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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 요한계시록 3 - 삼위 하나님의 문안 인사 (1:4,5절)(4,5절)
 이기남    | 2021·07·17 11:29 | HIT : 131 | VOTE : 3
* 요한계시록 3 - 삼위 하나님의 문안 인사 (1:4,5절)(4,5절)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얼마나 급변하고 있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개인 의사 소통체계>(personal communication system)의 변화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나이 드신 분 가운데는 전화기라는 것을 집에 처음 들여 놓았던  감격스러운 기억도 있는 줄 압니다..







그리고 휴대폰은 어떻습니까?




처음 나왔을 때에는 무슨 무전기같이 큰데다 비싸서 사업하는 사람들이나 들고 다니는 것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너도 나도 다 휴대폰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나이 드신 어른들도 문자를 주고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스마트폰의 시대가 되어서 손바닥 안에서 인터넷을 비롯하여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편리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고도로 발달한 간편하고 편리한 수단들이 있다 보니, 이 시대 사람들이 잊어가고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편지라고 하는 수단입니다..







물론 이 시대 젊은이들도 편지를 주고받기는 합니다.. 소위 컴퓨터를 통해서 이메일이라는 것을 참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메일이라고 하는 것이 간편하게 비용 없이 먼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순식간에 보낼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 수단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고 있던 1900여 년 전의 시대에는 손으로 편지를 써서 인편을 통해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1-4절>에 의하면 요한계시록의 문학적 장르를 계시, 예언, 편지 등 세 가지로 밝히고 있습니다..







편지라고 하면 통상 발신인, 수신인, 그리고 용건 등으로 구성이 됩니다..




고대인들의 편지를 보면 누가 누구에게 문안 한다는 말을 먼저 하고 나서 용건으로 들어갑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에도 보면 발신인, 수신인, 그리고 문안 인사 등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발신인




누가 편지를 쓰는지 발신인에 대해서 사도 요한은 단순히 요한이라고만 밝히고 있습니다..




사실 신약 성경에 보면 요한이라는 이름이 여럿 나오고 있고, 당시에는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오늘날 영미권에서도 존이라는 이름이 흔하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보조 설명 없이 그냥 요한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물론 <9절>에 보면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는 요한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에 소아시아에 살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이 발신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아, 바로 그 요한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바로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제자 요한 이외에 다른 인물일 수가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형제 야고보도 에수님의 제자였습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쓴 시기를 대략 주후 95,96년 경이라고 봅니다.. 그때 사도 요한의 나이는 90이 넘은 나이입니다..




다른 사도들은 이미 30여 년 전에 다 순교하였지만, 사도 요한은 백발이 성성할 때까지 홀로 살아 남아서 복음을 증거했고, 요한복음을 기록했습니다..







초대교회 역사가인 유세비우스(Eusebius)의 증언에 의하면 사도 요한은 노년이 되어서 거동이 불편해지자 청년들의 등에 업혀서 예배에 참석 했다고 하는데, 기력이 없는 중에도 "소자들아! 서로 사랑하라"고 권면하곤 하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같은 시기에 기록한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를 읽어 보더라도 사도 요한이 얼마나 사랑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으며, 그를 통해서 흘러 나오는 사랑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사실 그도 젊은 시절에는 혈기 왕성하고 성질이 급해서 보아너게(우레의 아들) 라는 별명을 주님께 얻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사도 요한이 60여 년이 지나고 나서는 오로지 주님처럼 사랑, 아가페(agape)를 부르짖고 실천하는 자가 되어 있습니다.. 








바로 그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발신자인 것입니다..







2. 수신인




두 번째로, 편지를 받은 사람들, 즉 수신인이 누구라고 밝히고 있는지를 살펴 보겠습니다..




<4절>을 보면,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라고 합니다.. 수신인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입니다..







아시아는 지금의 6대주의 이름 중 하나인 아시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당시 로마 제국의 행정 구역 중의 하나인 소아시아(Asia Minor / 흑해와 지중해 사이의 반도) 속주를 말합니다.. 현재의 터키 서부 지역을 말합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이 쓴 편지를 받은 일곱 교회의 이름은 <11절>에 밝히고 있는 대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입니다..







사실 소아시아 지역에는 이 교회들 외에도 다른 교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골로새, 히에라볼리, 드로아 교회 등 신약 성경에 나오는 여러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일곱 교회만 선별해서 편지를 보낸 것일까> 하는 점에 대해서 설왕설래가 많이 있었습니다..







① 첫째, 요한이 언급한 일곱 교회는 로마 제국의 소아시아주에 닦아 놓은 고속도로(via) 변에 위치하고 있었고, 이 교회들은 각기 주변 지역에 대하여 대표성을 띠고 있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즉, 에베소에 편지를 보내게 되면 에베소 교회만 읽는 것이 아니고, 주변의 다른 교회들, 예컨대 골로새 교회나 히에라볼리 교회에도 돌려 가면서 읽었다는 것입니다..







② 둘째, 일곱이라는 숫자를 상징적으로 이해하는 해석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7이라는 숫자가 무려 54번이나 나옵니다..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일곱 사자, 일곱 영 등이 나옵니다..




오늘날도 서양 사람들은 럭키 세분(Lucky seven) 이라고 해서 7이라는 숫자를 무척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근거한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요한계시록에서 7이 의미하는 바는 <완전>, <충만>의 의미입니다..




따라서 일곱 교회라고 하는 것은 모든 교회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2,3장>에 기록된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들은 각기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가 아니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2:7,11,17,29절, 3:6,13,22절)..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이지만, 성령님이 하시는 말씀을 에베소 교회만 들을 것이 아니라 다른 교회들도 들으라는 것입니다..




각 교회의 상황에 맞게 쓰여진 편지 이지만, 모든 교회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이라는 의미입니다..







사실 일곱 교회에 보내어진 편지는 역사상 존재하는 교회들의 모든 유형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들도 일곱 교회중 어떤 유형에 속하였나 확인해 보는 것도 유익하리라고 생각합니다..







3. 문안 인사





세 번째로, 사도 요한이 쓰고 있는 문안 인사에 대해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인사라는 것 참 중요합니다..




옛 사람들은 한문식으로 문안 인사를 했습니다.. "기체후 일향만강(氣體候一向萬康)" 하옵시며.. <기력과 건강은 내내 좋으시지요?>,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정도의 뜻..







그런데 사도 요한 당시의 고대인들은 각기 자기가 믿는 신의 이름으로 문안 인사를 적곤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4,5절>에 보면,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문안 인사를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사도 요한은 그저 간단하게 성부, 성자, 성령이라고 표기하지 않고, 각 위에 대해서 각기 길게 풀어서 묘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1) 먼저, 사도 요한은 성부 하나님에 대해서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는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고 대답하셨던 말씀을 길게 풀어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원 자존자」이시라고 하면, 보통 사람들은 잘 알아 듣지를 못하고 실감을 못 느낍니다..







부모를 통해서 출생하므로 존재의 시작을 가진 우리들, 그리고 시간과 공간에 매여서 살아가는 우리 인생들이 영원 자존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하루살이가 인간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처럼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고 풀어서 소개함으로써, 우리들에게 영원 자존하신 성부 하나님을 좀 더 잘 알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인간 역사의 장 속에서 사역하시는 하나님의 영원성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① 하나님은 이제도 계신 분이십니다..





사도 요한 당시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세를 가진 듯이 믿는 자들을 박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고난 받는 자기 백성들 가운데 살아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점은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때에 심판하시기 위하여서 저울질을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고난 받는 신자들 혼자 버려두지 않으시고 함께 하고 계시다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넉넉히 이기도록 도와주시겠다는 격려의 말씀입니다..







② 또한 하나님은 예전에도 계셨던 분이십니다..





이전에도 느부갓네살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고, 애굽의 바로가 날 뛸 때에도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시고, 때가 되매 역사를 심판하시고 바로 잡으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독재 문화에서 민주화로의 변천 과정을 몸소 겪었습니다..




수많은 고통과 시련을 겪었고, 언제 민주화된 시대가 오긴 오려나 싶었지만, 때가 되매 이렇게 자유 분방한 세상이 되고 만 것을 봅니다..




또한 구소련과 그 영향에 있던 동유럽의 여러 나라들의 공산 체계가 붕괴된 것을 보십시오..







우리는 이처럼 역사를 뒤돌아 보면서 역사 속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하나님의 솜씨를 읽어내는 믿음의 안목이 필요합니다..







③ 하나님은 또한 장차 오실 분이십니다..





이는 현재 세상이 사탄과 악의 세력, 어둠의 세력이 쥐락펴락하고 있는 듯이 보이고, 마치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으시는 듯이 보이지만..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심판주로 오셔서 사탄과 악의 세력을 완전히 섬별하실 것이며, 자기의 사랑하는 백성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시며 신원(伸寃)하여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와 같은 하나님을 생각하면 고난 중에 위로가 되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과 세상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자기 것인줄 압니다..




그들은 약한 사람들을 짓밟고 착취하면서 제 멋대로 제 고집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때가 옵니다..









"장차 오실 이"라고 소개되신 하나님이 오시면 역사에 대한 심판을 하실 것입니다.. 옛 땅과 옛 하늘도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주실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처럼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이신 성부 하나님의 이름으로 문안을 했습니다..







정리해 보면,




「유한한 존재가 세상의 용어가 아닌 다른 것으로는 영원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독자들에게 하나님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영원히 존재하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알려 주는 방법으로 그 거룩한 이름을 풀어 놓습니다..







그러한 것을 상기하는 것은 교회가 핍박 밑에 놓여 있는 때에 특히 적절한 것입니다..




불확실한 미래는 영존의 능력으로 역사의 과정을 주권적으로 통치하시는 분을 요구합니다..







(2) 둘째, 사도 요한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의 이름으로 문안했습니다..





그의 보좌는 성부 하나님의 보좌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은 일곱 영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령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일곱 영이라고 표현한 것은 충만하신 성령님이요, 일곱 교회 즉, 모든 교회를 충만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시고, 성령님의 역할과 기능도 다양하며 나누어 주실 은사와 능력도 충만하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신자의 삶과 교회의 상태가 허약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지고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느껴진다면, 문제는 성령님께 있지 않습니다..




무소불위의 영이십니다.. 성령님은 어떠한 난제도 거뜬이 해결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전능하시고 충만하신 영이십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한번 성령님을 받았느니 우리의 소유처럼 여기면서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는 것으로 여기면 안 됩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지금도 계신 자유로운 영이십니다.. 우리는 겸손하게 날마다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여전히 잔존하고 있는 옛 사람을 이기고, 죄악 세상의 가치관을 이기며, 사탄의 세력을 대적하기 위해서라면 우리의 무릎을 좀 더 깊이 꿇고 성령님을 사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녀들이나 손자 손녀들을 위해서 무엇을 기도하십니까?




공부 잘하게 해달라고, 건강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들이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고 간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 만이 <이사야서 11장 2절>에 소개한대로 지혜, 총명, 모략, 재능, 지식, 여호와를 경외하게 하는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3) 셋째로,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도 문안합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는 <5절>을 보면,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① 예수님을 "충성된 증인"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편지 속에서도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3:14절) 라고 소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서도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요 18:37절) 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서 증거하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가지셨던 구속 계획에 대해서 인간들에게 알려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자신을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라고 소개 하시었습니다..




신약 원어로 증인에 해당하는 단어가 <말투스>(martus)인데, 나중에는 순교자라는 의미도 같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복음의 증인으로서 순교하는 경우가 많이 생겨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증거하는 말이 참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목숨까지도 버리는 사람을 충성된 증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순교자들에 앞서, 자신의 증언하는 바를 인치시고 성취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하신 충성된 증인이신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그 말씀을 우리는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② 사도 요한은 또 예수님에 대해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라고 소개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고전 15:20절, 골 1:18절)..







죽기까지 충성하는 것이 증인의 역할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써 산 자나 죽은 자의 주로써 온 세상의 주권적 통치자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③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땅의 임금들의 머리" 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왕들 중의 왕이십니다.. 땅의 임금들은 참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사하는 유한한 모형일 뿐입니다..







그런데 위임 받은 권세를 가지고서 느부갓네살이나 도미티아누스처럼 광분하며 택하신 백성을 괴롭게 할 때는, 왕중 왕이신 그리스도가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반역자는 황제 숭배에 협조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도미티아누스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심판 받는 자는 바로 도미티아누스 였습니다..







로마 역사를 보면,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45세에 노예들의 손에 의해서 처참하게 암살당하고 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죽음을 무릅쓰고 진리를 증언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시어 승리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시었습니다..




이와 같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은 고난을 넘어서 승리의 영광, 왕권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요한계시록의 주제 구절인 <17장 14절>을 음미해 봅니다..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4.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사도 요한은 이와 같이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사하기를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은혜와 평강(grace and peace), 이 인사말은 바울 서신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은혜는 근원이요 시작이라면, 평강, 평화, 평안, 샬롬은 은혜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만이 진정으로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과 평화한 자만이 환란 속에서도 영혼의 평강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을 보십시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 16장 33절>을 보십시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당시 로마 제국은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의 평화)를 구가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철권 통치에 바탕한 위장된 거짓 평화였을 뿐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하나님과 평화한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인 것입니다..







「오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선교사로 다녀오기까지 했지만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년) 목사의 마음에는 평화가 없었습니다..







폭풍치는 선상 위에서 자신은 공포에 질려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일단의 모라비안 교도들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주요 온 세상의 주님이신데 무엇이 두렵냐고 고백했습니다..







웨슬리도 런던으로 돌아와서 이 모라비안 교도들의 집회에 참석해서 큰 은혜를 받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의지할 때에 그 영혼에 평화가 임했고 지칠 줄 모르고 복음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시며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계 1:4,5절)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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