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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 마태복음 39 - 두 왕의 잔치 (14:1-21절)(20절)
 이기남    | 2024·02·22 10:03 | HIT : 15 | VOTE : 0
* 마태복음 39 - 두 왕의 잔치 (14:1-21절)(20절)



오늘 본문에는 두 왕이 베푼 잔치가 나옵니다.



하나는 헤롯 왕이 베푼 생일 잔치입니다. 다른 하나는 천국의 왕이신 예수님이 베푼 ‘오병이어’ 잔치입니다.




헤롯 왕이 베푼 잔치에서는 의인 세례 요한이 목베임을 당해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베푼 잔치에서는 하나님의 기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먹고 배가 불렀습니다.



헤롯의 잔치는 죽음의 잔치였지만, 예수님의 잔치는 생명의 잔치였습니다.




우리가 만일 두 잔치에 초대를 받는다면, 어느 잔치에 가고 싶을까요?



당연히 예수님의 잔치에 가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잔치는 주로 저녁에 이루어졌습니다.



연회장에는 커다란 소파가 놓이고 거기에 손님들의 자리가 서열에 따라 정해졌습니다.



음식은 방 중앙에 있는 상에 차려졌으며, 노예들이 음식을 가져와 시중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음식을 먹었습니다.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들 보셨을 겁니다.




만찬의 초대자는 손님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무용수나 곡예사, 마술사 등을 초대해 공연을 제공했습니다.



흥겨운 음악 소리와 무희들의 현란한 춤과 산해진미의 음식과 끊임없이 제공되는 포도주와 독주로 사람들은 향락에 빠지곤 했습니다.



음식의 양과 종류는 연회를 개최한 사람의 재력과 권세를 상징했습니다.




재력과 권세를 모두 가진 헤롯 왕의 생일 잔치가 어떠했을지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헤롯 왕의 잔치에는 여기에 더해 한 가지 중요한 이벤트가 준비되었습니다.



헤롯이 얼마 전에 재혼한 헤로디아가 데려온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는 것이었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헤로디아의 딸의 이름은 ‘살로메’였고, 당시에 그녀의 나이는 약 열두 살이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현란하고 요염한 춤으로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았습니다.




헤롯은 매우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잠시 허영을 부렸습니다.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약속하거늘!”(7절)



어머니로부터 지시를 받은 딸은 헤롯에게 말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여기서 내게 주소서.”(8절)




당시에 세례 요한은 헤롯 궁에 딸린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헤롯이 요한을 가둔 것은 자기 동생 빌립의 아내였던 헤로디아 때문이었습니다.



요한이 헤롯에게 “당신이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고 반복해서 말했던 것입니다(4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이 일을 이해하기 위해서, 여기서 잠시, 헤롯 왕, 그의 동생 빌립, 헤로디아의 관계를 살펴보고 넘어가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헤롯 왕은,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베들레헴의 아이들을 죽였던 ‘헤롯 대왕’(마 2:1절)의 네 아들 중 하나인 헤롯 안티파스입니다.





그는 갈릴리 지역을 관장하는 분봉 왕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리스토불루스’라는 이복 형이 있었는데, 그의 딸이 바로 헤로디아입니다.





그러니까 헤로디아는 헤롯 안티파스의 조카인 셈입니다. 헤로디아는 헤롯 안티파스의 또 다른 이복 동생인 헤롯 빌립과 결혼합니다.





그런데 이 헤로디아가 헤롯 빌립과 이혼하고 헤롯 안티파스와 결혼해 버렸습니다.



헤롯 안티파스는 첫째 부인인 나바테아 왕 아레타스 4세의 딸과 이혼한 후, 조카이자, 동생의 아내였던 사람을 아내로 삼았습니다.



막장 드라마도 이런 막장이 없습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 왕에게 “당신이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고 반복해서 지적했습니다.



헤롯의 행동은 “형제의 아내를 취하지 말라”(레 18:16절, 20:21절)는 율법을 어긴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헤롯은 눈엣가시 같은 요한을 죽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죽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를 잡아 결박하여 감옥에 가뒀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딸의 요구에 헤롯 왕은 술이 확 깨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뱉어 놓은 말이 있고, 함께 식사를 하던 손님들에 대한 체면도 있고 해서 "주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9절).





왕의 명령은 일사천리로 실행되었습니다(10절). 요한의 머리가 쟁반에 담겨서 왕에게 왔고, 왕은 그것을 소녀에게 주었습니다(11절).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초대 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이때 헤로디아는 자기를 비난했던 요한의 혀를 뾰족한 송곳으로 사정없이 찔렀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종, 메시아의 선구자, 의인 세례 요한은 이처럼 불의한 자들의 손에 의해 허무하게 처형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소위 '개죽음'처럼 보입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그의 시체를 거두어 장사를 지내고, 이 소식을 예수님께 알렸습니다.





그들은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그들은 이 억울함을 예수님께서 풀어 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소식을 들으시고, 그곳을 떠나 배를 타고 혼자 빈들에 가셨습니다(13절).




세례 요한의 일로 잠시 주춤했던 연회는 다시 재개되었을 것입니다.



음악이 다시 흐르고, 사람들은 저마다 음식을 집어 먹으며 담소를 즐겼을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일은 곧 잊혔습니다. 대신 어떤 사람은 그 만찬에서 먹었던 흑해산 철갑상어 알의 기막힌 맛을 기억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로마산 최고급 와인의 맛을 두고두고 기억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만찬 중에 보았던 흥미로운 공연을 기억했습니다. 어떤 사업가는 왕과의 독대에서 따낸 황금 사업을 잊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예언자요, 메시아의 선구자요, 의인을 죽이는 만찬에 참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참여하고 있는 잔치가 ‘죽음의 잔치’인 것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헤롯은 요한의 죽음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그의 신하들에게 말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도다 하더라."





그는 요한이 다시 살아나 자신에게 보복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렸습니다.



잠이 들면 요한의 목이 공중에 둥둥 떠다니며 자신을 째려보는 악몽을 꾸곤 했을 것입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헤롯 안티파스의 최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헤롯은 본처의 아버지인 나바티안 왕 아레타스 4세의 침공을 받아 패한 후 로마 원로원의 노여움을 사서 헤로디아와 함께 프랑스 리용으로 추방되어 그곳에서 최후를 마쳤다고 합니다.





한편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는 또 다른 분봉왕 빌립과 결혼했으나, 빙판 위에서 넘어져 날카로운 얼음에 목이 찔려 죽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더 좋은 음식, 더 힘있는 사람과 함께 먹는 음식이 자신에게 더 풍성한 생명을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잔치에 초대 받고 사진 한 장 찍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만찬은 대개 헤롯의 만찬처럼 ‘죽음의 만찬’인 경우가 많습니다.




본문에는 헤롯의 잔치와 대조적인 또 하나의 만찬이 나옵니다. 그것은 바로, 천국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외딴 곳’(빈 들)에서 베푸신 만찬입니다.




요한의 제자들로부터 요한의 죽음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은 배를 타고 헤롯의 관할 지역인 갈릴리를 떠나 혼자 조용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동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여러 마을로부터 걸어서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14절).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셨습니다(14절).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NIV) When Jesus landed and saw a large crowd, he had compassion on them and healed their sick.





‘불쌍히 여긴다’는 말은 ‘내장이 뒤틀리는 고통을 느낀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라온 많은 사람들을 보실 때 내장이 뒤틀리는 고통을 몸소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을 돌아보셨습니다.




제자들은 사람들의 배고픈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제안했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제자들의 제안은 지극히 합리적이고 시의 적절합니다. 사람들의 배고픈 형편까지 고려한 제안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제안에는 결정적으로 빠진 게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주라’는 헤롯 왕의 명령을 받은 헤롯의 신하들은 당장 감옥으로 사람을 보내어 세례 요한의 목을 베어 헤로디아의 딸에게 주었습니다.



그들은 왕의 명령에 순종하여 의인의 목을 베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천국의 왕이신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없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제자들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에는 자신들이 가진 것이 너무나 적다고 말했습니다.





요술을 부리지 않은 한 그들은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자신들의 형편을 뻔히 아시면서 무리한 요구를 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18절)



이 말씀은 마치 만찬장에서 연회장이 연회를 시작하기 직전에 음식을 ‘가져오라!’ 명하는 것으로 들립니다.



이 말씀은 이제 곧 만찬이 시작될 것을 알리는 선언과도 같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풀 밭에 앉게 하셨습니다. ‘앉는다’는 것은 음식을 먹기 위해 기대어 눕는 자세를 가리킵니다.



사람들은 만찬에 초대된 손님들처럼 풀 밭에 기대어 누웠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의 가정에서 만찬 시에, 가장들이 흔히 하는 방식으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 다음에 제자들에게 그것들을 떼어 주셨습니다. ‘뗀다’는 말을 ‘빵을 부숴뜨린다(breaking the loaves)’는 의미로, 유대인들은 이 행위를 ‘파탙 레헴’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각 가정의 아버지들이 식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와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떼어 주셨다는 것은 식사가 시작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그것들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고, 제자들은 그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19절).





모든 사람들이 먹고 배가 불렀습니다. 먹고 남은 조각들을 거두었더니,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NIV) They all ate and were satisfied, and the disciples picked up twelve basketfuls of broken pieces that were left over.





그때 식사 인원이, 여자와 어린아이가 포함되지 않은 성인 남자만 오천 명이나 되었습니다(21절).



여자와 어린아이까지 포함하면 만 명도 넘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을까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어떻게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을 만큼 불어났을까요?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빵을 떼면 금세 부풀어 하나가 되고, 또 떼면 하나가 되고, 이렇게 반복해서 나왔을 것으로 상상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믿을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이성적 추리를 동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도시락으로 가져온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희생적으로 내놓는 것을 보고, 모두 다 감동하여 너나 할 것 없이 자기가 가져온 것들을 내놓다 보니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을 만큼의 음식이 나오게 되었을 것으로 추론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신 분은, 도시락을 싸온 어떤 사람도 아니고, 제자들도 아니고,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만찬의 주인이셨고, 예수님은 만찬에 참여한 손님들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그 음식은 비록 제자들이 예수님께 드린 것에서 비롯되었지만, 예수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것은 기적이었고, 예수님의 자기 계시적 행위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백성들을 먹이시는 왕이심을 드러내신 기적입니다.




왕이신 예수님은 배고픈 사람들만 가득하던 ‘빈 들’을 풍요로운 만찬의 장소로 바꾸셨습니다.



그 만찬에 참여한 사람들은 왕에게 불쌍히 여김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보았습니다. 천국의 왕을 경험했습니다. 왕이 제공하신 음식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곳에는 화려한 음악과 조명 대신, 고요한 바람과 잔잔한 노을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안락한 소파는 없었지만, 편안한 풀밭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진수성찬은 아니어도 마음껏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빵과 물고기가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긍휼이 있었고, 메시아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빵으로 배부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배불렀습니다. 그것은 이 땅에 베풀어진 천국 왕의 잔치, ‘생명의 만찬’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두 종류의 초대장을 제시해 줍니다.



하나는 ‘죽음의 만찬’에 오라는 초대장이요, 다른 하나는 ‘생명의 만찬’에 오라는 초대장입니다.





우리는 어느 초대장을 받아들어야 할까요?



당연히 ‘생명의 만찬’에 오라는 초대장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린 때로 ‘죽음의 만찬’에 오라는 초대장에 기웃거릴 수 있습니다.





고급 음식을 사모하거나, 힘 있는 사람에게 기대어 보고 싶은 마음을 갖거나, 세상 영광을 구하는 마음에 기울어져 있을 때, 우리는 그 초대장에 더욱 끌리게 될 것입니다.





화려한 세계를 동경하는 마음, 쾌락을 사모하는 마음, 권세에 아첨하고자 하는 마음, 불의와 타협하는 마음, 탐욕적인 마음에 우리의 손을 맡길 때 우리는 이미 ‘죽음의 만찬’에 오라는 초대장을 받아 들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 문을 늘 두드리십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을 보십시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NIV) Here I am! I stand at the door and knock. If anyone hears my voice and opens the door, I will come in and eat with him, and he with me.





예수님은 예수님께 마음 문을 여는 모든 사람에게 들어가 그와 함께 만찬을 나누십니다.



어떤 사람에게 그곳은 빈들과 같은 곳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식탁에는 밥과 김치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먹는 그 식사는 항상 ‘생명의 만찬’입니다.





식사는 교제입니다. 주님과 함께 먹는다는 것은 주님과의 친밀하게 교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친밀한 사람과 식사하면서 대화를 나눕니다. 대화 속에서 공감하고, 위로와 격려를 받고, 지혜를 얻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도하면서 우리는 주님과 대화합니다.





성경 공부를 하면서, 묵상을 나누면서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격려와 위로를 받고, 하늘의 지혜를 얻습니다.





하지만, ‘생명의 만찬’은 아직 본격적으로 베풀어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먹는 사람은 장차 천국에서 완성될 메시아의 잔치를 고대합니다. <마태복음 8장 11절>을 보십시오.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쉬운 성경)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와서,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과 함께 앉아서 먹을 것이다."





(NIV) I say to you that many will come from the east and the west, and will take their places at the feast with Abraham, Isaac and Jacob in the kingdom of heaven.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 날에 있을 잔치의 초대장을 쥐어 주셨습니다.


그 날을 기대하면서 우리는 오늘도 ‘생명의 만찬’에 오라는 초대장을 들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이, 비록 화려한 헤롯의 왕궁과는 거리가 멀고,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자리는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는 예수님을 신뢰하기에 그분을 따릅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인생의 빈 들에서조차 우리를 배불리 먹이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시기에, 우리는 빈 들에서도 배부르고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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