는 <아브라함이 사라의 매장지를 헷사람들에게서 값을 지불하고 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언뜻 생각하기에, <매장지를 사는 일이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돈만 있으면 땅은 얼마든지 사는 것 아닌가>,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성경은 이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기록했을까>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이런 생각은 현대인의 생각입니다.. 고대의 부동산 거래 시스템을 잘 알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생각입니다..




고대 근동 지역에서 땅을 매매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었으며, 가격도 매우 높았다고 합니다.. 돈이 있다고 부동산을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땅을 매입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땅 주인을 설득해야 했고, 드디어 적정 가격에 합의를 보면 그 다음에 그 주인이 속한 공동체를 설득해야 양도가 가능했습니다..







그러므로 현지인이 다른 사람의 땅을 사는 경우도 매우 드물고 어려운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외지인이 그 땅을 산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은 막벨라 동굴과 거기에 딸린 밭을 샀습니다..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일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있게 된 것입니다..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가>, <어떻게 기적이 일어났는가>를 오늘 본문은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먼저 헷 사람들에게 가서 제안을 합니다..




“나는 이 곳에서 나그네요, 외국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땅을 살 수 있는 자격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죽었으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내를 묻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제발 저에게 땅을 좀 파십시오.”







이 말을 들은 헷사람들의 대답은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쉬운 성경) “내 주여, 우리의 대답을 들어 보십시오. 당신은 우리들의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우리의 땅 중에서 가장 좋은 곳을 골라 돌아가신 분을 장사지내십시오. 우리의 무덤 중에서 어느 곳이든 마음대로 고르십시오. 돌아가신 분을 장사지내는 것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일어나 헷 사람들에게 절을 합니다.. 그리고 다시 제안합니다..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그가 그의 밭머리에 있는 그의 막벨라 굴을 내게 주도록 하되 충분한 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 당신들 중에서 매장할 소유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8,9절)







마침 그 자리에 에브론이 있었습니다.. 에브론은 자신의 동족들이 다 듣는 앞에서 그 땅과 동굴을 그냥 주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다시 한번 일어나 헷 사람들에게 절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요청했습니다..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하건대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 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13절)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했습니다.. “땅 값은 은 사백 세겔이나 그것이 나와 당신 사이에 무슨 문제가 되리이까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15절)








아브라함은 공짜로 주겠다는 제안을 끝내 거절하고, 은 사백 세겔을 장사하는 사람들의 계산 방식에 따라 달아주고 그 밭과 거기에 있는 동굴과 밭의 사방을 두르고 있는 나무들을 샀습니다..







이로써 그 밭과 동굴은 공식적으로 아브라함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동굴에 사라를 묻었습니다..







<20절>은 이 이야기의 결론입니다.. "이와 같이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이 헷 족속으로부터 아브라함이 매장할 소유지로 확정되었더라."




헷 사람의 소유였던 것이 아브라함의 소유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고대 근동의 상식으로는 헷 사람의 소유가 나그네요 외국인인 아브라함의 소유로 바뀔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일은 상식 밖의 일이었고, 매우 이례적이고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하늘의 별 따기 같은 일이 벌어졌고,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기적같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본문을 읽으면서 쉽게 추측할 수 있듯이 헷 사람들과 아브라함의 관계가 보통이 아닙니다..




이 관계가 아니었다면 막벨라 밭과 굴을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헷사람의 관계를 요약해서 보여주는 한 칭호가 있습니다..







<6절>에서 헷 사람들이 아브라함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 이시니"




원어 성경의 “느시 엘로힘 아타 베토케누” 라는 말씀을 「개역 성경」은 “당신은 우리 중 하나님의 방백”, 「개역개정 성경」은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 「칠십인역(LXX) 성경」은 “당신은 우리 중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왕”, 「NIV」는 “You are a mighty prince among us.”, 「쉬운 성경」은 “당신은 우리들의 위대한 지도자” 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먼저, 헷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보며 <하나님>을 언급합니다.. 그들이 볼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이 평소에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것을 목격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이 집에서 훈련한 318명을 거느리고 그돌라오멜 동맹군을 쫓아가 포로와 노획물을 되찾아 온 일을 결코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하시는 결정적인 증거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지만,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는 하나님, 그 분이 실제로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신이신 것을 아브라함을 통해 보게 되었습니다..







헷 사람들은 처음에 아브라함이 헤브론으로 왔을 때, 자신들이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신을 섬긴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함께 살면서 그들은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면 곧바로 하나님을 떠 올렸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신이 되시고, 그를 보호하시고, 그를 도와주시고, 그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않는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나를 아는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나를 볼 때 하나님을 떠올릴까요? 자기는 믿지 않더라도 나를 통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할까요?







친구들이 우리를 볼 때 곧바로 하나님을 떠올릴까요? 직장에서 동료들이 우리들을 볼 때 하나님을 떠올릴까요? 가족 친지들이 우리를 볼 때 하나님을 생각할까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면,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하나님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가 교회를 신실하게 다니고, 신앙심이 깊어 보이고, 세상 사람들처럼 막살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은 <그래, 저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지.. 기독교인이지..> 라고 인정을 해 줍니다..







그러나 <방백> 혹은 <지도자>, <리더>라고 인정받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방백>이란 <족장>과 같이 그 사회의 구성원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그 사회를 이끄는 리더입니다..




외국인이며 나그네인 아브라함에게 이런 칭호가 주어졌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을 외국인, 나그네로 칭하며 낮추었습니다.. 그러나 헷 사람들은 <당신은 우리 중에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 입니다>라며 아브라함을 높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헷 사람들로부터 이런 칭호를 받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헷 사람들의 말은 인사치레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진심으로 아브라함을 그렇게 인정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헷 사람들의 칭호는 약 20여 년 동안 아브라함이 헤브론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 삶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아브라함은 외국인, 나그네였지만, 자신이 사는 땅의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섬겼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헌신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그돌라오멜 동맹군을 물리치는 일에 뛰어든 일입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이 자신들을 위해 물질뿐 아니라 생명까지 내놓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이 참전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롯이 포로로 잡혀갔기 때문이었지만, 그 혜택은 가나안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누렸습니다..




헷 사람들은 본토인보다 더 헌신적으로 자신들을 섬기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전쟁에서 이긴 후에 아브라함은 소돔 왕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엄청난 전리품을 챙길 기회였는데, 쿨하게 모든 소유물을 원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 왕이 자신을 부자되게 했다는 말을 듣기 싫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부자되게 하셨고, 또한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 믿음이 있었기에 그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뒷 담화를 들으면서까지 현실적인 이익을 취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현실적인 이익을 과감히 포기했습니다.. 손해 보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는 헤브론에서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만 받고, 사람들이 주고 그것을 받으면 뒷말을 듣게 될 것이 뻔한 일체의 유익은 포기했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삶의 진정성이 헷 사람들에게 통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을 진심으로 인정했습니다..




<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일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해 헌신하고 언제든지 희생하고 우리를 이끌 수 있는 지도자다..>







헷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기에 아브라함은 후에 사라가 죽었을 때, 막벨라 밭과 굴을 살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기적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브라함의 삶이 만들어낸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어떤 적용점을 줄까요? 설마 후손들을 위해 부동산을 취득해야 한다는 쪽으로 적용하는 분은 없겠지요?




신약 시대 이후를 사는 우리들이 구약을 읽을 때 조심해야 될 점이 있습니다..




구약에 제시된 하나님의 복은 물질적, 현세적, 감각적인 것들인 반면, 신약에서 제시된 하나님의 복은 영적인 것들입니다..







구약에서 장수는 신약에서 영생으로, 구약에서 할례는 신약에서 마음의 할례로, 구약에서 이스라엘은 신약에서 교회로, 구약에서 땅은 신약에서 하나님 나라로, 구약에서 해방은 신약에서 구원으로, 구약에서 부는 신약에서 하나님 나라의 상속으로 치환됩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헷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로 인정받고 막벨라 밭과 굴을 산 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고 그들의 영혼을 얻는다>는 의미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멀리 있는 사람에게 인정받기는 쉬워도,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인정 받기는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옳습니다.. 저만 하더라도 교회에서는 목회자로 인정받기는 쉬워도, 가정에서는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친구나, 가족이나 친척에게 인정받기는 쉽지 않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면 그만큼 행실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몸으로 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그 만큼 어렵습니다..







전도에 대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멀리 있는 사람에게는 말로 전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는 몸으로 전도해라.”







친구들에게, 형제 자매와 친지들에게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저 친구가, 저 형이, 저 동생이, 저 누구누구가 믿는 예수라면 나도 믿어야겠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통해서 우리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고,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게 되는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이 기적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좀 더 양보하고, 좀 더 희생하고, 좀 더 돈을 쓰고, 좀 더 배려해야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짐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는 사람들이니 하나님께서 주실 줄을 믿고 베풀고, 섬기길 원합니다..







우리와 우리 교회와 한국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그들의 마음을 얻고, 그들을 전도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브라함이 나그네와 외국인으로서 막벨라 밭과 굴을 산 기적을 이룬 것처럼, 우리의 삶과 인생 가운데서도 가족과 친구와 동료와 친척들을 구원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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