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축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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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하나님의 구원 계획 8 - 율법과 성막을 통하여 보여주신 하나님의 구원 계획 (출 20-40장)
 이기남    | 2024·06·25 19:42 | HIT : 8 | VOTE : 0
* 하나님의 구원 계획 8 - 율법과 성막을 통하여 보여주신 하나님의 구원 계획 (출 20-40장)





홍해를 건너 시내산에 도착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수여받고 성막을 건축합니다.





성막이 완공되었을 때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것은 하나님께서 임재 하셨다는 증거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목표는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과 함께 그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1. 출애굽기 20장 2절, 율법의 수여..



<출애굽기 20장 2절>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된 이스라엘에게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계명을 말씀하시기 앞서서 <1,2절>에서, 나는 "너의 하나님"이요 너희는 "내 백성"이라 하십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너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주신 계명인 것입니다.





그들은 유월절 어린 양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너의 하나님, 나의 백성" 이 되는 것이 가능해 졌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먼저 주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먼저 주셨습니다.





율법은 광야에 세워진 하나님 나라의 법이었으며, 그러므로 십계명(율법)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그들은 대대로 노예 노릇을 하고 있던 자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하루 아침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으로 가능해진 것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죄를 범하지 않게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첫째 기능입니다.





2. 신명기 4장 6절, 율법을 준수하는 자에게 주시는 지혜..



<신명기 4장 6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지켜 행하는 것을 보면 불신자들이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지혜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해주는 것이며, 참되고 영원한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근본 목적은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며, 하나님은 율법을 성실하게 준수하는 사람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십니다.





그런데 출애굽한 1세대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준행하지 않음으로 멸망 받게 된 것입니다.





3. 출애굽기 24장 7절, 피로 맺은 언약..



<출애굽기 24장 7절>에서 모세가 백성들에게 언약서를 낭독하자 백성들이 그것을 다 준행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모세는 언약서와 백성에게 피를 뿌리고 이것은 언약의 피라고 했습니다(출 24:8절).





그러니까 첫 언약 때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는 짐승의 피로 세웠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울 새 언약의 그림자였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늦어지자, 그 사이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것이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출 32:4절)이라고 했습니다.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한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가지고 내려오던 돌비를 던져 깨뜨려버린 것입니다. <출애굽기 32장 19절>을 보십시오.



"진에 가까이 이르러 그 송아지와 그 춤추는 것들을 보고 크게 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이는 다 준행하리라 한 것을 그들이 다 준행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돌비는 깨졌습니다.





돌비가 깨졌다는 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언약이 파기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율법을 주신 의도가 무엇입니까?



<로마서 3장 20절>을 보면,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 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통해서 인간이 전적 타락, 전적 무능, 전적 부패한 죄인임과,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다"는 자력 구원의 불가능성을 깨달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율법을 주신 궁극적인 목적은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갈 3:24절) 한 것처럼,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초등교사인 것입니다.





이를 정리하면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는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기 위하여,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4. 출애굽기 32장 1-8절, 금 송아지를 섬김..



<출애굽기 32장>에서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지체되자 그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32장 1-8절>까지를 보면, <1절> "우리를 위하여", <8절> "자기를 위하여"가 반복되는데 이는 자기 중심적인 신앙인 것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송아지를 만든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한 신"(8절)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황금 송아지 형상입니다.





황금 송아지는 그들이 애굽에 있었을 때 보았던 애굽의 신을 모방한 것입니다.



그러나 황금 송아지는 잠시 불안을 해소될지 몰라도 그들의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4장 4,5,11절>을 보면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것과 똑같이 했습니다. 용어도, 행위도 똑같았습니다.





다만 다른 것은 예배 대상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아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아니라 자기들을 위한 "자기 신"을 만들어 숭배한 것입니다.





성경은 "나는 이러한 하나님이다" 하신 하나님의 자기 계시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성경이 계시한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들이 만든 "여호와"라는 동명이인의 하나님을 만들어 놓고 예배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런 오류에 빠질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무릇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그들이 만들지니라"(출 31:6,11절)고 거듭 거듭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5. 출애굽기 34장 30절,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발함..



<출애굽기 34장 30절>에서, 두 번째 돌 판을 받아가지고 내려오는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발했다고 합니다.





<34장 10절>의 "보라 내가 언약을 세우나니" 하신 말씀을, 깨어진 언약을 회복 시켜 주겠다는 차원으로만 보아서는 부족합니다.





비록 깨어진 돌 판과 다시 만들어진 돌 판에 기록된 내용이 동일할지라도 그 영광스러움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시 세워진 언약"을 받아 가지고 내려오는 모세의 얼굴에서는 "광채"가 발했다고 합니다. 모세는 이 광채를 수건으로 가리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도 복음의 광채(그리스도)는 있었습니다. 다만 가려져 있었을 뿐입니다.





첫 번 돌판 때에는 그들은 분명 이를 행함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모세 때 시내 산에서 이미 폐기 처분(깨뜨리심)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세워진 언약"의 기능은 하나님께서 둘째 돌 판을 주시면서 하신 말씀을 요약하면(34:12-23절) 이것은 복음이지 더 이상 행위 언약이 아닌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을 신약적으로 말한다면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절) 는 말씀인 것입니다.





6. 고린도후서 3장 12-16절, 마음의 수건..



<고린도후서 3장 12-16절>에서 사도 바울은 모세의 얼굴에서 발한 광채를 마음의 수건이 벗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6절) 했다고 말합니다.





불신자들의 상태는 혼돈하고 공허하고 어두움이 그들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 빛이 있으라하고 빛이 임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모세 얼굴 빛은 복음의 빛이었습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에는 지성소가 휘장으로 가리어 있듯이 복음이 법조문의 수건으로 가리어져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셨다 하시고, 죄를 청산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휘장을 열어 주셨습니다. 가리어진 복음을 드러내 주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14절>에서,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라고 합니다.





오늘도 구약을 읽을 때 수건이 벗겨지지 않아 다른 것은 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16절>에서는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고 합니다.





그 수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벗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복음의 빛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도 복음은 있었습니다. 다만 법조문이라는 수건에 가려 있었을 뿐입니다.





이제는 밝히 드러났는데도 수건이 마음을 덮고 있어서, 구약을 읽을 때에 다른 것은 보면서도 복음은 보지 못하고 있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7. 출애굽기 19장 12절, 경계를 정하라..



<출애굽기 19장 11절>에서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 강림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12절>에서 하나님은 주위에 경계를 정하라 그 경계를 침범하지 말라, 침범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시내 산 꼭대기에 강림해서 모세를 불러 다시 한번 경계하십니다(20,21절).



"백성이 밀고 들어와 나 여호와께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 하십니다.





또한 <19장 13절> "짐승이나 사람을 막론하고 살아남지 못하리라", <22,24절>에서 "내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





이처럼 반복 강조하는 의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무엇이 갈라 놓았는가를 깨닫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죄입니다. 이것은 구약 시대 드린 짐승의 제사로는 죄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24절>에서 "아론과 함께 올라오고 제사장들과 백성에게는 경계를 넘어 나 여호와에게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 내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 하고 아론은 올라오는 것이 허락된 것은,





아론의 임무는 대속 제물을 드려야 할 대제사장이 될 것이고, 대제사장에게는 일년 일차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될 자이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 참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아론은 짐승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갔으나 우리의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다"(히 9:12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경계를 정하라, 아론과 함께 올라오라"하심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힌 경계가 철폐되고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도는 대제사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로 말미암아서 만이 가능함을 계시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출 19:8절) 한 인간의 행위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8. 출애굽기 29장 46절, 함께 거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출애굽기 29장 46절>에서 하나님은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거하기를 그토록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백성들과 함께 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 상번제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만나고 그 날 그 날 말씀하심을 들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막에서 하나님이 계시는 지성소는 휘장으로 막혀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26장 33절>을 보십시오.



"그 휘장을 갈고리 아래에 늘어뜨린 후에 증거궤를 그 휘장 안에 들여 놓으라 그 휘장이 너희를 위하여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리라."





이 휘장은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사 59:2절) 하심을 말해주는 표징입니다.





인간 편에서 보면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이 막혀 있는 상태이고, 하나님 편에서 보면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사 59:2절) 하신 대로 얼굴을 가리신 상태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인간의 중간에 막힌 휘장 이었던 것입니다.





중간에 막힌 휘장이 사람의 손을 댐이 없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완전히 찢어졌는데, 이는 속죄소에서 염소나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하나님의 어린 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졌을 때였습니다.





곧 주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다 이루었다"(요 19:30절)고 선언했을 때, 그때까지 가로 막혀 있던 휘장이 비로소 찢어져 제거된 것입니다(마 27:51절).





하나님께서 이런 설계도로 성막을 지으라 명령하심은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가리셨던 하나님의 얼굴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만으로 비춰지게 됨을 시청각적으로 보여주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9. 출애굽기 25장 8,9절, 성소를 세우라 하심..



<출애굽기 25장 8,9절>에서 하나님은 성소를 세우라 명하십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계심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용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성막, 성전, 성소라는 말은 곧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 성막이란 뜻은 거룩한 곳이란 뜻이며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구별되고 거룩한 장소인 것입니다.





그러나 고정된 장소로 제한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 중에 거할 성소"(출 25:8절)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 거하기를 원하시는 것은, 구속 사역이란 인류의 시조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함께 거하심"이 파괴 되었던 것을 회복하는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성막의 설계도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심이 어떻게 가능해졌는가를 모형을 통해 보여주기 위한 설계도였습니다. 그 점이 번제단과 속죄소 등을 통하여 계시될 것입니다.





성막(광야)과 성전(가나안)을 통하여 "그들 중에 거하시던" 하나님은 "임마누엘"로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교회와 성도의 몸을 "그들 중에 거할 성소"로 삼으셨다가,





요한계시록(21:3-6절)에 가서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3절) 하고 "그들 중에 거하심"은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건설인 것입니다.





<출애굽기 25장 9절>에는 하나님이 지시하신 모양대로 장막을 지으라고 하십니다.



모양은 맨 앞에 번제단이 있고 그 다음에 물두멍이 있습니다. 성막 양식은 법조문에 가려있던 복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내 산에서 돌비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십계명만 주신 것이 아니라 성막의 모양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십게명만 주시고 성막 모양을 주시지 않으셨다면 구약 성도들은 한 사람도 구원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으로는 의롭다함을 얻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율법을 지킴으로는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성막 모양을 주신 것입니다.



거기에 번제단이 있고, 거기서 흠 없는 양으로 속죄제를 드려라 그러면 사함을 얻으리라. 그래서 그들은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민수기 15장 23,24절>을 보면, 하나님은 십계명을 지키지 못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너희들은 모세에게 명한 십계명을 절대로 지켜야 한다, 만약 지키지 못하면 너희는 멸망당할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만일 지키지 못했을 때는 성막에 가서 이제 속죄제를 드려라 그러면 사함을 받는다."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십계명만 주셨다면 이를 지키지 못하고, 범죄하면 어디 가서 해결할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해결 받을 수 있는 곳으로 번제를 드리도록 성막 설계도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번제단에 드려지는 속죄제는 참 것의 그림자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였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4절>을 보십시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이것으로는 온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그림자였습니다. 만약 온전하게 할 수 있었다면 계속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장 5절>에서 하나님은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나를 위해서 한 몸을 예비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한 몸은 바로 그분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창세기 22장>에서 이미 "여호와 이레 하나님”(14절)이시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10. 출애굽기 25장 22절, 속죄소에서 교제를 원하심..



<출애굽기 25장 22절>에서는 피를 뿌리는 속죄소에서, 하나님께서 내가 너와 만나고,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하십니다.





속죄소는 창세기에서 추방당함으로 이산가족이 된 하나님 아버지와 자녀들 간의 만남의 장소였던 것입니다.





이 만남이 가능하게 된 것은 "뿌려진 피”에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주님은 죽으셨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9,20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만남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네게 이르리라" 만남과 말씀, 즉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제물과 대제사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계시가 새 언약에서는 주님께서 친히 제물이 되어 주셨고, 주님께서 대제사장이 되사 단번에 드려 주심으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습니다(히 10:14절).





<히브리서 4장 16절>에서는 우리에게 "담대하게" 보좌 앞에 나아가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담대한"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를 힘입는 믿음의 담대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담대히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불신앙인 것입니다.





11. 출애굽기 39,40장, 두 장 안에는 "명령하신 대로" 라는 말이 계속 반복됨..



<출애굽기 39장>에는 하나님이 명령하신대로 되었다는 말이 열 번이나 나옵니다. 성막은 모세가 혼자 지은 것이 아닙니다. 다같이 분업으로 지었습니다.





세마포 포장은 여인들이 지었을 것이고 법궤 같은 정교한 성물은 브살렐이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39장>에는 모세가 만들어진 성막의 재료들을 모아 놓고 점검을 합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신대로 되어있는가 점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명령하신대로 되었더라는 말이 10번이나 나옵니다. <43절>에서는 모세가 축복하였다고 했습니다.



만일 그대로 되지 않았다면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화를 당했을 것입니다.





참 것의 그림자도 이처럼 명령하신 대로 행해야만 했다면, 참 것은 더욱 더 명령하신 대로 행해야 한다는 엄숙한 명령인 것입니다.





<출애굽기 40장>에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는 말씀이 8번 나오고 <33절>에서 "모세가 이같이 역사를 마치니" 곧 완성되었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12. 요한복음 2장 21절, 참 성전 되신 예수님..



<요한복음 2장 21절>을 보면, 구약의 성막과, 성전은 누구에 대한 모형 인가를 말씀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광야 교회 때는 성막으로,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는 성전으로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이 성막이나 성전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장막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실 임마누엘의 모형이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1500년 동안이나 성전을 통해서 모형적으로 계시하여 주시던 것이 실체로 성취된 임마누엘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는 "너희가(너희의 마음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마음)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보여주신 성전은 요한계시록에 가서 완성이 되는데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21:22절)고 합니다.







시내 산에서 십계명만이 아니라, 성막 설계도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번제단이 무엇에 대한 상징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성막은 법조문에 싸여있는 복음이었던 것입니다.





13. 출애굽기 40장 33-35절,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



모세가 성막 역사를 다 마친 후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34절),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34절),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35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35절),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기(35절)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막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지 않았다 해도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겠습니까?





<출애굽기 25장 8절>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성막에 임재하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심은 임마누엘의 모형을 보여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1장 1절>은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기 전에 예표와 그림자와 예언과 모형을 통해서 충분하게, 믿을 만한 계시를 하신 후에 그의 성취로 마지막에 아들을 보내주셨다는 뜻인 것입니다.





14. 고린도전서 3장 16절, 우리 안에 지어진 하나님의 성전..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서는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막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전이란 어떤 건축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고전 1:2절).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 성도들의 공동체, 즉 교회를 가리킵니다.





지금 하나님의 영광은 성막이나 성전이라는 건물에 충만한 것이 아니라 성도의 모임인 교회에 충만하다는 이 영광스러움을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님을 모신 사람입니다.



모세가 세운 성막(출 25:8절)과, 솔로몬이 세운 성전(대하 7:1,2절)은 참 것에 대한 모형이었습니다.





이 모형이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 실체로 성취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이 일이 가능해진 것이 바로 구속사의 맥락인 것입니다.





이를 요약하면 모세의 성막, 솔로몬의 성전에(그리스도의 몸) 충만했던 여호와의 영광이 임마누엘로 충만했다가 십자가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얻은 성도의 몸과 그들의 모임인 교회에 충만하게 되고 <요한계시록 21장 3,4절>에 가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여기가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했다"(출 40:34,35절)는 성막 계시의 절정인 것입니다.





15. 출애굽기 40장 36-38절, 구름과 불로 인도하심..



<출애굽기 40장 36-38절>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광야를 행진할 때에 구름과 불이 인도하여 주었다고 합니다.





구름과 불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을 지켜주셨습니다.





고된 노동으로 탄식하며 부르짖는 그들을 "구속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과 동거 동행하기 위해서 "성막"을 지으라 하시고, "구름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출애굽을 통해서 예표로 보여주셨던 것들이 실체로 성취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확신 가운데 하나님을 더욱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 출애굽기는 우리의 구원의 서정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애굽의 바로에 속하여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이 모세에 속하여 홍해를 건너 시내 산에 도착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율법을 수여받고 성막을 완성하여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그 영광이 충만하듯이,





사탄의 노예였던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속하여 세례의 강을 건너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산상 수훈을 수여받고, 우리 안에 성전을 지어짐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롬 5: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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