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축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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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 창세기 56 - 야곱에게 열두 아들을 주신 하나님 (29:1-30:43절)(30:22-24절)
 이기남    | 2021·04·24 13:25 | HIT : 271 | VOTE : 187
* 창세기 56 - 야곱에게 열두 아들을 주신 하나님 (29:1-30:43절)(30:22-24절)







오늘 <창세기 29,30장>에서 우리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야곱은 장자의 축복을 받았지만, 이것 때문에 갑자기 망명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망명길 끝에서 강적 라반을 만납니다..







야곱은 라반의 딸 라헬을 얻고자 했고, 라반은 딸을 이용해 야곱의 노동력을 얻고자 했습니다.. 라헬은 자녀를 얻고자 했고,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얻고자 했습니다..




여종 빌하와 실바는 뭘 딱히 얻고자 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엉겁결에 야곱의 아내가 되는 복을 얻었습니다..







야곱과 라반, 라헬과 레아, 빌하와 실바 등 여러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고 행동했습니다..




사랑하고 미워했습니다.. 시기하고 억울해 했습니다.. 속고 속였습니다.. 머리를 쓰고 손발을 움직였습니다..







이런 중에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습니다..




인간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생각하시고 행동하시는 분이십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이루어 지는 것 같지만, 긴 세월 가운데 보면,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이러한 야곱의 하나님을 만나기 원합니다..




때로 우리 삶이 겹겹이 꼬인 것 같아 힘들 때, 우리는 이 어두운 현실 너머에서 선을 이루고 계시는 하나님을 소망합니다..







나의 신분, 능력, 외모, 재산 등 삶의 조건들이 내 삶을 고정시켜 버릴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그냥 포기하며 살아가기 쉽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하나님은 고정된 분이 아니십니다.. 운명에 도전하여 변화를 추구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야곱은 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는 장자의 복을 쟁취했고, 사랑을 쟁취했고,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억압자의 손을 벗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야곱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오늘 살펴볼 <29,30장 본문>은 3개의 장면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첫 번째 장면, 야곱이 라헬을 얻었습니다 (29:1-30절)




오늘 야곱 이야기를 시작하는 배경은 우물가입니다.. 우물 곁에는 세 무리의 양떼가 한가로이 누워 있습니다..




웬일인지 우물 입구는 큰 돌로 막혀 있고, 목자들은 모든 양떼가 모이기까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양을 베개 삼아 누워 자기도 하고, 야곱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도 있습니다.. 야곱은 그들이 하란에서 왔으며, 외삼촌 라반의 집이 멀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때 한 어여쁜 여인이 양떼를 몰며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이 여인이 라반의 딸 라헬임을 듣게 되었습니다..







「라반의 딸?」 이때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28:2절)




그는 양떼를 몰고 오는 저 라반의 딸이 혹시 내 아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에 부풀었습니다..







그는 목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우물 입구를 막은 큰 돌을 혼자 옮기고는, 라헬의 양떼에게 우물물을 먹이는 과도한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라헬에게 입 맞추어 인사하고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야곱은 라헬에게 자신이 라반의 조카요, 라헬의 고모인 리브가의 아들임을 말했습니다..







라헬은 아버지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때 라반이 무엇을 기대했을까요?




혹시 옛적에 여동생 리브가를 데려가려고 아브라함의 종이 열 마리 낙타에 싣고 왔던 <결혼 지참금>을 기대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야곱은 지팡이 하나만 들고 있었습니다.. 그는 도망자로 외삼촌을 찾아온 것입니다..




라반이 겉으로는 달려가 야곱을 영접하고 입 맞추고 집에 들였지만, 내심 생각이 복잡했을 것입니다..




<아니, 이 녀석이 왜 우리 집에 온 것이지? 설마 내 딸을 공짜로 데려가려는 것인가? 어림도 없지..>







이때 야곱은 순진하게 라반에게 자기의 모든 지난 일을 말했습니다..




출생 때부터는 아니겠지만, 형 에서의 일부터 아버지를 속이게 된 일과 이렇게 피신해 온 이야기를 털어 놓았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아버지 이삭이 라반의 딸 중에 아내를 택하라고 하신 말도 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라반은 머리가 재빠르게 돌아갔습니다.. <야 이놈 봐라.. 아버지와 형을 속인 걸 봐서 수완이 있는 놈 같으니, 뭔가 이용해 봐야 겠다..> 라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라반은 안색을 바꾸고는 야곱에게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29:14절) 하며 한 달을 자기 집에 머무르게 했습니다..




한 달 동안 집에서 일을 시켜보니 야곱이 대단한 조카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머리도 잘 돌아가고, 힘도 세고, 시키는 건 무엇이든 하는 충성파였습니다..




무엇보다 라헬만 옆에 지나가면 에너지가 넘쳐 마구 일을 해대는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읽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야곱과 장기 계약을 맺고자 수를 썼습니다.. <야곱, 이렇게 공짜로 일을 시킬 수는 없고, 품삯을 줄 테니 얼마면 되겠니?>




빈손으로 온 야곱에게 결혼 지참금이 필요한데, 이걸 빌미로 그의 노동력을 이용하려 한 것입니다..







이때 성경은 갑자기 레아와 라헬에 대한 이야기로 시선을 돌립니다..




“언니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29:16,17절)







레아라는 이름은 암소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라헬이란 이름 뜻은 다 자란 암양입니다.. 레아는 암소였고 라헬은 암양인 것입니다..




그래서 레아는 좀 부담스럽고 라헬은 사랑스럽습니다..







레아는 시력이 약했다고 하는데, 이는 교정 시력이 낮다는 뜻이 아닙니다.. 눈에 총기가 없고 반짝반짝 빛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레아의 눈은 뭔가 힘이 없고 그래서 얼굴에 생기가 없어 사랑스러움을 그냥 느끼기엔 쉽지 않았습니다..




반면 라헬은 곱고 아리따워서 사랑스러움이 그냥 느껴졌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위해 외삼촌에게 7년을 섬기겠다고 했습니다.. 이삭의 결혼 때는 아브라함이 돈을 다 대주었지만, 야곱은 자기 힘으로 아내를 얻고자 한 것입니다..







왜 야곱이 7년을 일하려 했을까요? 고대 근동의 약혼 관습은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많은 결혼 지참금을 줘야 했습니다..







신명기에선 어떤 경우에 신랑이 신부 집에 은 오십 세겔을 줘야 한다고 했습니다(신 22:29절)..




은 1세겔이 4일 품삯이므로 은 50세겔이면 200일 품삯입니다..







200일이면 1년도 안 됩니다.. 그래서 은 50세겔이면 7년 품삯이 안 됩니다..




그런데 만약 금 50세겔일 경우는 15배인 3,000일 품삯입니다.. 3,000일은 안식일을 빼면 대략 7년 정도 됩니다..







이를 볼 때, 7년을 일하고자 한 야곱은 라헬을 일반적인 은 50세겔이 아니라 금 50세겔을 주고 아내로 맞이하려 했을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야곱에게 라헬은 그만큼 소중한 존재였던 것입니다.. 야곱은 라헬을 위해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일을 했습니다..




라헬을 사랑한 까닭에 그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습니다.. 사랑은 야곱을 일하게 했습니다..







어느새 7년이 지나고 결혼식 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라헬과 결혼식을 치르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옆에 레아가 누워 있는 게 아닙니까!!







7년의 세월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야곱은 “외삼촌이 왜 나를 속이셨습니까!!” 항의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라반은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시집보낼 순 없다>며 오리발을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결혼 잔치 기간 7일을 채우면 라헬도 줄 터이니, 자신을 위해 또 7년을 섬기라고 요구했습니다..







천하의 야곱을 7년 동안 부려 먹고도 또 7년을 부려먹게 된 라반의 수완이 대단합니다..




라반의 이름 뜻은 <흰색>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얗게 회칠한 무덤처럼 하얀 겉과 검은 속이 다른 사람입니다.. 이름이 어떻다고 사람 됨됨이가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야곱은 오직 라헬을 위해 또 7년을 수고했습니다.. 또다시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일했습니다..




악덕 사장님 밑이든, 덥고 춥고 졸리든 상관 없이 야곱은 한 가지를 위해 일했습니다.. 한 사람 라헬을 얻기 위해 충성스럽게 매진했습니다..







야곱 이야기에는 두 가지 동사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속이다> 라는 말과 <빼앗다> 라는 말입니다..




이삭과 에서는 야곱이 형의 것을 속여 빼앗았다고 말했습니다.. 야곱은 라반이 자기를 속였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14년 세월이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빼앗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괜찮았습니다.. 라헬이 충분한 보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최고의 것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베팅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야곱의 캐릭터를 통해 일하셨습니다..







사랑에 올인하는 야곱에게서 그리스도인이 배울 바가 있을까요?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 13:44절)







천국은 감추인 보화와 같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 중에 내가 많이 손해보고, 지나치게 믿지 않았는가 라는 후회가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라헬을 얻었고, 열두 아들을 낳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다는 것을 긴 시간 속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신앙 생활에 대한 우리의 올인은 라헬 같고 열두 아들 같은, 이것보다 귀한 천국을 얻는 방편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혹시 우리를 속이고 내 소중한 것을 빼앗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야곱은 라헬을 얻었고, 우리는 천국을 얻었습니다..








2. 두 번째 장면, 하나님께서 열두 아들과 딸을 주셨습니다 (29:31-30:24절)




이제 열두 아들을 낳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레아에겐 남편의 사랑이 필요했고, 라헬에겐 자식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은 레아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함을 보고 태를 여셨습니다..







첫 아들 르우벤이 태어날 때 레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둘째 아들 시므온을 낳을 때는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라고 했습니다..




셋째 아들 레위를 나을 때는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처음 세 아들의 이름엔 남편의 사랑을 갈구하는 레아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넷째 아들 유다를 낳을 때는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라며 레아는 안도했습니다..







이를 보고 라헬이 시기심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야곱을 찾아가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말했습니다..




야곱도 라헬에게 화를 내며 부부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이에 라헬은 자기 여종 빌하를 통해 두 아들 단과 납달리를 얻었습니다..




단을 낳을 때는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셨다” 말했고, 납달리를 낳을 때는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말했습니다..







라헬에겐 시기심, 억울함, 호소, 경쟁심이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라헬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그녀를 통해서 두 아들을 주셨습니다..







한편 레아는 자기의 출산이 멈춤을 보고서 여종 실바를 야곱에게 주어 갓과 아셀을 낳게 했습니다..




갓을 낳을 때는 “복되도다” 라고 했고, 아셀을 낳을 때는 “기쁘도다” 하며 간단한 코멘트만 날리는 여유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레아 자신을 통해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 아들인 잇사갈과 스불론이 태어났습니다..







어느 날 레아는 아들 르우벤이 구해 온 임신 촉진제인 합환채를 라헬에게 팔면서 대신 남편을 샀습니다..




레아가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 그때 야곱은 어안이 벙벙했을 것입니다..




<아, 내가 팔렸구나..> 야곱은 아내들 사이에서 사고 팔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옛적에 에서에게서 장자의 명분을 사고 팔던 주도적인 야곱이 이제는 아내들에게 사고 팔리는 수동적인 신세가 된 것입니다..







레아는 그 후에 디나라는 딸까지 낳아서 총 여섯 아들과 딸 한 명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가족 중에 지분 50% 이상의 막강 대주주가 되었습니다.. 레아는 평생 남편의 사랑에 목말라 했지만, 나중에 헤브론의 족장의 무덤에 야곱 곁에 나란히 묻히게 되었습니다..







반면 라헬은 어떠합니까? 드디어 하나님께서 라헬을 생각하셔서 그 태를 열어 아들 요셉을 주셨습니다..




라헬은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말했고, “여호와는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며 이름을 요셉이라 지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가나안으로 가족들이 돌아갈 때 벧엘을 지나며 막내 베냐민을 낳습니다..







라헬은 길가에서 출산 중에 죽어가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 즉 <슬픔의 아들>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베냐민, 즉 <오른 손의 아들>, <행운을 가져오는 이>란 뜻으로 이름 지으며, 하나님의 섭리를 이야기하고 사랑하는 라헬을 위로했습니다..







라헬은 야곱의 사랑 받는 여인이었고, 출애굽의 기초를 놓은 요셉의 어머니가 되는 큰 영광을 누렸습니다.. 라헬은 암양처럼 행복했습니다..







이상을 살펴볼 때 야곱의 가계도는 도표를 그려야 할 정도로 복잡했습니다..




라헬과 레아는 야곱을 놓고 <내 남편>이라 주장하며 끝없이 싸웠습니다.. 자녀들 이름은 아내들이 지었고 야곱은 별 말이 없었습니다..







야곱이 그럴 사람이 아닌데 그렇게 되었습니다.. 강렬한 야곱이 두 부인 앞에서 온순한 양이 되었습니다.. 말없이 자식 낳게 하는 도구가 된 듯합니다..







이것은 야곱의 인생에 있어 지우고 싶은 흑역사였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를 통해 역사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속에서 당신의 언약, 땅과 자손에 대한 언약을 이루어 가고 계셨습니다..




열두 아들과 딸을 낳게 하셨고, 이들이 열두 족속의 조상이 되게 하는 섭리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이런 중에 강한 인간성의 야곱을 훈련하셨습니다..




부모님 집에서 도련님이던 야곱을 처갓집에서 들사람이 되게 하여 죽도록 일하며 겸손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여러 부인들과 자녀들과 함께 살아가며 열국의 아버지로 내면성을 넓혔습니다..







하나님은 생각하고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볼 때도 지우고 싶은 흑역사가 있습니다.. 그것이 지금도 내 삶에 영향을 끼치는 진행형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삶의 어두운 부분이 밝은 섭리의 역사 속으로 편입되려면, 선하신 하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은 선하신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절)







3. 세 번째 장면, 야곱이 말합니다..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30:25-43절)




라헬이 아들 요셉을 낳았을 때였습니다.. 야곱은 이제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라반을 찾아가 자기와 가족을 고향 땅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자신이 외삼촌을 위해 얼마나 수고했는지 잘 아실 것이니, 이제 그만 나를 놓아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라반은 야곱을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야곱을 통해 하나님이 복을 주심으로 자신의 얼마 안 되던 재산이 불어났음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평생 자기 곁에 붙들어 두고 부려먹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야곱도 물러서지 않고 말했습니다..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30:30절)




언제까지나 외삼촌을 위해 봉사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만의 집을 스스로 세우고 싶었고, 자신의 힘으로 그 집을 지어 나갔습니다..







야곱은 라반에게 품삯으로 아롱지고 점 있고 검은 색의 양과 염소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무늬의 양과 염소는 잘 없기 때문에 라반은 오케이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날 즉시, 얼마 되지도 않는 이런 양과 염소들은 가려내어 자기 아들들에게 맡겼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양떼와 사흘 길이 뜨게 했습니다.. 또다시 라반의 꼼수로 야곱이 빈털터리가 될 판이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그냥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 대목을 주목해야 합니다..




야곱이 14년은 참았지만, 하나님의 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물러서지 않고 제로에서 도전했습니다..







버드나무, 살구나무,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낸 후, 양 떼가 물 먹으러 오면 건너편에 두고 양떼를 향하게 했습니다..




양떼는 이 나무들을 보며 새끼를 뱄는데, 나중에 얼룩얼룩하고 점있고 아롱진 새끼를 낳았습니다..







야곱은 이런 색깔 있는 새끼들은 따로 두어 라반의 양과 섞이지 않게 했습니다..




그리고 튼튼한 양이 새끼 밸 때는 개천에 그 나뭇가지를 두고, 약한 양이 새끼 밸 때는 그 나뭇가지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 약한 것은 라반의 것이 되고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되게 했습니다..




이로써 야곱은 매우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번역 성경을 보면 <큰 부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를 많이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라반은 끝까지 야곱을 속이고 뺏어먹고자 했지만, 야곱은 이번에는 당하지 않고 그의 꼼수를 이겨냈습니다..




야곱의 인생엔 라반이라는 강적이 있었습니다.. 라반이 왜 야곱의 삶에 있었는지 풀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야곱은 강한 사람이었지만 자기보다 더 강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수가 너무 높아 야곱일지라도 벗어나기 힘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운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무력하게 있기 쉽습니다..




운명적이란 말은 결정되었다는 것입니다.. 결정되었기에 내가 뭘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운명적이었다면, 신세 한탄을 하고 눈물을 흘리며 밤낮으로 일하는 슬픔의 삶을 살아가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생각해 볼 때, 벧엘을 지날 때 만난 하나님, 그 하나님의 언약, 땅과 자손의 약속,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그 하나님의 언약이 야곱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가 되었을 때 라반과 싸우고 자기 집을 세우고 돌아오는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야곱은 기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만 하고 있지 않고 머리를 열심히 굴렸습니다.. 그리고 손발을 열심히 움직였습니다.. 이것이 야곱입니다..







나뭇가지를 벗기고 양 떼 앞에 흔들며 쇼를 하는 사람, 뭐든지 하는 사람, 좌충우돌 하는 것 같지만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강한 확신과 삶의 방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중에 야곱은 라반의 아들들에게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31:9절) 결국 하나님이 빼앗아 주셨습니다..







라반은 야곱을 속이고 빼앗는 일을 20년 동안 반복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라반의 것을 빼앗아 야곱에게 채워 주셨습니다..







야곱은 믿음의 사람이요, 행동의 사람입니다.. 이 두 가지가 조화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심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믿고만 있지 않고, 기도만 하고 있지 않고, 손발을 움직여 열심히 일하고 머리를 굴려 열심히 지혜를 짰던 사람이 야곱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셨고, 큰 부자가 되게 하셨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야곱은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라는 말로 라반에게 도전했습니다.,




결국 자기 힘으로 자기 집을 세웠고,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열심히 손발을 움직이는 사람이 삶에서 이기게 됩니다..




세상적인 차원에서의 성공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을 믿고 열심히 도전하고 쟁취하는 야곱의 삶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만, 그 은혜를 받는 사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자신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도움을 달라고 말만 하지 않고 야곱처럼 스스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자를 도와 주십니다..







우리 삶에 라반이 있을 수 있습니다.. 라반은 우리 삶의 거침돌입니다..




라반의 손을 벗어나는 길이 무엇입니까? 자기 힘을 기르고자 노력하고, 라반과 지혜롭게 싸우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와 언약을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길은 더 두려운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의지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절)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그 하나님을 두려워 하여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라 말씀하십니다..




야곱과 같은 인생은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하게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두려워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그래서 라반을 마음으로부터 이겨내고, 실제 삶 가운데서도 이겨낼 수 있도록, 그리하여 우리 삶에서 이 걸림돌을 제거할 수 있도록 우리가 힘써 싸워야 합니다..







이것이 야곱이 주는 중요한 삶의 지혜입니다.. <잠언 29장 25,26절>을 보십시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







주권자에게, 권력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습니다..







하나님께서 생각하고 행동하시고, 약속하시고 실행하신다는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를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습니다.. 여호와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야곱은 20년 동안 라반 밑에서 많은 고생을 했지만, 때가 되자 분연히 일어났습니다..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오늘 말씀에서 야곱은 사랑하는 라헬을 얻기 위해 자기 인생을 올인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열두 아들과 딸을 주시는 선한 일을 하셨습니다..







야곱은 자기 집을 세우려고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야곱처럼 여호와를 의지하여 열심히 땀 흘리며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라반을 떠나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 열두 아들과 딸을 낳아 하나님 구속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복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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