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축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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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 마태복음 36 - 해와 같이 빛나리라 (13:24-43절)(43절)
 이기남    | 2023·11·16 14:48 | HIT : 24 | VOTE : 0
* 마태복음 36 - 해와 같이 빛나리라 (13:24-43절)(43절)





천국은 비밀입니다. 우리가 죽어서 가게 될 천국도 비밀이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가져오신 천국도 비밀입니다.





천국은 보이지 않습니다. 천국은 들리지 않습니다.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눅 17:21절).



사람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천국을 보고, 천국을 듣습니다. 복 있는 눈과 복 있는 귀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은 천국에 대한 세 가지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이 비유들을 통해 숨겨져 있는 천국을 밝히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35절).





이 시간 우리의 귀와 눈이 천국을 듣고 보는 복 있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 씨」를 자기 밭에 심었습니다(24절). 그 밭에서 좋은 열매를 거두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잠들었을 때, 원수가 와서 곡식 사이에 가라지를 뿌리고 갔습니다(25절).





<가라지>는 흔히 <독보리(darnel)> 라고 불리는 식물입니다.



목초에 섞여 가축이 먹으면 중독을 일으키지만, 이삭이 익기 이전까지는 생김새나 모양이 밀이나 보리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흡사해서 독보리라고 불렸습니다.




팔레스타인 농부들 사이에서는 비가 많이 오는 해에는 ‘밀이 가라지로 변한다’는 속설이 있다고 합니다.





비가 많이 오면 밀은 해를 받아 생육이 나빠지는 반면, 가라지는 생육이 왕성하여 밀이 가라지로 변한 것처럼 보이는 것을 오해한 데서 나온 말입니다.




이처럼 가라지는 곡식의 생육을 방해하고, 심지어 밭을 심하게 망쳐 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씨를 뿌린 밭에 가라지를 덧뿌린 원수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주인의 농사를 망치고자 한 것입니다.



그것도 매우 은밀하고 교활한 방법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곡식이 자라서 낟알이 익을 때에 가라지도 보였습니다.



종들은 의아해서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27절)




종들은 좋은 씨만 심은 주인의 밭에서 가라지가 나온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주인의 원수가 올 때 잠을 잤기 때문입니다(25절). 그들은 원수가 한 일을 꿈에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말했습니다.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28절)



주인에게는 오랜 원수가 있었고, 그 원수가 주인의 농사를 망치고자 그렇게 했다는 것을 주인은 분명히 알았습니다.




종들이 물었습니다.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28절)



종들은 일반적인 농사 방법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곡식 사이에 가라지가 자라면 주저 없이 그것을 뽑아 내야 합니다.





가라지를 뽑아 내면 더 많은 결실을 거둘 수 있습니다. 많은 결실을 위해서라도 가라지를 당장 뽑아내야 합니다.





그러나 주인은 의외의 대답을 합니다. <29,30절>을 보십시오.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NIV) " 'No,' he answered, 'because while you are pulling the weeds, you may root up the wheat with them.



Let both grow together until the harvest. At that time I will tell the harvesters: First collect the weeds and tie them in bundles to be burned; then gather the wheat and bring it into my barn.' "




주인이 가라지를 뽑지 말라고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입니다.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정교하게 작업을 한다 해도 가라지를 뽑으려면 좋은 곡식도 어느 정도는 뽑히게 됩니다.





일반 주인들은 약간의 좋은 곡식을 희생하더라도 가라지를 뽑는 쪽을 택합니다. 그것이 소출을 더 높일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주인의 결정으로, 곡식들은 양분을 가라지에게 빼앗겨 충실한 결실에 방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소출이 떨어져 주인에게 손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비록 소출이 줄더라도 한 개의 곡식이라도 뽑히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가라지를 뽑을 수 없어서 가만두는 것이 아니라, 곡식 때문에 가라지를 곡식과 함께 내버려 두었습니다.





주인은 언제까지 놔 두라고 했습니까? 추수할 때까지 놔 두라고 했습니다.



추수할 때에 일꾼들은 주인의 명령을 받아 가라지를 먼저 거두어 묶어서 불에 태우고, 곡식은 거두어 곳간에 쌓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비유는 어떤 점에서 천국의 비밀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을까요?


‘곡식과 가라지 비유’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의 후속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자라서 100배, 60배, 30배의 결실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매를 맺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음을 ‘곡식과 가라지 비유’는 보여줍니다.




본문 <36-43절>에서, 예수님은 이 비유를 설명해 주십니다.


‘인자’이신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의 모든 아들들’을 심으십니다. 그런데 마귀도 ‘악한 자의 아들들’을 세상에 뿌립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하나님 나라의 아들들과 악한 자의 아들들이 함께 자랍니다.



이들은 서로 뒤엉켜서 ‘추수 때’ 즉 세상 끝을 향해 성장해 갑니다. 천국의 아들들도 성장해 가고, 악한 자의 아들들도 성장해 갑니다.




그런데 가라지의 성장력이 왕성하고, 그 뿌리가 곡식의 뿌리를 감아 곡식의 성장을 결정적으로 방해하듯이,



악한 자의 아들들은 천국의 아들들에게 밀착해서 더 강한 힘으로 죄를 짓게 만들고 불법을 행합니다(41절).





하나님의 아들들도 때로는 악한 자의 아들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죄에 빠지기도 합니다. 불법에 관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점점 더 악해져 가는 듯 보입니다. 이러다가 주인의 밭에는 가라지 천지가 되어 곡식의 수확은 기대할 수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도 주인은 ‘악한 자의 아들들’을 내버려 두십니다. 세상의 마지막 날까지 내버려 두십니다.



결국, 세상 끝날까지 이 세상에서는 악이 사라지지 않고, 죄와 불법이 사라지지 않게 됩니다.



이로 인해 의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 선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끊임없는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죄와 악, 고통의 문제는 인류의 오랜 질문입니다.



아주 오래전, 그리스의 에피쿠로스 학파의 한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은 악을 없애고 싶어도 능력이 없거나, 능력은 있어도 그럴 마음이 없거나, 능력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거나 셋 중 하나다.



원하는데 능력이 없다면 그는 무능하다. 능력은 있는데 원하지 않는다면 그는 악하다. 신이 능력도 있고 악을 없앨 마음도 있다면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겠는가?”




미국의 저명한 여론 조사 전문 기관인 조지 바나 그룹(Gorge Barna Group)에서 미국 성인 남녀 표본 집단을 추출하여 이런 의견을 물었습니다.



“하나님께 딱 한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고, 반드시 대답해 주시겠다고 한다면, 당신은 무슨 질문을 하시겠습니까?”



가장 많이 나온 질문은 “세상에는 왜 아픔과 고난이 있습니까?”였다고 합니다.




아마 이 의견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묻는다고 해도 결과는 비슷하게 나올 것입니다.



“하나님, 세상에는 왜 아픔과 고난이 있습니까? 왜 하나님은 악을 당장 없애지 않으셔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고통 가운데 내버려 두십니까?”




본문의 비유 해설 말씀이 이 질문에 대한 모든 답은 주고 있지 않더라도, 몇 가지 점에서는 분명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악의 조성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좋은 씨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악이 존재하게 된 것은 원수 마귀가 악의 씨를 뿌렸기 때문입니다.





그에게서 악한 자녀들이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악이 어디서 왔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십니다.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28절)




구약 성경 욥기는 하나님 앞에 신실한 욥이 왜 고난을 당하게 되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욥을 사탄에게 자랑하셨고, 사탄은 이런 욥을 시기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온갖 복을 주셨기 때문에 욥이 신실한 것이지, 고난을 주면 하나님께 돌아설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사탄이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하십니다.




사탄은 욥의 고난과 고통의 원인자 입니다. 욥은 특별한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 사탄 때문에 고통을 당합니다.





성경은 사탄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 유혹자, 시험하는 자, 귀신들의 우두머리, 고소하는 자(계 12:10절), 살인자, 거짓말 쟁이의 아버지(요 8:44절),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우는 사자(벧전 5:8절)라고 알려줍니다.





무엇보다도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의 자녀들을 괴롭게 하여, 하나님의 뜻과 일을 망쳐 놓으려는 자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욥이 죄를 지어서 그 죄의 댓가로 고통을 당한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욥에게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라고 자꾸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탄이 고통의 원인자이긴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하도록 허락하셨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선하시고 전능하다면, 왜 그분의 자녀들이 고통을 당하도록 허락하실까요?




둘째, 악한 자의 아들들을 당장 제거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 나라의 아들들의 안전 때문입니다.



비유에서 주인은 가라지가 왜 생겨났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가라지를 뽑아낼 충분한 능력이 있습니다. 일꾼도 충분합니다.





그런데도 가라지를 당장 뽑아내지 않는 이유는 오직 곡식도 함께 뽑히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지금 당장 악을 제거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들을 보존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전지하고 전능하신데, 악을 허용하시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들을 보호하는 길이라고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유튜브에서 덫에 걸린 야생 퓨마를 구해주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바위 언덕에 큰 나무가 있고, 그 밑에서 퓨마의 오른 발은 덫에 걸려 있었습니다.



퓨마의 다리가 잘려 버리던지, 그대로 굶어 죽을 수도 있는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구해주려고 다가가자 퓨마는 위협을 느끼고 ‘학, 학’ 대며 적의를 보였습니다.



한 사람은 올가미로 퓨마의 머리를 제압하고, 다른 한 사람은 올가미로 퓨마의 뒷 다리를 묶었습니다.





퓨마는 이런 두 사람의 행동을 어떻게 오해했을까요?



자신을 더 고통스럽게 하고, 죽이려는 적대적인 행동으로 오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퓨마의 그 생각은 틀린 생각인 것입니다.





악과 고통의 문제에 관한 한 많은 사람들이 이런 부정확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퓨마는 어떻게 되었느냐고요? 다행히 큰 부상 없이 덫에서 풀려나 야생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고통을 허락하시는 이유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우리를 위해서라는 분명한 사실은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아들들이 고통을 당하고만 있도록 내버려 두실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고통을 잘 인내할 수 있도록 붙잡아 주십니다.





이것을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이라고 부릅니다.



붙잡아 주실 뿐만 아니라, 고난과 고통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게 하십니다.




C. S. 루이스는 “고통이란 귀먹은 세상을 일깨우는 그분의 메가폰”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고통은 가면을 벗은 악, 명백히 눈에 띄는 악입니다.



어떤 사람이든 아픔을 느낄 때는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게 마련입니다. .... 고통은 고집스럽게 우리의 주목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쾌락 속에서 우리에게 속삭이시고, 양심 속에서 말씀하시며, 고통 속에서 소리치십니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불러 깨우는 하나님의 메가폰입니다.”





또 이런 말도 합니다. “고통은 반항하는 영혼의 요새 안에 진실의 깃발을 꽂습니다.” “모든 악 중에 오직 고통만이 살균 소독된 악입니다.”




셋째, 악의 종말은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그 날은 ‘세상 마지막 날’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종말’을 자주 이야기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후 변화로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어떤 사람은 유성이 떨어져 지구가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우주인의 침공으로 지구에 종말이 올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좀비 영화를 하도 많이 본 탓인지, 어떤 사람은 전염병이 인류를 멸망시킬 것이라고 봅니다.




성경은 세상의 마지막 날에 대해 뭐라고 말씀할까요?


<41,42절>을 보십시오.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NIV) The Son of Man will send out his angels, and they will weed out of his kingdom everything that causes sin and all who do evil.



They will throw them into the fiery furnace, where there will be weeping and gnashing of teeth.





인자 곧 예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는 날이 세상의 마지막 날입니다.



그 날에 천사들은 죄를 짓게 만드는 자들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모두 천국에서 추려 내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불타는 아궁이에 던질 것인데, 그곳에서 사람들이 슬피 울고, 고통스럽게 이를 갈 것입니다.




그때 천국에는 의인만 남게 됩니다. 의인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의인과 악인이 공존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악한 자의 나라가 경쟁합니다.



그러나 세상 마지막 날이 오고, 그 날에는 하나님 나라만 남게 되고, 의인들이 해처럼 빛나게 됩니다.




이것이 ‘곡식과 가리지 비유’를 통해 드러난 천국의 비밀입니다.



그렇다면, 이 비밀을 듣고 알게 된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세상에 악을 허락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고통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을 존중해야 합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는 원리를 인정해야 합니다.





악한 일을 당하더라도, 그로 인한 고통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허락하심 안에 있다고 믿으며 인내해야 합니다.



악에 져서 악한 자가 되지 말고, 힘써 의를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한, 장차 해와 같이 빛날 소망을 바라며 살아야 합니다.



현재는 어렵더라도, 소망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삶이 하찮게 여겨지더라도, 반드시 끝 날이 있고, 그 날에 받을 엄청난 영광을 기대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했습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절)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생각할 때, 우리는 현재의 고난을 감사와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미래의 영광을 생각하는 사람만이 현재를 충실하게 살 수 있습니다.




‘겨자씨와 누룩’ 비유는 천국의 시작과 끝을 극적으로 대조해서 보여줍니다.




다른 어떤 씨보다 작은 겨자씨가 밭에 심어지기만 하면, 다른 어떤 풀보다도 더 큰 식물(나무)가 됩니다.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둥지를 틀 수 있을 정도가 됩니다(31,32절).




적은 양의 누룩이지만, 밀가루 반죽에 섞어 넣으면 세 포대의 반죽도 부풀릴 수가 있습니다(33절).



이것으로 맛있는 빵을 구우면 장정 100여 명을 먹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시작할 때와 완성될 때의 모습이 전혀 다릅니다.



‘성장’과 ‘부풀림’이라는 과정을 통해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은 시작할 때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저와 여러분의 마음 밭에, 예수님의 말씀이라는 작은 씨가 뿌려짐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분은 그 씨가 빨리 자라나 믿음과 인격이 예수님을 많이 닮아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그 씨가 아직 싹도 트지 않아 과연 그 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는지조차 의심스럽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는 반드시 우리가 상상도 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완성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는 아주 작은 성경 공부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 할 것입니다.




천국의 자녀들은 끝이 좋습니다. 해와 같이 빛날 것입니다. 끝이 좋은 사람이 진짜로 좋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끝이 좋을 것입니다. 과정이 어렵더라도 잘 인내하면 끝이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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