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축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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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 요한계시록 1 -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1:1-3절)(1절)
 이기남    | 2021·07·10 10:00 | HIT : 135 | VOTE : 1

* 요한계시록 1 -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1:1-3절)(1절)







기독교 신앙을 특징짓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종말론적인 신앙」입니다..




「종말론적인 신앙」이란 <부활 승천하신 주님이 언제든지 예고도 없이 재림하실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깨어 믿음을 가지고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는 오늘 죽어도 예수님을 만날 신앙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는 매일 매일 물어야 합니다..







교회를 출입하고는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실상 임종의 순간에 조차도 주님 만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는 경우들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고,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미선교회 이장림씨가 주장했던 1992년 10월 28일 휴거설>이 불발탄으로 끝나고,




지난 수 백년 동안 전 세계인들이 그리도 궁금하게 여기고 가슴 졸이게 했던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대재난 예언>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가 버리고,




21세기 초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오히려 종말론적인 신앙을 거의 상실한 채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마다 종말이 멀지 않았다고 떠들어 대고 술렁일 때는 어쩌면 위험한 시기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잘못된 종말론의 열풍이 가라앉고, 사람들이 저마다의 일상적인 삶 속에 깊이 빠져서 하루 하루를 그냥 그냥 살아가게 되는 때가 더욱 위험한 시기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들의 삶이 고달픈 면도 있기는 하지만, 역사 이래로 가장 풍요한 시대,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해 볼 수 있고, 누려 볼 수 있는 시대가 되다 보니, 이 세상에서의 삶이 너무 너무 좋아져 버렸는지 모릅니다..






환란과 박해의 시기, 먹고 살기도 힘들던 시기에는 주님 오시기를 고대하는 찬송,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라고 찬송하다가, 또 이 세상을 부인하는 찬송,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를 부르다가,




이제는 재미있는 세상이 되고 나니까, <이 세상은 주님이 지으신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뜨겁게 찬송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 가고, 세상 재미에 빠지기 쉬운 이런 때 일수록 성도는 더욱 경성(警醒)하여 「종말론적인 신앙」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공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서 가장 나이가 젊었던 <사도 요한이 만년(晩年)에 기록한 예언서>입니다..







<초대 교회사>에 의하면 사도 요한은 노년에 사도 바울이 세웠던 <에베소 교회>에서 사역을 하면서 거의 100세가 될 때까지 살았다고 합니다..




만년에 그의 제자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요한복음』과 『요한일이삼서』 등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다가 사도 요한은 <주후 95,96년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 때 일어났던 박해>로 인해서 밧모(Patmos) 섬으로 유배 당하였습니다..




로마 황제는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하면서, 모든 국민들로 하여금 황제 숭배 의식에 참여하여 <가이사가 나의 주님이자 하나님이다> 라고 고백하게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황제 숭배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밧모섬으로 유배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곳 동굴에서 혼자 예배 드리다가 주님을 만나게 되었고,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내용들을 계시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1장 1-3절>은 『요한계시록』의 서언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세 구절을 읽어 보면, <사도 요한이 받은 계시의 기원과 목적>, <계시의 성격>, 그리고 <계시가 가져다 주는 복>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계시의 기원 /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1절)




<1절> 앞 부분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NIV 성경은 <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라고 했고, 헬라어 성경은 <아포칼륍시스 투 예수 크리스투(Apokalypsis tou Iesou Christou)>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도 요한이 자기가 기록한 책의 제목, 타이틀로 뽑은 것입니다..







당시에는 종이가 없고, 인쇄기가 없었기 때문에, 둘둘 말리는 양피지에다가 손수 먹으로 기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와 같이 글을 써 내려 가면서, 사도 요한은 먼저 자신이 쓴 글의 내용을 나타내는 제목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붙인 것입니다..







(1) 우선 계시라고 하는 단어에 주목을 해 보십시오..




「계시」라고 하는 말은 「가리워져 있고,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 보여 준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그 구원의 완성에 대한 진리들을 드러내어 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인간들이 알 수 없었고, 알려지지도 않았던 영적 진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려지는 것입니다..







그 계시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하는 것은 <계시하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의미>도 있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계시의 주된 내용이라는 뜻>도 담고 있습니다..




후자의 의미에서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주요 두 축>으로 하고 있습니다..







(2) <1절> 하반절을 보시면, 계시의 근원과 주어지는 순서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우선 <계시의 근원>은 「하나님 아버지」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계시는 항상 하나님이라는 샘 근원에서 나오는 샘물과 같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계시의 궁극적인 근원이요 원천이십니다..







『요한계시록』을 읽어 보면, 천사들의 활동하는 모습들을 많이 마주치게 됩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일을 수종들며, 구원의 후사들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섬기라고 보내심을 받은 수종자들입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에 의하면, 하나님이 주신 그 계시는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전달되는 것을 목표로 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종들, 즉 <요한계시록을 읽고 듣는 사역자들과 모든 성도들>입니다..







<계시가 주어지는 순서>를 보면, <하나님 - 예수 그리스도 - 천사 - 사도 요한 - 하나님의 종들, 즉 백성들> 입니다..







(3)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계시는 "반드시 속히 될 일들"(the things which must shortly come to pass)(AV)에 관한 것입니다..




"반드시 속히 될 일"이란 『요한계시록』에 담긴 내용들 모두가 사도 요한의 시대에 다 이루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실 『요한계시록』의 내용들은, 사도 요한의 시대에 이루어질 것도 있지만, 역사의 과정을 통하여서 이루어질 것도 있으며, 예수님의 재림 직전과 재림 때에 이루어질 내용도 들어 있습니다..







마운스(Robert H. Mounce, 신약 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자는 그 자신의 상황에서 기록했고, 그의 예언들은 역사적으로 성취될 것이며, 그는 미래의 종말을 기대했으며, 또 역사의 배후에 작용하는 원리 등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반드시 속히 될 일들을 알게 하신 것>이라고 하는데, <알게 하신 것>이라는 표현은 개역 성경에서는 <지시하신 것>이라는 구절로 번역되었던 것인데, 헬라어에서는 <에세마넨>(esemanen) 이라는 동사를 썼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담긴 내용들이 상징과 기호들로 가득하기 때문에 <문자적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해석학적 열쇠가 담김 동사>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상징들로 가득하기 때문에, 문자적으로 읽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입니다.. 문자적인 성취를 찾으려고 너무 애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상징들이 가리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점만 유념한다면 의외로 『요한계시록』이 쉽게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2. 계시의 성격 (2절)





두 번째 생각할 것은 「계시의 성격」에 대한 것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사도 요한은 자기가 밧모섬에서 받은 계시를 세 가지 다른 말로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그리고 <자기의 본 것> 입니다..







(1) 첫째, 사도 요한은 이제 앞으로 기록할 내용이 인간의 상상이나 생각이나 꿈 등과 같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인간의 말은 그저 의사 소통의 수단이어서 말한 것을 이루기도 하지만, 인간의 한계상 하지 못하는 일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있으라> 하면 존재하게 되는 능력의 말씀이고 창조의 말씀입니다..







<시편 33편 9절>을 보면,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라고 했고,




<이사야 55장 11절>에 보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와 같이 능력이 있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주신 모든 말씀들도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 둘째, 사도 요한은 계시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라고 부릅니다..




<증거>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말투리아>martyria 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로 인치시면서 입증하신 진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말씀 한 마디 한 마디에 자기의 생애를 걸고 그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생명을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요한계시록」을 어렵다고 감추거나, 아무렇게나 해석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증거>이기에 우리는 경외하는 심정으로 바로 해석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셋째, 사도 요한은 이 계시를 <자기가 본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사도 요한이 환상 중에 계시를 보았고, 그 본 것, 그 본 것만을 남김없이 다 증거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자신이 본 것 만을 기록했고, 본 것을 감추지 않고 다 증언했습니다..







3. 성도들을 위한 복 (3절)






이제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3절> 말씀입니다..




사도 요한은 자기가 증거하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축원을 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글을 정확하게 잘 읽을 수 있는 자들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처럼 인쇄된 책의 형태로 성경이 존재했던 것도 아닙니다..




손으로 직접 필사한 두루마리를 가지고 한 사람이 회중 앞에서 읽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들이 아니라 <읽는 자>라고 <단수>를 사용해서 복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듣는 자들과 지키는 자들은 <복수형>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같이 성경책이나 성경 어풀들을 쉽게 구입할 수 있고, 글을 대체로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경우에는 읽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줄 압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을 읽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책을 덮어두면 안 되고 부지런히 읽어야 합니다..




혹은 글을 읽을 형편이 안 되는 분들은 듣기만 해도 복이 있습니다.. 또는 이렇게 자유로이 설교하고, 설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 것 자체가 복입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 들은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거나 듣는 것은 지식을 축적하는 데에 궁극적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누리고 인생의 길의 빛과 발의 등으로 삼고 실천하기 위해서 입니다..>







<마태복음 7장 23-27절>에 기록된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인생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자>요,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강해 첫 시간에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서언이 되는 <1장 1-3절>의 말씀을 읽고 상고해 보았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숫자 맞추기나 퍼즐 맞추기와 같이 우리의 지적인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서나 시간을 보내기 위한 오락거리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또는 너무도 기괴하고 복잡해서 거들떠 보기도 싫은 혐오 책자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 말씀들은 박해와 환난 중에서 고통하며 주의 말씀을 신실하게 지키고 있던 「초대교회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주어진 책」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귀와 불신 세력들이 온 세상을 지배하며 제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님은 계시를 통해서 역사의 커튼 너머에서 일어나고 있는 더 중요한 현실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실상은 주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며,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며, 마침내는 그의 승리를 공개적으로 성취하실 것이며, 신자의 원한을 갚아 주실 것이라는 것, 그 날이 가깝기 때문에 조금만 더 기다리라는 격려의 말씀입니다..







파이팅! Fighting! 이것이 「요한계시록」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입니다.. 이겨라!!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요한계시록」의 주제 구절인 <17장 14절>을 통해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칼빈」은 힘들고 어려운 제네바 사역을 감당할 때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기신다>고 하는 확신을 가지고 사역했습니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라고 하는 <로마서 8장 31절 하반절> 말씀을 부여잡고 온갖 난관을 극복했습니다.. 







우리나라 초대교회 역사를 읽어보면 환란과 박해 시기에 진실한 성도들은 「요한계시록」을 애독하고 심지어는 외우기까지 하면서 많은 신령한 유익들을 얻곤 했습니다..







반면에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요한계시록」이나 「다니엘서」 같은 말씀을 특히나 설교하지 못하게 박해를 했다고 합니다..




세상의 실세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고, 세상은 심판받는다고 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3절>의 말씀처럼 이 책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는 줄 아시고, 부지런히 읽기도 하시고, 설교를 듣기도 하시고, 깨달아지시는대로 실천하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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