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축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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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 요한계시록 2 - 때가 가까움이라 (1:3절)(3절)
 이기남    | 2021·07·10 10:02 | HIT : 104 | VOTE : 1
* 요한계시록 2 - 때가 가까움이라 (1:3절)(3절)







「요한계시록」은 <복잡한 내용들>, <다양한 상징들>, <많은 분량> 등으로 인하여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 가운데 보다 더 간결하게 종말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구절들을 참고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 기록된 주님의 종말 강화,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 기록되어 있는 사도 바울의 소묵시록, 그리고 <베드로후서 3장>에 기록된 베드로의 종말론 등을 함께 참조하시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첫 강해에서 <1장 3절>을 통해서 "때가 가까움이라"는 말씀을 보았는데, 참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구절입니다..





사도 바울이나 사도들도 대개는 자신들의 생애 내에 주님이 재림하실 것이라는 소망을 품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속히 오시지 않았고, 무려 1900년의 역사가 흘러가 버렸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주님의 재림은 없고, 사도 바울이 사기 친 것이다>라고 하면서 낙심하고 환멸을 느끼는 무리들」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교회 시대에 성령님을 체험하고 공동체 생활하는 것이 곧 천국 생활이다>라고 하면서 종말을 내재화시키고 역사화시켜 버리는 무리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아니면, 「<주님의 재림을 먼 미래의 일로 치부하고 현재의 삶의 재미에 푹 빠져서 탐닉하는> 세속적인 무리들」이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1-9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이 다르다는 점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벧후 3:1,2절)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사도 베드로는 두 편의 편지를 <자기가 사랑하는 자들>, <성도들>에게 써 보내는 이유는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고>, <선지자들의 예언한 말씀과 주와 구주께서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함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진실한 마음을 일깨운다고 할 때에, <진실한 마음>이 어떤 마음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거짓 교사들의 견해에 의해 때 묻지 않은 마음, 그들의 악한 육신적인 정욕을 따르지 않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2.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일어나서 (벧후 3:3,4절)




<3절>에 보면,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세」라는 것은 세상이 말하는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초림 때부터 재림하실 때까지의 기간>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인류 역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초림과 함께 인간 역사의 마지막 장이 개봉 되어졌습니다.. 하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4장 4절>에 보면 예수님은 때가 차매 여인의 몸에서 나셨고, <히브리서 1장 2절>을 보면 이 모든 날 마지막 날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 하셨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에서 재림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를 구약에서 예언한 말세로 봅니다..




이와 같은 <말세의 시기는 결코 환난과 박해의 사기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교회가 힘써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만국에 기회를 주고 계시는 마지막 시기>입니다..







그런데 <말세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는 「거짓 예언자들, 거짓 선생들의 출현」이라는 것이 오늘 사도 베드로의 경고이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경고였습니다(마 24:3-5,11,23-26절, 딤후 3:1절 이하)..







<베드로후서 2장>에 기록되어 있듯이 <거짓 선생들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면서, 지어낸 말을 가지고서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나 우매무지한 인생들을 미혹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지어내는 말들의 내용은 서로 다를 수가 있습니다..




예컨대 종말이 왔다고 주장하면서 심지어는 그 긴박감을 조장하기 위하여서 재림의 날짜를 예언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베드로후서 3장 4절>에 소개되는 자들처럼 아예 예수 그리스도의 재람에 대해서 부인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들의 목표는 신자들의 진실한 마음을 미혹하여 주와 구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멀리하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고, 그들은 사탄의 역군들일 뿐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후서>에서 경고하고 있는 <거짓 선생들>의 경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을 부인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거짓 선생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을 부인하는 근거>가 무엇이었습니까?




<베드로후서 3장 4절>에 의하면 그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습니다..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세상이 오랫동안 큰 변동 사항 없이, 파국 없이 잘 왔는데 무슨 새삼스러이 종말이 있겠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 같은 일도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이야 과학자들조차도 심각하게 지구 종말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 시대입니다만, 그 당시에는 대부분의 교양인들이 종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존재하는 물질은 영원하다고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영원설>을 믿었습니다..




또한 에피쿠로스학파Epicureans는 하나님이 세상에서 활동하신다는 것을 부인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물질은 분자의 차원에서 불멸하며, 우주는 무한하다고 믿었습니다..







스토아학파Stoics는 불은 영원하며, 우주는 정기적으로 태고의 불로 환원될 것이고, 영원한 시대의 순환이라고 믿었습니다..




동양의 힌두교와 불교의 윤회사관(영겁회귀사상)에 따르면 우주는 돌고 도는 것이기 때문에 종말을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상들의 문제점은 만물이 자연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고, <예측 가능성>이란 「하나님의 신실성」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잊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 법칙이라는 것도 사실은 하나님께서 심어놓으신 법입니다.. (일반 은총, 성령님의 일반 사역)







그래서 다윗은 <시편 119편 91절>에서 고백하기를 "천지가 주의 규례들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까닭이니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3. 물 심판을 기억하라 (벧후 3:5-7절)





사도 베드로는 현존하는 자연 만물의 존재를 들어서 심판을 부인하고 주님의 재림을 믿지 않고 조롱하려고 하는 자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소개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그리고 노아 시대에 일어난 물 심판을 예로 듭니다.. <6절>을 보십시오..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말씀의 능력으로 세상을 지으시고 유지하시는 하나님이 한 때 악하고 불경건한 세상을 뒤집어 엎으시는 심판을 행하셨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7절>에 보면 장차 다가올 심판은 불 심판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세상을 불로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세례 요한의 메시지 가운데서 예고한 바입니다.. <누가복음 3장 9,16,17절>을 보십시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오늘날 같이 지구를 여러 번 파괴시키고도 남을 고성능의 무기들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의 열강들을 보노라면, 불로 심판한다는 것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드시지 않습니까?





더욱이 자원의 무분별한 개발과 사용으로 인해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있어서 불 심판의 가능성을 자연적으로 예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천지의 창조자이시고 천지를 붙들고 계시는 분이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이 이 세상을 심판하실 권한을 가지고 계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때가 되면 하나님이 불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 부분은 요한계시록 후반부에서 자세하게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4. 하나님은 오래 참고 계시면서 구원의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벧후 3:8,9절)





이제 「재림의 지연 문제」에 대해서 살펴 보겠습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의 생애 중에 다시 오실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8절>을 보십시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또,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막 13:35절)는 말씀 이라든가, "때가 가까움이라"(계 1:3절) 등과 같는 말씀은 <예수님이 자신들의 생애 중에 다시 오실 것이라는> 소망과 확신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제자들이나 초대 교인들은 재림에 대한 긴박감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같은 곳을 보면, 사도 바울 역시도 자신이 살아있는 중에 주님의 재림을 맞게 될 수도 있다는 긴박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사도들과 첫 세대의 신자들이 거의 죽어가던 60년대쯤 되어졌을 때에도 종말이 오지 아니하자, 「재림의 지연」은 심각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신자들 중에도 <주님 도대체 언제 오십니까>라는 부르짖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늘의 세계를 볼 수 없는 땅 위에 살고 있는 신자들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6장 9,10절>을 보면,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죽은 신자들도 주님의 제단 아래서 <언제나 우리 원수를 갚아 주시려고 하십니까> 하고 부르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로 보아 천국에 간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고, 주님이 오셔야 문제가 해결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도 베드로가 편지를 쓰던 초대교회에는 거짓 선생들의 조롱과 기롱, 그리고 내부적인 헷갈림이 있었습니다..




왜 하나님이 약속을 실현시키는 데 늦장을 부리시는 것일까 하고 말입니다.. 도대체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가 조바심을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8,9절>에 보면, 사도 베드로가 주는 해답이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선 "사랑하는 자들아" 라고 하면서 자신의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이 표현은 <베드로후서 3장>에서 4번이나 사용되었습니다(1,8,14,17절).. 사실 <베드로후서>는 사도 베드로가 남긴 마지막 서신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자신의 순교가 임박함을 의식하면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한 그가 애쓰고 힘써 복음으로 낳고 양육한 회중들에게 가지는 감정은 그 얼마나 뜨거웠겠습니까?








사도 베드로는 "사랑하는 자들" 이라고 부른 다음에 인간의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이 다르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8절)..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시편 90편 4절>에 보면, 모세도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 속에 사시는 3차원적인 인간과 같은 존재가 아니십니다..




하루에도 마음이 열두 번도 더 변하는 인간고 아니시고,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고 마음의 열정도 식어버리는 그러한 인간도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분이십니다.. 시간의 시작과 끝을 자신의 안에 품고 계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시간도 창조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몇 분 몇 시간 아니 몇 년 아니면 몇 십 년을 길다고 운운하지만, 하나님은 천년을 하루 같이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사도 베드로가 사용한 구절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일까요?





하루가 천년 같다고 하면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더디다, 지루하다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리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하면 어떻습니까? 이것은 빠르다, 신속하다 등의 의미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하루를 천년 같이 더디게 여기시며 이제나 저제나 하시는 것인지 설명해 줍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이 잊어버리셨거나, 약속을 실천할 의지가 없어졌거나,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오래 참고 계시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하십니다..







<요한계시록 6장 11절>을 보면, <10절>에서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라고 부르짖는 천상의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대답하십니다..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쉬운 성경) "그러자 그들에게 힌옷 한 벌이 각각 주어졌습니다. 그리고는 아직도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할 형제들이 조금 더 있으니, 그 때까지 잠시 동안 쉬라는 말씀이 들려 왔습니다."









하나님은 현재도 변덕스럽고 조급한 인생들과는 달리, <길이 참으시면서 인생들에게 기회를 주고 계신다는 점>을 잊지 마시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심입니다.. <에스겔서 18장 23절, 31,32절>에 보십시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디모데전서 2장 4절>에도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국 문을 열어 놓으시고 집 나간 자신의 자녀들이 한 사람이라도 더 돌아오기를 고대하고 계신 분이십니다(롬 10:21절)..







한 사람이 돌아오면 <누가복음 15장> 말씀처럼 천국에서는 환호성이 터지고 축하의 파티가 벌어집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표현처럼, 하나님은 마치 한 사람 밖에 없다는 듯이 한 영혼을 존귀하게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인내가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시기가 수 년 전, 수십 년 전에 닫혀 버렸다면, 우리 중에 적지 않은 분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노아의 방주의 문을 닫아 버리시고 세상을 심판하신 것처럼, 그의 인내심이 끝날 때가 올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이 세상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자비하심의 덕으로 많은 이들이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구원함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한 명의 백성들에게까지 기회를 주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가족들과 이웃들, 즉 잃어버려진 하나님의 피조물들에게 대한 긍휼을 품어야 합니다..







주님이 참고 계시는 현재는 자신의 정욕대로 자기 마음대로 살 기회가 아닙니다..




그런 자들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2장 4,5절>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습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오히려 우리는 <누가 가서 나를 위해 저 죽어가는 무리들에게 나의 생명의 복음을 전할까> 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우리의 가슴에 품고 영혼 구원을 위해서 진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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