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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구속사적 성경 개론 6 - 여호수아 (21:43-45절)
 이기남    | 2023·11·18 10:50 | HIT : 23 | VOTE : 0
* 구속사적 성경 개론 6 - 여호수아 (21:43-45절)







「여호수아서」의 주제는 「선한 싸움을 싸운 후에 주어지는 <안식>」입니다.







「여호수아서」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1:1절) 라고 시작 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1:5절) 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는 떠났으나 「구속 사역은 중단됨이 없이 계속 추진되어 나간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수아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집니다.



<1-12장>까지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내용」이고, <13-24장>까지는 「점령한 땅을 분배하여 정착하는 내용」입니다.








교회는 크게 「지상(地上)의 교회」와 「천상(天上)의 교회」로 분류할 수 있는데, 「지상의 교회」는 「전투하는 교회」요, 「천상의 교회」는 「안식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점령해 나가는 것은 「전투하는 교회」의 모형이고, 점령한 후에 땅을 분배하여 정착하게 되는 것은 「안식하는 교회」의 모형입니다.








그러면 「전투하는 교회」에 하시는 격려가 무엇입니까?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1:5,6절)는 말씀입니다.





<1장 9절>에서도,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고 용기를 주시고 격려하십니다.





소극적으로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고 하십니다. 이는 「전투하는 교회」의 용사들이 「두려워하고, 놀랄 일」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하시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은 이 말씀을 받아,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히 13:5,6절) 하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군대는 요단강을 건너가 전투하기 전에 먼저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지켰습니다(5장). 여기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할례(割禮)」는 「하나님의 선민된 표」요, 「유월절」은 「구속의 은총을 잊지 않기 위하여 행하는 기념 행사」입니다.






「영적 싸움에 임하는 정신 무장과 승리의 비결」은 바로 「선민 의식」과 「은총 의식」을 망각하지 않는데 있다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절),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19절) 하고 「정체(正體)성을 각성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의 치명적인 약점」이 바로 이 「은총 의식」과 「정체성」을 망각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첫 사랑의 감격」을 회복해야 합니다. 「칭의 교리」를 다시 한번 확고히 해야 합니다.







가나안의 첫 성은 여리고인데, 난공불락(難攻不落)을 자랑하는 성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6:1절) 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여리고 성이 「선민 의식」과 「은총 의식」으로 무장한 「하나님의 군대들의 믿음의 순종(順從)에 의해서」 무너졌던 것입니다.







「여호수아서」의 주제는 「선한 싸움을 싸운 후에 주어지는 안식(安息)」입니다.







「출애굽한 제 1세대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다가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민 14:29,30절) 하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가나안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신 말씀을,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시 95:11절) 라고 이를 「안식(安息)」으로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인용하여 「히브리서」에서는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安息)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히 3:11,12절) 하고 적용시켜 줍니다.







이로 보건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정착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적인 가나안에 들어가서 누리게 될 영원한 안식에 대한 예표」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애굽에서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던 노예들이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히 2:15절) 「사탄의 노예 된 자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들이 갈구하고 있는 것은 「참 안식(安息)」입니다.





그렇다고 출애굽 하자마자 그들에게 안식이 바로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이점은 신약의 성도들도 동일한 것입니다.






40년이나 광야에서 방황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가나안에 입성하였을 때에도 「안식(安息)」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7년 간이나 싸워서 정복해 나가야만 했습니다. <11장> 끝에 가서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11:23절) 하고 말씀합니다.





정복의 기사가 끝나는 <12장>에 보면 그들이 쳐서 멸한 왕들이 자그마치 31명 입니다.





정복한 땅의 분배를 마치고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21장 43-4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사 주리라 하신 온 땅을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으므로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에 거주하였으니,



여호와께서 그들의 주위에 안식을 주셨으되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하셨으므로 그들의 모든 원수들 중에 그들과 맞선 자가 하나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원수들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이 말씀이 「여호수아서」에서 가장 중심적인 말씀입니다. 이처럼 「안식(安息)」이란 주제는 「여호수아서」의 핵심적인 주제입니다.







여호수아는 요단 동쪽에서 이미 기업을 얻은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지파」에게,



"여호와께서 너희를 안식(安息)하게 하신 것 같이 너희의 형제도 안식하게"(1:15절) 하실 때까지 무장하고 앞서 건너가서 싸우라고 명합니다.






그리고 <22장 4절>에서, "이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대로 너희 형제에게 안식(安息)을 주셨으니" 라는 말이 나오고,



<23장 1절>에서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들로부터 이스라엘을 「쉬게 하신 지」 오랜 후에" 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안식(安息)」은 「여호수아서」의 핵심적인 단어일 뿐만 아니라, 신구약 성경 전체에 있어서도 핵심적인 주제 중 하나입니다.







성경에 「안식(安息)」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곳은 <창세기 2장 2절>입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안식(安息)」은 지으시던 일, 즉 창조의 역사를 마치셨을 때에 취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안식이 <3장>에서 깨어지고 맙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내가 하리니"(창 3:15절) 하고 다시 일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절) 하심으로, 하나님은 안식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렘 33:2절) 이심을 말씀하십니다.






구속 사역을 "이루었도다"(계 21:6절) 하고 선언하실 때에야 또다시 안식을 취하시게 될 것입니다.







「출애굽의 대장정의 목적」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 안식하는 것」이었습니다. 「전투적인 교회의 목표」도 궁극적으로는 「안식」입니다.






참으로 기나긴 고난의 여정을 통과하고 선한 싸움을 싸워 승리한 후에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주어진 안식이 「진정한 회복이요 영원한 안식」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히 4:8절)







여호수아는 진정한 안식을 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때 주어진 안식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그 사실이 「여호수아서」 뒤에 나오는 「사사기」가 말해 줍니다.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히 4:9절) 라고 말씀합니다.



그 「궁극적인 안식」은 재창조의 역사가 완성되었을 때에야 주어질 것입니다.







이는 「역사적인 안식」이요, 「개인적인 안식」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절) 하고 고백하면서 육신의 수고를 그치게 될 때에 주어집니다(계 14:13절).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출애굽 사건이 「영적 출애굽의 예표」이듯이 「여호수아서」를 통하여 보여 주신 정복과, 승리 후에 주어진 안식도 「선한 싸움을 다 싸운 후에 주어질 영원한 안식에 대한 예표」였던 것입니다.







죽음을 앞둔 여호수아는 유언과 같은 두 가지 요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23장>에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이시니라"(23:3절) 하고, 하나님을 「너희 하나님」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23장>에는 「너희 하나님」 이라는 말이 <12번>이나 등장하는데 모세도 그러했던 것입니다.





자신은 떠나나 하나님은 떠나시지 아니하시고 「너희 하나님」이 되셔서 구원 계획을 중단함이 없이 이루어 나가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받아서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절) 하고 말씀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제 「나의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둘째는 <24장>에서, "그 날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과 더불어 언약(言約)을 맺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제정하였더라"(24:25절) 라고 한 일입니다.






모세가 죽기 전에 <언약을 갱신시키는 것>(신 29:12절)을 보았습니다.





여호수아도 죽기 전에 언약을 갱신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언약」은 끊임없이 갱신(왕하 11:17절)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백성들이 포로가 되었습니까? 「언약」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포로에서 귀환한 후에 다시 언약을 갱신시키는 것(느 9:38절)을 보게 됩니다. 오늘날의 교회야말로 언약 갱신이 절실히 요청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언약 갱신」이 무엇입니까? 그 내용이 <24장 1-28절>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심으로부터 시작하여(24:3절),



"내가 또 너희가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설하지 아니한 성읍들을 너희에게 주었더니"(24:13절) 하고 가나안 땅을 주시기까지의 하나님의 행사(行事) 곧 「구속의 역사(歷史)」를 상기시킵니다.






그런 후에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24:14절) 하고 적용을 시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언약 갱신(更新)」입니다.





<14-22절> 안에는 「섬김」이란 단어가 <14번>이나 강조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24:15절) 라고 합니다.





백성들도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24:18절),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24:21절),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의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24:24절) 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언약 갱신(更新)」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요, 이에 대한 「인간의 응답은 섬김」입니다.



이처럼 「언약과, 맹세」가 갱신되고 계승되어 내려오다가 「주님께서 죽으시기 전날 밤」에,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눅 22:20절) 하시므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세워주셨던 언약과 맹세가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주님의 십자가의 구속으로 구원 계획이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신약 교회도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절) 하고, 구속 사역이 완성되는 역사적인 종말이 이르기까지 언약의 갱신은 중단됨이 없이 계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서」는 이렇게 끝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들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24:31절)






그렇다면 그 후에는 여호와를 섬기지 않았다는 것이 되는데, 이 점을 사사기에서 보게 됩니다. 이는 「언약과, 맹세」를 망각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는 요단 동쪽까지 밖에는 인도하지 못했습니다. 「여호수아」도 그들에게 「예표적인 안식」만을 주었을 뿐 「궁극적인 안식」은 주지 못했습니다.






「여호수아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절)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초청」으로 우리를 인도해 줍니다.







그분만이 우리에게 「참되고도 항구적인 안식」을 주실 수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서를 요약하면, 들어감(1-5장), 싸워서 취함(6-12장), 분배하여 정착함(13-19장), 하나님을 섬김(20-24장)인데, 이는 전투하는 교회의 예표가 됩니다.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창 3:15절) 하신 영적 싸움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절) 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지금 「전투하는 교회」와 「안식하는 교회」 중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전투하는 교회」에게 주어진 표어는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1:9절) 하신 말씀입니다.








아직 무너지지 않고 굳게 닫혀있는 우리에게 있는 여리고성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의 순종」에 의해서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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