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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26일 주일 설교 -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창 16:1-16절)(15절)
 이기남    | 2020·04·25 13:42 | HIT : 104 | VOTE : 1
* 설교 -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창 16:1-16절)(15절)




자식 없는 문제는 아주 오래된 아브람 가정의 근심거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가정에 <자녀를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12:2절).. 이 약속의 말씀은 어둡던 이 가정에 비친 한 줄기 빛과 같았습니다..







아브람 내외는 이 빛을 따라 <가나안 땅>까지 왔습니다..




가나안 땅에 가면 자식 없는 그들의 문제가 쉽게 풀릴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자식과 함께 <땅에 대한 약속>도 주셨기 때문입니다(12:1절)..




그러나 10년이 지나도 그 문제는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15장>에서 우리는, 기다리다 지친 아브람이 하나님께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자신의 상속자로 지목(指目)했던 것을 보았습니다.. <플랜 B>를 발동한 것입니다..







그런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하늘의 뭇 별을 보여 주시면서 별과 같이 많은 자손을 주실 것을 <다시> 약속하셨습니다(15:5절)..




앞서 <12장 2절>과 <13장 16절>에서도 이미 약속하셨습니다..







이에 아브람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15:6절).. 「하나님의 언약서(계약서)」를 받고 공증까지 하였습니다(15:7-21절)..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다시 확신한 후에 아브람은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지목했던 <플랜 B>를 거두어 들였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꺼내 들었던 <엘리에셀 카드>는 거두어 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기다리다 지친 사래가 이번에는 <하갈>을 앞세워 <플랜 C>를 발동합니다.. <하갈 카드>를 내민 것입니다..




사래는 남편에게 자기 여종 하갈을 통해 자녀를 낳자는 뜻밖의 제안을 합니다.. 여자로서는 쉽지 않은 제안입니다..




하지만, 사래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문제를 자신이 나서서 풀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과연 아브람은 사래가 제시한 <하갈을 통한 플랜 C>(하갈 카드)를 어떻게 받아 들였습니까? 스스로 문제 해결자로 나선 사래는 과연 자신의 문제를 해결했습니까?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자 작정한 사래가 아브람에게 한 말을 들어 보십시오.. <2절>입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사래가 아브람에게 한 이 <세 마디 말> 속에서 우리는 <사래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①<여호와께서는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 하셨으니> 이 말 속에서 하나님께 대한 사래의 서운함이 느껴집니다..




지난 10년간 낯선 땅에서 남편을 따라 방랑하며 온갖 고생을 다 했습니다.. 바로의 궁전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수모도 겪었습니다..




그 모든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자식을 주실 것에 대한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견뎠는데,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자기 문제는 조금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살았으나, 하나님을 믿고 살지 않을 때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적어도 자식 문제 만큼은 그랬습니다..




사래는 마음에서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아이를 주시기를 싫어하시는구나..> 사래는 하나님께 섭섭했고, 서운했습니다..








다음으로 사래는 남편 아브람에게 명령합니다.. ②<내 여종에게 들어가라>(Go, sleep with my maidservant.)(NIV)




성경은 사라가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신을 단장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벧전 3:5,6절).. 그런데 적어도 여기에서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래는 남편에게 명령하고, 행동 지침을 제시합니다.. 자신이 지목한 <하갈>을 받아들이라고 압박합니다..







세 번째로 사래는 <내 아이>를 갖고 싶은 욕망을 내비칩니다.. ③<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사래는 자기 아이를 너무나 갖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갈을 통해서라도 자기 아이를 갖고자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니, 내가 내 방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얻겠다고 사래는 작정을 합니다..







그런데 사래의 해결책에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숨겨져 있습니다..




사래가 제시한 <하갈을 통한 플랜 C>(하갈 카드)의 심각성은, 이 문제가 하나님께 대한 사래의 서운함에서부터 시작된 문제라는 것입니다..




사래의 말이나 행동을 보면, 분별력이 많이 흐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서운함이 사래의 분별력을 흐리게 만들었습니다..







<서운한 마음 상태에서 한 그녀의 결정>은 매우 어리석은 결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래는 남편에게 지금 <간음>을 제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당시의 사회 통념상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내가 자신의 몸종을 남편에게 주어 아이를 낳게 하는 것은 허물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몸종이나 첩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여주인의 소유물로 취급되었습니다..




당시의 문화는 남편이 아내의 몸종과 관계를 갖는 것을 간음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문화가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서조차 죄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첩을 들이는 것은 문화적으로 허용된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간음죄가 됩니다..







그런데 사래는 남편에게 지금 간음 죄를 짓도록 <권고>도 아니고, 아예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의 간음을 통해서라도 <내 아이>를 갖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결정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 서운한 마음이 가득한 사래는 자신이 지금 어떤 결정을 하고 있는지,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15장>에서, 하나님께 서운한 마음을 가졌다가 돌이킨 아브람이 사래를 도와 주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아브람은 어떻게 했습니까? <2절>을 보면,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원어 성경에 보면 <아브람이 사래에게 순종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아브람은 아내의 어리석은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아내의 어리석은 결정을 따랐습니다.. 아내가 내민 <하갈을 통한 플랜 C>(하갈 카드)를 넙죽 받아 들인 것입니다..







불과 얼마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은혜도 충만하고, 믿음도 충만해진 아브람이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은혜를 까먹어도 너무 쉽게 까먹은 것은 아닐까요?




아브람도 어쩔 수 없는 아담의 후예입니다.. 아담이 하와에게 순종하여 범죄하였듯이, 아브람도 사래에게 순종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남편>이란 위치에 있는 모든 남자들의 연약함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아브람은 아내의 말에 순종하여 하갈에게 갔고, 잠자리를 같이 했고, 기적과 같이 하갈에게서 아브람의 아기가 생겼습니다..




아브람이 가나안에서 산 지 10년 만에, 그리고 결혼 생활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아브람은 자신의 아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아브람은 얼마나 신기하고 기뻤겠습니까? 이것도 혹시 하나님의 복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자기 합리화 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교묘하게 왜곡시킨 적용이었습니다..







신약 성경 『갈라디아서』는 아브람이 <육체를 따라> 아들을 얻었다고 평가합니다..




<육체를 따라> 얻었다는 말은 <통상적인 방법으로>(in the ordinary way), 즉 문화나 관습, 사회에 통용되는 방식, 사람이면 누구나 따르는 방식으로 얻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방식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이 방식은 하나님 앞에서는 죄가 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대한 서운함으로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자 나선 사래는 과연 <자기의 아이>를 얻었습니까?




사래가 내민 <하갈을 통한 플랜 C>(하갈 카드)를 받아들인 아브람은 과연 아들을 얻고 행복해 졌습니까?







하갈은 사래가 아브람에게 준 애굽 사람 종이었습니다.. 아마도 사래가 바로의 왕궁에 불려 갔을 때, 바로로부터 얻은 종이었을 것입니다..




사래에게는 여러 여종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사래는 애굽 사람 여종 하갈을 택해서 아브람에게 주었습니다..







사래는 왜 하필 하갈을 택해서 아브람에게 주었을까요?




아마도 하갈은 사래가 가장 신뢰하던 여종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자신을 위해서 기꺼이 아이를 낳아 줄 여종이라고 사래는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갈은 사래의 여종들 중에서 아마도 외모도 별로고, 매력도 별로 없는 종이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람이 하갈에게 빠지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래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갈이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고는 자기 여주인 사래를 깔보았기 때문입니다.. 여주인을 멸시했습니다..




여주인을 하찮게 여겼습니다.. 시시하게, 보잘 것 없게, 가볍게 보았습니다.. 임신을 하고 나니 여주인이 그렇게 보였습니다..







임신을 하기 전 하갈과 임신을 한 하갈은 달랐습니다.. 사래의 여종이었던 하갈과 아브람의 아이를 임신한 하갈은 달랐습니다.. 하갈은 변했습니다..







<그 사람을 진정으로 알려면 그 사람에게 돈과 권력을 줘봐라> 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돈을 가지기 전의 사람과 돈을 가진 후의 사람은 다릅니다.. 권력을 쥐기 전의 사람과 권력을 쥔 후의 사람은 다릅니다..




취직하기 전의 사람과 취직한 후의 사람은 다릅니다.. 결혼하기 전의 사람과 결혼한 후의 사람은 다릅니다.. 임신하기 전과 임신한 후의 사람은 다릅니다..







사람은 그렇게 달라집니다.. 만약 사람을 넣고 여러 변수를 입력하여 이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지를 감별해 낼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아마 <대박>이 날 것입니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고, 그래서 알기가 어렵습니다.. <돈을 가져도 여전히, 권력의 자리에 올라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그리운 세상입니다..







사래는 <하갈의 변신>에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엄청난 배신감으로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사래는 그 고통을 남편에게 호소하며 퍼부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사래의 말 속에는 <하갈>이란 인격적인 이름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여종>, <그가>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서운함이, 하갈에 대한 서운함으로, 그리고 남편에 대한 서운함으로 증폭되어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서운함이 절정에 달해서 사래는 남편에게 마구 퍼부었습니다.. 둘 사이의 관계가 위태로워졌습니다..







아브람은 자신을 찾아와 퍼부어 대는 사래의 기세에 눌렸는지, 사래에게 하갈에 대한 결정을 위임했습니다..




사래는 하갈을 못살게 굴었습니다.. <6절>에 보면 <학대하였더니> 라고 표현했는데, 괴롭게 하고 압박했다는 뜻입니다..







여주인이 못살게구니, 하갈은 살 수가 없었습니다.. 하갈은 자신의 생명뿐 아니라 아이의 생명도 위험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도망쳤습니다.. 가나안과 애굽 사이에 있는 술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고향인 애굽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아브람의 집안은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아브람과 사래의 결혼 생활은 위태로워졌습니다..




아브람의 아이를 임신한 여종은 도망쳐서 찾을 수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그 집안의 분위기를 우리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아 씩씩 거리고 있는 사래의 모습,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고뇌하고 있는 아브람, 이런 주인들의 눈치를 슬슬 보며 이리 저리 피해다니는 종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하갈이 도망친 후 아브람의 집안에는 어색한 침묵 속에 어둠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습니다..




가정의 행복은 날아가 버렸습니다.. 삶의 의욕과 소망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자유로웠던 아브람과 사래의 영혼은 무게를 알 수 없는 그 무언가에 짓눌려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천사가 술 광야로 가는 길가에 있는 사막의 샘물 곁에서 하갈을 찾아냈습니다(7절)..




학대받다가 도망친 하갈을 하나님께서 찾아가셨습니다.. 샘물 곁에서 그녀와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녀를 여주인 사래에게 돌려 보내셨습니다..







하갈은 감격했습니다.. <내가 정말로 하나님을 뵙고도 이렇게 살아 있다니! 여호와는 '나를 보시는 하나님'이셔! 세상 누구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여호와께서 나를 알아주셨어..>







그녀는 그곳에 있는 샘물의 이름을 <브엘라해로이>, 즉 <나를 보시는 살아 계신 분의 우물>이라고 지었습니다..




사래에게 돌아온 하갈은 아들을 낳았고, 아브람은 그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지었습니다..







아브람이 이스마엘을 낳은 때는 그의 나이 86세 때였습니다.. <이스마엘>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들으심>입니다..




하나님은 학대받던 <하갈의 부르짖음>을 들어 주셨습니다.. 그녀에게 긍휼을 베푸셔서 아들을 낳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 아들을 통해서도 민족을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로써 아브람의 가정을 회복해 주셨습니다..




하갈이 사래에게 복종함으로써 사래와 하갈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셨고, 하갈을 통해 무사히 아브람이 아들을 얻을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아브람의 가정은 이전처럼 온전히 회복된 듯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의 탄생은 아브람의 가정에 전혀 새로운 문제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17장>으로 이어집니다..







이스마엘은 장차 <들나귀와 같은 사람>이 됩니다.. <들나귀>는 길들이지 않은 야생 나귀인데, 사람이 없는 들이나 광야에 삽니다(사 32:14절)..




성경에서 <들나귀>는 <지각없는 허망한 자>(욥 11:12절), <보호자 없는 처량하고 불쌍한 존재>(창 16:12절), <끊임없는 욕정으로 가득 찬 자>(렘 2:24절) 등에 비유됩니다..







이스마엘은 사람들을 대적하고, 사람들도 그를 대적합니다.. 그는 자기의 모든 형제들과 <마주 대하여> 즉 갈등하며 살게 됩니다..




이스마엘의 탄생은 앞으로 일어날 아브람의 후손들 사이의 심각한 갈등을 예고해 줍니다..







결과적으로 사래가 제시한 <하갈을 통한 플랜 C>(하갈 카드)는 아브람이 버렸어야 할 계획(카드) 이었던 것입니다..




처음부터 꺼내 들지 말았어야 할 카드였습니다.. 그러나 그 카드는 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것이었습니다.. 매우 유혹적인 카드 였습니다..







결국 아브람은 그 계획을 사용했고, 그 결과로 이스마엘을 얻었으나 그로 인해 아브람의 가정은 새롭고도 엄청난 문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수습해 주시긴 하셨지만, 쓴 열매를 거두는 일은 아브람의 몫으로 남았습니다..




아브람 당대뿐만 아니라 그 후손들까지 죄의 쓴 열매를 맛보아야 했습니다..








사래는 하나님의 약속을 자신의 방법으로 성취하고자 했습니다.. 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로 사래는 행복을 잃었습니다.. 이스마엘을 자신의 아이로 품에 안지도 못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플랜 B, 플랜 C>가 있습니까?




<하갈을 통한 계획>은 「육체의 방식」입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세상의 방식으로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방식을 쓰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갈 카드를 쓰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하나님이 이루시도록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시도록 기다리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사래의 명령으로 아브람이 하갈을 취한 것처럼(창 16:2절) 하나님의 약속을 <자신의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유혹을 거절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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