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구원 계획 14 - 언약의 왕 다윗의 등극 (사무엘하)
사무엘하의 중심 주제는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라 신정 왕국을 세우는 것입니다.
사무엘하는 사울에 이어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된 이후에 그의 성공과 범죄, 그에 따른 좌절과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울 왕국과, 다윗 왕국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다윗 왕국은 메시아 언약 위에 세워 진 왕국(7장)이고, 사울 왕국은 인본주의적인 왕국이었습니다.
이점이 우선적으로 언약궤를 운반해온 다윗과, 사울은 이를 방치한 데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다윗 왕국은 언약 안에서 은혜가 왕노릇 하는 은혜의 왕국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범죄(11장)했을 때에도, 징계하실지언정 폐하시지 않음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1. 사무엘하 2장 1절, 다윗의 왕위 등극..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아뢰되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다윗이 아뢰되 어디로 가리이까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사울이 죽고 다윗이 왕위에 등극하게 되자 어디로 올라갈 것인가를 하나님께 묻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헤브론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왜 헤브론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을까요? 헤브론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최초로 번제를 드렸던 곳이고, 그리고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헷 족속 에브론으로부터 은 사백 세겔을 주고 그곳을 사서 자기의 소유지로 확정하고, 그곳에 사라를 묻고 나중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묻힌 곳입니다.
또 가나안 정복시 유다 지파 족장 갈렙이 분배 받은 땅이었습니다.
바로 이 약속의 땅에서 약속의 후손으로 온 다윗이 왕으로 등극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사무엘하 6장 12절, 언약궤를 운반해 옴..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사울이 40년 동안 왕위에 있을 때 언약궤는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왕위에 오르자 최우선적으로 한 일이 언약궤를 운반해 오는 일이었습니다.
<6장 12절>에서는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다윗 성으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5장 7절>에서는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다고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목적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궤를 이곳으로 옮겨 하나님의 도성을 세우려는 신앙적 목적임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시 78:68절)을 알고 이루어드린 것입니다.
"오직 유다 지파와 그가 사랑하시는 시온 산을 택하시며"
법궤가 왕의 보좌가 있는 예루살렘으로 옮겨져야 하는 것은, 보이는 왕은 자신이지만 진정한 왕은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는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이를 알았기에 다윗은 왕이 되자 하나님의 언약궤를 최우선적으로 시온 산성으로 옮겨왔습니다.
3. 사무엘하 6장 3-8절, 언약궤를 새 수레에 싣고 오다 웃사가 죽음..
언약궤를 운반해올 때, 새 수레를 끌고 오던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하나님의 궤를 붙들다가 즉사하는 불상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소들이 뛴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소들을 주관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나는 새 수레에 실리는 것도 싫고, 소들이 모는 것도 싫다"고 거부하신 것입니다.
<역대상 15장 13절>은 그것의 근본 원인이 사람의 어깨에 메지 아니한데 있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니"
이는 문자적으로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다윗의 교만 때문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다윗은 행렬을 장엄하게 하는데는 메는 것보다 새 수레가 멋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새 수레로 옮기는 것이 사람이 메는 것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기쁘게 해드리는 것으로 여겼을지 모릅니다.
그리하여 자신을 과시하고 법궤 운반을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는 방편으로 삼고자 하는 불순한 마음이 발동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동기에서건 새 수레로 옮기려한 것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인본주의 사상이 혼합되었고 우상을 섬기는 이방 블레셋이 했던 방법이었던 것입니다(삼상 6:7절).
"그러므로 새 수레를 하나 만들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소에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그러므로 하나님은 웃사에게 진노하시기 전에 다윗에게 노하셨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8절>에 보면, 웃사가 궤를 붙들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자 다윗은 잘못을 즉각 회개한 것이 아니라 "분개"하였다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자신의 충성심을 몰라주는 하나님께 섭섭한 마음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6장 12절>에서는 하나님의 궤를 어깨에 메어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규례대로 하였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볼 때에는 화려하게 꾸민 새 수레보다는 초라하게 보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른 방법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었습니다.
법궤 두 그룹 사이에 뿌려지는 피는 주님께서 흘려주신 대속의 피를 상징합니다.
성막과 법 등으로 상징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범죄 한 많은 사람들을 위해 피를 흘려주셨고, 주님은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이 메기를 원하시며 그들에 의해 섬김(경배)을 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법궤가 다윗 성으로 올라갈 때 다윗은 제사를 드리고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다윗은 지금 법궤의 행진을 여호와의 행차로 보았던 것입니다.
신정 왕국의 하나님은 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구속함을 얻은 자기 백성들에 의해 섬김 받으시기를 기뻐하신다는 점을 보여주십니다.
4. 사무엘하 7장 5,11절, 성전 건축의 소원..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사무엘하 7장>은 사무엘상하를 통틀어 핵심 장이 됩니다.
다윗이 왕궁에 평안히 거하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 황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7:2절)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소원을 갖습니다.
그러나 그 날 밤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나단에게 임하여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7:5절)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7장 11절>에 나오는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와,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구원 계획이란 인간이 하나님을 위하여 집을 건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즉 인간을 위하여 집을 지어주시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메시아 언약을 세워주실 것을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이 다윗을 위하여 집을 세워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한 마디 말씀은 구속사의 맥락에서 볼 때에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구속 사역이란 인간이 하나님을 위하여 집을 세워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집을 지워주시는 것입니다.
5. 사무엘하 7장 12-16절, 다윗에게 세워주신 언약..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사무엘하 7장 12-16절>을 다윗 언약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은 구속사에 있어서 큰 산봉우리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에게 언약을 주신 언약의 당사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 1:1절)고 이 언약이 성취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워주시겠다는 말씀은 다윗의 가문에서 왕위를 폐하시지 않으시고 계승시켜 나가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만일 죄를 범할지라도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7:15절)고 말씀하십니다.
또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7:12절)고 언약하십니다.
그리고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7:13절) 하십니다.
이 언약이 일차적으로는 솔로몬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고 그가 성전을 건축하므로 성취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표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세워주신 언약의 궁극적인 성취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왕위에 오르실 것과 그가 하나님이 거하실 참 성전을 건축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 언약에는 "영원히 견고하리라"는 말씀이 반복적으로 강조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세상 나라는 영원히 견고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세워주신 언약은 다니엘서를 통해서도 계시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서 2장 44절>을 보십시오.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
이 언약은 <누가복음 1장 31-33절>에서 성취됩니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 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릴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7:11절)는 이 집은, 육신의 장막을 입고 오실 예수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교회요, 하나님의 나라였던 것입니다.
이 집은 원복음(창 3:15절)으로부터 시작하여 아브라함과 다윗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고, <요한계시록 21장 3,4절>에서의, 주님의 재림으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 갔음 이러라."
그런 후에 성경은 선언합니다. <요한계시록 21장 6절>을 보십시오.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구속의 역사란 인간이 하나님을 위하여 집을 지어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집을 지어주시는, 하나님께서 이루어 나가시는 주권적인 행사인 것입니다(요 14:1-3절).
<고린도전서 3장 16절, 6장 19절>에서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합니다. 교회와, 우리 몸의 성전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워주신 것입니다.
출애굽 시대에 세운 성막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였고 솔로몬의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 하였습니다.
이는 참 성전 되시는 예수님을 통하여 완성될 것을 예표하는 것입니다(요 1:14-19절).
오순절 성령님이 임함으로 교회와 성도들의 몸이 성전이 된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해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으로 성전은 완성이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22,23절>을 보십시오.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6. 사무엘하 7장 6절,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니심..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녔나니"
하나님은 애굽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니시면서 일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안식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일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요한복음 5장 17절>에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라고 하십니다. 그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야전군 사령관이십니다. 보좌에 앉으셔서 안식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고 천막에 거하시면서 우리를 위해서 싸워주시는 야전군 사령관이시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기 원하시는 곳은 목석으로 된 건물이 아니라, 구속함을 입은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출애굽 이후 모세와 함께 계셨고, 여호수아와 함께 계셨고 그 백성들과 함께 계셨고, 이제는 교회가 성전이 되고 각 성도들의 몸이 성전이 되어 그곳에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궁극적으로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계 21:3절) 계시게 될 때 하나님의 집은 완성이 되는 것이고, 그때 하나님은 안식하실 것입니다.
7. 사무엘하 11장 2-5절, 다윗의 범죄..
다윗은 왕위에 등극하여 주변 국가들을 계속 정복해 나갑니다. 이것이 다윗의 역할이 무엇인가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윗은 메시아 왕국의 모형으로서 이방 국가를 복속시켜 하나님의 나라로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로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고 계속 건설해 나가기 위한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잠시 그 사명을 잊어버리고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윗이 범죄 할 것은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7:14절) 라는 말씀 속에 암시되어 있습니다.
이는 인간을 대리자로 세운 왕들, 누구도 의롭게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불법을 행할 수도 있음을 암시하고 있으며,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까지는 이 나라가 결코 완벽하지 못할 것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다윗도 무서운 범죄를 저지르고 맙니다. 다윗의 범죄로 말미암아 최대의 손해를 입은 것은 신정 왕국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이었습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12:14절)
그리고 그 결과 그 나라에는 반역과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이어집니다.
마치 아담 한 사람이 범죄함으로 에덴 동산을 잃어버리고 온 인류가 죄악에 빠져 영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됨과 같게 된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함으로 메시아의 오심이 불가피하게 되었던 것처럼, 다윗의 범죄함을 통해서 우리는 메시아를 대망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의 범죄는 어떤 범죄와 비교할 수 없는 큰 범죄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멸시하였고, 사람에게는 연약한 자를 핍박하였던 것입니다.
<11장>을 통하여 인간의 부패와 무능과 불가능성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위하여" 집을 세워주지 않으면, 즉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됨"(시 127:1절)을 명백하게 제시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위로는 의롭다함을 얻을 자가 없음을 보여줍니다.
즉 인간의 행위로는 구원이 불가능함을 보여주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허물과 실수가 없는 자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절)라고 감탄한 대로 측량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물론 사람 앞에서도 용서받을 수 없는 파렴치한 죄를 범한 다윗을 통하여 인간의 전적 타락, 전적 부패를 고발만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치료책과 해결 방법까지도 계시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시 32:1절) 라는 다윗의 고백처럼, 사해 주시고, 가려주심, 즉 복음의 핵심인 "칭의 교리"를 계시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모든(다윗의 범죄까지) 것"을 가지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8. 사무엘하 12장 13절, 다윗이 죄를 자백함..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다윗이 범죄하자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이전에 보내주셨을 때에는 다윗 언약을 세워주시던 때였습니다(7장).
그 언약 당사자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죄를 범한 것입니다. 선지자를 보내주신 것은 긍휼이요 자비입니다.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해 보내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주실 때는 언제나 아직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나단을 통하여 여호와의 책망을 들은 다윗은 그 자리에서 자백합니다.
<13절>에서 다윗이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자백하자 곧 바로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하고 나단 선지자는 선포합니다.
그러나 사건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아직 해결되지 아니한 중요한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죄에 대한 책임입니다. 죄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나단 선지자의 책망 중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12:14절) 하는 대목입니다.
이는 <로마서 2장 24절>,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9. 사무엘하 12장 10,11절, 다윗이 받는 징계..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다윗이 범한 죄에 대하여 두 가지 문제가 대두 됩니다. 첫째는 징계이고, 둘째는 죄의 책임 문제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징계를 받게 되는데, 첫째,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둘째,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셋째,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고 합니다.
이는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7:14절) 하신 징계인 것입니다.
죄에 대한 책임입니다. 죄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죽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12:13,14절)하고 선고합니다.
아이가 죽는 데는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다윗은 언약의 계승자이기에 아이가 대신 죽어야만 했습니다.
둘째, 자신보다 자식이 죽는 것을 통해 죄의 무서움을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셋째, 궁극적으로는 우리 대신 죽으실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우리를 인도해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삯은 사망>(롬 6:23절, 창 2:17절)이라고 선언하셨고, 그러므로 <피 흘림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절, 레 17:11절)고 말씀하셨는데,
밧세바가 낳은 아이가 죽음으로써 하나님의 공의가 세워질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 아이도 죄를 안고 태어난 죄인임으로 누구의 죄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아이의 죽음은 오직 인간들을 경계하는데 필요했을 뿐입니다.
<로마서 3장 24,25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하나님께서 다윗 당시는 그 죄를 간과하셨을 뿐인 것입니다.
그러시다가 <이 때에>(롬 3:26절) 곧 <아들을 화목 제물로 십자가에 내어주신 이때에> 그 동안 보류해 두셨던 죄에 대한 진노를 자기 아들에게 쏟으심으로 하나님의 의로움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공의는 충족된 것입니다(히 9:15절).
다윗이 범한 죄도 그 죄의 해결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의 죄는 사하여 지지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사함을 받았습니다. 사함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책임져야 할 죄책을 후에 오셔서 다윗의 죄를 포함한 세상 죄를 지고 가신 어린 양에게 책임을 지우실 것을 보면서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신구약을 막론하고 죄 사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서 뿐입니다.
사무엘하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세워주신 언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고, 다윗의 타락을 통해서 나 자신의 죄성 을 보게 됩니다.
10. 사무엘하 24장 1,18절, 다윗의 인구 조사와 번제..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이 날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아뢰되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소서 하매"
다윗이 통치 말기에 인구 조사를 합니다.
그런데 인구 조사 후 삼 일간의 전염병으로 칠만이 죽는 엄청난 징계를 받습니다.
그러면 인구 조사한 것이 어떤 잘못이 있었습니까?
첫째, 다윗의 교만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인구 조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전쟁을 수행할, 하나님의 군사를 계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관리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의 소유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의 치적을 알아보기 위한 교만한 마음으로 인구 조사를 한 것입니다.
둘째, 인구 조사 할 때 생명을 속전을 드리라고 했습니다(출 30:11,12절). 생명의 속전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생명의 속전은 누구에 대한 그림자입니까? 곧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림자입니다.
결국 다윗은 인구 계수가 끝난 후에야 그 마음에 자책하고 "내가 이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24:10절)하고 고백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께서 인도하시며, 보호해 주실 것을 고백함으로써 다윗 역시 하나님의 구원을 대망하게 된 것입니다.
오직 유일한 생명의 길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자기 자신의 실패와 부패한 모습을 통해 시련을 당한 연후에 비로서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17절>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 집을 치소서" 하는 기도야말로 얼마나 처절하기까지 비참하고 통렬할 정도로 낮아졌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구 조사가 끝난 후 삼일의 전염병으로 칠만이 죽는 하나님의 징계를 당한 후, 번제를 드리려는데 여브스 사람 아리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제단을 쌓으라고 지정해주십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 터를 은 오십 세겔을 주고 샀습니다.
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께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리우나의 타작 마당이 곧 솔로몬의 성전을 건축하는 터가 된 것입니다.
다윗이 교만해서 인구 조사를 하는 것은 악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악을 선으로 바꾸셔서 성전 터를 정해 주신 것입니다.
'성전을 아무데나 짓지 말고 바로 여기에다 지어라.' 그런데 그 아리우나의 타작 마당이 바로 아브라함에게 내가 지시하는 한 산에 가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모리아 산 그 자리였던 것입니다.
또한 모세가 너희가 하나님이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그곳에 가서 유월절을 지키라는 그곳이었습니다.
<역대하 3장 1절>을 보면, 이곳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언약의 터 위에 세워진 성전 터였습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속 제물이 되어주실 그곳이었습니다.
신구약을 막론하고 죄 사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서 뿐인 것입니다.
사무엘하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세워주신 언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고, 다윗의 타락을 통해서 나 자신의 죄성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참 구원의 소망은 오직 메시아이신 그리스도 예수에 의해서만 우리에게 주어짐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곳 타작 마당에 성전을 짓도록 하나님은 종용하십니다(대하 3:1절).
여기에 더 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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