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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22일 주일 설교 - 지금은 감사할 때입니다 (살전 5:16-18절)(18절)
 이기남    | 2020·03·21 11:05 | HIT : 37 | VOTE : 0
* 설교 - 지금은 감사할 때입니다 (살전 5:16-18절)(18절)








얼마 전에, 저를 아는 분이 카톡으로 보내 온 글이 하나 있습니다.. 소설가 박완서(朴婉緖)의 <일상의 기적> 이라는 글입니다..






「덜컥 탈이 났다.





유쾌하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귀가했는데 갑자기 허리가 뻐근했다.





자고 일어나면 낫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웬걸, 아침에는 침대에서 일어나기 조차 힘들었다.








그러자 하룻밤 사이에 사소한 일들이 굉장한 일로 바뀌어 버렸다.





세면대에서 허리를 굽혀 세수하기,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거나 양말을 신는 일, 기침을 하는 일, 앉았다가 일어나는 일이 내게는 더 이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별수 없이 병원에 다녀와서 하루를 빈둥거리며 보냈다. 비로소 몸의 소리가 들려왔다.





실은 그동안 목도 결리고, 손목도 아프고, 어깨도 힘들었노라, 눈도 피곤했노라, 몸 구석구석에서 불평을 해댔다.








언제까지나 내 마음대로 될 줄 알았던 나의 몸이, 이렇게 기습적으로 반란을 일으킬 줄은 예상조차 못했던 터라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중이다.








이때 중국 속담이 떠올랐다.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








예전에 싱겁게 웃어 넘겼던 그 말이 다시 생각난 건, 반듯하고 짱짱하게 걷는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실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괜한 말이 아니었다.





‘아프기 전과 후’가 이렇게 명확하게 갈리는게 몸의 신비가 아니고 무엇이랴!








얼마 전에는 젊은 날에 윗분으로 모셨던 분의 병문안을 다녀왔다.





몇년에 걸쳐 점점 건강이 나빠져 이제 그분이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눈을 깜빡이는 정도에 불과했다.




예민한 감수성과 날카로운 직관력으로 명성을 날리던 분의 그런 모습을 마주하고 있으려니, 한때의 빛나던 재능도 다 소용 없구나싶어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돌아오면서 지금 저분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혼자서 일어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하고, 함께 식사하고, 산책하는 등 그런 아주 사소한 일이 아닐까.





다만 그런 소소한 일상이 기적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대개는 너무 늦은 뒤라는 점이 안타깝다.








우리는 하늘을 날고 물 위를 걷는 기적을 이루고 싶어 안달하며 무리를 한다. 땅 위를 걷는 것쯤은 당연한 일인 줄 알고 말이다.








사나흘 동안 노인네처럼 파스도 붙여 보고 물리치료도 받아 보니 알겠다. 타인에게 일어나는 일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크게 걱정하지 말라는 진단이지만 아침에 벌떡 일어나는 일이 감사한 일임을 이번에 또 배웠다.





건강하면 다 가진 것이다.






오늘도 일상에 감사하며 살자! 지금, 감사를 느끼고 계시는지?





우리들이 입으로는 감사를 외치지만 진정으로 느끼는 사람은 적은 것 같다.






"안구 하나 구입하려면 1억이라고 하니 눈 두개를 갈아 끼우려면 2억이 들고





신장 바꾸는데는 3천만원, 심장 바꾸는 데는 5억원, 간 이식 하는 데는 7천만원, 팔다리가 없어 의수와 의족을 끼워 넣으려면 더 많은 돈이 든답니다."






지금! 두 눈을 뜨고 두 다리로 건강하게 걸어다니는 사람은 몸에 약 51억이 넘는 재산을 지니고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도로 한 가운데를 질주하는 어떤 자동차보다 비싼 훌륭한 두발 자가용을 가지고 세상을 활보하고 있다는 기쁨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








그리고 갑작스런 사고로 앰블런스에 실려 갈 때 산소호흡기를 쓰면 한 시간에 36만원을 내야 한다니





눈, 코, 입 다 가지고 두 다리로 걸어 다니면서 공기를 공짜로 마시고 있다면 하루에 860만원씩 버는 셈입니다.





"우리들은 51억짜리 몸에 하루에 860만원씩 공짜로 받을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요?"







그런데 왜 우리는 늘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그건 욕심 때문이겠지요.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없고, 기쁨이 없으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감사하는 사람만이 행복을 누릴 수 있고, 감사하는 사람은 행복이라는 정상에 이미 올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잎 클로버는 행복! 네잎 클로버는 행운? 행복하면 되지 행운까지 바란다면 그 또한 욕심이겠지요.






오늘부터 지금부터 숨 쉴 때마다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겠습니다.」







우리교회는 최근 거의 한 달 간을 정상적인 분위기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이웃을 위태롭게 할까봐 모든 준비와 더불어 조심스럽게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저도 세상과 교계를 향해 의견을 내고,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 저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고, 저의 의견을 관철시키려고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와 우리교회는 그렇게 하지 않고, 겸손하기로 했습니다(벧전 5:5-7절).. 기도하기로 했습니다(빌 4:6-9절).. 그리고 감사하기로 했습니다(살전 5:16-18절)..







지금은 겸손할 때이고, 기도할 때이고, 그리고 오늘 말씀처럼 지금은 감사할 때입니다..








오늘 말씀은 세상의 어떤 철학이나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독교 고유의 비범한 덕목>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의 사람들은 외부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서에서 이들에게 이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권면의 말씀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천군 천사의 나팔 소리와 함께 웅장한 모습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이 이 땅의 문제에 너무 메이지 말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소망하며 살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소망이 있으니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며 또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이런 삶의 유익이 무엇입니까?








1. 항상 기뻐하라..




본문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덕목으로 먼저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Be joyful always!




그런데 이 말은 좀 이상합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이 말씀이 명령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때를 따라>가 아니라, <항상>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기쁨을 강요해도 되는 것입니까?




요즘 사람들은 자기 감정에 충실하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슬퍼할 때는 슬퍼해야하는 것 아닐까요?







물론 우리의 삶 속에는 기쁠 때도 있습니다.. 시험에 합격했을 때, 진급 했을 때, 전도했는데 그 영혼이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참으로 기쁩니다..




스마트폰을 새로 샀을 때,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정말 기쁩니다.. 결혼을 앞둔 자매님들의 얼굴을 볼 때 <야 정말 결혼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깊이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모든 것이 감사하고 굳이 사도 바울이 항상 기뻐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항상이 아니라 영원히 기뻐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슬플 때도 이렇게 기뻐해야 합니까? 우리의 삶 속에는 분명 슬픔도 있습니다.. 슬픔은 인간적이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우리 결을 떠났을 때 자연히 슬퍼합니다.. 가족 중에 누가 세상을 떠났을 때 참으로 슬픕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슬퍼하며 애통하였습니다.. 모세가 죽었을 때 이스라엘 민족은 30일 동안이나 애곡했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들도 죽음은 슬퍼했습니다..







슬픔은 사람이 죽었을 때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시험을 못 봤을 때 정말 슬픕니다.. 얼마나 심령이 막히는지 옆에서 아무리 위로를 해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위로 받는다고해도 점수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직장을 다니는 성도님들은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진급에서 자기만 누락되었을 때 참으로 슬픕니다.. 인생의 회의가 밀려오기까지 합니다..




열심히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사명을 감당했는데, 공들여 섬겼던 영혼이 공동체를 떠나갈 때 참으로 슬프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것들은 확실히 슬프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는다해도 이럴 때는 슬퍼해도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본문은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는 우리가 하고자하면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쁨과 슬픔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감정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슬픔의 시작을 찾아가보면 사실상 그것은 죄에서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범죄하고 난 이후 기쁨의 동산인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인간은 만복의 근원 하나님을 상실했고 은혜의 동산 에덴을 상실했습니다..




그리고 죄의 지배를 받으며 하나님이 주신 <정복하고 다스리는 특권>을 상실하고 또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마구 나오는 땅을 힘써 갈게 되었습니다(창 3:18절)..




이것도 슬픈데 하나님께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 라고 하신 이 한마디 말씀은 인간을 더욱 슬프게 하였습니다(창 3:19절)..







그래서 때가 되면 우리는 모두 죽을 운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우리가 스스로 의식하던 의식하지 않든 이 슬픔이 깊이 배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슬픔의 근원을 우리 삶 속에서 끊어버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심으로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죄 사함 받고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만복의 근원되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했고 사명도 회복했습니다..







비록 지금은 죄의 몸을 입고 있어 언젠가는 죽지만,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또한 하나님이 주신 모든 약속을 생각하고 언제든지 슬픔을 이기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한나는 자식을 못 낳아 브닌나에게 무시당하므로 항상 마음이 슬펐습니다.. 남편이 브닌나보다 갑절을 사랑해줘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하나님께 나와 기도하며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를 체험했을 때 그녀는 기쁨의 찬송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슬프지 않았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농부였습니다.. 농부의 기쁨은 풍성한 수확에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 해 무화과 나무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고 포도 나무에 열매도 없고 감람 나무의 소출도 없었습니다..




우리에 양도 없고 외양간에 소도 없었으니 얼마나 기가 막히고 슬펐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는 이때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8절)





그러면서 그는 사슴이 산을 뛰듯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를 볼 때 우리가 하고자 하던 일이 안되고 망하기까지 했을 때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을 생각하면」 얼마든지 기뻐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번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전도 여행을 나갔다가 돌아와 기쁨에 충만해서 선교 보고를 했습니다..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눅 10:17절) 와, 이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세상에 주의 종이 되어 이런 능력을 지닌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이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 10:20절)







우리의 진정한 기쁨은 세상에서 무엇을 얻고 못 얻고를 떠나서,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만복의 근원되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은 일시적인 세상의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고 세상에서 우리가 아무리 슬픈 일을 당해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기쁨입니다..







이제 곧 우렁찬 나팔소리와 함께 영광 속에서 다시 오실 예수님을 생각하면 우리는 어떤 환난을 당해도 소망 가운데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영화관에 가서 줄을 서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 때 <이제 곧 재미있는 영화를 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기쁨으로 기다릴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지금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 들어가는 입구에 줄지어 서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이 소망 때문에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순간 이 세상에서의 애통과 눈물이 다 사라지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항상 기뻐하라"는 이 말씀에 순종하여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여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늙은 나이에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빌립보 성도들에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절) 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기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려야 합니다..







2. 쉬지말고 기도하라..




사도 바울이 말하는 성도의 둘째 덕목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 입니다.. pray continually!




기도하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기도 시간에 자고 싶고, 기도 시간에 안하던 일을 갑자기 하고 싶어합니다..







또 우리는 기도를 안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기도하되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항상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 두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첫째,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사탄은 강합니다.. 우리를 항상 유혹하고 시험에 빠지게 합니다..




우리가 이 사탄을 이기기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만이 힘을 얻고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마 6:13절) 라고 기도하도록 하셨습니다..







(2) 둘째,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하고 또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요 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를 위해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시며 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새벽마다 기도하시고 산에 올라가 항상 기도에 힘쓰셨습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가만히 살펴볼 때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시는 분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보고 기도를 배우고 싶어서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까지 간구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 또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까지 비유들을 들어가시며 상세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다니엘은 나라가 망한 가운데 있었지만 적국의 궁전에 있으면서도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해 쉬지 않고 기도를 드리므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고, 기도하므로 계시의 영을 받아 미래의 일어날 일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이렇게 기도하므로 원수들의 모함 속에서 통쾌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위대한 사명인들은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꾸준히 오랫동안, 무시로 기도하였습니다..




인디안 선교사 데이빗 브레이너드는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는지 그가 기도하러 가는 숲 속에 길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그는 항상 기도했습니다..







존 웨슬레는 하루 두 시간씩 기도했고, 링컨 대통령은 새벽 일찍이 일어나 성경을 읽고 항상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하루에 3시간 이상 기도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덧입고 역사를 창조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 기도를 했다 말았다, 생각난듯 하는 사람들은 결코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분명한 기도 제목을 가지고 쉬지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분명한 기도 제목을 가지고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은 성령님의 감동 속에서 은혜와 능력이 임하고 마침내 기도 제목을 이룹니다.. 뛰어난 사명인의 삶을 살며 위대한 역사 창조자가 됩니다..







기도하는 것은 겉보기에 아무 일도 안하는 것 같지만 가장 큰 일을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가장 느린 것 같지만 일을 가장 빠르게 하는 것입니다..







꾸준한 기도, 쉬지 않는 기도는 우리의 영을 새롭게 하고 내면을 성장하게 하고 힘있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소원을 이룹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이런 쉬지 않는 기도를 통해 그 뜻을 이 땅에서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가 남은 생애 쉬지 말고 기도하므로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를 누리고 능력의 깊은 세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 범사에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명령의 말씀입니다..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감사의 반대는 불평과 원망입니다.. 그러니까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불평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억지로라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할 수 있겠지만, 막상 일에 부딪치면 감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경우에도 <감사를 강요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과 섭리를 믿습니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하나님이 어떤 뜻으로 이렇게 하셨을까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합니다..




또한 그것이 당장에는 잘 이해가 안된다 하더라도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100% 신뢰하므로 무조건 감사합니다.. 그래서 감사는 진정한 믿음의 표시가 됩니다..







감사에 관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주 좋은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5,000명을 두고 오병이어가 있음에 감사하셨습니다..







가버나움과 고라신은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 동안에 힘써 복음을 전하신 곳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마 11:21절) 하시면서 그들에게 경고하시며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사실에 매달려 슬퍼하시기보다도 감사로 기도하셨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마 11:25,26절)







그리고 최후의 만찬 때는 자신의 죽음을 앞에 두시고 감사하셨습니다..




잔을 받으사 사례하시고 떡을 가져 사례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감정과 개인의 고통을 초월해 하나님께 감사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은 어떤 경우에도 감사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앞에 나온 다니엘도 나라가 망했는데도 하나님 앞에서 회개와 함께 감사의 기도를 하루 세 번씩 했습니다.. 다니엘은 참으로 위대한 감사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느 때 감사할 것인가를 나름대로 판단해서 감사를 했다가 말았다가 하는데, 그러면 안됩니다..




우리 생각과는 달리 하나님의 생각은 더 높고 깊습니다.. <이사야서 55장 8,9절>을 보십시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또한 감사는 겸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겸손히 감사하지 않고 교만하게 하나님 같이 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받은바 은혜에 감사하지 않고 부족하다는듯 생각하다가 망한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바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해야 겠습니다..







하나님은 죄로 말미암아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심판받을 수 밖에 없던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습니까? 그러면 우리 모두는 반드시 천국에 가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아무리 실수와 허물을 반복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때를 따라 기가막힌 사랑으로 보호하시고 섭리하시므로 반드시 천국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감사할 것을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감사한 것입니다..




이렇게 예배를 드리게 하신 것도 감사해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어가고 말씀을 듣고 형제 자매들을 만나고 교제하고 위로받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또한 사명을 주셨음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사명을 주지 않으셨다면 도대체 세상 무슨 재미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은 말씀을 주셨고, 찬양을 주셨고, 더 나아가 보혜사 성령님을 주셨습니다.. 감사에 대해 우리가 무슨 말을 더하겠습니까?







「한 미국 실업인이 『백만 번의 감사』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하고자 했습니다..




그 책 내용은 다른 말은 하나도 없고 다만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는 말만 백만 번 쓰여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책의 판권을 내주는 미국 국회 도서관에서 이 책을 보고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고 판권을 발부해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실업인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는 말을 백만 번 적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 책을 내서 자기 친구들과 여러 실업인들에게 나누어 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백만 번 감사할 수 있습니까? 사람이 80세까지 산다고 치면 하루에 34번 감사하면 평생에 백만번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제 자기 인생이 앞으로 40년 남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지금부터 하루에 70번은 해야 백만번의 감사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렇게 살수 있다면 우리는 무슨 일에 일어나든 하루 종일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 100만번이 아니라 천만번이라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에게 값없이 영생을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다른 것 더 바랄 것이 있습니까? 이것으로도 모든 것이 충분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면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고난은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구원과 우리를 위해 하늘에 예비하신 모든 것에 비하면 얼마나 사소한 것입니까?







우리에게 일어나는 기쁨의 일들은 자격 없는 죄인들에게 임한 얼마나 귀한 하나님의 은총입니까?




참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 합당하신 분이시요, 감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시편 100편 4절>을 보십시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우리가 이시간 감사의 문으로 들어가서 힘써 감사를 배우고, 풍성한 감사 제목을 가지고 감사의 문으로 나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참으로 하나님을 믿고 이 땅에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비범한 윤리입니다..




이는 우리 그리스인들만이 이해할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삶의 규범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따라 먼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는 비결임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 뜻을 따라 이 세가지 덕목을 열심히 실천하므로 은혜가 충만한 사람으로, 능력의 사람으로 성장하여 범사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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