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축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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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구속사적 성경 개론 5 - 신명기 (6:4,5절)
 이기남    | 2023·11·18 10:49 | HIT : 23 | VOTE : 0
* 구속사적 성경 개론 5 - 신명기 (6:4,5절)







「신명기」의 주제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6:5절)입니다.







「신명기」는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직전(直前) 모압 평지」에서 「모세가 행한 3편의 설교」로 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3:25절) 하고 간구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만 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3:26절) 고, 허용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율법의 대명사로 "율법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영적 여호수아)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갈 3:24절)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명기」는 「모세가 죽기 약 두 달 전에 마지막으로 행한 유언과 같은 설교」입니다.







「민수기」에는, "이스라엘 중에 이십 세 이상으로 능히 전쟁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민 26:2절) 고, <두 번째 인구 조사>를 명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팔 년 동안이라 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영 중에서 다 멸망하였기"(신 2:14절)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두 번째 계수함을 받은 군인(軍人)들은 1차 계수 때에는 들지 못한 어린 아이들과, 광야 40년 동안에 새로 태어난 제 2세대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강림하셔서 십계명을 주시고 언약을 맺게 하신 「시내산 언약(言約)」에는 참여하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가나안을 정복하고 정착해야 할 주역(主役)들이고, 모세는 떠나야 할 처지에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들에게 죽기 전에,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준행해야 할 하나님께 받은 율례와 법도」를 전수해 주어야 할 필요를 느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명기」 안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실 땅에 네가 들어가서 거기에 거주할 때에"(26:1절),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8:1절) 하는 말씀이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이것이 모세가 「신명기」를 기록하게 된 「동기(動機)」입니다.







그러면 「신명기」의 내용은 어떻게 구성이 되어 있습니까?






첫 번째 설교(1:1-4:43절)는, 「1세대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원인(原因)을 <2세대들에게> 일깨워주는 내용」입니다.






두 번째 설교(4:44-26:19절)는 「신명기의 본론(本論)」이라 할 수 있는데, 「2세대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준행해야 할 율례와 법도들」입니다.






세 번째 설교(27:1-34:12절)는 「결론(結論) 부분」인데, 「2세대들을 하나님의 언약과, 맹세에 참여시키는 내용과 예언적인 경고와 축복」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신명기」를 시대적으로 구분하면서 「언약 시대」라고 합니다.



성경을 시대적으로 구분하면, <창조 시대>(창 1-11장) -> <부족 시대>(창 12-50장) -> <노예 시대>(출 1-19장) -> <계명 시대>(출 20-레 27장) -> <야영 시대>(민 1-36장) -> <언약 시대>(신 1-34장)





<첫 번째 설교>(1:1-4:43절)는, "호렙 산에서 세일 산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까지 열 하룻길이었더라"(1:2절) 라고 시작(始作)이 됩니다.




그리고 이어지기를, "마흔째 해 열한째 달 그 달 첫째 날에"(1:3절)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신명기」를 말씀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1장 2절>과 <3절> 사이에는 무려 38년의 간극(間隙)이 있는 것입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가데스 바네아」는 12족장을 정탐꾼으로 파송한 곳입니다.






그렇다면 「열 하루」면 들어갈 수 있는 것을, 「38년」이나 광야에서 방황하게 되었다는 말인데, 그 원인을 2세대 들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1장 8절>에서,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할지니라" 라고 명했으나, <1장 26,27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너희가 올라가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넘겨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원인은 이스라엘이 「불순종」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민수기」에 보면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민 14:4절) 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명백한 반역(叛逆)이었던 것입니다.






결론은 「너희는 1세대들처럼 불순종하지 말라는 경계」인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설교의 요점입니다.







<두 번째 설교>(4:44-26:19절)는, 「2세대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준행해야할 "율례와 법도"」입니다.






가나안은 비어 있는 땅이 아닙니다. 소돔 고모라와 같이 죄악이 관영하여 심판을 당하게 된 땅입니다.






마치 전염병(傳染病)이 창궐하는 지역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전염될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에, 같은 말씀을 여러 방면으로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모세는 크게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될 것」 두 가지를 말합니다.




행해야 할 점은 한마디로 주님께서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 하신,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6:5절)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두 번째 설교 중에는 "잊지 말라"는 말이 12번, "기억하라"는 말이 15번 이상 등장합니다.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6:12절), "너는 광야에서 (1세대들이)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격노케 하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9:7절) 고, 거듭 거듭 권면합니다.







그러면 「해서는 아니 될 치명적(致命的)인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다른 신」 즉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상 숭배」는 십계명의 1,2계명을 범한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세워주신 「메시아 언약」에 대한 「배신(背信)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 우리는 성경을 「교훈(敎訓)」이라는 「점(點)」으로 보면 안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 오시는 「구속사(救贖史)」라는 「선(線)」으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을 주시기에 앞서서 아브라함에게 메시아 언약을 세워 주셨던 것입니다.



이런 구속사라는 맥락(脈絡)으로 보게 되면 우상숭배란 아브라함에게 세워주신 메시아 언약에 대한 배신(背信) 행위임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천하 만민이 복(福)을 받게 하시려는데, 그들은 우상을 통해서 복을 받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은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절)고 우상이 마음의 문제임을 말씀합니다. 즉 기복 신앙은 우상 숭배와 같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들어 가서도 「우상 숭배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속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랑해야」(6:4,5절) 합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것이 두 번째 설교의 요점입니다.







<세 번째 설교>(27:1-34:12절)의 중심점은 「2세대들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언약(言約)과 맹세"에 참여시키는데」 있습니다.





신명기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첫째와 둘째 설교는 인간이 행해야 할 윤리라 할 수 있는데, 「언약(言約)과 맹세」는 하나님이 세워주신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언약」이 먼저고 윤리는 뒤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29장 1절>을 보면, "호렙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세우신 언약 외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여 모압 땅에서 그들과 세우신 언약의 말씀은 이러하니라"고 합니다.








제 2세대 들은 「시내산 언약」에는 직접 참여하지 못한 자들입니다. 모세는 그들을 소집해 놓고,



"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선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에 참여하며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하시는 맹세에 참여하기"(29:11,12절) 위해서 라고 말씀합니다.








「언약과 맹세」가 어느 언약을 가리킵니까?



그것은 십계명, 즉 모세의 율법이 아닙니다. 율법은 쌍방 언약으로 「맹세」가 없습니다.



「언약과 맹세」에 참여시키는 목적(目的)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십시오. <29장 1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또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대로 오늘 너를 세워 자기 백성을 삼으시고 그는 친히 네 하나님이 되시려 함이니라."







여기 중요한 요점 둘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자기 백성과, 맹세」입니다.




첫째로, 바로의 종이었던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시내산 율법」으로 가능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권적으로 세워주신 「메시아 언약」 안에서 만이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또한 「맹세」란 보증(保證)의 의미가 있는데, 율법은 「맹세」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세워주실 때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창 22:16절) 하고 맹세로 보증해 주셨던 것입니다.





또한 "내가 나의 거룩함으로 한번 맹세하였은즉 다윗에게 거짓말을 하지 아니할 것이라."(시 89:35절) 하십니다.



그러므로 언약과 맹세는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세워주신 「메시아 언약」과 결부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에서는 「언약과 맹세」를 가리켜서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히 6:18절) 이라고 말씀합니다.





맹세로 보증하신 메시아 언약은 폐하여질 수도 없고 그 누구도 끊을 수 없으나, 돌비는 깨졌고 율법은 폐하여졌던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모세가 2세대 들을 「언약과 맹세에 참여」시키려는 목적에는, 신학적(神學的)인 의미와 윤리적(倫理的)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먼저 신학적(神學的)인 의미로, 「아브라함의 언약」에 근거하여 「언약 백성,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正體性)을 확고하게 세워주고자 하는 것이요,



또한 윤리적(倫理的)인 의미로, 하나님의 백성답게 「율례와 법도」를 준행하며 살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신명기」는 동떨어진 「교훈집」이 아닙니다.



「창세기」에서 조상에게 언약하신 하나님, 「출애굽기」에서 언약하신 대로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구속하여 자기 백성 삼으신 하나님,






「레위기」에서 「구속 교리」를 5대 제사(祭祀)와, 대 속죄일, 3대 절기(節氣)를 들어서 계시하신 하나님,





「민수기」에서는 시내 산을 출발하여 모압 평지까지 인도(引導)하신 하나님의 구속사의 맥락에서 「신명기」는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여호수아서」에서 조상에게 언약하신 대로 약속의 땅을 주어 안식(安息)하게 하시는 문맥 안에서 주어진 것이 「신명기」입니다.







준행해야할 "율례와 법도"가 무엇입니까? <십계명>이라 말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시내 산에서 십계명만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게 하셨다면 「구약의 성도들」은 한 사람도 구원(救援)에 참여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롬 3:20절) 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우리들보다도 잘 아시는 하나님은 「성막 설계도」도 주셨던 것입니다.





「성막」은 「임마누엘의 모형」이요, 「번제단에서 드려지는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드려 주실 대속 제물에 대한 그림자」로 주어진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대속이 아니었다면 바로의 노예에서 구원 얻을 수 없었을 것이요, 속죄제를 드릴 번제단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죄를 해결할 방도가 없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유월절 제사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각 성에서 드리지 말고,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가 애굽에서 나오던 시각 곧 초저녁 해 질 때에 유월절 제물을 드리라"(16:5,6절) 하고 명합니다.





<12장>에는 「택하신 곳」이라는 말이 여섯 번이나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는 구원의 근거가 여기저기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택하신 곳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만 있다는 강력한 시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성도들이 준행해야 할 「율례와 법도」란 십계명으로 대변이 되는 율법만이 아니라, 성막으로 대변이 되는 제사(祭祀) 의식을 바르게 준행하는 일이 포함되었던 것입니다.





「십계명」이 윤리(倫理)라면 「제사 의식」은 의문에 가려있는 은혜요, 복음(福音) 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구약 시대를 막론하고,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이 일이 없다"(행 4:12절)는 점에 확고해야만 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구약의 성도들은 제사 의식을 지킴으로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대망하였고」, 「신약의 성도들은 성찬을 행하면서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대망하고」 있다는 차이 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준행해야할 "율례와 법도"는 「십계명」만이 아니라,



실체(實體)가 오시기까지 「메시아 언약」을 대망(待望)하게 하는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과 같은 「제사 제도를 올바로 준행해야 하는 것」이 포함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의 교회」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남북으로 갈리어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남쪽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그 결정적인 원인은 「윤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 언약을 우상과 바꿔치기 한 우상숭배」에 있었던 것입니다.







「신명기」 마지막 부분에 보면,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31:20절) 라고,



그들이 「메시아 언약」을 배신할 것을 하나님은 아시고 경고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심판, 멸망>이 끝이 아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네 포로를 돌리시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흩으신 그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 모으실 것이며, ... 이끄실 것이라, ... 돌아오게 하사"(30:3-5절) 라고 돌아오게 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심판을 당하고 추방을 당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행위 때문이지만, "돌아오게" 하심은 공로나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가능하여진다는 점을 명심하시기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신명기」는 구약의 성도들에게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메시아 언약」을 잊지 않고 준행해야 할 <율례와 법도>요, 또한, 신약의 성도들에게는 주님께서 재림하시기까지 복음을 보수하면서,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자신)과 의로움(이웃)과 경건함(하나님)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 2:12,13절) 라고 한,



「주님의 재림 때까지 성별된 삶을 살아야 할 지침들」인 것입니다.







「신명기」에서는 그리스도가,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리니"(18:18절) 라고 예언 되어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님의 강림 후에 사도 베드로는 이 약속이 그리스도로 성취가 되었음을 증언(행 3:22절)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너와 같은"이라 하신 모세와 그리스도는 어떤 점이 같습니까? 「중보자」라는 점입니다.





그러면 구약 교회의 중보자는 모세요, 신약 교회의 중보자는 그리스도란 말입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절)고 「한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라고 하십니까? 「참 중보자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죄 값으로 팔린 자들의 「죄를 대속」해 주는 일입니다.



모세는 죄를 깨닫게 하는 「율법」을 주었을 뿐 대속할 자격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세」는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할 수가 없었고, 「예수님」을 예표하는 「여호수아」에게 인도(引導)하고, 구속사의 무대에서 퇴장을 했던 것입니다.





죽음을 앞 둔 모세는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보다 먼저 건너가사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하시고 네가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며"(31:3절) 라고 하나님을 "네 하나님" 이라고 말합니다.





<10장>에는 "네 하나님"이라는 말이 여덟 번이나 강조되어 있습니다.



모세 자신은 떠나나 모세와 함께 하셔서 출애굽을 시켜주신 하나님은 "네 하나님"이 되셔서 구원 계획을 중단함이 없이 이루어 나가 시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의 하나님"이 되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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