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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15일 주일 설교 - 지금은 기도할 때입니다 (빌 4:6-9절)(6절)
 이기남    | 2020·03·14 14:58 | HIT : 128 | VOTE : 1
* 설교 - 지금은 기도할 때입니다 (빌 4:6-9절)(6절)







<빌립보서 4장>은 「염려를 피하는 방법」에 대한 사도 바울의 선언서 입니다..




그 내용은 분명하고 사람의 마음을 두드리며 직설적인 가르침을 줍니다.. 사도 바울은 명령들을 제시합니다.. 본문 <6-9절>을 보십시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사도 바울은 단도직입적으로 「염려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긍정적인 단계로 우리를 이끌어가면서 「염려가 있던 공간」을 다른 것으로 채우도록 돕습니다..







이를테면 「바르게 기도하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하도록」 돕습니다..




나쁜 습관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좋은 습관으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걱정하는 것만큼 나쁜 습관도 없습니다..







「걱정을 피하는 최고의 방법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바르게 생각하기와 바르게 행동하기는 그 다음에 취할 논리적인 단계입니다.. 그 모든 것은 「기도」로 시작됩니다..







1. 감사하는 기도로 대응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6절) 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우리에게 「감사로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는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구체적인 탄원」을 의미합니다..







의심과 낙담 또는 불만을 품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대신에 말문을 열기 전부터 감사하는 태도로 하나님께 다가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견뎌내기에 너무나 벅찬 일들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고전 10:13절)..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또 하나님은 모든 일들이 결국에는 선을 이루도록 하겠다고 하셨습니다(롬 8: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은 고통 한가운데서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벧전 5:10절)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이 약속들을 깨달을 때 우리는 모든 일을 신실하게 해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필요한 주요 원리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 원리들은 단순히 외우는 차원을 넘어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자동으로 해석해 주는 잣대」로 삼으십시오..







모든 어려움들이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에게 유용한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들을 감사하십시오..




감사할 때 두려움과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감사는 우리의 상황을 <하나님의 주권적인 돌보심>을 믿고 맡기겠다는 확실한 표현」입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감사할 거리가 매우 많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들을 공급하실 것임」을 아는 것(빌 4:19절),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다가와 「가까이 머무신다는 것」을 아는 것(시 139:3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신다는 것」(벧전 5:7절), 「모든 권능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시 62:11절), 하나님이 「우리를 점점 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만들고 계시다는 것」(롬 8:29절, 빌 1:7절), 아무리 작은 것도 하나님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시 147:4,5절)이 그것입니다..







요나 선지자는 커다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감사하는 기도로 반응했습니다(욘 2:19절)..




갑자기 물고기의 위액 속에서 헤엄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 것 같습니까? 아마도 이렇게 소리치지 않겠습니까?




"주님, 이게 뭡니까?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왜 제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겁니까?"







고통에 대한 변명거리가 단 하나라도 있다면 분명히 이런 말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요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르게 반응했습니다.. <요나서 2장 2-9절>을 보십시오..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요나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기도 가운데 「심오한 영적 안정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작정하신다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를 건져내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대신에 감사 기도로 특별하거나 평범한 환경에 반응한다면 우리 역시 하나님의 평강에 힘입어 안정감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7절) 는 약속입니다..







이 귀절은 「감사하는 태도를 가지고 기도하는 신자들에게 내적인 평온과 고요함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기도에 대한 응답을 약속하지는 않는다는 점에 주의하십시오..>




「모든 지각을 뛰어넘는」 이 평강은 그 기원이 하나님께 있다고 했습니다.. 그 평강은 인간의 지성과 분석과 통찰력을 초월합니다..




그 어떤 상담가도 줄 수 없는 평강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감사와 신뢰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실제로 요구되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모든 불편한 상황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상황 속에서 주권적이고 지혜로우며 선하시고 능력 많으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점이나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대하는 방식 또한 우리가 생활하고 일하는 장소와 같이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들은 실제로 우리에게 약점이 아니라 힘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을 보십시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우리는 우리가 불완전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어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그분의 완전한 일을 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확신을 가지고 그분의 돌보심에 의탁할 때, 주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평강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7절)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확신하며 살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평강을 갖지 못할 것이고, 근심하는 마음에는 혼란만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확신을 가지고 주님을 신뢰할 때, 우리는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데, 이는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평강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두려움과 걱정 대신 「감사하는 기도로」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감사하는 태도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습관을 기르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과 안식을 누리시를 기도합니다..







2. 거룩한 가치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기도는 염려를 피하는 우리의 주요 도구입니다..」




사도 바울은 염려하지 말라고 말한 후에(빌 4:6절) 두 가지 완전한 문장을 덧붙임으로써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고」 그로 인해 「어떤 유익이 돌아올지」 구체적으로 밝힙니다..







우리는 기도함으로써 근심이라는 죄를 뒤로하고 차츰차츰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가운데 이전과 다른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근심 너머에 있는 다음 단계들로 나아 가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8절) 고 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생각의 산물입니다.. <잠언 23편 7절>의 말씀에 따르면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이라고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심리학자들은 한 개인이 과거의 죄들과 상처, 학대들을 떠올림으로써 안정감을 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한 사고방식은 기독교에까지 스며들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어둠의 죄를 바라보지 말고 바르고 영광스러운 것에 초점을 맞추라고 말합니다(엡 5:8-12절)..







3. 우리는 어떤식으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구속받지 못한 사람」을 묘사하면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로마서 1장 29절>입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우선, 우리의 마음은 부패했습니다.. 더 나쁜 것은, 우리의 마음이 또한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는 이 세상의 신>(고후 4:4절) 때문에 혼미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의 마음은 허망한 생각들에 빠지게 되었습니다(엡 4:17절)..







실제로 구원을 받기 전에 우리의 마음은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엡 4:18절) 있었습니다..







불신자들의 마음은 부패했기 때문에 옳은 것을 선택하지 못합니다.. 영적으로 혼미하기 때문에 무엇이 옳은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생각들은 허망하기 때문에 옳은 것을 수행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무지하기 때문에 행하고 있는 것이 악인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비극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분명하고 바르게 생각하는 능력은 하나님이 주시는 무한한 복으로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롬 1:16절) 입니다..




주님은 불신자들의 마음을 비추기 위해 「복음」을 사용하십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은 그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듣는 데서 온다고 말했습니다(롬 10:17절)..







구원은 한 개인이 죄의 심각함과 자신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역사를 깨달으면서 그 마음 속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눅 10:27절) 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은 지적인 반응을 요구합니다.. 드러난 하나님의 진리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 진리는 삶 속에서 진실하고 합리적인 것으로 증명된 것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마태복음 6장 26절>입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이 귀절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 주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믿음은 무엇보다 생각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가르침을 관찰하고 추론하는 등 연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성경은 논리로 가득 차 있고, 믿음은 온통 신비주의에 싸인 어떤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안락 의자에 앉아 우리에게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만을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본질적으로 생각입니다.. 새들을 보고 그들에 대해 생각하고 추론해 보십시오.. 풀들을 바라보고 들의 백합화를 바라보며 그것들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럴 때 비로서 믿음을 다음과 같이 규정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하는 일마다 가시밭이고 되는 일이라고는 없는 것 같을 때에도 끝까지 생각하기를 고집하는 것이다.."







적은 믿음을 가진 사람의 문제는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고 다른 어떤 것에 지배당한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그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합니다.. 그것이 염려의 본질입니다.. 그것은 생각이 아니라 실상 생각의 부재이고 생각하는데 실패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염려가 너무 많은 생각의 산물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올바른 방향으로 생각하기를 너무 적게 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그분의 목적과 약속, 그리고 계획들이 어떤 것인지 안다면 우리는 염려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믿음은 심리적인 자기 최면이나 희망적인 생각이 아니라, <계시된 진리에 대한 합당한 반응>입니다..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주님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의 마음은 변화됩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새롭게 하시며 우리 안에서 역사하실 때 우리는 새로운 마음이나 사고방식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거룩하고 초자연적인 생각들이 우리의 사고 방식에 들어옵니다..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 사도 바울은 말했지만, 우리는 신자로서 세상의 영을 받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 수 있습니다(고전 2:11,12절)..




다시 말해,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주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각들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타락한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새로워진 마음이라 할지라도 계속해서 닦고 새롭게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각을 깨끗케 하는 하나님의 주요한 매체는 곧 그분의 말씀이라고 이르셨습니다(요 15:3절)..







사도 바울은 그러한 개념에 대해 수차례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1,2절)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엡 4:23절)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 3:10절)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살전 5:21절)







신약 성경은 「바르게 생각하는 훈련」을 하라고 요구합니다.. 사도 바울은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2절) 고 잘라 말했습니다..




덧붙여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벧전 1:13절) 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의 서신에서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롬 11:25절, 고전 10:1절, 고후 1:8절, 살전 4:13절)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롬 6:3,16절, 고전 3:16절, 고후 13:5절) 라는 말을 얼마나 자주 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우리가 바르게 생각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생각하라」고 번역된 용어를 자주 사용하여 듣는 이들이 바른 초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우셨습니다(마 5:17절, 18:12절, 21:28절, 22:42절)..







4. 무엇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까?




그렇다면 무엇이 바른 초점입니까?




"무엇에든지 참되며.. 경견하며.. 옳으며.. 정결하며.. 사랑할 만하며.. 칭찬할 만"(빌 4:8절) 한 것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참된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절, 시 119:151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진리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도 합니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엡 4:21절) 라고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참된 것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아야"(히 12:2절) 합니다..」







(2) 본문에서 「경건하며」 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고결하고, 기품있으며, 존경할 만한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무엇에든지 경외하고 흠모할 만한 것, 세속적인 것과는 반대되는 신성한 것에 머물러야 합니다..







(3) 「옳으며」 라는 귀절은 「의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성경에서 보여주는 것과 같이 성령님의 영원하고 불변하며 거룩한 기준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옳은 생각은 언제나 하나님의 절대적인 거룩함과 일치합니다..」







(4) 「정결한」 이라는 말은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때묻지 않은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깨끗한 것에 머물러야 하고 더러워져서는 안 됩니다..







(5) 「사랑할 만한」 이라고 번역된 이 헬라어는 신약 성경을 통들어 여기에서만 나타나는 것으로서 「기쁘게 하는」 또는 「상냥한」 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에든지 친절하거나 은혜로운 일들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6) 「칭찬할 만한」 이라는 말은 「좋은 평판」으로,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존경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경건한」 이라는 말은 대게 「신자들에게」 존경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어떤 것을 가리키지만, 「좋은 평판」은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존경받는 것을 가리킬 때 더 많이 쓰입니다..




이 용어는 보편적으로 「용기」와 다른 사람에 대한 「경외」와 같이 칭송받는 가치들을 포함합니다..







본질적으로 사도 바울은 <저편에 매우 뛰어나고 가치 있는 일들이 아주 많이 있으므로 그것들에 초점을 맞추라> 고 말하는 것입니다..




경건한 가치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보고」(텔레비젼 프로그램이나 책, 잡지와 같은 볼 거리들), 「누구에게 어떻게 말할지」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생각은 욕구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차원 높은 이 모든 가르침들은 두려움과 염려에 어떻게 적용됩니까? 제이 아담스는 다음과 같이 실질적인 권고를 합니다..



「당신의 마음이 금지된 영역으로 되돌아가려고 헤매는 것을 인식할 때마다 생각의 방향을 바꾸십시오.. 단 한순간도 그러한 생각에 의식적으로 빠지지 마십시오..




대신 <빌립보서 4장 8,9절>에서 사도 바울이 열거한 일들에 다시금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하나님께 분명히 구하십시오..




<두려움을 경험한다고 해서 뭐가 어쨌다는 거지? 불쾌하고 심란하기는 하지만 나는 그런 일을 이겨 내며 살 거야.. 적어도 이제까지는 항상 그래왔다고..> 하는 태도를 길러야 합니다..




염려에 빠지지 않고 이런 식으로 정직하게 생각할 수 있을 때 변화가 이미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5. 배운 대로 실천하십시오..




이 모든 경건한 생각들은 실천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사도 바울은 지금 「반복적이거나 지속적인 행동」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기타나 다른 뭔가를 연습하고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의사나 변호사가 업무를 본다는 것은 그가 직업상의 일과를  보내고 있음을 뜻합니다.. 마찬가지로 여기서 행함 곧 「실천」은 한 사람의 생활이나 행동 유형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험과 유혹이 우리를 억누르지 못하도록 막아줄 경건한 태도와 생각과 행동을 길러줍니다..




이 세 가지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다음의 비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십시오..







「한 경관이 이제 막 법을 위반하려는 누군가를 본다면, 그의 행동을 저지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만들어진 경건한 태도와 생각들은 육체가 하나님 말씀의 기준에 어긋나는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그것을 저지하는 경관 노릇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육체를 저지할 수 없고 육체는 멋대로 하나님의 법을 어기게 될 것입니다..」







올바른 태도와 생각은 올바른 실천들에 선행해야 합니다..







오직 영적인 무기들만이 육체와 맞서 싸우는 우리의 전쟁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고후 10:4절)..




기도함으로써 염려를 피하고 그 밖의 태도를 조정함으로써 우리는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고후 10:5절) 할 수 있습니다..







다음 차례로, 정결한 행동이 영적인 평강과 안정감을 만들어 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사 32:17절) 고 말했습니다..




야고보도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 3:17,18절)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빌 4:9절) 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평강과 기쁨, 겸손, 믿음, 감사하는 영적인 열매의 예를 들어 보입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참된 것, 경건한 것, 옳은 것, 정결한 것, 사랑할 만한 것, 그리고 좋은 평판을 지닌 것에 머물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에서 그들이 보아온 것을 실천하라고 말하는데 당당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행동하는 데 있어 성경의 가르침을 우리의 거룩한 유형으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도 바울처럼 살기는 쉽지 않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삶은 사도 바울의 삶처럼 다른 사람이 따라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사역도 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모두는 단순히 "말씀을 듣는 자"가 아니라 "말씀을 행하는 자"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합니다(약 1:22절)..




시련 중에 영적인 안정을 누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가운데 사도 바울은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 4:9절) 고 말했습니다..







「기도함으로써 염려를 피하십시오..」







우리가 그러한 실천을 따를 때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7절) 것입니다..




이보다 더 염려로부터 우리를 지켜 줄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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