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축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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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하나님의 구원 계획 3 -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의 구원 (창 3:1-24절)(15절)
 이기남    | 2024·04·02 22:18 | HIT : 63 | VOTE : 6
* 하나님의 구원 계획 3 -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의 구원 (창 3:1-24절)(15절)





오늘 말씀에서는, 인간이 사탄의 유혹에 넣어가 하나님의 명령을 배약하고 타락하여 비참한 상태에 빠지는 과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새로운 언약을 세우시고 구원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1. 창세기 3장 1-6절, 인간의 타락..



<창세기 3장 1-6절>에서는 인간이 어떻게 타락하였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어긴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었느냐 안 먹었느냐 하는 행위 이전에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지 않았고 뱀의 유혹하는 말을 더 믿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을 믿는 믿음이었지만, 그들은 언약을 믿지 않았고 오히려 뱀의 말을 믿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언약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한 것입니다.





그들이 범죄한 목적이 "하나님과 같이 되어"(5절) 라고 합니다.



왕과 백성의 관계는 다스림과 순종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속박으로 여기고 끊어버린 것입니다.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반역하는 행위였습니다.





또 성경은 이를 가리켜 정절을 지키지 않은 "음녀"(호 3:1절)와 같다고 하십니다.



이는 결혼 관계의 사랑의 언약을 어기고 하나님이라는 남편을 버리고 사탄이라는 정부를 따라 가버린 음녀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타락시킨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아 만물을 다스릴 왕적 권세를 가진 인간을 자기의 종으로 삼음으로 그 지배권을 빼앗고 하나님의 나라를 파괴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탈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사탄의 최종 목적은 하나님 나라를 파괴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거기에 동조하였고 결국 하나님의 계획을 대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근본적인 싸움은 하나님 나라(생명의 나라, 은혜의 나라) 와 사탄의 나라(사망의 나라, 죄의 나라) 사이의 싸움인 것입니다.





인간은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누구에게 쓰임 받는지 그 운명이 결정지어집니다. 그 이유는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언약을 지킴으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한 것이고,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생각을 가지고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반역 행위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셨던 만물을 다스리는 왕적 권세를 사탄에게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일생 동안 죽기를 무서워함으로 종노릇하는 사탄의 노예가 되었고,



또 모든 만물을 대표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적 복을 잃어버리고 짐승과 버러지 형상의 우상을 섬기는 자로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2. 창세기 3장 7절, 무화과 나무 잎으로 치마를 해 입음..



그들은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는 사탄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을 따먹었지만,



결과적으로 영적 눈은 어두워지고 육적 눈은 밝아져서 육신의 벌거벗음을 깨닫고 그것을 가리기 위해서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해 입었습니다.





3. 창세기 3장 9,10절, 벌거벗었으므로 숨음..



범죄한 그들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8절) "네가 어디있느냐"(9절), "네가 먹었느냐"(11절)고 물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촉구하시는 부르심이었고, 지금 하나님과 관계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깨닫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이 찾으시는 일은 전 역사를 통해 계속 반복되고 있으며,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구원에 목적이 있지 심판에 목적이 있지 않는 것입니다.



심판이 목적이라면 찾아오실 필요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성경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일해오심을 기록해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책인 것입니다.





아담은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10절)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 죄인의 상태를, "벌거벗은 것"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벌거벗었다는 것은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며, 죄를 지은 상태를 나타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벌거벗음"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과 관계는 인격적 교제의 대상이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고, 피하여 숨게 된 것입니다.





언약을 어긴 인간으로서는 자신들이 저질러 놓은 엄청난 죄에 대한 결과를 해결할 길이 없었고, 다만 "피하여 숨을"뿐이었습니다.



벌거벗은 상태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8절>에서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하는 말은 같은 의미인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과 관계가 훼손된 인간에게는 인간관계에서도 심한 손상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죄가 들어온 인간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려 하지 않고 죄를 합리화하고 또 책임을 전가합니다(3:12절). 이것이 인간의 공통된 심리입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분명한 것은 범죄한 인간이 자력으로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4. 로마서 5장 12절, 모든 사람이 죄를 지음..



성경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절)고 말합니다.





이 말은 아담이 범죄함으로 죄가 모든 인류에 미쳤다는 대표성의 원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은 인류의 조상으로, 인류를 대표해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고, 그런 아담이 죄를 지었습니다.





이것은 전 인류를 대표해서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후손 모두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은 것과 같으며 그로인해 모두 정죄받게 되고 또 부패성이 전이된 것입니다.





또 아담이 지은 죄가 무엇입니까?



세상에 많은 죄가 있지만 죄는 두 종류 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죄 즉 불경건의 죄와, 이로 말미암아 파생되는 불의 곧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죄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죄라고 말하면 곧장 도덕적, 윤리적인 죄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은 죄에 대해서 무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것이며 곧 불신앙 과 불순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 대한, 하나님의 언약과 사랑에 대한, 불신이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어"(창 3:5절)라는 교만의 죄를 지은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 저버리고 영광을 스스로 차지하려는 불신앙 이었습니다.





모든 죄와 문제의 근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죄는 그 다음에 오게 된 것입니다.





도덕적인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 파괴로 인해 파생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죄들인 것입니다.





성경은 죄의 결과는 사망이라고 합니다(롬 6:23절).



죽음이란 생명의 근원인 뿌리와 단절된 상태를 말합니다.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절)는 언약에 따라 하나님과 단절됨, 곧 죽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것 같으나 실상은 생명은 이미 끊어진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과 분리 된 죽은 상태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5. 창세기 3장 24절, 쫓겨남..



하나님은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에덴 동산에서 추방하셨습니다.





그들이 추방당한 이유를 <고린도후서 6장 14절>에서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라고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의로우신데 아담과 하와는 언약을 어김으로 죄를 범하고 불법이 되었다는 말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신데 아담과 하와는 언약을 어기고 죄를 범함으로 어두움이 되었다는 말인 것입니다.





의와 불법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빛과 어두움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어두움을 빛 가운데 끌어다 놓아도 사라져버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추방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 추방 당한 인간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의로워져야 하는데,



범죄하여 사망에 이른 인간은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없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의롭게 해주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어두움이 빛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 스스로 빛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두움이 된 인간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빛을 비쳐주셔야만 하는 것입니다(고후 4:6절).





여기에서 모든 인류에게 나타난,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있어서 해결해야 할 난제는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 언약을 어김으로 "허물과 죄로 죽은 자"(엡 2:1절)들이 어떻게 살아날 수가 있는가?>



<둘째 죄로 말미암아 "벌거벗고 쫓겨난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난제를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6. 창세기 3장 15절,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심..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추방당하는 아담과 하와에게 그들을 찾아 구원하여 재창조의 역사를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여 주셨는데 이것이 <창세기 3장 15절>입니다.





이를 원복음이라 하는데, "내가... 하리니" 라고 하심으로 구원 사역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창조시에만 주도권을 가지시고 역사하신 것이 아니라 구속의 역사에서도 주도권을 가지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역사의 진행은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류를 위해 어떻게 경영해 나가실 것인가를 계시해 주시는데 바로 언약을 통해서 경영해 나가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창세기 3장 15절>은 세 마디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 이제부터는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이렇게 두 편, 두 부류로 갈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이렇게 둘로 갈라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지금 지구상에 250개 정도의 나라, 수많은 민족이 살고 있지만 영적 원리로 하면 두 나라, 두 민족만 있을 뿐입니다.





이처럼 아담 하와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여인의 후손과 뱀의 후손, 두 편으로 갈라졌다는 것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둘째, 둘로 갈라진 것만이 아니라 두 편으로 갈라져 "원수가 되게 하리니" 곧 적대감, 즉 영적 싸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이 싸움은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함으로 여자의 후손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원복음은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두 편으로 갈라지고 그 둘 사이에는 싸움, 영적 전쟁이 있게 되며, 이 싸움은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함으로 끝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뱀(사탄)의 후손도 만만하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뱀(사탄)의 후손이 여자의 후손의 발뒤꿈치를 물어 뜯는 '최후의 발악을 하게 될 것이다' 라는 말입니다.





왜 하나님은 두 진영으로 나누고 적대감이 있게 하십니까?



범죄한대로 그대로 나두면, 하나님의 공의대로 앞으로의 모든 인류는 하나님과 원수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으로 하여금 사탄과 원수가 되게 하므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즉 관계를 회복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류가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으로 나누어지는 것도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거나 인간의 노력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종래는 여자의 후손으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입니다.



핵심은 여자의 후손으로 하여금 사탄을 정복케 하고 인류를 구원해 주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7. 창세기 3장 21절, 가죽 옷을 입혀주심..



<창세기 3장 21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3장 7절>에 의하면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하고 스스로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고 말합니다.



원래 그들은 벌거벗었어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고 두려워 숨지도 않았습니다(2:25절).





그런데 무화과 잎을 엮어 치마를 해 입었으면서도 "벗었다고" 말하고 "두려워하여 숨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행위(무화과 나뭇잎 치마)와 노력으로는 죄를 가릴 수가 없었음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혀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란 우리의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셔서, 의로우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일하심'인 것입니다.





가죽 옷을 만들기 위한 가죽을 얻기 위해서는 짐승의 죽음이 있어야만 합니다.



죄는 아담 하와가 범했는데, 그들의 벌거벗은 수치를 가려주기 위해서, 죄 없는 짐승이 죽은 것입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절)



가죽 옷은 인간의 허물을 가려주기(의롭다고 여겨주심) 위해서 대신 죽을 어린 양 되시는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추방을 당하지만 언젠가는 하나님이 만드신 의의 옷을 입혀주어 돌아오게 해주시겠다는 뜻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8. 로마서 1장 17절, 복음에는 의가 나타남..



여기서 성경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교리를 깨닫게 됩니다.



<로마서 1장:17절>에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합니다.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복음이란 글자 그 뜻대로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기쁜 소식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쫓겨난 인간이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인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소식 중에 가장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는 소식입니다.





인간이 범죄함으로 불의한 자가 되어서 하나님을 떠나, 비참함에 빠져 고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고난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소식, 이 소식이 가장 기쁜 소식, 곧 복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 앞을 떠난 것은 범죄함으로 불의한 자가 되었기 때문이었고, 그러므로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의로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18절-3장 20절>까지 죄론을 말합니다.



<3장 21절>에서 다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죄라고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의의 옷을 만들어서 그것을 입혀주신다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벌거벗은 것을 하나님이 가리어 주신다는 말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벌거벗은 것을 스스로 가리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만들어 입은 옷을 입고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죽 옷을 입히신 것입니다. 이것은 먼 훗날 하나님의 의가 나타날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벌거벗어서 쫓겨난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가죽 옷을 입어야 하고 이 가죽 옷이 하나님이 마련하신 의의 옷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는 것이 복음,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할 수 있었던 일은 하나님이 만들어서 입혀주실 때 감사함으로 받아 입는 것 곧 믿음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만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9. 창세기 3장 20절, 하와라 이름을 지음..



<창세기 3장 20절>에서는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뜻만이 아니었습니다. 하와라는 말은 "생명"이라는 뜻으로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된다는 말입니다.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선언하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추방되는,



모든 것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자기 아내에게 "생명의 어머니"라는 희망적인 이름을 지어줄 수 있을까요?





이는 하나님의 심판 중에도 여인의 후손을 주셔서 뱀의 후손(사탄)을 멸망시키고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원복음을 이해하고, 깨닫고, 믿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라는 "언약의 줄"을 끊어버리자마자 하나님은 "은혜"라는 줄로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연결시켜주신 것입니다.





아담이 에덴에서 추방당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아내의 이름을 하와 곧 "당신은 산자의 어미"라고 이름 했다는 것은 원복음을 이해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인간은 원복음을 통해서 관계를 유지하게 될 것이고, 사탄은 여자의 후손에 의해서 멸망당하게 될 것을 선고 받고 여자의 후손들을 대적하게 될 것입니다.





아담은 인류의 시조로서 원죄를 가져온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아담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최초로 원복음을 듣고 이해하고 믿고 전해준 자라는 점을 인식한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10. 이사야 48장 11절,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그러면 왜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을 어기고 범죄하여 하나님 앞에서 쫓겨난 인간을 다시 돌아오게 하시는 것일까요?



이것은 성경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중요합니다.





<이사야 48장 11절>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내가 나를 위하며 내가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먼저 아담이 범죄함으로 발생한 최우선적인 문제는 하나님의 이름과 영예가 손상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시던 하나님 나라가 악한 사탄에 의해서 저주가 들어오고, 사망이 들어오고, 가시와 엉겅퀴가 생겨나고, 아주 엉망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당하게 되고, 명예에 손상이 온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나를 위하여 내가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왜 중요합니까?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는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명예가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셔서 구원해 주십니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도 아니고 또 이것이 먼저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나를 위해서 이를 이룰 것이라.' 하나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되고 명예가 회복되는 구원 계획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사탄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탈하려고 하지만, "그러나 내가 결단코 그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위하며, 내가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하고 말씀하시고,



주님께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절) 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하나님은 재창조의 역사를 시작하시고 그것을 이루어가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이를 이루리라고 하십니다(사 9:7절).





11. 두 종류의 가리개..



<창세기 3장>에서는 두 종류의 가리개가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그들의 벌거벗은 것을 가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부르셨습니다.





그때 무화과 나뭇잎으로 만든 옷을 입고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무화과 나무 잎으로 만든 것은 아담 하와가 스스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것으로는 그들의 벌거벗은 것을 가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신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만들어 입혀주신 가죽 옷과 스스로 가리어보려고 자신이 만든 무화과 나무 옷, 이 두 종류의 가리개가 대조 되어있습니다.





무화과 나무 잎으로 만든 것은 인간이 자력으로 구원을 얻어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는 죄를 해결할 길도, 가릴 길도 없어서 하나님이 가죽 옷을 지어 입혀 주신 것입니다.



(참고: 이사야 64장 6절, 더러운 옷, 잎사귀같이 시드는 것, 이사야 61장 10절, 구원의 옷, 공의의 겉옷)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범죄한 인간이 자력으로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3장>을 인간 중심으로 보면 타락 장이 되지만, 하나님 중심으로 보면 은혜 장이 되는 것입니다.





<3장>을 타락 장으로 보는 것은 인간이 무엇을 행했느냐 하고 인간 중심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타락하는 기사는 <1-7절>까지, 일곱 절에 불과하지만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첫 복음을 주시는 둥 하나님이 행하는 기사는 <8-24절>까지로 분량도 3배나 됩니다.





그러므로 타락만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워주신 은혜에 더욱 초점을 맞춰야 당연합니다.





12. 천국의 삶이란..



하나님을 떠나기 전에는 인간은 천국의 삶을 누리고 살았던 것입니다.





천국의 삶은, 첫째 하나님이 주신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공급으로 풍성함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삶입니다.



넷째 하나님과 교제하며 함께 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타락하여 하나님을 떠남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한마디로 고난이 시작된 것입니다.





인간에게 나타난 고난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권세의 부족함입니다. 둘째는 물질(부)의 부족함입니다. 셋째는 즐거움의 상실입니다.





이 부족함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인간은 이 땅에서 눈물과 땀을 흘리며 수고하고 있지만 인간의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시작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오직 한 길은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력으로 하나님께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고 돌아오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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