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축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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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1 - 사람의 최고 목적과 행복 (고전 10:31절, 롬 11:36절, 시 73:25-28절)
 이기남    | 2024·03·09 11:12 | HIT : 15 | VOTE : 0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1 - 사람의 최고 목적과 행복 (고전 10:31절, 롬 11:36절, 시 73:25-28절)





(문)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답)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요절)



<고린도전서 10장 31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로마서 11장 36절>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시편 73편 25-28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해설)



믿음과 거룩함은 지식이라는 토양에서만 자랍니다.



무지한 사람의 마음과 삶은 모든 것이 모호하고 뒤죽박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진리의 말씀, 성경이 있고, 하나님의 진리를 배울 수 있는 다양한 방편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1640년부터 1648년 어간에 경건한 목사들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모여 작성한 소요리문답(Shorter Catechism)이 최고로 여겨집니다.





오늘날과 같이 배교의 위험으로 이끄는 많은 올무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시험의 때에 우리의 지성이 굳건하게 진리 위에 터를 잡기 위해서 이 소요리문답 공부는 꼭 필요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나님의 영광이야말로 인간 삶의 최고 목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인간의 삶의 모든 것이 수렴되는 중심축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추구하는 그 어느 것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





또한 어느 정도로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해야 할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행실의 일부가 아닌 모든 행실이,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바로 이 목적을 지향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사람의 최고 목적입니다.





<시편 73편 25,26절>을 보십시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시편 기자의 가장 간절하고도 중심 되는 갈망과 그의 유일하고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의 영혼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안식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하나님이 없는 피조물은 몸과 영혼 모두가 공허할 뿐(25절)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만이 그 모든 공허함을 흡족하게 채우고도 남을 만큼 충만하시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 충만함은 영원한 충만함입니다. "나의 영원한 분깃이시라."(26절)





<고린도전서 10장 31절>과 <시편 73편 25,26절>, 이 두 구절에서 다음과 같은 교리가 필연적으로 도출됩니다.





"인간의 최고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1. 인간의 최고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그것을 영화롭게 만들거나, 아니면 이미 그것이 가진 영화로움에 대해 그렇다고 인정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스스로 무한히 영화로우신 하나님께 손톱만큼이라도 영광을 더할 수 없습니다(욥 35:7절).



"그대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그대의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





그러므로 아무리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유익하게 하는 최상의 일을 한다 해도, 우리의 그런 행위 때문에 하나님이 더 영광스럽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행 17:25절).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하나님은 오직 선언적인 의미에서만 영화롭게 되실 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있는 영광이 선포됨으로 영화롭게 되십니다.





두 가지 방식으로 그렇게 됩니다.



소극적으로는, 생명이 없고 지각이 없는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는 말이 바로 이것을 가리킵니다(시 19:1절).





피조물들이 그렇게 합니다. 연주자가 연주를 해야 음악이 될 수 있지만, 어쨌든 바이올린과 같은 악기가 음악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연주하기 위해 지어졌습니다.





사람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되, 적극적으로 그렇게 합니다.





① 첫째, 중심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절)





마음이 없이 입술로만 하나님께 찬사를 돌리는 것만으로는 너무 부족하고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것이 못됩니다.





우리가 가진 지각으로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따라 모든 다른 존재와 피조물보다 하나님을 더 존귀하게 알고 드높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 마땅합니다(시 73:25절).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결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을 뿐더러,



이런 자들은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을 다른 사물이나 피조물에게 돌리거나, 그것들을 하나님보다 더 높여 오히려 하나님을 욕되게 합니다.





하나님이 원래 그러신 것처럼, 하나님을 우리의 기업과 최고 선으로 택하는 우리 의지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또한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우리 정서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② 둘째, 입술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시 50:23절)





혀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에 합당한 찬사를 돌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본연의 목적을 벗어나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거스르는 말을 하지 않게 혀를 재갈 물려야 합니다.





③ 셋째, 삶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절)





거룩한 삶이 곧 빛 된 삶입니다. 거룩한 삶은 어둠 가운데 있어 보지 못하는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보도록 밝히 비춰 주는 빛입니다.





죄는 사람의 눈을 어둡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어 보지 못하게 합니다.



다윗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원수들의 훼방 거리가 되었습니다.





거룩함을 알아갈수록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절감합니다. 죄에 미끄러질 때마다 하나님이 얼마나 흠이 없으신지 깨닫습니다.





안팎의 모든 삶에서 거룩하게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과연 어디에나 계시고 모든 것을 아신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가정이 경건하게 잘 다스려지고 있다는 말은 가장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2) 어떤 측면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인간의 최고 목적입니까?





① 첫째, 사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지어졌습니다..





*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잠 16:4절)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롬 11:36절)





세상 모든 이성적인 존재들은 무슨 일을 하든 목적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도 가장 완전하고 고상한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완전한 존재이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피조물의 가장 고상한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로부터 적극적으로 영광을 받지 않으십니다. 애초에 그렇게 정하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인간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을 통해서든, 아니면 인간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영광을 받으시든지 간에 자신의 영광을 위해 모든 인간을 지으신 것이 사실입니다. 또 그렇게 될 것입니다.





자신들의 삶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원한 형벌과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않아도 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의 목적입니다.





*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지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전 7:29절)





하나님이 사람을 처음 지으셨을 때는 잘 조율된 악기와도 같았습니다. 안락하게 잘 지어진 집과도 같았습니다.



짐승들은 땅을 기어다니는 반면, 하늘을 향해 직립하는 인간의 모양 자체가 암묵적으로 이런 사실을 대변합니다.





* 인간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귀결됩니다..



쏜 살들이 하나 같이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것처럼 말입니다(고전 10:31절).



다윗이 그런 것처럼, 무엇을 하든 우리 목전에는 항상 우리가 지음 받은 위대한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이 자리하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시 16:8절)





② 둘째,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 정하신 중심 뜻이 하나님의 피조물인 사람의 최고 목적이므로, 하나님의 중심 뜻을 우리의 최고 목적으로 삼는 것이 마땅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땅과 바다와 공중에 있는 다른 피조물을 지혜롭고 진지하고 관대하게 다스리고 사용하고 부리도록 인간을 지으셨습니다(창 1:26절).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위해 이런 것들을 사용하는 것은 합당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최고 목적에 부합해야 합니다.





앙갚음을 하고 정욕과 탐심을 채우는 것과 같이 그 자체로 합당하지 않은 목적을 가진 일들이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인간의 최고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에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번제를 드린다고 하면서 도둑질을 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또한 그 자체로 불법적이지는 않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인간의 최고 목적을 수종드는 자리에서 벗어난다면 죄가 될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가 다 갖추어진 행위라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우리가 하는 어떤 행동도 하나님의 영광과 상관없이 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몸의 영양을 위해 먹고 마시는 행위조차 하나님의 영광과 상관없이 될 수 없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이 단지 몸의 영양만을 위한 것이라면, 이 또한 죄악 된 것이며 하나님의 바른 질서 가운데 된 것이 아닙니다.





*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의 목적일 뿐 아니라, 우리가 가장 신경 쓰는 최고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자신을 위한 모든 다른 목적은 좀 덜 중요한 것이 될 것입니다.



모든 다른 볏단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볏단 앞에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부지런한 종이 자신의 주인과 그 주인 밑에서 자기를 관리하는 청지기 모두를 기쁘게 하길 바라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래도 역시 주인을 기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자신의 몸을 위해 먹고 마시는 사람이 있다면, 적어도 그 행위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주된 목적은 아닙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3장 4절>은 이런 행위를 가리켜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라고 합니다.





* 하나님의 영광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궁극적이고 최종적이고 완전한 최고의 목적이 될 때, 다른 모든 목적은 이 목적을 돕는 방편이 됩니다..





몸으로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 먹습니다. 또 그래야 합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건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도록, 자신의 구원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구원받기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자신의 안전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큰 목적으로 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의 범위와 정도가 어떠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최고 목적으로 삼되, 어느 정도까지 그래야 하는지 보겠습니다.



음식마다 소금이 안 들어가는 것이 없는 것처럼, 우리의 모든 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삶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하나님의 첫 창조와 두 번째 창조에서 모두 동일합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절)





<호세아 3장 3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하나님만을 위하고 하나님만을 바라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는 것이 우리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① 먹고 잠자고 걷는 것과 같은 본성적인 행위에 있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최고 목적이어야 합니다(고전 10:31)..





자신의 만족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먹고 마시는 것도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슥 7:6절).



이런 행위들조차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먹고 마시는 이런 일들이 필요하고, 이렇게 이어져 가는 우리 삶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영원토록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는 천국에 이르면 우리의 생존을 위한 이런 일은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② 일을 하고 물건을 사고파는 일상의 행위도 마찬가지입니다(엡 6:7절, 잠 21:4절)..



홍수 이전의 옛 세상에서는 먹는 것도 사람들이 짓는 여러 가지 죄의 목록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짐승들이 먹이를 먹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이 그저 먹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결혼 역시 그 자체로는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이 그렇게 했습니다.





③ 도덕적이고 신앙적인 행위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최고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슥 7:5절)..



기도하고 말씀을 듣는 모든 것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영광을 목적 삼지 않는 그 어떤 행위도 하나님 앞에 선하거나 받으실 만하지 않을 정도로 하나님 영광은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를 의미 있게 하는 절대적인 요소입니다(슥 7:5절).





무엇을 하든, 하나님을 위한 것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것이 아닙니다.





이 자신을 위해 한 일을 가지고 주인을 위해 한 것이라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목적 삼지 않는 일에는 어떤 상급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온 나라에 아무리 많은 집을 지었다고 한들, 저를 위해 단 한 평도 할애하지 않았다면 제가 그 사람에게 빚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한들 잘못된 목적으로 그렇게 하다가 결국 멸망 당한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하나님 영광을 우리 행실의 목적으로 삼고 있음이 자주, 그리고 분명하게 드러나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모든 행실에서 그렇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꼭 그런 식으로 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바로 그 목적 때문에 또 다른 일을 해야 하고, 바로 그 또 다른 일에 대한 목적 때문에 또 다른 일을 해야 하는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도 없이 어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항상 습관적으로 포괄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모든 일을 해야 하는데,



이 일은 하나님 영광을 향해 우리 삶이 방향 지어지고(시 1편), 하나님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게 주의하면서 그 규례를 따라 살고,



하나님 뜻이 우리 행실의 원리가 될 뿐 아니라 목적이 되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므로 그 말씀을 진리로 믿고, 하나님이 하신 명령이므로 그 명령을 본분으로 삼을 때 가능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수고를 해도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없고, 우리 역시 헛된 수고를 하게 됩니다.





(4) 하나님 영광이 인간의 최고 목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영광이 인간의 최고 목적인 이유는, 가장 으뜸 되는 원리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처음과 나중이요, 알파와 오메가 입니다. 우리 존재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은 당연 합니다(롬 11장).





사람은 상대적인 존재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자시요, 보존자시요, 은혜를 베푸시는 자입니다.





태양에서 비롯된 햇빛처럼, 우리의 존재는 하나님에게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있는 자(I AM)라 일컫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출 3:14절).





무엇이 되었든 우리에게 있는 온전한 것은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홀로 선하시고 지혜로우신 하나님" 이라 부릅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나누어 주셔서 우리로 그렇게 살게 하십니다.





대양의 물이 땅을 적시고, 개울과 강을 통해 그 물이 다시 바다로 흘러가는 것처럼,



우리가 받아 누리는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오고, 우리는 이런 모든 좋은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누림으로 하나님께 다시 돌려 드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스스로를 목적 삼고 살아가는 사람은 스스로를 신으로 삼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자신의 중심이 될 때,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을 위한 도구로 전락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입니다(요 8:50절).





2.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 인간의 최고 행복이자 최고선 입니다..



두 번째로 사람이 최고의 선으로 추구해야 할, 최고의 행복인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일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이 즐거움의 본질..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데는 「완전한 즐거움」과 「불완전한 즐거움」, 두 가지가 있습니다.





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을 가리키는 불완전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불완전한 즐거움 역시 두 가지로 구성됩니다.





* 하나는 하나님과의 연합입니다.



이 연합은 구원 받은 자들이 누리는 하나님을 향한 특별한 마음으로서, 이를 통해 하나님은 언약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됩니다.



이 연합을 통해 신자와 예수 그리스도가 서로 연합해 한 영이 되고, 신비한 한 몸이 됩니다.





영혼과 육신으로 이루어진 전인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이 중보자를 통해 하나님과 연합합니다.



구원 받은 자들이 누리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기쁨은 바로 여기서 솟아납니다.





* 또 하나는 하나님과의 친교입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구원의 관계에서 흘러나오는 은택에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친교를 통해 신자는 자기가 받은 은혜, 그 중에서도 특별히 믿음과 사랑을 발휘함으로 그 받은 은택을 다시 하나님께 돌려 드립니다.





하나님과의 친교가 이루어지는 방편인 기도와 묵상과 같은 신앙의 의무를 통해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은혜와 호의와 사랑을 나타내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성령님으로 역사하시고, 그들을 향한 인애의 많은 증거를 보여 주시고, 믿음으로 말미암은 희락과 평강으로 채우십니다.





② 이 세상이 사라지고, 천국에서 누리게 되는,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이 즐거움을 구성하는 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 영광 가운데 하나님과 친근히 거합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거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절)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 역시 하나님의 영화로운 임재를 누리며 하나님과 함께 합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이끌려 그 앞에 서서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 하나님의 참 모습을 그대로 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 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요일 3:2절)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화로운 완전하심과 탁월하심을 온전히 보고 흡족해 하며, 그 광경의 황홀함에 뛸 뜻이 기뻐하는 일이 영원토록 계속될 것입니다.





* 하나님과 완전한 연합을 누립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계 21:3절)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믿음으로 연합을 이루고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자로 살아가지만, 부분적으로 그렇게 할 뿐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이 모든 것을 완전히 누립니다.



하나님과 그 백성이 더 이상 긴밀하고 친근히 할 수 없는 완전한 연합을 누립니다.



결코 다함이 없는 영광스럽고 가장 완전한 연합으로 하나님이 그들 안에, 그들이 하나님 안에 거합니다.





*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누렸던 모든 친교와 연합보다 무한히 탁월한 즉각적이고 온전하고 자유롭고 위로가 넘치는, 도무지 누구도 형언할 수 없는 연합과 친교를 누립니다.





* 이런 모든 사실에서 비롯된 온전한 희락과 만족을 영원토록 누립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마 25:21절)





하나님과 하나님의 어린 양과 누리는 희락 넘치는 삶은 영원한 만족과 기쁨을 줍니다. 영원토록 희락의 대양에서 헤엄칩니다.





눈에 보이는 것마다 황홀한 기쁨을 주는 것 뿐입니다. 이런 기쁨은 세세무궁토록 새롭게 계속될 것입니다.





(2) 이 즐거움의 순서..



그러면 이제 이 즐거움의 순서와 즐거움의 자리가 어딘지 보겠습니다.





①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더불어, 사람의 최고 목적의 한 부분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한 가지로 서술 된 것은 하나님을 자신의 최고 선과 행복으로 모시지 않은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②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일보다 선행합니다..



피조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에서의 복락이 있기 전에 먼저 이 땅에서의 거룩한 삶이 있어야 합니다(히 12:4절).





이 둘 사이에는 수단과 목적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 이 땅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천국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가 없이 다른 하나를 누릴 수 있는 길은 전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사람은 천국에서 영광과 존귀와 영생으로 옷 입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마음이 청결하고, 지금 이곳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들만이 하늘의 극락 가운데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3) 사람이 가진 최고의 행복..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도 최고 목적이고,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할 일입니다.





① 그러기 위해 먼저, 「사람이 무엇인지」 살펴야 합니다.. 사람은 이런 존재입니다..





* 행복을 추구하는, 행복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피조물입니다.



행복을 향한 갈망은 사람의 본성 깊이 자리하고 있어서 결코 없이 할 수 없습니다(창 1:28절).



사람이 행복을 갈구하는 것은 호흡을 하는 것 만큼이나 지극히 자연스럽습니다.





* 사람은 결코 자충족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많은 것을 필요로 하는지 본성적으로 압니다. 사람이 끊임없이 자기 밖에 있는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도 그래서 입니다.





* 무한한 선 외에 그 어떤 것도 불멸하는 영혼의 갈망을 흡족하게 할 수 없습니다.



피조물 가운데서 선을 발견해 봐야 선에 대한 갈망만 더해 갈 뿐입니다. 무한한 선을 찾지 못하는 인간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행복은 자기 자신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피조 된 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②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아야 합니다..





* 하나님은 최고선 입니다.



천사들과 같은 인격체들이나 은혜와 영광처럼, 어떤 것들은 선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최고 선 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선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물의 근원이 가까운 상류로 갈수록 더 좋은 물을 얻는 법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선은 다 이 최고 선에서 흘러나오는, 의존적인 2차적 선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파생되지 않은 모든 선의 근원이시고, 천지 간에 모든 선의 시작이요 원천이십니다.





선이 더할수록, 더 추구할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선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보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고 선이요, 그런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은 선을 추구하는 인간의 최고 목적입니다.





* 하나님은 온전히 선하십니다.



하나님께는 선한 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불완전함이나 흠이 없이 온전히 완전하십니다.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온 맘 다해 찾는 영혼은 오직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모든 갈망을 흡족하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토록 열망하는 행복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을 찾기까지는 그 무엇, 그 누구로도 만족하지 못하고 쉬지도 못합니다.





3. 결론..



이런 논의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1) 그렇다면 우리를 사람의 최고 목적에서 멀어지게 하는 죄는 사람의 영혼을 얼마나 왜곡 시키는 것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최고 목적으로 삼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온통 자기 자신에게만 몰입되고 함몰되어 한 발짝도 자신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금수와 다를 바 없이 온통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자신만을 위해 행동하고, 이 땅의 것들이 주는 쾌락만을 추구하며 살 뿐, 하나님을 찾는 일은 없습니다(빌 3:19절).





그들의 본성적이고, 사회적이고, 종교적인 행동의 유일한 목적과 동기는 자신의 이익이나 쾌락, 명예나 영광과 같은 한결같이 자기중심적인 것들일 뿐, 무엇을 하든 무한하신 하늘 지존자의 이름이나 영광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2) 죄는 가장 탁월한 행동마저 수치와 부끄러움으로 가득하게 합니다..



우리는 마음과 입술과 삶으로 얼마나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하는 최선의 행동조차 자신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공명심으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일에는 그렇게 굼뜨면서도 물질과 같이 피조된 것들을 추구하는 데는 얼마나 민첩한지 모릅니다.



얼마나 부조리한 일입니까!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한 너무 큰 모욕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 면전에 대고 하나님은 최고선이 아니라고, 하나님은 영혼을 만족시킬 만한 기업이 아니라고, 피조물이 하나님보다 더 낫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신을 얼마나 부끄러워해야 할까요?





우리 안에 있는 이런 죄를 볼 때, 우리의 모든 행실에서 하나님을 최고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고 하나님을 즐거워 하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삼기 위해 싸워야 할 싸움이 얼마나 치열할지 능히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3) 온 땅의 만물을 능가하는 인간에게 있는 탁월함을 보십시오!



모든 피조물은 인간을 위해 지어진 반면, 인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하는, 훨씬 고상한 일을 위해 지어졌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존엄을 팽개치고, 자기를 섬기도록 지어진 것들을 섬깁니다. 얼마나 통탄할 현실입니까!





하나님을 자신들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고, 최고의 행복을 하나님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배와 정욕과 우상을 하나님 삼은 채, 주정꾼이 술에서, 부정한 자가 창녀의 품에서, 구두쇠가 재물에서, 야심에 찬 사람이 자기 이름을 내는 데서 행복을 찾는 것처럼,



감각적이고 육신적인 쾌락을 만족 시키는 데서 최고의 복을 찾고 있으니, 참으로 비통하고 참담한 현실입니다.





본성적으로 우리는 발을 딛고 사는 이 땅에 마음을 두고, 하늘을 향해 딛고 올라서야 할 것들을 목적으로 추구합니다.





마음의 이런 부조리를 바로잡고, 훨씬 더 탁월한 것들을 향해 우리 마음이 돌아서도록,



이 땅의 체질이 풀어 질 때 시간과 더불어 소멸되지 않고 죽음도 어찌하지 못하는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4)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 사람이 누리는 궁극적인 최고 행복이라는 사실을 보면 사람의 영혼이 불멸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영혼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불멸하는 존재만이 영혼을 만족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인간의 영혼을 만족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시고, 전인이 받아 누릴 기업이신 것을 보면, 인간의 육신 역시 다시 살아나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입니다.





인간으로 하여금 행복을 갈망하게 하고, 불멸하시는 하나님에게서만 만족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인간의 생각과 비물질적인 실체가 육신의 죽음과 더불어 사그라질 수 있습니까?





무덤이 인간의 이런 생각과 갈망의 종착지가 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최고 행복은 영원합니다.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과 연합한 몸과 영혼은 부활 후에도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합니다.





그렇다면 바로 지금 여기서 하나님과의 연합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한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5) 하나님과 피조물이 맞설 때마다 피조물을 거부하고 하나님께로 나아 가야 합니다(눅 14:33절)..



하나님은 최고의 선입니다. 항상, 범사에, 모든 시험 가운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순종하는 것은 우리의 위대한 의무로,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언제고 피조물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이나 소유나 심지어 목숨을 버릴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포기할 것인지에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면, 반드시 전자를 부인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보다 그것들을 좋아해서는 안 됩니다.



항상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의 최고 목적이요, 자신이 누리는 최고의 행복과 기쁨으로 힘써 배우고 알아야 합니다.





(6) 여기 교리와 실천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시금석과 같은 원리가 있습니다..



무슨 교리든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세상에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말미암은 것으로 받으면 틀림이 없습니다. (영광 대결)





어떤 행실이든 이와 같은 경향성이 있다면, 그것은 선한 것이고 본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이름을 가리고, 그 영광을 다른 것에게 돌리고, 피조물을 영화롭게 하고,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폄훼하고,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이나 교황주의자들이나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이 하는 것처럼)



저항할 수 없는 효과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인간의 자유 의지와 본성의 능력을 고양하는 가르침은 하나같이 하나님에게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가진 본질적 존엄과 탁월함과 독립성과 성부와의 동등성을 훼손하는 어떤 교리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이런 가르침은 성부를 영화롭게 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으로 성자를 영화롭게 하게 하시는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7)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을 당신의 제일 되고 중심적인 일로 삼으십시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얼마나 절실한지 아십시오.



아들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요일 2:23절).





아들을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를 즐거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들이라는 제단 위에 드려지는 제물이라야 아버지께서 받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을 뵙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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