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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구속사적 성경 개론 16 - 느헤미야 (6:15,16절)(16절)
 이기남    | 2024·04·06 10:36 | HIT : 67 | VOTE : 7
* 구속사적 성경 개론 16 - 느헤미야 (6:15,16절)(16절)







「느헤미야서」의 주제는 <느혜미야의 성벽 복원과 에스라의 정화 운동>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은 3차에 걸쳐서 이루어졌습니다.





제 1차는 스룹바벨의 주도하에 이루어졌으며 이들에 의해서 제 2의 성전은 재건 되었습니다.



제 2차는 약 80년 후에 에스라의 주도하에 귀환하여 개혁 운동을 전개하였고,



제 3차는 그로부터 13년 후에 느헤미야의 인도로 이루어져서 성벽을 복원하는 역사를 합니다.





학자 에스라는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에 동시에 등장하는데, 연대를 감안할 때 느헤미야와 동역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7장>까지는 느헤미야가 주도한 성벽의 복원 역사이고, <8-13장>까지는 에스라가 주도한 언약 갱신과 부흥 운동입니다.





고대 세계에서 성벽(城壁)은 그 성읍의 존립을 좌우하는 기능으로 대외적으로 외침(外侵)을 막고, 대내적으로는 하나의 공동체로서의 결속(結束)을 촉진시켜 주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독려하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2:17절)고 독려합니다.





성경 66권 중에서 느헤미야서 만큼 역동적(力動的)이고 긴장감이 넘치는 그런 책은 달리 없습니다.





느헤미야서는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도전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성벽을 중건하면서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뢰합니다.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로 의뢰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며(1:4절),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2:4절),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4:4절),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로 말미암아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4:9절),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사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5:19절),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6:9절),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곧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들의 소행을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6:14절)는 기도의 사람이요, 호흡하듯이 기도를 생활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느헤미야는 기도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 때로부터 내 수하 사람들의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민장은 유다 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성을 건축하는 자와 짐을 나르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건축하는 자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4:16-18절)고 역사(役事)를 했습니다.





심지어 잠을 잘 때도 "우리가 다 우리의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각각 병기를 잡았느니라"(4:23절) 합니다.





얼마나 역동적이고 긴장감이 넘치고 있습니까?





이처럼 느헤미야는 상상을 초월하는 대내외적인 방해와 반대를 무릅쓰고 악전 고투 끝에 52일이라는 최단(最短)시일 내에 성벽 복원을 완성합니다.





이처럼 만난을 극복하고 최단 시일에 완공할 수 있었던 것은 에스라서에서 역사하시던 여호와의 「선한 손」이 역사하셨기 때문이라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셨다(2:8,18절)라고 느헤미야는 증언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4:20절) 합니다.





방해하던 대적들까지도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느 6:16절)고 인정합니다.





그렇다면 성벽을 쌓는 일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이 대목을 상고하면서 신약 성경 에베소서를 연상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에베소서의 주제를 "교회론"이라고 말하는데,





<1장>에서는 교회 건설에 필요한 재목들을 준비하는데 하나님은 택하시고, 택하신 자들을 그리스도께서 값을 주고 구속하시고, 성령님은 소유의 인을 치심으로 준비합니다.





<2장>에서 그 재목들은 "서로 연결하여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지어져(2:21절) 갑니다.





<3장>에서는 봉헌식에 해당되는 기도를 드리는데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합니다.





이렇듯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 건축(교회)을 마친 후에,



마지막 장에서는 "끝으로 ...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엡 6:10,11절)고 명하는 구조(構造)로 되어있는데,



이는 마치 마지막으로 성벽(城壁)을 쌓는 일에 해당된다고 하겠습니다.





믿음의 방패와 성령님의 검을 가지라고 명합니다.





<느헤미야서 4장>에 보면 "그 때로부터 내 수하 사람들의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다"(16,17절)고 말씀합니다.





만일 교회에 성벽 역할을 하는 이러한 영적 경계가 없다면, 사탄의 공격에 어떻게 되겠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에스라서에서 성전(聖殿)이 중건되고 느헤미야서에서 성벽(城壁)이 복원되는 것으로 구약의 역사가 끝맺고 있음은 시사해 주는 바가 큽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대외적으로는 외침을 막고 대내적으로는 선민으로서의 성별(聖別)을 지키면서 오실 메시아를 대망해야 했고,



신약의 성도들은 외적으로는 마귀의 궤계를 대적하면서 내적으로는 서로 사랑하면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유념해야 할 점은 "성벽"이 외침을 막는 방파제와 같다면 개혁은 교회의 내적인 누룩을 제거하는 성별이라는 점입니다.





만일 성벽을 높이 쌓은 내부에서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게 된다면 그것은 외침보다도 더욱 치명적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벽은 내적으로 거룩과 성결이 유지되는 한에서만 유용한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성벽이 완성된 후에 <8장>에서부터는 제사장 에스라가 주도한 회개 운동과 언약 갱신이 전개되는데 이는 육적(肉的)인 재건에서 영적인 재건(再建)으로의 전환인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왔습니다.





"새벽부터 정오까지"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습니다(8:3절). 백성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고(8:7절), "해석하여"(8:8절) 주었습니다.





"이 날에 낮 사분의 일은 그 제 자리에 서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의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9:3절)하였다고 말씀합니다.





<9장>에는 에스라가 대표로 드렸을 기도가 나오는데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우리가 오늘날 종이 되었는데"(9:36절)하고 바벨론에 포로가 되기까지의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진술 하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 인간은 얼마나 성실하지 못했는가를 회개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봉하나이다"(9:38절)고 그의 기도는 결단(決斷)과 헌신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견고한 언약"을 세웠다고 말씀합니다. 영적 성벽을 견고히 쌓은 것입니다.





그리고 인친 사람들의 명단을 열거하고 있는데 이것이 언약 갱신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서의 마지막 장은 그들이 쌓은 성벽이 다시 허물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바사로 돌아 갔다가 10여년 만에 재차 귀환해 보니 그들은 굳게 세운 언약을 지키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라기 선지자를 세우셔서 경고하신 것이 이때입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서의 상황과 말라기서의 견책이 부합하고 있는데, 그들이 파기한 언약(13:29절, 말 2:8절)은,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였고(13:15-22절), 십일조를 드리지 아니하였고(13:10절, 말 3:8절), 다 이방 여인과 통혼하였고(13:23절, 말 2:11절),



제사장 직분을 더럽힘으로(13:29절, 말 1:6절) 예배를 경멸이 여기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죄 등이었습니다.





그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주던 성벽은 다시 무너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도 인간의 자력 구원의 불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사서를 상고해 보면 "해피 앤딩"으로 끝나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통일 왕국이 분열 왕국이 되었다가 멸망하는 왕국이 되고 맙니다. 포로에서 귀환한 후에도 또다시 타락하는 것을 봅니다.





구약 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서는 어떠합니까?



얼마나 부패했으면 하나님께서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말 1:10절)고 말씀 하시겠습니까?





인간의 자력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전적 타락, 전적 부패한 인간의 무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 율법은 구원만이 아니라 성화도 주지 못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별의 삶도 "사랑의 줄" 곧 은혜로만이 가능하여진다는 점을 명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느헤미야서는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13:31절)라는 언급으로 마치고 있는데 무슨 뜻입니까?



자신이 쌓은 성벽과 개혁의 수고가 헛된 대로 돌아가지 않게 해달라는 탄원입니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성경은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 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한고로"(겔 22:30절)라고 말씀합니다.





느헤미야 뿐만이 아니라 인간 누구도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사 59:16절) 한 하나님 자신이 친히 나서신 것이 "임마누엘" 사건입니다.





이점을 말라기서 에서는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4:2절) 라고 예언하고 있는데 이것이 문제에 대한 해답(解答)인 것입니다.





느헤미야서도 독자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초등교사 역할을 합니다.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사 26:1절),



예수 그리스도만이 성이 무너진 데를 막아설 중보자시오, "구원의 성벽과 외벽"이십니다.







이 종말론적인 시대에 유일한 소망으로 남아 있고 최후의 보루인 교회의 성벽이 붕괴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가정은 안전합니까? 우리의 마음을 지켜 줄 성벽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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