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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 창세기 8 - 결혼 사용 설명서 (2:18-25절)(24절)
 이기남    | 2024·01·24 18:29 | HIT : 22 | VOTE : 0
* 창세기 8 - 결혼 사용 설명서 (2:18-25절)(24절)





우리가 작은 전자 제품 하나를 구입해서 사용하고자 해도 <사용 설명서>란 것을 참조합니다.



<사용 설명서>는 제품을 만든 업자가 소비자들에게 그 제품을 가장 알맞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사용 설명서>를 읽지 않고 제품을 사용하게 되면, 여러 가지 겪지 않아도 될 시행착오를 겪거나, 심지어 그 제품을 잘못 사용해서 망가뜨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고 사람에게 <복>과 <일>과 <양식>과 <쉼>(창 1:28-2:3절)을 선물로 주셨고, <환경>(에덴 동산)과 <말씀(언약, 계명)>과 <결혼(가정)>(창 2:4-25절)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오늘의 본문(창 2:18-25절)은 <7번째 선물>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결혼(가정)은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더욱 감사한 것은, 우리가 결혼을 잘 사용하여 행복하게 가정을 이루고 살 수 있도록 <결혼 사용 설명서>를 성경에 친히 기록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설명서를 차분히 읽고 숙지하여,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심지어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이 설명서를 전혀 읽지 않거나 건성으로 읽고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결혼을 합니까?



<사회적인 풍습이나 관습에 따라> 결혼합니다. 나이를 먹으면 주변에서 결혼하라는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그러면 <아, 나이를 먹으면 결혼을 해야 하나보다> 생각합니다.



결혼하려면 연애도 해야 하고, 연애를 하려면, 연애하기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하니 소개팅도 나가고, 미팅도 나갑니다.



그러다가 연애가 깊어지고, 서로 마음에 맞으면 결혼에 이르게 됩니다.





여기에 부모들이 깊이 개입합니다.



부모들의 사명감 중의 하나가 자식의 결혼을 잘 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들은 자식의 연애와 결혼에 깊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결혼 얘기가 오고 가면 자식의 결혼 상대에 대해서 신경이 쓰입니다.





우리나라 문화에서 결혼은 남성 중심적인 오랜 전통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가진 부모들은 <우리 집안에 사람이 잘 들어와야 할텐데>라는 바람을 가집니다.



딸 가진 부모들은 딸을 시집 보내면 시댁 사람이 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연애관, 결혼관이 많이 변했습니다.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란 말이 유행합니다.





추석, 설 명절 때마다 <왜 여자는 시댁에 먼저 가야 하느냐>는 논란도 뜨겁습니다. 아예 아들을 며느리에게 빼앗겼다고 호소하는 부모들도 생겨났습니다.





전에는 당연했던 것이 이제는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책임지는 것이 싫어서 결혼하지 않거나, 결혼했더라도 다양한 사유로 쉽게 이혼하곤 합니다.



그로 인한 피해는 당사자 뿐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고스란히 미칩니다.





인생의 여정에 심각한 위기를 맞습니다. 정서적인 타격은 물론이거니와 재정적인 어려움도 겪게 됩니다.





결혼은 인간의 삶 중에 가장 위험한 일이 되었습니다. 오죽하면 <결혼은 미친 짓이다> 라는 말이 나오겠습니까!





가장 위험한 일을 가장 위험하지 않은 것처럼 행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용감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용감하지 않은 사람들은 결혼조차 단념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결혼은 두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자신이 만드신 인간을 위해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이 결혼입니다. 그리고 그 선물을 선물답게 사용하도록 하나님께서 <설명서>도 성경에 첨부해 주셨습니다.





결혼이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알고,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결혼을 사용하면, <결혼>은 하나님이 주신 복 중에 최고의 복이요, <가정>은 에덴 중의 에덴이 됩니다.





이 시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결혼 사용 설명서>를 자세히 읽어 보면서, <결혼과 가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자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복을 복으로, 하나님이 주신 기쁨을 기쁨으로 누리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결혼」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합니까?



<18절>에 보면, 「하나님의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만드신 모든 것들을 보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만드신 후에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혼자 있는 때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아서 하나님은 그를 위해 <돕는 배필>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둘이 하나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보시고 매우 좋아 하셨습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으면 사람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사람은 본래 더불어 함께 살도록 만들어 졌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본성상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혼자 있는 게 좋아요>라고 하는 사람은 <밥을 안 먹어도 배가 안 고파요> 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에게는 <돕는 배필>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홀로 살 수 없고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어야만 살 수 있는 존재로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도울 것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도움이 필요하고, 누구나 도울 것이 있습니다. 완벽하게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도움이 필요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나는 양식이 필요 없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 서로 이렇게 고백해 봅시다. <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나를 도와 주십시오.>





그런데 하나님은 아담을 위해 돕는 배필을 <바로> 만들어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께서 흙으로 지으신 들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새를 아담에게로 이끌고 가셔서, 아담이 그것들의 이름을 어떻게 짓는지를 보셨습니다.



아담은 모든 생물의 이름을 지어 불렀고, 그것이 곧 그것들의 이름이 되었습니다(19절).





여기에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었습니다. <20절>에 보면, <하나님의 의도>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들과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아담은 자기를 도와 줄 수 있는 자기와 같은 형상(짝)을 생물들 가운데서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생물들의 이름을 짓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그 생물에 대한 <완전한 이해와 통찰력>을 가져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지으신 생물들의 특징을 자세히 관찰하여 그들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아담이 보니 생물은 정말로 다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각각 종류대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각각 종류대로 다양한 그 생물들에게도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모두 자기와 같은 형상을 가진 짝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생물은 다 자기 짝이 있는데, 아담에게는 없었습니다. 아담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에게도 나를 도울 짝이 있으면 좋을 텐데, 짐승들 가운데는 없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아담을 도울 짝을 만들어 주시고자 뜻을 정하셨는데, <바로> 만들어 주시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 대신에 아담에게 <자신의 짝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도록 시간을 허락하셨습니다..





<짐승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짝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는데도 짝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달랐습니다. 사람에게는 도울 짝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하시고, 더 나아가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 중에서 짝을 찾도록 하시고, 그 필요성을 느낄 때 짝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결혼하려면 결혼의 필요성을 느껴야 합니다.」



결혼 적령기가 따로 있는게 아닙니다. 나이가 많다고 결혼하는 것이 아니고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는 때가 결혼 적령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위해서 짝의 필요성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가장 알맞은 짝을 주실 계획을 갖고 계시고, 이미 주신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 짝을 <바로> 주시지는 않습니다. 도울 짝의 필요성을 스스로 느끼게 하시고, 그 필요성을 절감할 때 주십니다.





아직 결혼하지 않으신 분들 중, 결혼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느껴지시는 분이 있다면 <하나님이 나에게 짝을 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시구나!>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냥> 주시지는 않습니다. 고난, 실패, 공허한 시간 등을 통과하면서 그것의 필요성을 절감할 때 주십니다.





이런 경험들을 하면서 우리는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혼자 힘으로 하려고 하려고 해보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 요청하게 됩니다.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를 느낄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간절한 필요를 느낄 때 하나님이 주시면, 그것은 얼마나 큰 감격과 기쁨이 되겠습니까?





돕는 배필의 필요를 느끼던 아담이 드디어 짝을 만났을 때, 그는 시인이 되었습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감탄과 감격을 이 보다 더 실감나게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23절).





우리는 지금 어떤 필요를 느끼고 있습니까? 나의 필요가 느껴지십니까?



그때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신 때입니다..





특별히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는 분이 계시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짝을 주실 준비를 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짝을 어떻게 만들어 주셨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도록 하셨습니다. 아담이 잠든 사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꺼내시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셨습니다.



그리고는 아담에게서 꺼낸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21,22절).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갈비뼈를 꺼내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마치 <마취과 의사>가 마취를 하고, <외과 의사>가 수술하는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아담은 흙으로부터 지음 받았고, 여자는 아담의 갈비뼈로부터 지음 받았습니다.





아이들은 흙을 가지고 <두꺼비 집>을 만듭니다. 도공은 흙을 가지고 <도자기>를 만듭니다. 하지만, 뛰어난 반도체 기술자는 흙(모래)을 가지고 <반도체 칩>을 만듭니다.





재료는 같지만 그 재료를 다루는 지혜와 능력의 차이에 따라 결과물도 달라집니다.



지혜와 능력의 문제이지, 흙으로 사람을 만드는 것, 사람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수술에서 깨어난 아담의 상태는 어떠했겠습니까?



아마도 수술 부위가 욱신거리고, 수술한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꿰맨 자국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은 자신이 옆구리 수술을 받은 것을 알았고, 하나님께서 여자를 데려오셨을 때, 그 여자가 자신의 옆구리에서 나온 것을 금방 알아 차렸을 것입니다.





아담의 옆구리에 남은 수술 흔적은 평생 동안 여자가 자신에게서 나온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을 것입니다.





이제, 결혼이 무엇인지 대략 감을 잡으셨습니까?



그런데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여기에 더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 말씀은 우리에게 엄청난 충격을 줄지도 모릅니다.





성경은 아담에게 돕는 배필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묘사한 후에, <결혼에 대한 정의>를 한마디로 다음과 같이 내립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남자」를 주어로 해서 <세 개의 동사>가 나옵니다. 본문의 문맥상 남자를 중심으로 결혼이 정의되어 있습니다.





즉 <결혼하는 남자가 해야 할 세 가지 행동>을 말씀합니다. ①<남자는 부모를 떠나라>, ②<남자는 그의 아내와 연합하라>, ③<둘이 한 몸을 이루라>.





이 말씀은 결혼에 대한 한국의 전통적인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결혼에 대한 생각은 여자가 부모를 떠나 남자 혹은 시집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반대입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라는 것입니다.





①<부모를 떠나라>는 말씀은 부모를 버리라든지, 따로 살아라 든지, 부모를 공경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남자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심지어 엄마가 해주던 익숙한 음식에서도 부모를 떠나야 합니다.





그러나 <떠나라>는 더 깊은 의미는 「부모의 결정권에서 떠나 새로운 결정권자가 되라」는 의미입니다.





남자가 결혼을 한다는 것은 새로운 가정의 새로운 결정권자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만일, 어떤 남자가 결혼을 했는데 그 가정의 결정권자가 되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재정에 대해서 부모의 결정을 따르고, 심지어 아이를 양육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부모의 결정을 따른다면 심각한 문제가 생깁니다.





남자가 결혼한다는 것은 그동안 있었던 부모의 결정권 아래를 떠나 새로운 가정의 결정권자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혼자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부가 충분히 의논하여 최종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결혼한 남자는 반드시 이것을 해야 합니다.





아들을 결혼시킨 부모는 반드시 아들이 결정권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며느리에게 서운한 마음 갖고 비난하다가 고부간의 갈등이 심해질 것입니다.





②부모의 결정권에서 떠난 남자는 <아내와 연합해야 합니다.>



<연합한다>는 말은 <달라 붙는다>는 뜻입니다. ③<한 몸을 이룬다>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두 사람이 한 몸을 이루려면 서로 달라 붙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내가 남편 안에, 남편이 아내 안에 있어야 한 몸이 됩니다.





그런데 이 연합이라는 말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 전체에서 어떻게 상용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우리와 예수님과의 관계>,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과 몸 된 교회의 관계>를 표현할 때 <연합>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성도들과의 관계를 표현할 때도 <연합>이 사용됩니다. 성령님께서 오셔서 하시는 중요한 사역이 <연합>시키는 일입니다.





이때 연합과 자연스럽게 동의어로 등장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에게 연합하라는 말>은 <사랑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런데 <사랑>은 추상 명사라서 구체적으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습니다.



이 추상 명사를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보통 명사가 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랑이십니다. 예수님은 교회와 성도들을 사랑하셨고,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내어 주심으로써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신약 『에베소서』는 <남편들은 이와 같이 아내를 사랑하십시오>(엡 5:28절) 라고 권면합니다.





“이와 같이”, 어떻게요? <예수님께서 죽으셨던 것처럼.>



예수님은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는데, 살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죽으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한다는 것은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으러 가는 것입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를 위해 죽으러 가는 것이 결혼입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결혼 문화는 아내가 남편을 위해 죽으러 가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죽어도 <시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내가 죽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남자가 그 아내를 위해 죽으러 가는 것이 결혼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게 할 때 결혼의 열매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위해 죽으셨을 때 교회가 생명을 얻었습니다. <남자가 아내를 위해 죽으러 갈 때 가정이 살아납니다..>





이미 결혼한 형제들, 아내를 위해 죽으러 왔으니 죽읍시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형제들, 아내를 위해 죽으러 갑시다.





그러면 살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 것처럼, 가정의 머리가 될 것이요, 아내의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 에덴 중의 에덴을 만드는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결혼은 무엇입니까?



아내는 남편의 <돕는 배필>이 되는 것이고, 남편은 아내를 위해 <죽으러 가는 것>입니다.





<도울 남자가 있는 여자>, <죽으러 갈 여자가 있는 남자>는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 복된 가정을 이루는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의 <결혼 사용 설명서>를 읽으셨으니, 이제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실천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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