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축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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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 마태복음 42 - 손을 씻듯 마음을 씻자 (15:1-20절)(20절)
 이기남    | 2024·03·21 10:09 | HIT : 66 | VOTE : 6
* 마태복음 42 - 손을 씻듯 마음을 씻자 (15:1-20절)(20절)





코로나 19 팬데믹을 지나면서 마스크와 손 씻기는 생활의 필수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저에게 있어서 손 씻기는 어려서 부터의 철저한 일상이었습니다. 밖에 나갔다 들어오거나, 식사 전에는 반드시 손을 씻었습니다.





손을 열심히 씻으니 자주 걸리던 감기도 걸리지 않고, 물론 코로나 예방도 됩니다.



의사들의 말에 의하면, 손 씻기만 잘해도 질병의 70%, 식중독의 30%를 줄일 수 있고 심지어 암도 예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손을 씻습니다.





그런데 우리와는 사뭇 다른 이유로, 열심을 넘어 강박적으로 보일 정도로까지 손을 씻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입니다.





그들의 탁월한 손 씻기 습관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마가복음 7장 3,4절>을 보십시오.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여기서 보면, 손 씻기 생활화가 바리새인들에게만 아니라 모든 유대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손만 씻은 것이 아니라, 외출하고 돌아와서는 몸을 씻고, 이미 씻어 놓은 밥그릇까지 씻고 또 씻었습니다.




그들은 왜 이렇게 씻고 또 씻었을까요? 무슨 전염병이라도 돌았던 것일까요? 아니면, 청결 강박증에라도 걸렸던 것일까요?




오늘 본문 <2절>에서,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항의하며 말합니다.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여기서 볼 때, 그들이 이렇게 열심히 손을 씻는 것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기 위한 행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토록 철저히 지키고자 하는 ‘장로들의 전통’(the tradition of elders)이란 무엇일까요?





‘장로들의 전통’은 오늘 본문 말씀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합니다.




먼저, 장로들은 누구일까요? 장로란 사전적으로 ‘길게 오래 살아서 늙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영어 성경에는 ‘elders’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장로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연세가 많은 어른이면서, 특별히 율법에 능통한 종교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장로 교회의 장로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이들의 율법에 대한 해석은 유대교 내에서 공적인 권위를 가지는 것으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해석은 유대인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와 하나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권위 있는 해석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율법에 대한 해석은 그야말로 해석일 뿐입니다.



하나의 해석은 더 좋은 해석이 나오면 언제든지 수정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장로들의 해석이, 변개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절대적인 것으로 위상을 높이게 됩니다.


후대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심지어 이 해석의 절대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이것들도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것이다’ 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물을것입니다. “그런데 그 율법은 왜 기록되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책으로 기록하지 말고 암송해서 가르치라고 명령하셨다. 하나님이 기록을 금하셨기에 책이 없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기록된 율법인 ‘성문 율법’(written law, 모세오경)에 대비해서, ‘구전 율법’(oral law)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니까 구전 율법은 성문 율법에 대한 세세한 해석(생활 규칙)으로서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둘레에 쳐진 ‘울타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울타리가 너무 두껍게, 너무 높이 쳐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율법은 가려지고 울타리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교가 바로 그런 꼴이었습니다.




이로 볼 때, 바리새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단순히 ‘전통’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은 제자들은 그들에 의하면 하나님의 법을 어긴 중대한 일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장로들의 전통을 중시하는 그들이 가진 치명적인 문제를 지적하십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3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6절>에서도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예를 드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 중 제 5계명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 20:12절, 신 5:16절)고 말씀하셨고,



여기에 덧붙여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출 21:17절)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부모를 존경할 뿐만 아니라 부모를 돌보고 부양하라는 명령입니다.





반면에 부모를 저주한다는 것은 말 뿐만 아니라 실제로 부모 부양을 거부하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직접 하신 명령입니다.




그런데 ‘장로들의 전통’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드리려던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고 하면, 자기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서 널리 행해졌던 ‘고르반’(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 전통입니다(막 7:11절).





이렇게 함으로써 유대인들은 어떤 물질을 자기가 여전히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부모에 대한 부양 의무를 면제 받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부모를 부양하는 의무를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런 전통이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람들은 본래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소중한 예물을 먼저 하나님께 바치려고 하는 좋은 취지에서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전통은 부모 부양 의무 회피용으로 악용되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고 어기게 만드는 전통이 되었습니다.




전통을 빌미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있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실체를 발가벗겨 놓는 말씀을 예수님은 하십니다. <7-9절>을 보십시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NIV) You hypocrites! Isaiah was right when he prophesied about you:



"'These people honor me with their lips, but their hearts are far from me. They worship me in vain; their teachings are but rules taught by men.'"




그들의 문제는 위선입니다. 입술과 마음이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고백과 삶이 따로 놀았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마음과 삶은 하나님의 가르침과 멀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사람의 계명(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대체했기 때문입니다.



전통을 하나님의 계명처럼 여길 때, 전통을 잘 지켜 사람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위선적인 신앙 생활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위선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전통보다 언제나 앞세워야 합니다.





우리의 성경 공부가 ‘하나님을 공경(예배)하기 위한 성경 공부’가 되어야지, ‘전통을 강화시키는 성경 공부나 역사를 이루기 위한 성경 공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전통을 존중하되 전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지하는 좋은 전통은 잘 지키고 계승하되,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거나 억압하는 전통은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늘 돌아가는 사람은, 전통에 매이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을 잘 살펴야 합니다.



전통 즉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기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하나님께 대한 공경으로 신앙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공부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늘 마음이 하나님께 향하도록 기도 생활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코로나 19 기간을 보내면서, 마음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목사님이나 다른 성도들의 눈치를 봐서라도 신앙 생활을 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기간 동안은 눈치 볼 일이 없었습니다.





성경 공부를 하지 않아도 누구 하나 눈치 주지 않습니다. 말씀을 나누지 않아도 누구 하나 눈치 주지 않습니다. 심지어 예배에 나오지 않아도 누구 하나 눈치 주지 않습니다.




마음이 없으면 신앙 생활에 소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자유로운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입술로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했다면, 이제는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는지 점검해 볼 때입니다.





아무도 옆에 없어도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지,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펼쳐 볼 수 있는지,



모임이 없어도 하나님 앞에 나가 기도할 수 있는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영혼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돕고자 하는지, 그 모습이 나의 적나라한 수준입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다시 출발해야 합니다.



목사나 집사 권사와 같은 교회의 직분이라든가,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타이틀 속에 가려진 모든 것을 벗고, 하나님 앞에서 있는 모습 그대로 출발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실한 모습입니다. 위선의 껍질을 벗어 던진 모습입니다.





사실 이것이 코로나 19 시대를 거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적인 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함을 탓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죄악을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위선’입니다.





위선자는 하나님도 어쩌실 수가 없습니다. 이사야 시대의 백성들이 그러했고, 예수님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그러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NIV) He replied, "Every plant that my heavenly Father has not planted will be pulled up by the roots.



Leave them; they are blind guides. If a blind man leads a blind man, both will fall into a pit."




사람이 만든 전통은 결국 다 뽑혀 사라지지만, 하나님이 심으신 계명은 영원히 남습니다.



전통을 가르치는 모임은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회는 영원합니다.



위선자들은 다 뽑혀 버리지만, 마음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그런데 마음에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깨끗함’의 본질을 이해해야 합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모두 뱃속으로 들어갔다가, 뒤로 나가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만들지 못합니다.





씻지 않는 손으로 음식을 먹으면, 세균이나 바이러스에게 감염되어 고생할 수는 있어도 신앙적으로 더러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손을 씻고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정결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더러운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들이 무엇입니까? <18-20절>을 보십시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NIV) But the things that come out of the mouth come from the heart, and these make a man 'unclean.'



For out of the heart come evil thoughts, murder, adultery, sexual immorality, theft, false testimony, slander.



These are what make a man 'unclean'; but eating with unwashed hands does not make him 'unclean.'"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합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입에서 나오고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히는 일곱까지 예를 드십니다.



악한 생각(남을 해치려는 생각), 살인(사람을 죽이는 것), 간음(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성관계를 가지는 것), 음행(모든 종류의 성적 부도덕),



도둑질(다른 사람의 소유를 빼앗는 것), 거짓말(자기 이익이나 타인의 명예 훼손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 비방(하나님에 대한 모독).




그런데 이것들은 십계명 중 제 3 계명과 6계명에서 9계명과 관련이 있습니다. 십계명 전체와 관련된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즉 사람의 마음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히는 것들은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을 어기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것을 어기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것을 말로 내뱉는 사람을 더러운 사람으로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살인하지 말라“ 하셨는데, 이 명령을 어기고 살인하는 사람(예수님은 다른 사람을 욕하는 것도 살인에 해당된다고 하심)은 더러운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간음하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것을 어기고 올바르지 않는 성적 관계를 맺는 사람이 더러운 사람입니다.





오늘날 문란한 성관계를 더럽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더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하셨는데, 이 명령을 어기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은 더러운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셨는데,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은 더러운 사람입니다.




말씀이 제시하는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의 기준이 사람들의 전통과 다릅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기준보다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손을 씻는다고 깨끗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위생적으로 깨끗해 질 수 있는 것이지, 하나님 앞에서 깨끗해 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깨끗해 지려면,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들을 마음에서 동의하고 실제 삶에서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시편 119편 9,10절>에서 말씀합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쉬운 성경) 젊은이가 어떻게 그의 길을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까? 주의 말씀에 따라 살면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마음을 다해 주를 따르렵니다. 내가 주의 말씀에서 떠나지 않게 하소서.





(NIV) How can a young man keep his way pure? By living according to your word. I seek you with all my heart; do not let me stray from your commands.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속죄의 피가 우리의 마음을 깨끗케 합니다. <히브리서 9장 14절>을 보십시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NIV) How much more, then, will the blood of Christ, who through the eternal Spirit offered himself unblemished to God, cleanse our consciences from acts that lead to death, so that we may serve the living God!




이처럼 우리에게는 손 씻는 전통이 아닌, 마음을 씻는 복음의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면 우리는 깨끗케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깨끗한 사람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신앙 생활의 핵심은 ‘깨끗함’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거룩’이라고 표현합니다.



구약 백성들은 깨끗하지 않으면 성전 예배에 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각종 정결 예식을 행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물로 씻는 것이 자신을 깨끗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시편 기자가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이 깨끗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신약 백성인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깨끗하지 않으면 위선자가 되기 쉽습니다. 깨끗하지 않은 자가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없습니다.





성경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 17:9절)고 말씀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마음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 앞에 깨끗한 마음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을 깨끗이 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을 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심을 확신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전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손을 씻어서 깨끗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하게 됩니다.



우리들은 손을 씻듯이 마음을 씻어야 합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듣고 사랑하고 순종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으로부터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깨끗한 사람들로 인정해 주시고 받아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 주시고, 그분의 풍성한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손을 씻듯이 마음을 씻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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