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축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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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새 생명의 의미 10 - 새 생명과 최후의 심판 (계 20:11-15절)(15절)
 이기남    | 2020·06·23 16:09 | HIT : 65 | VOTE : 0
* 새 생명의 의미 10 - 새 생명과 최후의 심판 (계 20:11-15절)(15절)







모든 일은 <최후의 심판>에 비추어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날 말씀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 이유는 사람들이 이 <최후의 심판>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이 <마지막 심판에 대한 진리>를 깨닫기만 한다면, "임박한 진노를 피하려"(마 3:7절) 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토록 자신들의 주관적인 기분이나 상태에만 관심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자기들을 도와줄 만한 것들만 찾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살아가고 존재하는 모든 시간 동안 자신들이 「하나님의 눈 아래」 있으며,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최후의 심판>에 대해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1. 최후의 심판에 관심을 갖지 않는 이유..







(1) 심판이라는 개념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소위 <자유주의적 신학을 수용하는 사람들>은 「심판의 개념」 자체를 혐오합니다..




그들은 "심판은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개념과는 맞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반적인 심판을 믿기도 합니다.. 그들은 이생에서 선과 악 사이에 뭔가 차이가 있다고 느끼며, 그 차이가 내세에서도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마저도 믿지 않습니다..







오늘날 인기있는 개념은 「보편주의」입니다..




보편주의는 <모든 사람이 결국에는 죄사함을 받고 구원 받을 것이며, 하나님이 그분의 사랑 안에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실 뿐 누구도 궁극적 의미의 형벌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는 개념입니다..




그 개념을 믿는 사람은 <최후의 심판>에 관심을 갖지 않을 것입니다..







(2) 심판을 교정하는 수단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직면하는 유일한 심판은 우리가 이생에 있을 때 만나는 <교정책으로서의 심판>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든 형벌은 <교정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세속적 영역에서 나온 개념이고, 죄수들에 대한 현대적인 감호 정책의 기초가 됩니다..







하지만 <심판이 교정의 수단>이라는 생각은 전적으로 <비성경적인 개념>입니다..




성경에는 그런 암시가 전혀 없으며, 사실상 정반대입니다.. 벌을 줌으로서 사람들을 개선시킬 수는 없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사람들은 은혜로 인해 변화되며, 형벌은 형벌일 뿐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형벌을 교정 수단으로 생각하고, 이런 생각이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스며들어와 있습니다..







(3)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심판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흥미롭게도, 많은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 역시 심판의 문제에 대하여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한 사람의 영원한 운명>은 그가 구원에 대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느냐 믿지 않았느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그의 운명은 이생에서 결정되는 것이 분명하며, 믿는 자는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기(요 5:24절) 때문입니다..







그들은 덧붙여 말합니다.. "또한 심판은 이 세상에서 일어납니다.. 성경에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난 후에 두 번째 기회 혹은 유예 기간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내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에 관한한 최후의 심판은 필요 없는 것 아닙니까?"







2. 성경이 말하는 최후의 심판..




이런 이유들과 또다른 이유들로 인해 최후의 심판이라는 개념 전체에 약간의 혼란이 있는 듯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성경>이 말하는 최후의 심판이 무엇인지」 분명히 규정하는 것입니다..







(1) 최후의 심판은 이미 내려진 판결이 공표되는 순간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의 운명은 최후의 심판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은 단지 우리의 운명이 선포되고 판결이 공표되는 중요한 순간일 뿐입니다.. 그 때는 판결이 내려지는 순간이 아닙니다..




이 사실에 대한 오해가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지닌 의문과 의심의 원인>입니다..







그들은 심판이라는 개념은 필연적으로 <심판대에 나오는 사람들의 운명이 결정되지 않았음을 포함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고소와 반론이 있은 후 판결이 내려질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운명이 이 세상에서, 즉 부활하기 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말은 분명 옳습니다..




「최후의 심판」은 구원 받은 자들과 멸망한 자들의 운명을 영원하신 재판관이신 하나님이 선포하시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판결은 그 순간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려진 판결을 단순히 공표하는 것 뿐입니다..







(2) 최후의 심판은 공개적 사건입니다..





최후의 심판에 대해 이해해야 할 것은 그것이 「커다란 공개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공개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최후의 심판이 죽을 때마다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분명 대단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은 중대한 사건입니다.. 그 이후에는 우리의 운명이 변화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최후의 심판은 아닙니다..







「최후의 심판」은 가장 마지막에, 주님이 재림하시고 죽은 자들이 살아나 우리 몸이 부활할 때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은 <온 세상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모든 개개인의 운명이 공포되는 엄청난 공개적인 사건>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영원하고 최종적인 심판의 공개적 선포>입니다..







(3) 최후의 심판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최후의 심판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대답은 단 한 가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최후의 심판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아 온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최종적으로 단언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합니다.. 그 이유는 죄의 본질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하나님을 대적했을 때,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손상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은 최상의 것이고 모든 것 위에 뛰어나며, <구속>은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한 번 최종적으로 완벽하게 확증되기 전에는 완성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은 <그분께 속한 사람들의 구원>에서 나타날 뿐 아니라, <하나님을 끝까지 거부한 자들이 형벌>을 받는 것을 통해서도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후의 심판의 목적>은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고전 15:28절) 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위엄이 이처럼 인상적이고도 현저한 방법으로 단언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영광」 이라는 말은 당연히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의 영광을 의미합니다..







(4) 최후의 심판에 대한 근거 구절들..




아브라함은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창 18:25절) 라고 물었습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




마찬가지로, <시편 96편 13절>에는 "그가 임하시되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장차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은 『신약 성경』에서 더 명확해 집니다.. <두 개의 중요한 본문>이 있습니다..







우선 <사도행전 17:30,31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박식한 아덴의 스토아, 에피쿠로스 철학자들에게 설교하면서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30절) 라는 메시지를 주의 깊게 강조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31절)




마지막 최후의 심판에 대한 중대한 단언입니다..







두 번째 본문은 유명한 <히브리서 9장 27절>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리고 앞에서 보았듯이, 『요한계시록』에는 최후의 심판이라는 주제가 도처에 등장하며, 특히 <20장 11절> 이후에 명백하게 나타납니다..




이 구절들은 심판의 날이 있으리라는 사실에 대한 분명하고 명확한 진술들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최후의 심판」은 우리가 죽을 때 일어나는 일이거나, 단순히 이생에서의 구분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것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장차 나타날 커다란 공적 사건>입니다..







3. 재판관은 누구입니까?




이어지는 질문은 <누가 재판관 역할을 하여 그 엄청난 선언을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 심판이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선언되리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이지만 하나님은 실제로 심판하는 일을 <아들>에게 위임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몇 몇 성경 구절은 <성부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자라고 말합니다.. <디모데전서 4장 10절>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보겠습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가 수고하고 애쓰는 것은 우리의 희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두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 특별히 믿는 사람들의 구주이십니다.>"







하나님은 구세주이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성자를 통하여 구원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경륜적 삼위일체>(economic Trinity) 라고 부르는 「사역의 분담」입니다..







성부는 심판을 아들에게 맡기셨습니다.. 그 아들이 중보자이시며 인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심판하시기 때문에 자신들은 공정한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불평할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십니다..







여기 하나님이시며 또한 인간이신 분이 계십니다.. 심판은 그분께 맡겨 졌습니다..




성자가 우리의 재판관이 되리라는 가르침은 <마태복음 25장 31,32절>에 있습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요한복음 5장>을 보면, 더 분명하고, 중요한 본문이 있습니다.. <21-23절>입니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26,27절>을 보면,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고넬료와 그의 온 가족에게 설교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10장 42절>입니다..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장 9-11절>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판관이 되시리라>고 명확하게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디모데후서 4장 1절>도 보십시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명확하게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을 읽어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잠시 동안 아들에게 맡겨졌으며, 주님은 원수들이 자기 발 아래 굴복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는 이 심판을 행하실 것이며, 이어서 그의 완벽한 나라를 성부 하나님께 돌려 드려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게"(고전 15:28절) 될 것입니다..







아들의 중보자적 나라에는 이러한 <심판의 요소>가 포함됩니다.. 그 나라를 온전하고 완벽한 형태로 아버지 하나님께 돌려 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4. 누가 심판을 받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신자들은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으므로 심판을 받지 않으며, 불신자들만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옳지 않은 견해입니다.. 그 이유는, 부활은 선인과 악인에게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 뿐 아니라, <요한계시록 20장>에는 「책들」이 펴진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물론 이것은 상징입니다.. 하지만 그 상징은 뭔가를 나타냅니다.. 이것은 <두 집단의 사람들>이 심판을 받는다는 의미임에 틀림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의 마지막 진술은 이것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최후의 심판」이 심판을 공표하는 것일 뿐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인다면, 이 구절에 대해 아무런 어려움도 없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한데 결합해 보면, 이 위대한 날에는 그리스도인들과 불신자들이 함께 서고, 기록에 따라 심판이 선포되리라는 사실이 명확해 보입니다..






그 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마 25:21절) 라는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기록된 우리 주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 때에는 "잘하였도다" 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대단히 놀라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결코 <구원의 확신을 가져 보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은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잘못된 가르침이나 기질적 특성, 혹은 스스로 자기의 부족함에만 집중하는 등 몇 가지 이유 때문에 그들은 결코 구원을 즐거워하지도, 확신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들이 자신들도 구속받은 자들 가운데 있다는 것을 들을 때, 그들은 "우리가 언제 이 일을 하였나이까?" 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은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이것이 <심판을 선포하는 일의 중요성>입니다.. 그들은 이 놀라운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확실히 알게 되어 자신들을 기다리는 큰 영광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속받은 자들과 구속받지 못했고 경건치 않은 자들이 출두하여 판결이 선포되는 것을 듣고 최종적 분리가 일어날 것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타락한 천사들> 역시 그 심판의 날에 심판받을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베드로후서 2장 4절>은 하나님이 이 타락한 천사들을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이 위대한 날에 <선한 천사들>이 심판을 위해 나타나리라고 시사하는 성경 구절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사탄의 말을 듣고 그를 따라가서 그에게 속한 <타락한 천사들>에게는 심판이 선포될 것임이 분명합니다..







5. 그리스도인이 받는 특별한 심판..




이 시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 가지 의문을 품고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들은 "<누가복음 12장, 고린도전서 3장, 고린도후서 5장>에 나오는 심판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라고 말합니다..







<누가복음 12장 47,48절>에서 우리 주님은 <매를 많이 맞을 종과 적게 맞을 종>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판결에는 구분이 있는 듯합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3장 13절>에서 매우 분명하게 말합니다..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단 하나의 확실한 터 위에 세우도록 대단히 주의해야 합니다..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세울 수도 있고, 보석으로 세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의 행한 일>이 시험을 받을 것입니다.. 나무나 풀과 짚은 모두 타 버려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사람의 공력이 그처럼 타 버린다 하더라도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전 3:15절)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특별한 종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듯이 보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을 보십시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분명 그리스도인들에게 글을 쓰고 있으며, 오직 그리스도인들만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말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도 구분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구원의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3장 15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 점을 아주 분명하게 단언합니다..




사람의 공력은 완전히 타 버릴지라도 자기는 구원을 얻습니다..







그가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됩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받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우리의 행위, 우리의 공력은 우리를 구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습니다(엡 2:8절)







우리는 주님과 그분의 완전한 사역을 신뢰함으로써 구속과 구원을 얻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공력은 실제로 계수되어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우리는 모두 구원을 받지만, 모두 똑같이 되거나 같은 지위에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사도 바울은 그 사실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고전 15:41절)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우리 모두는 영광 가운데 있을 것이며, 우리 모두는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 이후 우리의 <공력>이 고려될 것이라는 이런 분명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칭의가 아니라 <상급>에 관련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1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아가 자신의 전도자로서의 청지기직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처럼 꾸준히 열심을 내었던 것입니다..







<상급을 위한 심판>이 위대한 심판의 날과 함께 있을지, 아니면 그 후에 있을 것인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행한 일에 따라 이런 구분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뿐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사실을 염두에 두는 것은 올바르고 좋은 일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 몸으로 행한 것"(고후 5:10절)을 설명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4장>은 "그들의 행한 일이 따르는"(13절) 「복된 죽음」에 대해 말해 줍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3절>을 보십시오.. 은혜와 도전이 됩니다.. 『쉬운 성경』으로 보겠습니다..




「또 나는 하늘에서 들리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것을 기록하여라. 이제부터 주님을 믿고 주 안에서 죽은 자를 기뻐할 때가 왔다." 그러자 성령께서도 "그렇다. 그들은 괴로운 수고에서 벗어날 것이다. 이는 그들의 착한 행실이 영원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행위의 가치>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신칭의>를 강조하다 보면 우리의 행위, 즉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실성에 근거한 <추가적인 차이>를 잊어버리는 오류를 범할 위험성이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신칭의>라는 위대한 교리, 끊임없이 공격을 받고 있는 이 교리를 위해 싸워야 합니다..




하지만 만일 <이신칭의>를 주장하느라, 의로우신 재판관이신 주님이 그리스도인의 모든 행위를 지켜보고 계시며,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에서 행하는 일이 내세에서 영광 중에 사는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또다른 가르침의 가치를 폄하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비극적인 일입니다..







다시 한 번 오해하지 마십시오.. 하늘 나라에는 슬픔이나 한숨이나 불행이나 비참함이나 우는 일이 전혀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완벽하게 행복하고 지극한 즐거움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이것이 <최후의 심판>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이 심판으로 인해 <최후의 영원한 상태>에 도달하게 됩니다..







우선 위대한 판결이 공포될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지옥」, 즉 <둘째 사망>에 이를 것입니다..




그들은 "밖에 있는" 자들이라고 묘사됩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5절>을 보십시오..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그들은 모두 가증한 일과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며(계 21:27절), 하나님의 생명 "밖에" 있으면서 이 불행하고 비참한 죄악 된 상태에 계속 거하는 자들입니다..




여기서 "영원한" 이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영원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마십시오..




『요한계시록』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최종적인 운명>」을 알도록 도와 주는 것이며, 그것은 <최후의 심판>에서 가장 영광스럽게 나타납니다..







6. 그리스도인의 최종 운명..







(1) 영화롭게 된 완벽한 몸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 거합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운명이 완벽하게 드러납니다.. 상징적 언어가 사용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새 하늘과 새 땅"이 얼마나 멋지게 묘사되어 있습니까?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3장>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13절>입니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우리는 그 곳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부활하여 영화롭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몸과 혼과 영이 모두 완벽하게 구속받아 죄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것입니다..







(2) 천국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완벽한 세상입니다..




우리의 천국은 하나님이 그의 장막을 사람들 중에 두시는 그 완벽한 세상에서의 삶이 될 것임이 아주 분명해 보입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계 21:2절) 우리가 살 곳은 바로 그 멋진 성입니다..







그 때 이사야가 그의 예언서 <11장>과 <65장>에서 예언한 일이 성취될 것입니다..




그 때는 자연이 더 이상 잔악하게 싸우지 않고,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사 11:6,7절)입니다..







전체 피조물이 타락의 속박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롬 8:21절)에 이를 것입니다.. 모든 것, 심지어 자연 자체도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영원한 상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이며, 우리가 「천국」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계획하신 이 완벽한 세상에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처음에 아담을 낙원에 두셨을 때 아담은 타락했으며, 모든 것이 그와 함께 타락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몸을 입고 살도록 되어 있으며, 영화 된 세상에서 영화된 몸을 입고 살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거하실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영원히 주와 함께 있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최고의 천국>에 함께 있게 될 것인지 여부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떤 의미론 알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영원히 하나님의 영광을 즐거워하고, 그 영광의 빛을 다시 반사하고, 그 안에서 자라며 "항상 주와 함께 있을 것"(살전 4:17절) 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영원한 상태이자 영원한 운명이 될 것입니다..







(4) 우리를 기다리는 최후의 운명은 확실합니다..




우리는 아담과 그의 타락, 그리고 그로인한 모든 비극으로부터 출발하여,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받고, 치유되고, 회복되고, 죄사함 받고, 부활하고, 영화되어 완전해진 사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8절>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이런 운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해도 필요 없습니다.. 달도 필요 없습니다.. 별도 필요 없습니다.. 성전도 필요 없습니다.. 어린 양과 하나님 자신이 그 곳에 계십니다..







연약한 몸을 입고 아픔과 고통, 세상과 육체와 마귀와의 싸움 가운데, 신음하고 탄식하고, 심지어 불평하기까지 하며 불확실함 속에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그 운명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입니다..




우리의 구원과 거듭남과 부활이 확실한 것처럼 이 <최후의 운명> 역시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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