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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구속사적 성경 개론 20 - 잠언 (잠 1:1-7절)(7절)
 이기남    | 2024·06·09 10:11 | HIT : 3 | VOTE : 0
* 구속사적 성경 개론 20 - 잠언 (잠 1:1-7절)(7절)





「잠언」의 주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1:7절) 입니다.





"잠언"하면 어떤 선입관을 갖게 됩니까? 격언 집이나 명언 집이라는 관념입니다.





그런데 「잠언」에 구원과 결부되는 "여호와"라는 호칭이 무려 87번이나 나옵니다.



"여호와"라는 호칭은 “하나님"이라는 호칭과는 달리 "언약, 구속" 등과 결부된 호칭으로, 이는 「잠언」의 성격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경외"도 19번이나 나타나는데 「잠언」의 구조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1:7절)고 시작하여,





중간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19:23절)고 말씀하고,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31:30절)고 끝마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여호와 경외"라는 주제는 시편(시 111:10절)과 욥기(욥 28:28절)의 중심 주제이기도 하고,





전도서에서도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절) 하고, 결론을 맺는 핵심적인 주제인 것입니다.





「잠언」은 서두(1:1-6절)에서 기록 목적을 밝히고 있는데,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기"(2절) 위해서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지혜와 훈계"란 어떤 의미입니까?





모든 성경이 그러합니다만 「잠언」도 크게는 두 주제, 즉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로 되어 있는데,



"지혜"가 "여호와 경외"와 결부된 신학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면, "훈계"는 실천 윤리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잠언」은 크게 두 부분(1-9장, 10-31장)으로 나눌 수 있는데,



<1-9장>이 "지혜"를 알게 하는 원리적인 말씀이고, <10-31장>은 "훈계"를 알게 하는 자세한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1. 지혜(1-9장)..



먼저 원리적인 <1-9장>의 구도를 파악해야 「잠언」을 올바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1-9장> 안에는 "내 아들아"하는 "아들"이 19번이나 나옵니다.



그리고 "지혜"라는 말이 31번, "음녀 또는 이방 계집"이라는 말도 합해서 12번 나옵니다.





이는 "사랑하는 아들"을 가운데 놓고 "지혜와 음녀"가 자기 소유를 만들려고 대결을 하는 구도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것이 「욥기」의 구조이기도 한데 욥을 가운데 놓고 하나님과 사탄이 대결하는 구도입니다.





그리고 이런 영적 싸움은 에덴에서 시작하여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잠언」이 우리에게 적실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점이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이르되,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1:20-23절)고 초청하는 데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런가 하면 음녀도 "자기 집 문에 앉으며 성읍 높은 곳에 있는 자리에 앉아서, 자기 길을 바로 가는 행인들을 불러 이르되,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도적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9:14-17절)고 유혹합니다.





<7장>에서는 음녀의 유혹에 걸려든 어리석은 소년 하나를 보여주기까지 하는데 "여러 가지 고운 말로 유혹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젊은이가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도수장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같도다.





필경은 화살이 그 간을 뚫게 되리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의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같으니라"(7:21-23절)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음녀"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됩니까?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내 입의 말을 잊지 말며 어기지 말라.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4:5-7절)고 거듭 거듭 지혜를 강조합니다.





지혜를 얻게 되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2:5절),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3:18절) 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잠언」에 65회 이상 등장하는 "지혜"가 무엇을 가리킵니까?



이 "지혜"가 「잠언」을 올바로 해석하는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잠언」은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1:1절)하고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왕상 3:12절) 한 "지혜"를 주셨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받은 지혜로 "잠언, 전도서, 아가서" 등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이 책들의 중심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서두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1:7절)고 말씀하고 있는데 「잠언」의 지혜가 철학적인 지혜이겠습니까?





「잠언」의 지혜는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지혜)를 가지셨으며,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8:22,23절)라고 태초부터 계신 "지혜"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8:30절)라고 창조주가 되시는 지혜라고 말씀합니다.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1:23절)고 성령님을 부어주겠다 하시는 지혜입니다.





그러면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계셨으며, 창조자시요,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주겠다 하는 "지혜"가 누구를 가리키는가 하는 점은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사 11:1,2절)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이 예언이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눅 2:40절)는 예수 그리스도로 성취된 것입니다.





이점을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4절)고 분명하게 증언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고전 1:30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전 2:6,7절)고 말씀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잠언」에서도 "대저 그들의 구속자는 강하시니"(23:11절) 라고 한 "구속자”와,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16:6절) 라고 하는 속죄 교리와,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8:35절) 한 영생과,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주며"(1:23절) 라고 한 성령님의 거듭남을 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잠언」에서도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8:17절) 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잠언」은 계속적으로 두 부류, 두 길을 대조해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4:18,19절)이 대조되어 있고,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2:18,19절)이 대조되어 있고, "의인의 집과 악인의 집"(3:33절) 등이 대조 되어 있습니다.





두 부류, 두 길의 대결이 극명하게 나타나는 곳이 <9장>입니다.





"지혜가 그의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 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로 혼합하여 상을 갖추고, 자기의 여종을 보내어 성중 높은 곳에서 불러 이르기를,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9:1-4절) 하고 잔치에 초대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님의 천국 잔치 비유를 연상하게 하는 복음 초청인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미련한 여인이 떠들며, 자기 길을 바로 가는 행인들을 불러 이르되,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도둑질 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9:13-17절)고 유혹합니다.





그리고 <9장>은 "오직 그 어리석은 자는 죽은 자들이 거기 있는 것과 그의 객들이 스올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18절) 고 마치고 있습니다.





이상이 <잠언 1-9장>에 나타난 원론적인 말씀입니다.





2. 훈계(10-31강)..



이처럼 <1-9장>에 나타난 원론(지혜)에 확고해야 <10-31장>에서 말씀하는 자세한 내용(훈계)에 바르게 접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잠언들이 필요한 것입니까? 유혹하는 "음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점을 신약 성경에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벧전 5:8,9절)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10-31장>의 내용들은 해설해야 알 수 있는 그런 내용이 아닙니다. 또한 몰라서 실천을 못하는 것들도 아닙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실천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원인은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가 하는 <1-9장>의 원리에 확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윤리가 다른 종교의 윤리와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 5:14절) 한 사랑의 줄에 이끌려 사는 삶, 곧 복음이 이끄는 삶이 다른 것입니다.





「잠언」은 근 3천 년 전에 주어진 말씀들입니다. 이 「잠언」이 신약의 성도들에게는 어떻게 적용되어야 합니까?





이 점에서 조심해야 할 점이 있는데, 구약 성경의 사건 등을 오늘의 성도들에게 직선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교훈적인 입장인데, 그렇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실종 되고 설 자리가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잠언」도 명언이나 격언처럼 적용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속사적인 관점을 통해서 적용되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신약의 성도들이 어찌하여 잠언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까?



그것은 복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요, 「잠언」을 실천함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기 때문도 아닙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5,16절) 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잠언」의 말씀이 성도들에게 "지혜와 훈계"를 주는 말씀이지만, 특히 목회자들에게 주어진 "목회서신"과 같은 경계가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아들"을 음녀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회적인 섬김이기 때문입니다.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27:23절) 하십니다.





이런 경우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고전 9:9절) 합니다.





그러므로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25:13절),





"악한 사자는 재앙에 빠져도 충성된 사신은 양약이 되느니라"(13:17절)고 "충성된 종"이 되어야 할 것을 거듭 말씀합니다.





또한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와 같으니라"(25:25절)고 말씀하는데 목회자란 보냄을 받은 사신들입니다.





참으로 충성된 사신들이 되어서 "좋은 기별"을 전해 드림으로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려야 하겠습니다.





반면 "내가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덤불이 그 전부에 퍼졌으며 그 지면이 거친 풀로 덮였고 돌담이 무너져 있기로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노라"(24:30-32절)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포도원이 이와 같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식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10:26절) 합니다.



주님은 달란트 비유에서 이와 같은 종을 "게으르고 악한 종아" 하십니다.





이런 맥락에서 「잠언」은 의외라 싶게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31:10절)는 현숙한 아내라는 주제로 마치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현숙한 여인"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현숙한 신부를 생각 한다는 것은 결코 비약이 아닙니다.





이점이 현숙한 연인이 행하는 사역에 분명히 나타나는데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31:13절),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자기 집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며 일을 정하여 맡기며"(31:15절),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밀며"(31:20절) 등 목회자들이 하는 섬김이라는 점입니다.





그리하여 「잠언」은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31:30절)는 말씀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잠언」을 통해서 우선적으로 선생된 우리들이 "현숙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야 하겠다는 각성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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