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축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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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하나님의 구원 계획 4 - 타락 이후의 세계 (창 4-11장)(8:20절)
 이기남    | 2024·04·09 19:22 | HIT : 68 | VOTE : 7
* 하나님의 구원 계획 4 - 타락 이후의 세계 (창 4-11장)(8:20절)





아담과 하와의 타락한 이후 그들이 자식을 낳게 되자 인간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타락한 인간의 상태가 어떻게 전개되어가는가'를 보여줍니다.





1. 창세기 4장 4,5절, 아벨과 가인이 제사를 드림..



하나님 앞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가인과 아벨이라는 자식을 낳았습니다.



이들이 장성하여 하나님 앞에 스스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창 4:3-5절) 라고 하십니다.





아벨이 하나님께 드린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과 가인이 드린 예물은 받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벌써 하나님께 돌아가게 된 사람이 있고 하나님께 돌아가지 못한 사람, 두 편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신약에 드러난 빛을 통해 보면 <히브리서 11장 4절>에서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말합니다.





아벨이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는 믿음은, 바로 여자의 후손을 보내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너희를 구원해 주시겠다고 하신 원 복음 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3장 20절>에서 아담이 그의 아내를 "하와, 모든 산자의 어머니"라고 말했다는 것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주신 원 복음을 듣고, 이해하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자기 아들들에게 이 원 복음을 전해 주었으리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그것을 가볍게 여겼지만 아벨은 이것을 믿었고, 그래서 여자의 후손을 보내주셔서 그를 통해 가죽 옷을 입히시고 돌아오게 하실 것을 믿고 양의 첫 새끼를 제물로 하여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아주신 제사의 가장 핵심은 "하나님께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아벨이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었다"(4절)고 합니다.





그러면 왜 의롭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합니까?



아담 하와가 하나님 앞에서 추방 당하게 된 것은, 하나님은 의로우신데 그들은 불의한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의와 불법이 함께 할 수가 없어서 추방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추방당한 아담의 후예들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 돌아갈 수 있는가', 이것이 구원의 핵심 문제입니다.





그런데 아벨이 의롭다함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원 복음,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여자의 후손을 보내 주셔서 가죽 옷을 입혀서 구원해 주시겠다는 은혜의 언약 곧 원 복음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벨이 하나님 앞에 양의 첫 새끼를 드렸다는 것이 성경에 등장하는 첫 제사입니다.



그리고 구약에서는 짐승을 제물로 하여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에 등장하는 모든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드려주실 참 제사에 대한 예표였고, 그림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떠나서 드려지는 제사는 우상 숭배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대속 제물로 되어주실 것이라고 하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드릴 때만이 제사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망각하고 그것을 떠나서, 양을 잡아서, 송아지를 잡아서 그것을 제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우상 숭배와 같고, 그런 양의 피는 돼지 피와 같다는 것입니다(사 66:3절).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2. 로마서 3장 26절, 공의와 칭의..



여기서 하나님께서 구원 계획을 이루시는데 가장 큰 난제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로마서 3장 26절>에서는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도 의로우시고,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말 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가장 큰 난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그냥 용서해 주신다면 우리는 용서 받을 수 있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의로우심, 하나님의 공의가 이것을 용납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인간들이 제 힘으로, 자기 자력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로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우리와 같은 죄 있는 인간의 몸, 육신의 모양으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대신하여 아들에게 우리의 죄를 담당시키시고 하나님도 의로우심을 이루시고(공의),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의롭다 하려 하심(칭의)이라고 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에서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라고 베드로는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인으로 죽으셨습니까?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그 의를 힘입어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시기 위해서 의로우신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대신 죽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시는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3. 창세기 4장 8절, 최초의 살인 사건..





<창세기 4장 8절>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하고 성경에서 최초의 살인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형이 동생을 쳐 죽인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원 복음에 계시된 사건인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의 원 복음에서 두 진영으로 갈라지고 또 두 진영 사이에는 적대감이 있고, 원수가 된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 모습을 여기에서 보는 것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가인은 뱀의 후손의 줄기가 되었고, 아벨은 여자의 후손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어서 여자의 후손의 줄기가 된 것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쳐 죽였다는 것은 뱀의 후손이 여자의 후손이 태어나지 못하도록 대적한 사건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또 하나 유념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원 복음인 <창세기 3장 15절>은 하나님께서 뱀을 향해서, 다시 말해서 사탄을 향해서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탄은 자신이 여자의 후손에 의해서 멸망 될 것을 이미 알았습니다.





이를 알게 된 사탄은 여자의 후손이 태어나지 못하도록 계속 대적하게 되는데 이것이 계속되는 성경의 역사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계속해서 추적하게 될 것입니다.





4. 창세기 4장 25,26절, 다른 씨를 주심..



아벨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여자의 후손의 줄기가 끊어지고 만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구원 계획을 여기서 포기하시고 마실 것인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과 목적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다른 씨'를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셋입니다.





'씨'라고 하십니다. 씨라는 말씀은 '여자의 후손'을 보존하시겠다는 의지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26절)고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여호와를 불렀다는 것은, 여자의 후손을 보내서 구원해 주실 것을 믿었다는 말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쳐 죽인, 이 살인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의 발로였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인간이 어쩔수 없이 죄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음을 나타내주고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인간에게서는 구원을 얻을 만한 그 어떠한 요소라도 발견할 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보아 구원은 결코 인간에게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직 구원은 특별한 방법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 특별한 방법이 곧 하나님께서 셋이라는 또 다른 아들을 준비하고 계심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셋의 탄생은 아담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약속을 이루어 주시리라는 확신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이며, 기필코 그 약속을 이루시고야 말 것이라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증표가 되는 것입니다.





5. 창세기 4장 16-24절, 가인은 하나님 앞에서 떠남..



<창세기 4:16-24절>에서 가인은 하나님을 떠났다고 합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께 돌아가야 하는데 가인은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자기중심적, 즉 무신론적으로 문명을 창설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성을 쌓고, 인간의 이름을 따서 에녹 성이라 불렀고, 라멕은 두 여자를 얻어 일부다처제를 처음 시작했습니다.





건축과 목축업, 음악과 예술, 병기구의 생산 등 인류 문화와 문명의 발전이 시작되었는데,



이로서 인류 문화의 발전은 신이 아니라, 가인의 후손에 의해서 시작되었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6. 창세기 5장 1,29절, 아담의 계보..



<창세기 5장>은 아담의 계보를 기록한 것이며, <29절>에서 노아의 이름이 나옵니다.





아담의 족보를 등장시킨 것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통한 여호와 신앙과 구원의 역사가 이미 태초부터 이어져 온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담으로부터 시작되는 셋의 족보는 오직 셋 계통만이 아담에게까지 거슬려 올라가는 진정한 인간 곧 구원자로서의 정통성을 계승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족보가 자주 등장합니다. 족보를 자주 기록해서 보여준 의미를 생각해보면,





첫째, 하나님께서 아담과 맺으신 언약인, 여자의 후손의 거룩한 씨를 어떻게 준비해 나가시며, 어떤 경로를 통해 인류를 구원할 예수 그리스도를 태어나게 할 것인가를 보여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숨겨져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둘째, 족보에 나오는 첫 사람으로부터 마지막에 나오는 사람까지에 일어났던 모든 역사를 족보를 통하여 정리하고, 앞으로 새로운 역사가 진행될 것을 예표하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족보란 지금까지의 역사를 가장 함축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역사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족보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한 사람들을 통해서 이제부터 새롭게 전개될 하나님의 새로운 섭리의 역사로 접어든다는 전환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창 11:26절, 아브람, 룻 4:22절, 다윗, 마 1:17절, 예수님).





<5장>의 족보가 노아와 그 아들들의 탄생을 기록함으로써,



이제부터 '노아를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거룩한 씨를 나타내실 것인가', '어떻게 자신의 약속을 성취시켜 나갈 것인가'에 우리의 관심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7. 창세기 6장 1,2절, 거룩한 씨가 혼합됨..



<창세기 6장 1,2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아내를 삼았다고 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들이 각각 누구를 가리키는가는 설명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은 곧 여자의 후손, 셋의 후손이고, 사람의 딸들은 뱀의 후손, 가인의 후손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들, 여자의 후손들이 사람의 딸들인 가인의 줄기에서 그들의 아내로 삼은 것입니다.





이렇게 두 몸이 합하여 한 몸을 이루게 되는 성적 결합을 통해서 두 부류가 하나로 합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합해지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보면, 계속해서 여자의 후손들이 뱀의 후손 속으로 합해지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것이 세속화요 타락입니다.





세속화와 타락은 하나님의 주인 됨을 거부하는 것이며 자기들의 안목, 즉 인간 자신들의 가치관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이 주인이 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게 되었고 그 마음의 생각과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습니다(6:5절).





뱀의 후손(사탄의 백성)이 여자의 후손(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삼키는 상황이 되어간 것입니다.





이제 사탄은 살인(핍박)이 아니라 잡혼(유혹)을 통하여 하나님 백성을 잠식해 갑니다. 이것이 사탄이 지금까지 가장 강력하게 사용해온 전술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묵과할 수 없으셨습니다.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홍수로 심판하셨는데 홍수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사탄의 백성을 심판하신 것이며 동시에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물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표이며 이것이 세례를 의미합니다(벧전 3:21절).





8. 창세기 6장 17절, 홍수를 보내심..



<창세기 6장 1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묵과할 수가 없어 홍수를 보내 모든 육체를 멸절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거룩한 씨를 보존하시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부패하여 멸망 받아야 할 인간을 구원하시고, <창세기 3장 15절>의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 거룩한 씨를 보존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아 홍수를 멸망의 심판으로만 보는 것은 옳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거룩한 씨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홍수로 인하여 경건치 않은 자는 멸망 되고, 거룩한 씨는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9. 창세기 6장 18절, 구원 언약을 주심..



<창세기 6장 18절>에서는 노아와 가족은 구원하시겠다고 언약을 세워주시고 방주 안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6장 3절>에서 그들의 날은 120년 되리라 하는 것은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긍휼의 시간을 주신 것입니다.





노아가 이때 방주를 짓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홍수가 임할 것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왔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방주를 통하여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고 오래 참으신 후에 드디어 심판의 진노를 쏟으시는 것입니다.





방주의 예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방주 안에 들어간 것은 언약 안, 곧 그리스도(메시아)의 언약 안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때에(믿기 전)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해서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엡 2:12절) 라고 하십니다.





10. 베드로전서 3장 20절, 겨우 여덟 명..



홍수 사건을 통해서 구원을 얻은 사람이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벧전 3:20절)이라고 말합니다.



당시에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구원 얻은 사람이 겨우 여덟 명으로, 달리 말하면 여자의 후손은 겨우 여덟 명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만일 노아의 홍수가 아니었다면, 또 그것이 조금만 지체되었더라면 구원 얻을 자가 여덟 명도 없을 뻔 했다는 그런 위기 의식을 갖게 됩니다.





노아 홍수 심판은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심판의 장이지만,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서 보면 은혜의 장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덟 명 식구, 그 씨마저 남겨두시지 않으셨다면 다 죽고 말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겨우 여덟 명이라고 강조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7절>에는 믿음으로 노아는 의의 후손을 이어주는 상속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여자의 후손에 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대를 잇는 상속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3장>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족보에 보면, 노아가 예수님의 계보를 이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노아가 무엇을 믿었다는 것입니까?





11. 창세기 8장 20절, 번제를 드림..



<창세기 8장 20절>을 보면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서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습니다. 정결한 짐승을 잡아 번제를 드렸다고 합니다.





이것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하는 예표가 아니라면, 하나님을 영화롭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우상처럼 여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노아가 제단을 쌓고 정결한 짐승 중에서 번제를 드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 중에서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 죄를 대속하는 대속 제물이 되어주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을 노아가 믿었다는 것이며,



그래서 노아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노아의 홍수는 최후 심판의 예표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도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는데 주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고난 중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원(영접)하려 오시는데 더 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12. 창세기 9장 9-13절, 보존 언약을 세워 주심..



<창세기 9장 9-13절>에서 하나님은 언약을 세우십니다.



홍수 사건은 단순히 죄악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약속하신 거룩한 씨를 어떻게 보존하시며,



어떤 방법을 통하여 이 땅 위에 계속 이어지게 해서, 마침내 인류를 구원하실 것인가에 더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홍수 사건이 지난 후 언약을 세우시는데 이것을 보존 언약이라고 말합니다.





노아와 맺은 보존 언약은 <9장 1절>부터 그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뿐만 아니라 그 후손들까지도 포함하여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복을 주십니다.





<9장 8절>에서는 이 언약을 노아와 그 후손들과 나아가 모든 생물들과도 맺으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생물까지도 언약에 포함시키시고 있다는 것은 모든 생물들이 보존되지 않고서는 결코 인류도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언약의 중표로 무지개를 택하셨습니다.





이 보존 언약은 창조 언약(창 1,2장)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으며 그 내용에 있어서는 아담과 맺은 은혜 언약과 일맥상통한 것입니다.





창조 언약에서는 영생을 약속하셨고,



은혜 언약에서는 영생을 위해 여자의 후손인 거룩한 씨를 통하여 구원을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셨고,



보존 언약에서는 다시는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함으로 어떻게 그 약속을 이루어 나가실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사람의 피를 결코 흘리지 못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거룩한 후손이 결코 끊어지지 않을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증표로서 하나님은 무지개를 세워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약은 갱신이라고 할지라도 전혀 그 내용이 바뀌지 않는 갱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9장>의 핵심 단어는 "언약"입니다. 언약이라는 말이 7번이나 나옵니다.



언약을 세우심이 두 번이고, 언약의 증거가 세 번, 언약을 기억하는 것이 두 번 나옵니다.





아담이 인류의 조상이요,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면 노아는 언약의 조상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언약이라는 말이 노아에게 와서 처음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6:18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와도 언약을 세워주셨으며 그 언약의 증거로 우리에게 성경과 성령님이 주어졌습니다.



우리도 그 언약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구름 사이로 보이는 일곱 빛깔 영롱한 언약의 무지개를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먹장 구름이 우리의 마음을 덮을 때 가정의 행복을 덮으려 할 때 사업을 삼키려 할 때에 우리는 "구름 사이로"(16절) 보이는 언약의 무지개를 바라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13. 창세기 9장 20,21절, 노아의 벌거벗음..



<창세기 9장 20,21절>에서 노아가 벌거벗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아가 벌거벗은 모습은 아담 하와가 범죄하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하는 바로 그 모습입니다.





노아는 어떤 의미에서 제 2의 인류의 시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노아가 벌거벗은 것을 보여준 것은 아담 이후 모든 인류는 의인은 없으며 하나도 없고, 죄인임을 보여준 것입니다(롬 3:10,23절).





이는 노아라도 자기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자와 같은, 자력 구원의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노아가 의인이라고 한 것은 무슨 자격이나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입니다.





노아의 벌거벗은 것을 셈과 야벳이 덮어주었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셈이나 야벳을 칭찬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셈과 야벳의 하나님을 동시에 찬양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셈의 하나님만을 찬양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 사실은 자신의 벌거벗음이 육의 문제가 아님을 알았고 이를 가려주시기 위해서 셈의 줄기로 여자의 후손을 보내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희미한 계시의 불빛 아래서도 이처럼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이 비취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14. 창세기 10장 6-10절, 함의 자손이 나뉨..



<창세기 10장>의 특징은 나뉨입니다.



성경은 인류의 일반 역사를 자세하게 역사책처럼 다루지는 않았지만 바로 이곳 <10장>에서는 현재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세계 민족들의 조상들이 누구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10장 6절>에 함의 자손 가운데 니므롯이 나옵니다.



니므롯은 세상의 첫 용사고,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라고 합니다.



니므롯이란 대적자란 뜻입니다. '여호와 앞에서'라는 말은 '하나님이 보실 때' '하나님을 대적하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할 정도라면 하나님과 같은 권세를 가졌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할 자란 마귀와 사탄입니다.





용감한 사냥꾼이란 짐승만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사냥하고, 전쟁도 즐기며 전쟁을 통해서 사람을 무참히 살해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나라를 건설하였는데 시날 땅에 건설한 바벨이라는 나라였습니다. 여기서 비로소 '나라'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어떤 살기 좋은 땅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 무리가 '국가' 로 변환될 때 그 구심점으로서 니므롯 같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함의 자손이라는 말입니다.





왜 함의 자손 가운데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니므롯이 나와서 스스로 나라를 건설하게 되었을까요?



<9장>에서 노아가 벌거벗었을 때 함이 한 역할이 무엇이었습니까?





아버지 노아가 벌거벗었다는 것을 드러내고 고발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아담이 벌거벗었을 때 그것을 드러내고 조롱한 것이 바로 뱀(사탄)이었습니다(창 3:11절).





사탄은 참소하는 자입니다(계 12:10절). 분열과 혼란을 조장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입니다.





바로 함은 사탄의 심부름을 한 것이고 그 줄기에서 니므롯이 나와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스스로 나라를 건설하게 된 것입니다.





시날 땅에서 시작된 바벨은 앗수르까지 영토를 넓혀갑니다.



바벨에서 시작된 바벨론이라는 이름은 세속 제국의 대명사로 하나님의 최후의 대적자로 계시록까지 이어지지만 결국 멸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난 세상 질서, 세상 나라의 기원은 바로 이 반역자요 대적자인 니므롯에서 기원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그의 이상과 번영은 그의 죽음과 더불어 끝이 났으며 그가 남긴 것은 결코 힘만으로 세상을 송두리째 삼킬 수 없다는 교훈 뿐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제 아무리 세상을 호령할 만한 힘을 가진다 하더라도 그가 결국에 맞이하는 것은 허무와 멸망뿐일 것입니다(렘 17:5절).





15. 창세기 11장 3,4절, 바벨 나라를 세우고 바벨탑을 세움..



<창세기 11:3,4절>에서 바벨탑을 쌓는 장면에 대한 묘사도 우리가 주목해야할 점입니다.



이 바벨탑을 세우는 행위를 단순히 바벨탑이라는 기념비를 세우는 정도로만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탑을 쌓는 정도가 아니라, 한 나라를 건립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원문에는 바벨탑이 아니라 성이 더 강조되고 있습니다. 고대의 성은 바로 국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을 중심으로 세력이 형성되고 성의 영향이 미치는 모든 곳이 그 국가의 영토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세우려는 이 성과 대(바벨탑)는 인간이 주체가 되어 인간의 이름을 위하여 인간에 의해 세워지는 인간의 나라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탑을 쌓는 것을 통해서 이 바벨이라는 나라의 성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내자”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도전입니다.



바로 하나님 나라를 세우자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나라를 세우자는 것이었습니다.





또 바벨탑을 쌓을 때 "그들이 벽돌로 돌을 대신하고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했다"고 합니다.



이것인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고 인간의 방법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단을 쌓을 때에 다듬은 돌, 즉 인위적인 것을 가미하지 말라 명하셨습니다.





이는 번제단에서 드려지는 제물이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기 때문인데, 구원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벽돌로 돌을 대신했다"는 것은 다른 방법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다른 복음과 같은 것입니다(신 27:6절, 수 8:31절).





또 하나님 나라는 누구에 의해서 세워질 것입니까?



"손대지 아니한 돌이 산에서 나와서"(단 2:45절)라고 한 것은, 이는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가 분명한 것입니다.





16. 창세기 11장 8절, 바벨 나라를 흩으심..



<창세기 11장 8절>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인류를 보존하신 것은, 그리고 생육하여 땅에 충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인간들에 의해, 인간이 다스리는, 인간의 나라가 세워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하여 우리의 주위를 환기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하나님께서 질투를 하셔서 바벨탑을 쌓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 들어 있는 것이며, 즉 인간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인간의 나라를 세우려 하는데 큰 문제점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행위를 간과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행위를 허사로 만들기 위하여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습니다.



바벨이란 뜻은 '혼란, 혼돈, 혼잡'이라는 뜻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 의사 소통이 불가능해지자 각각 언어가 통하는 사람들끼리 무리를 지어 떠나게 되었고, 그들의 의지로 건설하려 했던 인간의 나라는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 사건을 인간들이 바벨탑을 쌓다가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세계 각국의 언어가 생긴 것 정도로 이해하기가 쉬우나 이것은 성경을 너무 단편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이런 일을 경영하려했던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 사람들은 모두 노아의 후손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려 하지 않고 인간의 나라를 건설하려 했습니다.





이것은 아담 이후부터 부패한 인간의 본성은 홍수 이전 뿐만 아니라 이후까지도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인간의 부패한 본성은 홍수라는 심판으로는 치유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아 한 번 부패해 버린 인간은 결코 에덴 동산에 있었던 인간의 본성으로 돌아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들을 멸하시지 않고 단지 흩으시는 심판을 하셨던 것이고 언젠가는 다시 모으시겠다는 뜻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이때가 오순절 성령님의 강림으로 이루어 진 것을 보게 됩니다.





17. 창세기 11장 26절, 아브람의 출생..



성경은 바벨탑 사건 이후에 셈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족보가 <11장 26절>에서는 아브라함과 나홀과 하란으로 끝나고 있고,



<27절>에서 데라에 대한 족보를 다시 언급하면서 아브라함에게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는 것은, 이제부터 성경은 우리가 말하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통하여 새로운 역사가 진행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아브라함을 통하여 건설할 목적이 었음이 분명합니다.





분명한 것은 부패한 인간들로서는 도무지 건설할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특별한 방법으로 구별하고 선택함을 통해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왕국을 건설해 나가실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그러한 특별한 섭리와 방법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나타나게 될 것이며,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에 우리의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창세기 1-11장>을 요약하면, 인간은 부족함이 없는 낙원에서 금단의 과실을 먹음으로 언약을 파기하고, 홍수 심판을 유발하였고 바벨탑을 쌓음으로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행위를 요약하는 것으로 이는 인간의 행위로는 구원의 가능성이 없음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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