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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 요한계시록 4 - 예수님 찬양 (1:5,6절)(6절)
 이기남    | 2021·07·31 11:41 | HIT : 96 | VOTE : 1
* 요한계시록 4 - 예수님 찬양 (1:5,6절)(6절)








『유토피아』를 쓴 토머스 모어(Sir Thomas More, 1478-1535년) 경이 있습니다..




영국의 왕 헨리 8세가 즉위한 후에 청원재판소 판사, 재무 차관, 하원 의장 등을 역임하고 1529년에 대법관에 임명되었습니다..







1532년 헨리 8세가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 불린과의 결혼을 주장하게 되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대법관직을 사임하였습니다..




1534년 왕위 계승법에 대한 선서를 거부하여 헨리 8세에 의해 1년 동안 런던 탑에 투옥되었다가 사형되었습니다..







그는 사형 재판을 받을 때에 재판장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재판장이여! 내가 당신을 지금 친구라 부르는 것을 용서하시오.. 친구여, 나와 당신은 바울과 스데반처럼 만나기를 바랍니다..





분명 바울이 스데반을 죽였습니다만 하늘 나라에서는 바울과 스데반이 만나서 얼마나 친한 사이로 고맙게 생각하며 그렇게 주님 앞에서 영광을 누리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오늘 당신이 나를 사형에 처하지만 언젠가는 당신이 예수님을 바로 믿고 하늘 나라에 가서 우리 서로 바울과 스데반처럼 만나기를 바랍니다."







이 말을 듣고 재판장이 감동을 받고서 "나는 당신을 사형에 처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토마스 모어 경은 대답했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먼저 긍휼을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에게 먼저 긍휼을 베푸셨기 때문에 나는 누구도 비판하지 않습니다..




누구도 심판하지 않습니다.. 그 긍휼을 다소라도 내가 실천하려고 하는 것 뿐입니다.."






토마스 모어의 고백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이 사람, 예수님을 진짜 만난 사람이구나, 예수님을 진짜 사랑하는구나, 그러니 죽는 마당에도 이렇게 주님을 자랑하지..> 그런 생각이 드시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사간의 주님이시요, 위로자이십니다..







미국의 뉴스 전문 방송인 CNN에서 라이브 토크 쇼를 인도했던 래리 킹 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유대인이자 비기독교인인데, 수많은 유명 인사들과 만나서 토크 쇼를 한 유명인 입니다..








그가 쓴 『대화의 신』이라는 책에는 유명한 말들이 나옵니다..

「말을 제일 잘하는 사람은 논리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다..


당신과 대화하고 있는 상대방은 당신이나 당신의 문제보다는 자신의 희망이나 자신의 문제에 백배나 더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사람은 본래 100만 명을 희생시킨 중국의 기근보다 자신의 치통이 더 중요한 법이다..」






그런데 래리 킹에게 누가 물었습니다.. "당신이 가장 인터뷰하고 대화를 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때에 래리 킹은 바로 Jesus, 예수님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비록 그가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도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지만, 예수님이라는 존재를 무시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예수님을 알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을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합당한 영광을 돌려 드리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1장 5,6절> 속에서 밧모섬에 유배된 노년의 사도 요한이 부르는 예수님 찬양을 보게 됩니다..




메마르고 객관적인 정보 전달이 아니고, 예수님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울렁거리는 사모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찬양인 것입니다..







헨델의 메시아와 같이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동원해서 찬양을 부른다고 해도, 위대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 찬양 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모여서 찬양드릴 때에 천국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면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중국의 지하 교회에서는 설교도 몇 시간씩 듣고 찬양도 몇 시간씩 드립니다..




어떤 찬송은 한 곡이 99절이나 됩니다.. 그것을 다 부르고 나서 사회자가 은혜 받아서 한 번 더 하면, 1시간을 또 더 부릅니다..







오늘 <우리들의 찬양이 어떠한가..> 한 번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찬양을 한다>,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주님의 인격과 그가 하신 일로 인하여 칭송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의 성품을 찬양하고, 주님이 하신 일을 낱낱이 기리며 칭송하는 것이 찬양입니다..







우리가 사람이나 사람이 한 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칭찬하듯이, 주님께 대해서도 <이런 분이십니다.. 이런 일을 하셨습니다..> 라고 구체적으로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 요한의 「예수님 찬양」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먼저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예수님에 대해서 사도 요한이 <충성된 증인> 이라고 했고,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 즉, 「부활의 첫 열매」라고 했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분이시라고 말한 것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진리를 증거하시되, 자신의 피로 인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의 말씀은 옳습니다..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나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생명의 주님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믿는 우리들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분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에수님은 왕중의 왕이시오, 주들 중의 주님이십니다.. 인류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이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권세가들이 제 세상인 것처럼 악을 행하고 믿는 자들을 박해하더라도 그들을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만왕의 왕, 만주의 주를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를 믿고 따라가는 자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상이 우리가 <5절>에서 보게 된 예수님에 대한 사도 요한의 소개였습니다..







찬양은 예수님이 누구이신가에 대한 칭송이자,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에 대한 칭송이기도 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충성된 증인이자, 부활의 첫 열매이시며, 왕 중 왕이신 예수님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1. 첫째,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5절 뒷 부분>을 보십시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고 현재형으로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찬송합니까?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주님은 마치 세상에 단 한 사람의 사랑할 사람 밖에 없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를 섬세하게 사랑해 주시고, 세상의 믿는 모든 자를 똑같이 사랑해 주실 만큼 능력 있게 사랑하신다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누구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적으로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민감한 사람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에도 보십시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은 죽기까지 사랑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고난 받으시는 장면을 다 지켜 보았기 때문에 자기 목숨을 내려 놓기까지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에 대한 증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왕 중 왕이신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도대체 무엇을 해 주셨는가 우리가 물을 수 있습니다..







<건강을 주시고, 안 되는 사업을 성공하게 하여 주시고, 좋은 가정을 주시고, 자식의 길을 형통하게 인도하시고..> 그런식으로 말해야 우리의 본성에 맞지 않을까요?







그러나 주님이 그렇게 목숨 바쳐 가면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위해 주시는 것이 무엇이며, 무엇을 하셨다고 말씀하십니까?




사도 요한은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라고 찬송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즉 잔인한 대속의 죽음을 죽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를 우리들의 죄에서 해방시켜 주시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찬송가 134장 2절>에 보면 "그 사랑의 눈빛과 음성을 나는 잊을 수 없겠네, 그 갈릴리 오신 이 그때에 이 죄인을 향하여 못자국 난 그 손과 옆구리 보이시면서 하신 말 <네 지은 죄 사했다> 하실 때 나의 죄짐이 풀렸네" 라고 찬양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속에서 죽임 당한 어린 양 예수님을 거듭 거듭 찬양해 나갈 것입니다..




<5절 뒷 부분>에서도 사도 요한은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주의해서 보실 것은 사도 요한은 죄를 용서해 주셨다고 말하지 아니하고,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셨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해방한다>는 것은 노예나 인질이 되어 있는 불쌍한 사람을 구원하여 자유케 하여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와 죄의 관계를 사도 요한은 노예주나 독재자와 노예의 관계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분명 죄는 인격적으로 짓는 것이지만, 다르게 보면 죄는 무서운 세력입니다.. 우리를 옭아매고 노예 살이 시키는 철권 통치자인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죄인이라고 하는 사실 자체도 모르게 할 정도로 죄는 무서운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죄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 죄가 얼마나 무서운 새력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죄는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에 살며 복을 누리면서도 하나님을 싫어하고 배척하는 주변 불신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바로 죄인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회심 이전에 자신이 얼마나 <죄의 사슬>에 얽매여 있는 노예와 같은지를 철저하게 경험해 본 사람 중 하나입니다.. 『고백록』 제 8권에 보면 이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빅토리누스의 경험과 같은 것을] 나는 사모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들의 쇠사슬이 아니라 나 자신의 의지의 사슬에 묶여 있었습니다.




내 의지는 적에게 사로잡혔고, 그래서 적은 나를 위한 쇠사슬을 만들어 나를 묶었습니다.







왜곡된 의지로부터 욕망이 생겼고, 욕망이 채워지면서 습관이 생겼으며, 습관을 버리지 못함으로 필연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고리들이 서로 연결되어서(그렇기에 나는 그것을 쇠사슬이라 불렀다) 하나의 강한 구속에 내가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주님은 바로 우리를 그러한 죄의 세력에서 건져내어 자유인이 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을 죄의 권세에서 자유롭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나서 한 평생 은혜의 복음을 전했고, <은혜의 박사>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1장 13,14절> 에서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 라고 찬송하고 있습니다..





2. 둘째,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서 하신 다른 일이 무엇입니까? <6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우리를 사랑하사 피흘려 죽기까지 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신분과 지위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서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면 나라와 제사장을 삼아주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나서도 시내 산에서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하면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4,5절)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 아버지의 소망, 꿈은 결국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를 통해서 신약 교회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베드로전서 2장 9,10절>을 보면,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심으로 이루고자 하셨던 것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제사장된 백성을 세워드리는 일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 아버지를 위하여" 라는 구절의 의미인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위한 백성이자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제사장인 것입니다..


먼저 나라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나라」라고 하면 <국민, 영토, 주권> 3가지 구성 요소가 기억나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시는 나라의 국민은 그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신자들 입니다..




그리고 영토의 견지에서 보자면 주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모든 곳이 하나님의 나라 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의 주권이란 말씀의 권세와 성령님의 감동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의 통치권 입니다..


그 통치권이 심령에 임하면 심령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누가복음 17장 20,21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14장 17절>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심령 가운데 임하는 현재적 천국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가정에 임하면 가정 천국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하나님의 말씀에 지배를 받게 되면 천국의 맛보기 장소에서 천국을 만끽하는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세상의 각 영역에서 선포해야 하고 이루어짐을 체험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나라의 완성은 주님이 재림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면 성취되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늘 우리의 기도는 “당신의 나라가 임하옵소서”인 것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나라뿐 아니라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제사장이란 하나님을 가까이하여 섬기는 자를 가리킵니다.. 구약에서는 성소에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을 수행했습니다..







특히 대제사장은 지성소에까지 들어가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영광스러운 직분입니다..




대제사장의 옷은 세상의 어떤 왕복도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호화롭고 화려했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서 있는 중보자이기도 합니다..




백성들의 죄를 하나님 앞에 고하면서 사죄의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께 받은 사죄의 말씀을 선포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민수기 6장>에 보면, 제사장은 백성들을 위하여 축복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할 때 하나님은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귀한 직분이지만 구약의 제사장은 한계가 분명했습니다..




실체가 아니라 그림자의 속했습니다.. 참 성전이 아니라 그림자 성전에서, 참 피 흘리심이 아니라 짐승의 피 흘림을 통해서 자신의 직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이라 해도 1년에 한 번씩만 지성소에 들어갔는데, 그것도 휘장 밑으로 기어서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사실을 두고서 그때에는 아직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열리지 않았다고 말했고, 짐승의 피로 양심상의 죄를 해결해 주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9장 9절>을 보십시오..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려 죽으심 후에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구약의 제사장 직분과 유사한 직분인데, 그들에 비하자면 무한한 영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림자를 따라 살았다면 우리는 실체를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시은좌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9-22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8절) 했고, <히브리서 4장 16절>에도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제사장이 되었으므로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직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제사장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예배를 드리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데, 구약과 달리 피 없는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절>을 보면, 신약에서 제사 드리는 삶을 산다고 하는 것을 원리적으로 표현하기를,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3장 15,16절>에서는 구체적으로 말하기를,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또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축복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가슴에 12지파의 이름이 새겨진 흉배를 달고, 12지파의 이름이 새겨진 견장을 양 어깨에 달고 하나님 앞에서 섬기는데, 온 백성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 앞에서 축복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이처럼 다른 사람을 복되게 하기 위한 축복의 통로로 부름 받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받은 성도들이라면 다 제사장들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재발견한 신약적 진리 중 하나가 <만인제사장 교리>가 아닙니까?







제사장이면 앞서 말씀드린 대로 삶의 제사를 드리는 것도 해야 하지만, 다른 이들을 사랑하고, 축복하는 일도 해야 합니다..




복을 주고 안 주시고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요, 하나님의 고유한 권한이지만,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축복하지 아니하면 불신 가족들이나 거주하고 있는 지역은 복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가 축복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잠언 11장 11절>을 보면,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으로 말미암아 무너지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역장이나 구역 권찰들 혹은 소그룹 리더들도 자신이 맡은 성도들을 가슴에 품고 축복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들을 가슴에 품고 축복하시고, 자녀들은 부모를 가슴에 품고 하나님 앞에서 축복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제사장인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반모 섬에 유배 중인 백발이 성성한 사도 요한의 「예수님 찬양」을 살펴 보았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랑하셔서 무엇을 하셨는가, 우리를 위하여 피흘리사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셨다고 찬양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를 위하여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찬송합니다..







우리도 이런 복음적인 구절들을 읽고 들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고 심금이 울리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을 찬송하고자 하는 마음이 샘소듯 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피 흘려 죽기까지 하셨으며, 모든 불행과 비참의 근본 원인인 죄에서 해방시켜 주셨다는 점을 항상 기억하며 찬송해야 합니다..






주님의 보혈을 찬송하기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백성들이요, 천국 시민들 입니다.. 말씀과 성령님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어느 곳에 가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제사장의 사명을 기억하고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 제사드리는 자로서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염두에 두시기를 기도합니다.. 제사장은 남을 위하여 축복하는 자임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가족들, 이웃들을 가슴에 품고 기도 하십시오.. 축복해 주십시오..







믿지 않는 가족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일에 우리가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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