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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 창세기 55 - 속이고 빼앗는 곳에서 얻은 복 (29:1-30:43절)(30:43절)
 이기남    | 2021·02·06 14:28 | HIT : 255 | VOTE : 187
* 창세기 55 - 속이고 빼앗는 곳에서 얻은 복 (29:1-30:43절)(30:43절)







속이고 빼앗는 곳에서 복을 얻을 수 있을까요? 속이고 빼앗는 곳에서는 속임 당하고 빼앗기기가 일쑤입니다..




그래서 나도 다른 사람을 속이고 빼앗아야 겨우 내 몫이라도 챙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본문의 야곱은 속이고 빼앗는 곳에서 4명의 아내와 12명의 자녀를 얻었습니다..




속이고 빼앗는 곳에서 야곱은 큰 부자가 되어 가축 떼와 남종과 여종과 낙타를 많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다른 사람을 속이고 빼앗아서 그렇게 되었을까요? 야곱은 속이고 빼앗는 곳에서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요?







행동 경제학의 권위자인 미국 듀크 대학 경제학과 교수인 댄 애리얼리(Dan Ariely)가 쓴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이란 책이 있습니다.. 원제목은 『The Honest Truth about Dishonest』 입니다..







상식적으로, 거짓말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 아니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책의 번역서의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면서도 자신을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나 조금씩 부정 행위를 저지른다. 다만 자신이 정직한 사람이라고 보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할 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람에게는 두 가지 본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정직한 사람으로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을 속여서 이득을 얻고자 하는 경향입니다..







이 두 가지 동기가 충돌할 때, 좀 어려운 말로 <인지적 유연성>(cognitive flexibility)이 발휘된다고 합니다.. 認知的 柔軟性




쉬운 말로 하면, 사소한 부정 행위를 저지른 후에 그것을 합리화하는 과정이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는 괜찮아.. 다른 사람이 저지른 일에 비하면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아니지.. 그래도 나는 착한 사람이야..”







이 책에서는 소위 <착한 사람들>이 자주 저지르는 속임수와 거짓말에 대한 재미있는 예들이 많이 나옵니다..




골프 경기에서 공을 옮기는 행위, 의사가 과잉 진료하는 행위, 은행원이 고객의 돈을 하루 이틀 더 묵혀서 이득을 얻는 행위 등등..







이런 일들은 너무나 빈번하게 벌어지고, 이런 일들을 행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자기 합리화를 하며 거짓말과 속임수를 정당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그런 작은 거짓말과 속임수는 쉽게 사회에 전염된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우리가 이미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을 댄 애리얼리 교수는 실험으로 증명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거짓말 하는 착한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고, 다른 사람도 우리를 속일 수 있습니다.. 거짓말하고 속이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차피 이런 세상이니까 우리는 우리의 본성대로 다른 사람을 속이고 빼앗아서 내 것만 챙기는 삶을 살아가야 할까요? 그렇게 살면 행복하고, 그렇게 살면 잘 살게 될까요?







오늘 본문의 주인공 야곱도 「거짓말 하는 착한 사람」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형 에서와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권과 축복을 빼앗은 후에 그는 여러가지로 자신을 합리화 했을 것입니다..







“형은 맨날 사냥한다고 밖으로만 돌고 집안 일은 하나도 돌보지 않았잖아.. 아버지의 가축을 돌보는 일은 모두 다 내 몫이잖아.. 나는 형보다 몇 배로, 몇십 배로 집안 일을 하고 있잖아..




그러니 내가 장자권을 얻는 것은 당연하고, 아버지의 축복을 받는 것은 누가 봐도 정당한 일이지.. 더구나 어머니가 태몽에, 내가 형보다 큰 자가 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셨거든.. 그러니 내가 한 일은 옳은 일이야..”







이런 야곱이 자신에게 결혼 사기를 친 외삼촌 라반에게서 이런 말을 듣습니다..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29:26절)







본문의 맥락을 반영하여 라반의 변명을 풀어보면 이런 말입니다..




“내가 언제 라헬을 준다고 했냐? 딸을 주겠다고 했지(원어에서는 <그녀>로 나옴, 29장 19절).. 우리 지방에서는 큰 딸을 시집보내기 전에 작은 딸을 시집보내는 법은 없거든..




자네가 라헬과 결혼하기 원한다기에, 그의 언니 레아를 먼저 들여보낸 것이지.. 그래야 라헬과도 결혼할 수 있지 않겠어.. 그러니 다 잊어버리고, 결혼식 기간 일주일을 먼저 채우게..




그러면 라헬도 자네에게 주겠네.. 그 대신 나를 위해 7년 동안 일을 더 해 주어야 하네..”







야곱은 너무나도 어이없고 황당했지만, 라헬을 얻기 위해서 외삼촌 라반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로써 라헬과 결혼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야곱의 계획은 7년이 더 미뤄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라반의 속임수는 야곱을 만날 때부터 계획된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살해 위협을 피해 도망치다가 쓰러져 잠든 곳,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28:15절)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후 야곱의 발걸음은 가벼웠습니다.. 단숨에 수백 km를 걸어 동방 사람의 땅, 즉 하란 근처에 도착했습니다(29:1절)..







그 땅에서 야곱이 처음 목격한 것은 들판에 있는 우물과 그 주변에 엎드려 있는 양 떼 세 무리였습니다(29:2절)..




우물 위에는 큰 돌이 덮여 있었고, 목자들은 다른 양 떼들이 다 모이면 우물 위의 돌을 굴려 양 떼들을 먹이려고 대기하고 있었습니다(29:2-8절)..







야곱은 그들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이들은 마침 하란에서 온 목자들이었고, 야곱의 외삼촌 라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야곱에게 양 떼를 몰고 오고 있는 한 여인이 라반의 딸 라헬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야곱은 라반의 딸 라헬과 자기 외삼촌 라반의 양 떼를 보고, 우물로 가서 돌을 굴려 낸 다음 외삼촌 라반의 양 떼에게 물을 먹였습니다(29:10절)..







우물을 덮고 있는 돌은 목자 서너 명이 힘을 합해야 옮길 수 있는 큰 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야곱은 혼자의 힘으로 그 돌을 굴려냈습니다.. 라헬을 보고 첫눈에 반한 야곱에게 괴력이 생겨난 것일까요?







이렇게 해서 야곱은 라헬을 만났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야곱은 그 때까지 일어난 모든 일을 라반에게 말해 주었습니다(29:13절)..







야곱이 말한 모든 일 중에는 야곱이 이곳에 온 목적, 즉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감을 찾기 위한 목적도 있다는 말도 당연히 들어 있었습니다..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한 달 동안 머물렀습니다..




어머니 리브가가 야곱을 보내면서 한 말,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주하라"(27:44절)고 한 시한이 다 되었다고 야곱은 생각했습니다..







그때 라반이 매력적인 제안을 합니다..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29:15절)







라반이 한 달 동안 야곱을 지켜보니 성실하고 능력도 많아 쓸모 있어 보였습니다.. 그를 계속 붙잡아 두고 싶었습니다..




라반은 야곱의 마음이 둘째 딸 라헬에게 가 있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한 것입니다..







야곱은 라반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29:18절)







당시에 남자가 여자를 데려오려면 은 40세겔 정도의 지참금을 신부의 부모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당시 한 달 품삯이 은 1-1.5세겔 정도 였다고 하니, 약 3,4년의 연봉에 해당합니다.. 야곱은 당시 시세의 두 배를 제시한 것입니다..




그렇게 화끈한 금액을 제시함으로써 외삼촌 라반의 마음을 사로잡아 결혼 약속을 받아냈다고 야곱은 생각했습니다..







7년은 적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라헬을 너무 사랑한 야곱에게 그 7년은 마치 며칠 밖에 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19:20절)..




그런데 라반의 대답에 음모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19:19절)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고, 그녀를 위해 7년의 봉사라는 댓가를 치렀으니, <그리고 그 후에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더라>는 동화 같은 결말을 꿈꾸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화 같은 결말은 그에게 오지 않았습니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라반의 속임수로 그는 레아와도 결혼해야 했습니다.. 이때부터 모든 것이 어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라헬을 얻기 위해 일한 7년이 수일 같았다면, 그 후 7년은 수십 년 같았을 것입니다.. 우선, 두 아내의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라헬은 야곱의 사랑을 받았지만, 아이를 낳지 못해 언니를 시기했고, 레아는 아이를 잘 낳았지만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해 괴로워했습니다..







두 여인의 사랑 다툼과 아이 낳기 경쟁에 끼어 야곱은 원치 않게 레아와 라헬이 데려온 몸종들을 첩으로 들여야 했습니다..




낮에 들에 나가 일하다가 저녁에 돌아오면, 두 여인이 서로 야곱을 차지하려고 경쟁했습니다..







나중에는 큰아들 르우벤까지 이 경쟁에 끼어들었습니다(합환채, 자귀나무, 30:14-16절)..




7년 만에 열 한 아들과 한 명의 딸이 태어났으니 집안에는 아이들의 울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복인데 키우는 일은 만만치 않습니다.. 7년 동안 야곱의 괴로움이 어떠했을지 우리는 상상도 하기 어렵습니다..




야곱은 라반에게 속임을 당해 스스로의 힘으로는 빠져나오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야곱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 모르긴 해도, 속임 당하는 사람의 마음, 구체적으로 자신에게 속임 당한 에서의 억울함과 분노를 이제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거짓말과 속임을 합리화했던 자신을 진심으로 부끄러워하며 회개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각자 자기 유익과 탐욕을 따라 행동합니다..




라반은 조카의 노동력이 탐이 나서 딸들을 이용했습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라헬을 얻으려고 라반의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레아는 자식을 낳아서 남편의 사랑과 존중을 얻으려고 했고, 라헬은 언니에 대한 시기심과 경쟁심으로 자식을 낳으려고 했습니다..







네 사람의 욕심, 이기심, 속임, 그리고 애증과 시기심, 경쟁심이 이러저리 얽혔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집안은 아무리 잘 되려고 해도 안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가정의 문제를 사용하셔서 자신의 뜻을 완벽하게 이루어 가셨습니다..




갈등 속에서 야곱을 훈련하셨고, 레아와 라헬의 하나님의 되어 주셨습니다.. 또한, 열 두 지파의 기초가 되는 열 한 아들을 낳게 하셨습니다..







만일 야곱이 본래 원했던 대로 사랑하는 라헬과만 결혼했다면 자식을 이렇게 많이 얻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일들을 통해서 <네 자손은 땅의 티끌처럼, 별처럼 많아지리라>(13:16절, 26:4절, 28:14절)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하셨던 약속을 이루어 가고 계셨습니다..







나와 갈등하는 친구와 동료, 나를 속이고 나에게 거짓말 하는 사람, 콩가루인 내 집안, 이런 것들만 보면 우리는 스스로 저주받은 사람처럼 여길 수 있습니다..




혹은 나는 아무 죄가 없는데, 사람들은 왜 나를 이렇게 못살게 구는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나에게 왜 이렇게 대하시는가 원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회를 탓하고, 사람들을 욕하고, 운명을 저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드라마 <미생>의 대사처럼, 주인공 장그래의 상사 오과장이 말합니다.. “회사가 전쟁터면, 밖은 지옥이다” "밀어낼 때까지 버텨라" 라는 말에 공감하며, 세상은 온통 전쟁터 아니면 지옥이라며 낙담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야곱과 함께하시며 선한 뜻을 이루어 가셨던 하나님이, 우리와도 함께 하시며 그분의 선한 뜻을 이루어가고 계심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애증의 대상인 <사람>만 바라보지 말고, 그 속에서 선한 뜻을 이루어 가고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지켜 주시기에 우리는 속이고 빼앗는 세상에서도 복 받은 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라반의 마지막 속임수는 훨씬 더 노골적이고 악의적입니다.. 라반은 떠나려는 야곱을 붙잡기 위해 달콤한 제안을 합니다..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 또 이르되 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30:27,28절)







외삼촌 집에서 14년을 일했지만, 야곱은 가진 재산이 하나도 없는 빈 털털이였습니다..




네 아내와 열두 자녀를 거느린 야곱에게 절실한 것은,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30:30절) 라고 호소하고 있듯이, 가족을 먹여 살리는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라반은 이 약점을 이용하여 야곱에게 <백지 임금 계약서>를 제시하면서 떠나려는 야곱을 붙잡습니다..







그런데 임금을 계약한 바로 그 날 라반은 야곱의 몫으로 계약된, 몸에 줄무늬나 점이 있는 숫염소, 몸에 얼룩이 있거나 점이 있거나 하얀 반점이 있는 암염소,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양들이 나올 가능성이 아예 없어지도록 검은 양들까지 모두 따로 떼어, 삼 일 길 쯤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내 아들들에게 맡깁니다(30:35,36절)..







앞으로도 계속해서 야곱을 종처럼 부려먹고자 하는 노골적인 의도를 라반은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정말로 야비한 사람입니다.. 세상에 이런 장인이 있을까요?








그러나 야곱은 이번에는 장인에게 따지지 않습니다.. 그 즉시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 가지를 꺾은다음 껍질을 벗겨내서 나무 껍질에 하얀 줄무늬를 만들었습니다(30:37절)..







그리고 그 앞에서 가축들이 새끼를 베게 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30:43절)




(쉬운 성경) "이렇게 해서 야곱은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가축 떼와 남종과 여종, 그리고 낙타와 나귀를 많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후에 아내들에게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31장 6-9절>을 보십시오..




"그대들도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막으사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으며, 그가 이르기를 점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야곱의 고백대로 라반은 야곱의 몫을 하나도 주지 않고자 열 번이나 <계약서>를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마다 야곱에게 유리하게 일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야곱은 속이고 빼앗는 자 라반을 만나 그의 이익을 위해서 죽도록 일하다가 결국은 빈털터리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고, 그를 지켜 주셨기에 그는 자식의 복, 재물의 복을 받았습니다..







세상에는 라반 같은 사람이 널려 있습니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서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라반 같은 사람들을 자주 목격합니다..




어떤 때는 나의 직장 상사로, 나의 거래처 직원으로, 나의 지도 교수로 라반 같은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우리는 속이고 빼앗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도 독해지고 영악해지고,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비난하면서 자신의 거짓말에 대해서는 합리화하면서 정당화하기 쉽습니다..







처음 소개했던 책으로 돌아가서 댄 애리얼리 교수는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이 하는 작은 거짓말과 사소한 부정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합니다.. <자아 고갈>







이를 막기 위해 저자는 적극적 부정 행위자를 처벌하고, 소극적 부정 행위자가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도록 적절한 심리학적 조치를 취하라고 조언합니다.. 저자는 이에 대한 흥미로운 예를 듭니다..







「어떤 부인이 냉장고의 고기를 조금씩 훔쳐가는 가사 도우미 때문에 골치를 앓았습니다.. 그는 한가지 묘안을 생각해 냈습니다..




냉장고 문에 열쇠를 채우고 그 열쇠의 관리를 가사 도우미에게 맡겼더니 그 후로는 냉장고의 고기를 훔쳐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가사 도우미에게 냉장고의 관리자라는 심리적인 책임감을 부여함으로써 훔치는 행위를 중단시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속이고 빼앗는 라반과 같은 사람들이 득세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내 몫을 챙기며 살 수 있을까요?







우리는 먼저, 크게 잘못하는 다른 사람을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나의 사소한 거짓말과 부정 행위로도 누군가는 크게 상처를 입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속이고 거짓말하여 내 유익을 추구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라반의 것을 빼앗아 야곱에게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 정당한 몫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로마서 8장 28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창세기 50장 20절>의 요셉의 고백을 보십시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이 믿음을 가지면, 우리는 속이고 빼앗는 세상에서 스트레스 받지 않고, 거짓말 하지 않고, 부정 행위를 절제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로 인해 세상이 좀 더 정직해지고 밝아질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부르신 주님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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