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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10일 주일 설교 - 효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창 9:20-29절)(23절)
 이기남    | 2020·05·09 09:27 | HIT : 140 | VOTE : 1
* 설교 - 효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창 9:20-29절)(23절)







1. 효도 이야기..




「공자의 제자였던 <민자건>에 관한 이야기는 역사에 나올 만큼 훌륭한 이야기입니다.. 그의 덕행과 효행은 후세의 많은 사람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그가 어렸을 때 그의 계모가 심성이 퍽도 고약했습니다.. 한겨울이 되면 자기 아들들에게는 두툼하게 솜을 넣어 만든 옷을 입히고, 전처의 자식인 <민자건>에게는 솜 대신에 갈대 잎을 넣어 만든 옷을 입혔습니다..







그러나 <민자건>은 이것을 알고도 모르는 척 전혀 원망하지 않고 잘 참고 견뎠습니다.. 어느날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가 불같이 화를 내고, 이 후처를 당장 내쫓으려 들었습니다..







그럴때 <민자건>은 아버지에게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아버지, 고정하십시오.. 어머님이 계시면 아들 하나가 춥고, 어머님이 안계시면 아들 셋이 춥습니다.."




이 말에 아버지가 감동하고, 계모는 크게 뉘우치고 마음씨를 고쳤다고 합니다..







계모도 이후로 이 아들 <민자건>에게 잘했고, <민자건>은 그 계모에게 효성을 다해서 이 이야기는 후세까지 전해지는 유명한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2. 최고의 효도..







(1) 「기본적으로」 효도란, 부모님을 「육체적으로」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우선 음식이나 옷이나 잠자리나 용돈이나, 이런 주로 「물질적인 것」에서 여유를 드림으로 편안하게 해 드릴 때 이를 효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좀더 높은 수준으로」 효도란, 「정신적으로」 「부모님의 뜻을 잘 받들어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이 있어도, 「생각을 돌려서」 부모님의 뜻을 따라가며 부모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는 것이 높은 수준의 효도입니다..







(3) 「그 보다도 더 높은 수준으로」 최고의 효도란, 「인격적으로, 사회적으로」 「높은 이름을 얻어서, 부모님을 명예롭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아무개의 아들이 아닌가..> <그 부모는 누구 아닌가..> 이런 「평판을 얻어」 부모님께 높고 귀한 이름을 드리는 것이 아주 높은 수준의 효도입니다..







3. 효도의 덕..




우리는 앞의 3가지의 「효도」를 다 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는 특별한 「효도의 덕」이 나타납니다..




오늘 이야기는 아주 특별한 이야기요 섬세하고 실제적인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노아」에게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홍수 이전에는 사람들이 오래 살았는데, 홍수 이후에는 급격히 사람의 수명이 짧아 집니다..







그런데 「노아」는 600세가 된 노인입니다..




무료할 수 밖에 없고 또 여러 가지로 힘든 일이 많았던 것 같은데, 무릇 나이가 많으면 실수가 많아 집니다.. 탐식을 하게 되고, 자기 절제를 잘 못합니다..




그날도 「노아」 할아버지는 포도주를 좀 지나치게 마셨던가 봅니다.. 대취하여 그만 대낮인데 벌거벗고 주무셨던 것입니다..







이 모습을 아들 중의 하나인 「함」이 보았습니다.. 그는 신바람이 나서 형제들에게 가서 떠벌렸습니다..




아버지가 벌거벗고 지금 저렇게 주책없이 노망을 떨고 있다고..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을 전문적으로 해석하시는 분들이 말하는 바로는 이 아들이 원래 좀 방종해서 평소 아버지로부터 책망을 많이 들은 것 같다고 합니다..




더구나 술취함으로 인해서 아버지로부터 큰 책망을 들은 일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니 그 눈에는 아버지도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이 난 모양입니다.. <나보고 술취하지 말라고 하시더니 아버지 자기는 한 술 더 뜨시네..> 이러고 소문을 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소리를 들은 다른 아들들인 「셈」과 「야벳」은 황급히 달려와 어버지의 벗은 하체를 보지 않으려고 옷을 든 채 뒷 걸음질 쳐서 아버지를 덮어 드렸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다음에 이런 일이 있었던 것을 알게 된 아버지는 저들이 행한 데에 합당한 축복과 저주를 내립니다..







「함」의 아들인 「가나안」은 <형제들의 종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지성을 다해서 아비의 명예를 높이고 부끄러움을 덮어준 「셈과 야벳」은 <복을 받을 것이다..>







여기에는 엄청난, 중요한 「효도의 의미」가 있습니다..







(1) 첫째, 효도는 「부모의 깊은 뜻을 이해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젊은 사람은 나이 많은 사람의, 자식은 <부모의 깊은 뜻>을 이해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뜻을 이해 하여야 됩니다..







나이가 많으면 고독합니다.. 힘이 없습니다.. 그리고 낙이 없습니다..




그리고 생각도 없고, 생각하기도 귀찮습니다.. 그저 매끼마다 맛있게 음식 잡수시는 것 밖에는 낙이 없습니다.. 먹는게 유일한 낙입니다..







그래서 탐식을 하게 됩니다.. 과음 과식을 해서 그 때문에 밤에 숨을 거두는 일도 있습니다..




나이가 많으면, 내가 얼마나 먹고 있는지 대중을 할 수 없답니다.. 배부른 걸 모른답니다.. 의학적으로 볼 때 위신경이 둔해져서 먹는 양을 모른답니다..







그래서 대중없이 먹어 놓으니 일어서려면 일어설 수가 없고, 힘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눈으로 짐작을 해서 <요만큼만 먹어야겠다..> 하고 먹어야지, 배부를 때까지 먹다가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나이가 많으면 이런저런, 나이 많은 분들에게만 있는 사정이 있는 것입니다..」







잔소리도 많아 집니다.. 왜냐하면 기억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안 놓여서도 그렇지만 방금 한 말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30분 밖에 기억을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했던 말 또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말씀을 전하러 나가든지, 이런 저런 일로 밖에 나갈 때, 항상 어머니에게 기도를 받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시간이 늦었는데도 한 기도 또하고 또하고 하시면서 길게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때마다 기도해 주시는 어머니가 계셔서 저는 너무 행복했습니다..」







나이가 많으면 자기가 한 말을 잊어버립니다.. 그러니 또 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저의 어머니는 87세를 이 땅에서 사셨고 지금은 천국에 계십니다..




팔순이 넘으셔서 살아 계실 때, <자주 오늘이 며칠이냐, 무슨 요일이냐> 물어 보십니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다시 물어 보십니다..




저의 아들이 어렸을 때, 답답하니까.. "할머니, 그거 아까 물어봤잖아요.." 하면서 따집니다.. 그러면 저는 아들을 책망했습니다..」







백번을 물어보셔도 백번을 다 대답해야 합니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다른 낙이 없습니다.. 나이 많아 실수도 하고, 주책도 부리고, 과식도 하고, 과음도 하고, 또 건망증도 있고, 노망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 그것이 「효도」입니다..







(2) 둘째, 효도는 「부모의 허물을 덮어 드리는 것」입니다..




「효도」는 부모를 「이해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허물을 덮어 드리는 것」입니다..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벗은 것을 안 보려고 뒷 걸음질 했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했습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잠 10:12절)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약 5:20절)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절)







「사랑은 덮는 것입니다..」 아니 덮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 허물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사랑하면 허물이 허물로 보이지를 않습니다.. 다 이해를 하니까 그렇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13-15절>을 보십시오.. 가슴이 뜨거워 집니다..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얼마나 굉장한 말씀입니까? 얼마나 뜨거운 말씀입니까? 이렇게 한번 추리해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간질병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갈라디아 교회에 가서 설교하다말고 간질병이 발작해서 쓰러졌다고 생각을 해 보십시오..




거품을 물고 쓰러졌습니다.. <이제 믿음에 시험이 들것 아니겠습니까?> '아니, 제 병도 못고치는 주제에 무슨 설교를 하나.. 주의 종이 뭐 저 정도밖에 안되는가..' 안 그렇겠습니까?」







「너희 믿음을 시험할만한 것」이 내 육체에 있건마는.. 너희는 나를 업신여기지 아니하고,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느니라..




너무도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그의 허물과 그의 단점과 그의 약점.. 다 덮었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어주는 것입니다..」




「노아」는 바로 이 문제에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3) 셋째, 효도는 「부모의 위대함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셈과 야벳」, 이 두 형제는 아버지의 위대함을 기억합니다.. 자 노아가 누구입니까?







「노아」는 「온 세상이 다 죄악에 빠질 때 죄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분」입니다..




「120년 동안을 믿음으로 방주를 예비한 분」입니다.. 「여덟 식구를 구원하고 세상을 구원한 위대한 아버지」입니다..




누가 뭐라해도 「위대한 아버지」입니다..







「오늘의 저 부끄러운 사건」이 무슨 문제입니까? 그래서 저들은 「아버지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명예」를 높이 생각했습니다..







(4) 넷째, 효도는 「부모에게 축복권이 있음을 숙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셈과 야벳」은 아버지에게 「축복권」이 있다는 것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고 숙지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복을 빕니다.. 이삭이 야곱과 에서에게 복을 빕니다.. 야곱이 12지파를 앞에 놓고 그들의 행위를 기억하면서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가며 복을 빕니다..







오늘도 「노아」가 세 아들을 앞에 놓고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하고, 「셈과 야벳」에게 복을 빕니다.. "너는 종의 종이 되리라." 무서운 말씀 아닙니까?







우리는 다시 한번 영적으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부모님의 마음 속에 복을 비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설사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마음 속에 진정으로 자식을 향하여 복을 비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어떻게 그렇게 됩니까?




오늘 「노아」와 같이 이렇게 「자식의 사랑을 느낄 때, 고마움을 느낄 때」, 복을 빌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야 비로소 복을 받는 법입니다..







사람 중에 가장 모순된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자신은 부모에게 불효하면서, 자식들은 효자 만들겠다는 사람입니다..




부모님의 마음은 아프게 하면서, 자식은 잘되길 바라는, 이것은 말이 안됩니다..







「<복받는 비결>은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데 있습니다..」 그 복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그저 「이 세상에 사람 태어난 것만으로 기뻐했습니다..」




「생명을 소중히 여김」이 있고야 「부모님에게 효도할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괴로울 때마다 부모님이 왜 나를 낳아 놓았나.. 뭐 이런 생각을 하는 일도 있습니다마는, 근본적으로는 <자기 생 자체를 행복하게 여기는 사람>만이 <부모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또 「명예와 신분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았습니다.. 그 물려받은 데 대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부모는 첫번째로 가장 근본적인 선생님입니다.. 부모로부터 신앙을 배우고 생활을 배우고 학문을 배우고 인간의 삶의 지혜를 배웁니다..







「그 물려받은 것에 대한 감사」가 비로서 「효」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계명입니다.. 약속 있는 계명입니다.. 가정의 분위기를 참으로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분위기」로 이루어야 복이 이루어 집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이런 분위기가 무르익어야 「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딸 하나만 데리고 어렵게 사는 어머니가 분식점을 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이 딸을 잘 키우기 위해서, 고등학교 다니는 이 아이가 예술적인, 미술적인 소질이 있다고해서 지금 미술 학원에 보내고 있습니다..







어느날 분식점에서 일을 하다가 비가 오더니 장대비가 막 쏟아지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깜짝 놀라서 딸이 돌아올 때가 된 걸 알고 우산 두 개를 들고 미술 학원으로 달려 갔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가서 문앞에 서서 보니 아차, 일하던 모습 그대로 온 것입니다..




앞치마를 둘렀지요.. 뭐, 옷은 말이 아니지요.. 밀가루가 덕지덕지 붙었지요, 이 모양을 하고 여기를 온 것입니다..




'이를 어쩌나? 아이들이 보면 감수성이 예민한 우리 딸이 부끄럽다고 생각할 텐데..' 그러나 어떡합니까 여기까지 왔으니..







우산 둘을 들고 처마 밑에 서 있는데 시간이 되어 저 2층에서 딸이 내려다보는 것입니다.. '엄마가 왔다' 하고 손을 흔드는데 이놈이 안나오는 것입니다..




엄마 꼴이 말이 아니어서 창피하다고 안나오나보다, 생각을 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옵니다..







한 달 동안 말을 안했습니다.. 너무 속상해서, 그랬는데 한 달 후에 딸이 그림을 잘 그렸다고 미술 발표회를 하고 상받는다고 하기에 미술 학원에 갔습니다..




딸이 특상을 받았는데 수상 작품의 제목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우산 둘을 들고 서 있는 어머니, 비맞으며 서 있는 그 날의 그 어머니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어머니는 너무도 고마워서 딸을 얼싸안고 행복에 겨워했습니다..」







「효도」가 어디에 있습니까?




「참으로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모든 흠과 부족함을 다 덮을 때, 그 이름을 높여드릴 때」, 그 속에 참 기쁨이 있고 참 복이 있는 것입니다..







「장수와 형통의 비결」이 여기 있습니다.. 「효도」하고 장수하고, 「효도」해야 형통한다고 성경은 확실하게 가르칩니다..







모쪼록 다시한번 마음을 가다듬어서, 모두가 「효도」하는 마음, 기쁘시게 하는 마음이 되고, 그리고 부모는 자식을 위하여 <복을 비는 마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 하나님의 복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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