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축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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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 창세기 17 - 방주를 만들어라 (6:13-7:24절)(6:14절)
 이기남    | 2024·03·20 18:55 | HIT : 57 | VOTE : 5
* 창세기 17 - 방주를 만들어라 (6:13-7:24절)(6:14절)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나님께서 왜 「홍수 심판」을 결정하셨는지에 대해 배웠습니다(6:5-7절).



하나님은 자신이 만드신 사람이 더는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하셨습니다. 사람을 만들어 땅의 (대리) 통치자로 세웠던 것을 후회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으로 가득 채워야 할 땅을, 악한 행위로 가득 채웠습니다(6:5절). 폭력으로 가득 채웠습니다(6:13절).





악으로 가득 찬 세상, 폭력으로 가득 찬 세상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년)가 말했던 <만인 대 만인의 투쟁>(the war of all against all)이, <그 시대>에는 실제적으로, 그리고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사전을 보면, <폭력>(violence)이란 <남을 거칠고 사납게 제압할 때에 쓰는 주먹이나 발 또는 몽둥이 따위의 수단이나 힘>을 말합니다.



넓은 뜻으로는 <무기로 억누르는 힘>을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세상은 마치 상위 포식자가 하위 포식자를 잡아먹는 자연계의 먹이 사슬과 같이, 더 힘센 사람이 힘이 약한 사람을 거칠고 사납게 제압하는 일이 일상적인 세상이었습니다.





자연계에서 상위 포식자는 배고플 때만 사냥을 해서 하위 포식자를 잡아먹는데, 인간 세상에서는 그런 룰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폭력이 오락이요, 삶이요, 일상이 되었습니다.



국가가 있고, 법이 있는, 사회 계약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날의 사람들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사회였습니다.





폭력의 결과는 피흘림입니다. 폭력이 만연한 세상에서 땅은 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폭력으로 죽였을 때, 아벨의 핏소리가 땅에서 호소했는데, 이 시대에는 아벨처럼 죽은 <수많은 사람의 핏소리>가 땅에서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시대 사람들의 역사를 더는 진행시키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들의 역사를 끝내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결정을 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6:13절)





이 말씀대로, 노아의 나이가 600살이 되던 해에 홍수가 시작되었습니다.



성경은 홍수가 시작된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노아가 600살 되던 해, 둘째 달, 17일(7:11절).





그 날에, 땅 속의 샘이 열리고 하늘의 구름이 비를 쏟아부었습니다.



비는 땅 위에 40일 동안, 밤낮으로 쏟아졌습니다(7:12절). 비가 40일 동안, 그치지 않고 내려서 대 홍수가 났습니다(7:17절).





처음에는 계곡과 개울의 물들이 불어나 미친 듯이 흘러내렸습니다.



이어서 빗물을 머금은 땅들이 물러져 산사태가 일어났습니다. 흙더미에 섞인 나무들이 거센 물결을 따라 떠내려갔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물이 점점 불어 올라와 강물도, 냇물도 흐르지 않고 사방이 온통 저수지처럼 변했습니다. 그래도 비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물이 땅 위에 너무 많이 불어나서 하늘 아래의 높은 산들이 잠기게 되었습니다(7:19절).



그리고도 비가 더 내려, 산 꼭대기로부터 15규빗, 즉 6.75m까지 수면이 올라갔습니다.



이제 세상 그 어떤 것도 물에 잠기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땅 위에서 움직이던 생물이 다 죽었습니다..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서 기던 모든 것과 사람들이 다 죽었습니다(7:21절).



육지에 있는 모든 것 가운데, 코로 숨을 쉬던 모든 생물이 다 죽었습니다(7:22절).





그런데 이 가운데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과 생물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습니까?



<7장 23절>은 말씀합니다.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이것이 노아 시대 홍수의 결과에 대한 「성경의 보고서」 입니다.



<노아와 함께 방주 안에 있느냐, 아니면 노아와 떨어져 방주 밖에 있느냐> 하는 것이 사람과 생물의 생(生)과 사(死)를 갈랐습니다.





일반적으로 <홍수>는 자연 재해로 여겨집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땅속의 샘에서 물이 솟아오르는 것은 자연 현상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자연 현상을 이용해서 노아 시대의 사람들을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노아 시대의 홍수는 자연 재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노아와 함께 방주 안에 있던 사람과 생물 외에는 코로 숨을 쉬는 생물 중에 하나님의 심판에서 살아남은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살아남는 길은 오직 노아와 함께 방주 안에 있는 길 밖에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에 대한 성경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됩니까? 이 이야기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까?




1. 먼저, 하나님은 사람의 행위를 보시고 심판하시는 분이심을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행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노아 시대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기에 좋은 대로 행하며 살았습니다.



자신들이 가진 힘과 권력을 사용하여 자신들이 마음에 드는 여자는 누구든지 아내로 삼았습니다.





자신의 힘과 권력을 사용하여 마음대로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들의 폭력 행위를 중단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처럼 군림하며 세상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를 지켜 보고 계신 분이 있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를 다 보시고, 마침내 그 행위에 걸맞는 심판을 행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홍수로 쓸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행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행위에 대한 판단>을 내리십니다. 성경의 진리는 <언젠가는 모든 인생이 평가 받을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가인은 아벨을 죽인 행위에 대한 심판을 받았습니다. 노아 시대 사람들은 폭력으로 땅을 더럽힌 행위에 대한 심판을 홍수로 받았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행위를 보시고 심판하시는 장면이 수 없이 많이 나옵니다.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마 25장)를 통해 우리 인생의 전반에 대한 평가가 반드시 있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주인이 돌아와서 회계하는 날이 있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 날에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노아가 하나님과 함께 살았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평가를 의식하며 살았다>는 의미도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추상적인 일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행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평가자>가 계시다는 것을 믿고, 그분 앞에서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행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는 하나님을 믿어요. 나는 예수님을 믿어요.> 하면서, 간음을 행하고, 도둑질을 행하고, 탐욕을 부린다면 그의 믿음은 가짜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믿기에, 자신의 행위를 철저하게 반성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자기 죽음의 길을 기꺼이 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반드시 행위를 동반합니다. 노아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행위)을 살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폭력을 행하며 살 때, 노아는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일을 하고, 싫어하시는 일을 피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7절>은 노아의 삶을 한 마디로 이렇게 평가합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노아의 믿음은 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노아는 주변의 모든 사람과 달리 행동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폭력적으로 살 수 없습니다. 악을 밥 먹듯이 행하며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행위를 낱낱이 보시고 심판하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심판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은 그 삶의 행위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절)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절)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행위에 대해 판단하시는 분이 있고, 우리가 판단 받는 날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2. 다음으로, 하나님은 심판을 피할 길을 제시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그 심판을 피할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6장 14절>을 보십시오.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시고, 그 방주의 길이 너비, 높이와 함께 설계도를 구체적으로 지시해 주셨습니다(6:15,16절).





그리고 <6장 18절>에서 노아와 <언약>(ברית, 베리트)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방주로 들어가는 모든 사람과 생물을 살게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언약은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노아에게 사람과 생물이 살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해 주시고, <그 방법대로 하면> 반드시 살게 될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방주를 완성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방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방주로 들어가서 사람과 생물들을 온 땅 위에 살아남게 하라고 하셨습니다(7:1-3절).





그 때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쉬운 성경) “내가 보기에 이 세대에는 너만이 내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다.”(7:1절)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 노아에게 심판을 피할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대로 행했고, 홍수 심판에서 자신이 살 뿐 아니라, 수많은 생명체들을 살렸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길을 제시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의로운 사람이 되어, 하나님이 제시한 길로 가는 것입니다.> 이 말은 앞뒤를 바꾸어 말해도 맞습니다.



<하나님이 제시한 길로 가는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의로운 사람만이 하나님이 제시한 길로 가고, 하나님이 제시한 길로 가는 사람만이 의로운 사람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 의로운 사람은 누구입니까? <로마서 3장 21-24절>에서 누가 의로운 사람 인가를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쉬운 성경) “그러나 이제는 율법 없이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가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율법과 예언자들도 증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옵니다. 이 의는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며,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시는 속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는 판단을 받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의」입니다. 누구든지 이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는 판단을 받습니다.





이것은 마치 법정에서 판사가 최종 판결을 선고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노아처럼 우리도, 의롭다는 판단을 받고, 심판에서 피할 길을 얻습니다. 누구든 예외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죄의 인정과 회개,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믿음은 반드시 그에 걸맞은 행위를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죄의 인정과 회개를 낳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죄를 인정하고, 죄를 회개하게 됩니다.






3.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최종 결정권자로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를 들었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을 쓸어 버릴 홍수는 노아뿐 아니라, <그 당시> 인류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홍수였습니다.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는 경고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오직 믿음만 필요합니다.>



인간의 이성이나 추론이나 경험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경고를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순종해서 그의 가족과 생물들을 구원할 방주를 지었습니다.





“왜 굳이 고페르 나무로 지어야 하나요? 여기저기에 흔한 나무로 지으면 안 되나요? 방주의 규모가 너무 커서 힘에 벅찬데 좀 더 작게 만들면 안 될까요?



제 경험으로 배는 앞이 뾰족해야 될 것 같은데, 방주처럼 만들면 안되지 않나요? 잠깐만요, 하나님. 제 생각에는....”



노아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6장 22절>에 보면, 노아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모든 일을 했습니다.



<7장 5절>에도 보면, 노아는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모든 일을 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최종 결정권자로 인정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이나, 이성으로 판단하여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하나님 대신 자신이 최종 결정권자가 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기꺼이 하나님의 말씀의 준행자(follower)로 살았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믿었기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자신이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해되어야 믿을 수 있다고 말하곤 합니다. 물론 믿는데 있어서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이 말한대로, 성경 말씀은 이해하고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나서 이해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베드로의 고백,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요 6:69절)





예를 들어,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 학교 앞의 가게에서 군것질을 하지 못하게 하는지, 왜 나쁜 친구와 어울리지 말라고 하는지, 왜 게임을 그만하고 일찍 자라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런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면, 철이 들면 부모를 이해하게 됩니다.





부모가 보는 세상과 어린 아이가 보는 세상이 이렇게 다른데, 하물며 하나님이 보는 것과 우리가 보는 것은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의 1년 2년, 10년 20년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태에서 지음 받기 전부터>, 「전 인생과 영원까지 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최종 결정권자이심을 믿고, 그 분의 결정이 항상 선하심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준행자(follower)가 되어야 합니다.



취사 선택해서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노아처럼 모든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대한 하나님이 경고를 들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순종해서 그의 가족을 구원할 방주를 지었습니다. 방주를 짓는 동안 세상이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전했습니다.





우리도 노아처럼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대한 하나님이 경고를 받았습니다(히 9:27절, 고후 5:10절, 벧후 3:3-14절).





우리도 노아처럼 방주를 지어야 할까요?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이미 예비해 주신 「구원의 방주」(the Ark of salvation) 되시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믿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게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을 최종 결정권자로 모시고 말씀의 준행자(follower)로 산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평가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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