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축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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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19일 주일 설교 - 하나님이 지키시는 생명 (창 9:1-17절)(13절)
 이기남    | 2020·04·18 09:19 | HIT : 142 | VOTE : 3

* 설교 - 하나님이 지키시는 생명 (창 9:1-17절)(13절)







하나님은 구름 사이에 <내 무지개>(9:13절) 곧 <하나님의 무지개> 를 두었다고 하십니다..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맺은 「언약의 증거」입니다.. 그것은 마치 <계약서의 도장>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지개를 볼 때마다 하나님과 땅 위의 모든 육체를 가진 생물들 사이에 세운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십니다..




이 언약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다시는 홍수로 땅을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19세기 영국의 계관 시인 William wordsworth(윌리엄 워즈워스)의 <Rainbow>(무지개)라는 시가 있습니다..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 A rainbow in the sky:
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가슴은 뛰노라




So was it when my life began; So is it now I am a man; So be it when I shall grow old, Or let me die!


나 어린 시절에 그러했고 어른인 지금도 그러하고 늙어서도 그러하리라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죽는게 나으리!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And I could wish my days to be Bound each to each by natural piety.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내 하루하루가 자연의 숭고함 속에 있기를










시인은 무지개를 바라볼 때 더는 가슴이 뛰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음보다 못한 삶이라고 노래합니다..




시인은 절대 절망의 상황에서도 무지개를 바라보며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지개를 보는 것조차 어려운 환경에 살고 있으니, 가슴이 설레었던 적이 언제였는지, 설레었던 적이나 있었는지, 기억이 가물거립니다..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무지개를 우리는 어디서 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오늘 본문 <9장 1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하나님의 무지개>는 구름 사이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무지개>는 비가 온 후에 걸리는 자연의 무지개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무지개>는 「하나님께서 보시기 위해」 구름 사이에 친히 걸어 두신 무지개 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구름 사이에 내 무지개를 둘 테니 <너희가 보고> 나와 세상 사이에 세운 언약을 기억해라..」(x)




대신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구름 사이에 무지개가 나타나면, <내가 그것을 보고> 나 하나님과 땅 위의 모든 육체를 가진 생물들 사이에 세운 영원한 언약을 기억할 것이다..」(9:16절)(o)








하나님은 자신의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두고, <그것을 보고>, 땅 위의 모든 육체를 가진 생물들 사이에 세운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무지개를 어떻게 볼 수 있습니가? <하나님의 말씀>, 곧 <언약을 믿는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윌리엄 워즈워스>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무지개를 보고 가슴이 뛰었습니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으로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무지개를 보며 하나님의 언약을 생각하고, 그것으로 인해 감사하고 감격하여 가슴이 설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지개를 보고 감격하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릴지언정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며 감격해 하지는 않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무지개가 무슨 뜻인지> 그 의미를 구체적으로 발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전 시간까지를 보면, 하나님의 홍수 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40일간 밤낮으로 비가 내렸고, 홍수가 났고, 코로 숨을 쉬는 모든 생물이 다 죽었습니다.. 그로부터 150일 동안 물이 땅을 뒤덮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8장 1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8장>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문장 앞의 주어가 <하나님>과 <노아>로 번갈아 나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홍수 심판 후에 「하나님이 하신 행동」과 「노아가 한 행동」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8장 1-5절>은 하나님이 하신 행동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와 함께 배 안에 있던 모든 들짐승, 가축을 기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물이 뒤덮고 있는 땅에 바람이 불게 하셔서 물이 점점 줄어들게 하셨습니다.. 땅속의 샘들과 하늘의 창들을 닫아 더는 비가 내리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땅에서 물이 점점 줄어들었고, 150일이 지나자 배가 아라랏 산에 걸려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물은 계속 흘러 빠져나갔고, 열째 달 첫째 날에는 산봉우리들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8장 6-14절>은 노아가 한 행동입니다..




노아는 방주가 아라랏 산에 걸린 지 두달 반 쯤을 기다린 후 배의 창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는 까마귀를 날려 보냈습니다..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또다시 노아는 물이 빠졌는지 알아보려고 비둘기를 날려 보냈습니다..







하지만 비둘기는 쉴 곳을 찾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노아는 칠 일을 기다렸습니다.. 다시 비둘기를 날려 보냈습니다..




그 날 저녁, 비둘기는 놀랍게도 뜯어 낸 올리브 나무 잎사귀를 물고 왔습니다.. 그것을 보고, 노아는 땅이 거의 다 말랐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칠 일을 또 기다렸습니다.. 칠 일 후에 노아는 다시 비둘기를 내보냈는데, 이번에는 비둘기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노아가 배의 지붕을 열고 보니 땅이 말라 있었습니다.. 노아가 육백 한 살 되던 해 둘째 달, 이십칠 일에는 땅이 완전히 말랐습니다..







노아가 600살 되던 해, 둘째 달, 십칠 일에 홍수가 시작되었으니, 홍수가 나고 땅이 완전히 마르기까지 <1년 10일>이 걸렸습니다..




<375일 동안> 노아는 방주에 타고 있었습니다.. 방주에는 노아 혼자 탄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 아들의 가족들이 함께 있었고, 온갖 종류의 짐승, 새, 땅 위에서 기는 모든 것들이 함께 타고 있었습니다..







<375일 동안>의 방주의 생활이 어떠했겠습니까?




좁은 방주에 노아 부부, 세 아들의 부부가 부대끼며 지내야 했습니다.. 샤워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옷도 자유롭게 갈아 입을 수 없었습니다..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온갖 종류의 짐승, 새, 기는 것들까지 375일 동안 함께했습니다.. 어떤 짐승은 낮에 울고, 어떤 새는 밤에 울었습니다..




한 짐승이 소리를 내면 다른 짐승들이 따라 소리를 질렀습니다.. 기는 것들은 방주 안을 자유롭게 기어 다녔습니다..







하나님이 특별한 은혜를 주셔서 그것들이 375일 동안 똥, 오줌을 싸지 않게 하셨을까요?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짐승 배설물의 냄새가 배 안에 진동을 했을 것입니다.. 물론 창을 통해서 약간의 환기는 되었겠지만 지독한 냄새를 없앨 수는 없었습니다..




먹기만 하면 싸는 배설물을 치우느라 노아와 아들들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방주 밖 사방에는 온통 물 뿐이었습니다.. 방주는 출렁이는 물 위를 정처 없이 떠돌아 다녔습니다..




배를 타 보신 분들은 경험했겠지만, 흔들거리는 배 안에 있는 것 자체가 고역입니다.. 그런데 노아는 375일간 흔들리는 방주 안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그러니 배가 아라랏 산에 걸려 머무르게 되었을 때 노아는 얼마나 밖으로 나가고 싶었을까요? 그런데 배에서 안 나갔습니다..




비둘기가 올리브 나무 잎사귀를 물고 왔을 때, 얼마나 밖으로 나가고 싶었을까요? 그런데 노아는 방주 안에서 기다렸습니다..




배의 지붕을 열고 땅이 마른 것을 확인했을 때, 그대로 배 밖으로 뛰쳐나오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노아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노아가 언제 나왔습니까? <8장 15-17절>에서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을 때」, 하나님께서 <나오라> 말씀하셨을 때, 노아는 비로소 밖으로 나왔습니다(8:18절)..







노아는 왜 이렇게 행동한 것입니까?




방주로 <들어가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나오라>고 하실 때가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배의 창문을 열고, 까마귀와 비둘기를 내보내고, 배의 지붕을 여는 일은 노아가 자발적으로 알아서 한 일입니다..




그런데 방주에서 나오는 일만은 스스로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판단해서 행하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나가고 싶었지만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이 혹시 우리를 잊어 버린 것은 아닌가 불안해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어가라>고 하셨으니, <나가라>고 하실 때가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행동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입니까?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고>, <말씀이 우리 행동의 근거>가 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그리고 기독교 역사 속에서,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근거로 삼고 살았습니다..




특별히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이 지혜가 없어서, 판단력이 없어서, 성격이 느긋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우리가 원하는 대로 판단하고 선택하며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널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잘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판단과 결정을 기다립니다..




왜냐하면, 나의 지혜와 판단보다, 하나님의 지혜와 판단이 훨씬 더 내 인생을 안전하고 좋은 방향으로 인도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내 눈에 보기에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고, 내 판단에 좋은 길이 좋은 길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믿음의 사람들은 잘 압니다..




그래서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립니다.. 우리의 인생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사는 길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어가라> 할 때 들어가고, <나가라> 할 때 방주에서 나간 노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말씀의 인도를 받으며 사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의 근거가 하나님의 말씀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는 심호흡을 하며 달콤한 공기를 들이 마셨을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땅을 밟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감격스러웠을 것입니다..




노아는 홍수 가운데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면서, 내가 산 것이 그냥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살려 주셨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것, 하나님이 살려 주셨다는 것 그 자체로 감격하고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는 배에서 나오자 마자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렸습니다(8:20절)..







하나님은 그 제물을 기뻐 받으시고 속으로 결심하셨습니다.. <8장 21,22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노아와 아들들에게, 첫 사람 아담에게 주신 것처럼,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아담에게는 푸른 식물을 음식으로 주었지만, 노아와 아들들에게는 살아서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음식으로 주셨습니다..







다만 고기를 피째 먹지는 마라는 경고를 함께 주셨습니다.. 고기를 피째 먹게 되면 사람도 짐승처럼 생각하게 되어 가벼이 피를 흘리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짐승이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피를 흘리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복수하겠다고 경고하십니다..







그리고 노아와 그 아들들, 더 나아가 땅 위의 모든 생물과 하나님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언약의 내용은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9:11절) 입니다..




그리고 그 언약을 확고하게 하는 표를 구름 사이에 무지개로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증거(표)>를 두셨다는 말씀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하십니다..







이 언약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명 뿐만 아니라, 땅 위에 존재하는 생명체를 멸하지 않고 보존하시고, 통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을 소중히 여기시고 보존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생명의 수여자이신 하나님께서, 생명의 보존자가 되시겠다는 약속을 <무지개 언약>으로 하신 것입니다..







신학자들은 이 언약을 하나님께서 사람과만 맺은 언약과 구별하기 위해서 <자연 언약>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합니다..




<자연 언약>이 주어졌기에, 우리가 <자연>이라고 부르는 곳에는 온통 생명이 가득합니다.. 짐승과 새와 기는 것들과 식물들이 마음껏 생명력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데, 오직 사람만이, 생명을 주시고 보존해 주시는 이 언약의 말씀을 잊어버렸습니다..




살아 있음에 감격하거나 감사하지 못합니다.. 늘 살아갈 걱정, 더 잘 살아야 한다는 욕심에 가슴이 뛰는 삶이 아니라 가슴이 무너지는 일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연 언약>을 주셨습니다.. 모든 생명을 다시는 멸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심지어 사람의 생각이 어려부터 악하지만, 그들로 인해 땅 위의 생물을 멸망시키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선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동일하게 햇볕과 비를 주시고, 동일한 생명을 주시고 돌보아 주십니다.. 악인에게는 나쁜 생명을 주시고, 선인에게는 좋은 생명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려서부터 악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 생명을 소중하게 간직하시며 보호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도 생명을 유지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뭘 잘해서가 아니라, 뭘 가져서가 아니라, 생명 그 자체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살고 있음에 감격하고 감사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이 생명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이 언약하시고, 언약의 표를 구름 사이에 두시고, 항상 보시며 기억하시는 생명입니다.. 하나님이 지키시는 생명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받아들이고, 그 언약의 표인 무지개를 볼 때, 우리의 가슴은 다시 뛰게 될 것입니다..




나의 하루 하루의 날들이 하나님께 대한 감사로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가족들이 오늘도 건강하게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동역자들이 오늘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있음에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살아 있음> 보다 더 귀한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언약을 주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산다는 것>은 가슴 뛰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지키시는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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