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축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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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 창세기 9 -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한 사람 (3:1-7절)(6절)
 이기남    | 2024·01·24 18:31 | HIT : 29 | VOTE : 0
* 창세기 9 -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한 사람 (3:1-7절)(6절)





하나님은 사람에게 「좋은 것들」을 주셨습니다. <복>을 주셨습니다. <일도 주셨고, 양식도 주셨고, 안식도 주셨습니다(창 1장).>



또한 <에덴 동산>을 주셨고, <말씀>(언약, 계명)을 주셨고, <결혼>(가정)을 선물로 주셨습니다(창 2장).





에덴 동산에서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잘 누리기만 하면 됐습니다.



그것들을 누리면서 더 확장시키고 발전시키는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그들 앞에 무한히 열려 있었습니다.





이런 가능성에 대해, <아우구스티누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헤르만 바빙크의 『개혁교의학』)



「아담은 인생 길의 끝이 아니라 시작에 서 있었기 때문에, <범죄 하지 않을 수 있음>(the ability not to sin)과 <죽지 않을 수 있음>(the ability not to die)을 가지고 있었고,



<범죄 할 수 없음>(the inability to sin)과 <죽을 수 없음>(the inability to die)으로 나아가야 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사람은 이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다 잃어버립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복을 거부한 것이 아닙니다. 양식을 거부한 것도 아닙니다. 에덴 동산이 싫다고 떠난 것도 아닙니다.





다만 한 가지를 버렸을 뿐인데,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복이 저주가 되었고, 기쁨이 탄식과 슬픔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매우 좋았다>던 사람이 매우 좋지 않게 되었습니다.





에덴 중의 에덴이었던 가정은 비통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두 아들 중 큰 아들이 작은 아들을 돌로 쳐 죽이고, 그 자신은 평생 동안 유리 방황하며 떠도는 자가 되었습니다.





부모가 보는 눈앞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형제가 서로를 위해주고 의 좋게 살지 않고, 싸우고 죽이고 도망 다니는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가정이 되었습니다.





첫 사람의 비극을 기록한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비극은 반복된다고 합니다. 비극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비극의 또 다른 희생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깨우쳐 주셔서, 우리가 비극의 희생자들이 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계속해서 누리는 복된 사람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의 첫 구절은 신비스럽습니다.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갑자기 <뱀>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드신 <들짐승>으로 소개됩니다.



<창세기 1장 24절>에 보면 <기는 것>과 <땅의 짐승>(들짐승/쉬운성경)이 구별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과 달리 뱀은 여기서 <기는 것>의 부류에 들지 않고, <들짐승>으로 분류됩니다.



또한, 하나님은 모든 지으신 생물들을 보시고 <좋다>고 하셨는데, 뱀은 들짐승 가운데 가장 <간사하고 교활한 짐승>으로 소개됩니다.





사전에서 찾아보면, <간사하다>는 말은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남의 마음에 들려고 꾀를 부리고 남을 속이는 등, 마음이 바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교활하다>는 말은 <몹시 간사하고 나쁜 꾀가 많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생물을 보시고 좋다고 하셨으니, 당연히 뱀을 보고도 좋다고 하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뱀이 간사하고 교활한데도 좋다고 하신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간교하다>는 우리 말에 대응되는 히브리 원어는 「아룸」입니다.



「아룸」이란 <지혜가 배양해야 하는 덕목>을 나타내는 단어로, <빈틈없는, 슬기로운>이란 뜻입니다. 물론 이것이 부정적으로 사용될 때 <간교한>이란 뜻이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뱀에 대해서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뱀을 만드실 때는 들짐승으로 만드셨고, 들짐승 중에서도 매우 영특하고, 지능이 높은 피조물로 지으셨습니다.





뱀은 짐승에 불과했지만 슬기가 있어서 사람과 매우 가까이 할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마치 지능이 높은 개나 고양이가 사람들과 교감하고 반려 동물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이 뱀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간교하고 교활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들짐승인 뱀이 어떻게 스스로 간교하고 교활하게 될 수 있었을까?> <이성이 없는 짐승이 스스로 간교하고 교활하게 될 수 있을까?>





<이성이 없는 짐승>은 본능에 따라 살도록 지음 받았기에,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지능을 가지고 스스로 교활하거나 간사해 질 수는 없습니다.



오직 이성을 가진 피조물만이 스스로 교활하거나 간사해 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뱀이 스스로 간사하고 교활해졌다기 보다는 <외부의 어떤 영향을 받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하나님께서 지혜롭게 창조하신 뱀으로 하여금 간사하고 교활하게 만들 수 있었을까요?





<창세기 1,2장>을 아무리 살펴봐도, 이성적 피조물은 오직 인간 뿐입니다.



인간은 뱀을 간사하고 교활하게 하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누구입니까?



성경에 의하면, 인간 외에 이성적인 피조물로 지음받은 또 다른 존재가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천사들>입니다. 천사들은 이성적인 피조물이라는 점에서는 인간과 동일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존재로 지음 받았고, 하늘 처소에서 섬기는 자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런데 <유다서 1장 6절>에 의하면,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이 있었습니다.





이 천사들은 하나님에 의해 정해진 자신들의 상태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교만이 그들의 주인이 되어 그들로 하여금 다른 더 높은 위치를 추구하게 만들었습니다.





죄는 맨 처음 영들의 세계에서 발생했습니다. 죄는 우리가 거의 알지 못하는 존재들의 마음에 등장했습니다.





성경에 근거해서 우리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은, 죄가 처음에 땅이 아니라 하늘, 하나님의 보좌의 발등상, 하나님의 직접적인 현존 가운데 시작되었고, 천사들의 타락이 인간의 타락 이전에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존재에 대해서 첫 사람에게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에덴 동산을 지키게 하시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심으로>(창 2:17절) 악의 존재를 전제하셨습니다.





성경의 계시가 점차 밝아 짐에 따라 우리는 이 존재들이 「사탄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임을 알게 됩니다.





사탄(히브리어)은 두 번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에게도 다가왔습니다(마 4:3절).





예수님은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 지적하시기를, 마귀(헬라어)는 처음부터 즉 인류가 존재하기 시작한 이래로 살인한 자이며,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 가운데 있지 못했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한다고 하셨습니다.





<요한일서 3장 8절> 역시 마귀가 처음부터 범죄했다고 가르칩니다.



<요한계시록 12장 9절>은 “큰 용이 내쫓기니 엣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말씀합니다.





사탄은 직접적으로 인간에게 다가오지 않고 뱀을 이용하여 다가왔습니다.



인간이 평소에 친근하게 지내던 피조물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뱀의 몸과 언어 기관을 사로잡아 그를 통해 여자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1절)



(쉬운성경) "하나님이 정말로 동산 안의 어떤 나무의 열매도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





이 질문은 정말로 간사하고 교활합니다.





첫째로, 이 질문은 사람이 받은 하나님의 말씀과 뱀의 말을 교묘하게 관련시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명령의 말씀은 (쉬운성경)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마음대로 먹어라.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지 마라. 만약 그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2:16,17절) 입니다.





자세히 뜯어 보면 뱀의 질문은 하나님의 말씀과 전혀 관련이 없지만, 언뜻 들으면 그들이 받은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 있는 것처럼 들리게 만듭니다.





<동산>이 나오고 <나무의 열매>가 나오고 <먹지 마라>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뱀은 여자에게 질문의 형태로 말을 걸어서, 의도적으로 이미 확정된 것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확정된 것입니다. 이미 주어진 말씀입니다. 바뀔 수 없는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런데 뱀은 여자에게 <참으로?>(정말로?)라는 말로, 확정된 말씀을 다시 생각해 보도록 부추깁니다.





예를 들어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부모님의 아들인 것이 확실합니다. 그런데 친구가 <참으로?>라고 물으면 어떻겠습니까?





내가 어떤 일을 하기로 충분한 검토를 하고 마음에 확정했습니다.. 그런데 옆에서 누군가가 <너 정말로 그 일을 할래?>라고 물으면 어떻겠습니까?





더구나 <참으로>라는 말이 <말라>라는 부정어와 사용되면 부정의 의미를 더욱 강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뱀은 하나님이 동산 안에 있는 어떤 나무의 열매도 사람에게 먹지 말라 하신 분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미지의 프레임 안에서 사람이 생각하도록 유도합니다.





<하나님이 동산 안에 있는 어떤 나무의 열매도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정말로 그랬어?> 라고 물음으로써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부정적인 상>이 생기도록 언어 플레이를 했습니다.





질문 속에 덫을 놓았습니다. 정말로 간사하고 교활합니다.





여자는 과연 그 덫을 간파하고 피할 수 있었을까요?



여자는 나름대로 뱀의 말을 수정하면서 질문에 대답합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여자는 대답 속에서 많은 허점을 보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빼고 더했습니다.



<각종(모든)>과 <임의로(마음대로)>를 뺐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특정하지 못했습니다. <만지지도 말라>를 더했습니다.





여자의 대답은 여자의 마음 속에서 어떤 작용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해 줍니다.





하나님이 주신 무한대의 자유에 대해서는 빼고, <만지지도 말라>는 말을 은연 중에 더함으로써, 자신들에게 명령의 말씀을 주신 하나님은 <자신들을 제한하는 분>이라는 이미지가 여자의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아마 여자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변화였을 것입니다.



그 결과 여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2:17절)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죽을까 하노라"(3절)는 말씀으로 약화시킵니다.





여자는 이렇게 대답했어야 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였으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들은 맘대로 먹으라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여자의 질못된 대답을 받아 뱀이 말했습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4절)



여자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반드시>(must)를 빼버리자, 뱀은 <결코>(surely)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는 것이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라고 유혹합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5절)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으면, 그들의 눈은 밝아지고, 선과 악을 알게 되어 하나님과 같이 되고,



그것은 그들에게 매우 유익한 일인데, 하나님은 그런 유익을 주시지 않기 위해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고 하셨다고 말합니다.





만약 뱀의 말대로라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참으로 치사한 분이 됩니다. 사람을 만들어 놓고 좋은 것을 주시는 척만 하시고, 가장 좋은 것은 감추어 두고 갖지 못하게 막고 계신 분이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셔서 주고 또 주시는 분이 아니라, 사람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시고 못 보시는 분이 됩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라면, 그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겠습니까?



여기에 뱀의 간사함과 교활함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자기의 말을 교묘하게 하나님의 말씀과 연관시키고, 확정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들고, 모든 것을 다 주신 하나님을 주시는 데 인색한 분으로 만드는데, 불과 두 마디의 말밖에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사탄이 그런 존재입니다. 사탄의 간사함과 교활함은 인간의 지혜로 당하기 어렵고, 그래서 너무나 유혹적입니다.





뱀의 말을 듣고 여자가 보니, 그 나무의 열매는 먹음직스러웠으며, 보기에도 아름다웠습니다.



그 열매는 사람을 하나님처럼 지혜롭게 해 줄 것처럼 보였습니다(6절).





그래서 그 열매를 따서 먹고, 옆에 있는 자기 남편에게도 주었는데, 아담은 한마디의 거절도 없이 그것을 먹었습니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뱀이 여자에게 직접적으로 <열매를 따서 먹어>라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뱀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여자가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거짓말을 했을 뿐입니다.



뱀의 말을 받아들였을 때, 여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했고, 거짓말을 믿었습니다.





뱀의 말을 들었을 때 여자는 탐욕 즉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요일 2:16절)에 빠졌습니다.



탐욕에 빠지자 지금까지 하나님께 주신 것들, 자신이 받은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여자는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었습니다. 선과 악을 알고 싶었습니다. 선과 악을 알아서,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판단하는 존재가 되고 싶었습니다.



여자는 탐욕에 따라 의지적으로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두 사람의 눈이 모두 밝아졌습니다. 눈이 밝아진 그들은 자신들이 벌거벗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벌거벗고 있는 것이 두렵고(3:10절) 수치스럽고 안 좋게(악하게) 여겨져서 그들은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몸을 가렸습니다.





사람이 과연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습니까?



피조물은 창조주가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상식입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뱀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습니다. 창조주의 말을 듣기를 거부하고 피조물의 말을 들었습니다.





피조물이 선악을 알게 되면 과연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악을 아시지만 항상 선에 머무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천사」는 악을 아는 순간 사탄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악을 아는 순간 자신들의 벌거벗은 것만 깨달았습니다.





선악을 알아서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했던 사람들은 자신이 벌거벗은 존재라는 사실만 깨달았을 뿐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했던 사람>은 자신들이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벌거벗은 존재라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얻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사람에게는 한 가지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고, 한 가지를 버리면 모든 것을 버리게 되는 것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한 가지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들을 계속해서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 복, 양식, 일, 안식, 환경, 행복 등을 계속해서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면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것들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생명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복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양식과 안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행복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탄은 지금도 우리를 유혹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라고 유혹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말고, 너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살라고 유혹합니다. 이 유혹은 너무나 간사하고 교활하여 파악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이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말씀에 매인 사람으로 살기를 결단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좋은 것들을 계속해서 누리는 복된 길이기 때문입니다.





받은 복을 계속 누리길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좋은 직장을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십시오.



쉼을 누리길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십시오.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고, 사람이 사는 길이 있습니다. 말씀을 버리면 모든 것을 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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