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축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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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12일 맥추 감사 주일 설교 -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 (시 16:1-11절)(6절)
 이기남    | 2020·07·11 11:21 | HIT : 120 | VOTE : 1
* 설교 -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 (시 16:1-11절)(6절)








1. 우리가 겪고 있는 불행한 사건들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언젠가 3백여 명이 탄 배 한 척이 큰 풍랑을 만나서 파선되면서 모두가 그만 바다 밑에 수장되는 비극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젊은 선원이 널빤지 한쪽을 붙잡고 표류하여 어느 작은 무인도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섬에 올라가 모래 사장에 엎드려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3백여 명이 다 죽는 그 엄청난 사건 속에서 저 하나를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 기도를 드리고, 좌우를 돌아 보았는데, 정말로 사람이 하나도 없는 무인도 입니다..




원시림에 짐승들만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거기에서 나무 열매를 따먹으며 지냅니다.. 그리고 장대 끝에다가 옷을 걸어 만든 깃발을 하루 종일 흔들어 댑니다..




혹시라도 알아보기를 기대하면서 수평선 저 멀리 지나가는 배를 향해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람이 있으니 제발 와주기를 바라면서요..








그렇게 깃발을 하루 종일 흔들고, 흔들고, 또 흔들며 기다립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배는 오지 않습니다..




게다가 시일이 흘러 날씨가 점점 추워집니다.. 겨울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겨울을 나기 위해서 땅을 파고 거기에 꺽어온 나무 가지를 이리저리 얽어서 움막을 하나 지었습니다..





한데 어느 날 저녁에 불씨를 잘못 간수하는 바람에 그만 불이 났습니다.. 그가 그렇듯 소중하게 만들어 놓은 움막집이 홀랑 불타버렸습니다..







이때부터 이 청년은 본격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다들 죽을 때 저도 같이 죽도록 내버려두시지, 왜 저를 살려주셔서 이 고생을 하고, 이렇듯 외롭고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하십니까?”


이렇게 하나님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습니다.. 그러다가 피곤해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큰 배가 커다랗게 고동 소리를 울리면서 그 무인도로 다가옵니다.. 그는 벌떡 일어나 해변으로 나가서 배를 불렀습니다..


배에 올라서 선장한테 인사했습니다.. “어떻게 제가 여기에 있는 줄 알고 오셨습니까? 감사합니다..”







그랬더니 선장이 하는 말이 이랬습니다..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오.. 연기가 나서 웬일인가 해서 왔을 뿐입니다.."」





자기 움막집이 타버려야 살 길이 열린다는 것을 이 청년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많은 불행이 있습니다마는, 그 불행한 사건들이 있어서 오늘 내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기도합니다..






2. 인간의 지혜가 어디에 있습니까?








첫째, 성경이 말씀하는 소중한 지혜의 근본은 <창조주를 아는 것>입니다..




<천지가 창조되었고,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 하셨고, 그 창조의 섭리 가운데 내가 있습니다..>







창조주를 아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이것이 바른 생각의 출발점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전도서 12장 1절>에서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다음 둘째는, <내가 피조물됨을 아는 것>입니다..




나는 창조주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피조물일 뿐입니다..









역사를 보면 인간은 수많은 잘못과 큰 실수를 저질러 왔습니다.. 그 실수들 가운데 가장 큰 것이 공산주의 입니다..




공산주의라는 사상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손해를 보고 피해를 입었습니까? 그 뿌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근본으로 올라가면 니체의 초인 사상입니다.. 니체는 신을 부정했습니다..




<신이 어디 있느냐? 사람이 신이다>라고 하면서, 창조주를 부정하면서부터 파생된 것이 바로 공산주의 철학입니다.. 무신론 입니다.. 유물사관(唯物史觀)입니다..




그 무서운 결과를 우리가 보지 않았습니까?








그런고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은 피조물이지 창조주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인간은 피조물이기에 「주어진 생」을 산다는 것>입니다..




Limitation, <한계를 아는 것>입니다.. 주어졌습니다.. 우리의 건강도, 우리의 지식도, 우리의 재물도 다 주어진 <한계>가 있습니다..




이 <한계 속에> 우리는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는 <창조주를 아는 것>이고, <자신이 피조물임을 아는 것>이고, 그리고 인간은 피조물이기에 주어진 생을 산다는 것, Limitation, 즉 <한계를 아는 것>입니다..






일생을 놓고 볼 때 앞으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남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제 <한계>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런고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뭐든지 하면 다 된다.. 노력하면 된다..> 이것은 유치한 소리입니다.. 아무리 애써도 안 될 것은 안되고, 될 것은 되는 것입니다..








<하면 된다>는 것은 인간의 의지를 고양하는 동기로는 좋지만, 하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 된 것입니다..







<안 될 것은 안 된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3. 탈무드가 말하는 사람의 행복 세 가지는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의 지혜를 모아놓은 『탈무드』에는 <사람의 행복 세 가지>가 나옵니다..







첫째, 일이 있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일거리가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또 어떤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에게 일거리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직장에 다닐 때는 그저 오늘은 좀 쉬었으면 좋겠다 싶고, 휴일이 빨리 돌아 오기만 기다리게 되고, 심지어 어떤 때는 빨리 은퇴했으면 좋겠다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은퇴해 보십시오.. 금방 생각이 바뀝니다.. 출근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습니다..







일이 있다는 것, 물론 힘듭니다.. 그래도 일이 있다는 것은 <삶의 존재 의식>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일이 없다는 것, 할 일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쓸모가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어쨌거나 일이 있어야 됩니다.. 일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행복의 요소임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둘째, 그 일을 즐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둘째가 중요합니다..)




일을 해도 억지로 하고, 죽지 못해서 하고, 만부득이해서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 하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니까 할 수 없이 한다면 곤란합니다.. 잘못된 일입니다..







일을 즐겨야 합니다.. 통계적으로 봐도 일을 즐기는 사람들이 오래 삽니다..




예술가들을 보면, 그림 그리는 사람들, 오래 삽니다.. 백세가 되도록 삽니다..




왜 그렇습니까? 일을 즐기니까요.. 돈 벌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림 그리는 것을 그저 즐깁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도 보십시오.. 돈 벌기 위해서 음악을 한다면 그 사람 미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음악 자체를 즐깁니다.. 돈은 뒤따라 오는 것입니다.. 즐기면서 살기 때문에 오래 사는 것입니다..




작곡가, 지휘자, 화가가 다 그런 사람들입니다.. 다 일을 즐기는 사람들입니다..







일을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고, 노동으로 생각하지 않고, 일을 취미로 생각했습니다.. 즐거움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의 비결입니다..






셋째, 가진 것에 만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셋째도 엄청 중요합니다..)




얼마를 살든, 주어진 것에 만족해야 합니다..




내게 주어진 건강에 만족하고, 내게 주어진 지능과 지식도 만족하게 여겨야 합니다..







지위든 물질이든, 우리가 소유한 것은 다 주어진 것입니다.. 얼마를 가졌든 만족하게 살아야 합니다.. 내가 가진 것이 소중한 것입니다..




더 많이 가지겠다고 욕심을 내지 말고, 가진 바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행복의 근본입니다..







이렇게 랍비들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4.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




오늘 본문 <6절>을 보십시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중요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 "나의 기업"은 <정해진 한계>를 말합니다..









내게 주어진 건강, 지식, 돈, 물질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줄로 딱 재어 주시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는 이만큼 가지고 살아라, 이만큼 일하고 살아라, 이만큼 누리며 살아라..>







자 우리는 이렇게 주어진 것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내게 주셨고, 그리고 그 곳은 아름다운 곳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그런 마음, 그런 감사, 그런 간증이 <하나님의 사람의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잠언 16장 9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사람이 이 모양 저 모양으로 계획하고 노력하지만, 마지막에 보면 줄로 재어 주신 데가 딱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네 것이다.. 이것만 네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걸 빨리 알고 그에 합당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줄로 재어주신 구역에 대해서 감사하고, 행복해하고, 즐기고, 또 나아가 찬양해야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5. 하나님의 생각..





「유명한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어렸을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그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장을 보러 갔습니다..




온갖 과일들을 쌓아놓고 파는 가게 앞을 지나는데, 이 어린 워싱턴이 잔뜩 쌓아놓은 빨간 앵두 더미 앞에 딱 멈춰 서서 떠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먹고 싶은 것입니다..







아무리 어머니가 가자고 해도 안 갑니다.. 그 모습을 보고 주인이 묻습니다..




"얘야, 이 앵두 먹고 싶으냐?" "예." "그럼 내가 줄 테니 네 손으로 딱 한 움큼만 집어서 가지거라." 하지만 워싱턴은 가만히 있기만 합니다..







아무리 가지라고 권해도 앵두를 집을 생각을 안합니다.. 결국 주인이 자기 손으로 앵두를 한 움큼 집어서 워싱턴에게 주웠습니다..




그제서야 워싱턴이 그걸 받아가지고 "감사합니다!" 하고 갑니다..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얘야, 너 아까는 그 주인이 앵두를 한 움큼 집어서 가지라고 했는데도 왜 가만히 있다가 주인이 집어서 주니까 그제서야 받았느냐?"







그러니까 조지 워싱턴이 대답하는 말을 들어 보십시오.. "주인의 손이 제 손보다 더 크거든요."」







자기 손으로는 조금 밖에 못 집지만, 주인이 집어주면 훨씬 더 많은 앵두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걸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이 기다림... 하나님이 움직이실 때까지 내 쪽에서 끊임없이 기다리는 이 기다림...




성숙한 신앙은 현실에서 쉽게 붙잡을 수 있는 차선이 아니라, 기다림 끝에 완벽하고 넘치게 주어지는 최선을 붙잡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생각이 훨씬 더 큽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판단을 맡기십시오.. 내가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아무리 몸부림 쳐봐야 별것 아닙니다..




내 주여, 뜻대로.. <주님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 분의 손이 더 크십니다.. 그 분이 더 능력이 많으십니다.. 그리고 그 분이 더 잘 아십니다..




그 분의 인도하심을 내가 수용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줄로 재어주신 구역>, <하나님께서 재어주신 구역은 아름답습니다..> 이 얼마나 귀한 간증입니까?







그 줄로 재어 준 구역을 사랑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분이 나를 아시기 때문이고, 그분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고, 그 분에게는 지혜가 더 많은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줄로 재어주신 구역을 믿고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 바로 참 신앙인의 간증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나 됨을 아시고, 가장 합당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6.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사도 바울에게는 참 어려움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도자에게는 좋은 환경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가 필요하겠지만, 가장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건강」입니다..




전도자에게 건강이 없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건강이 없었습니다.. 육체의 가시, 사탄의 사자라고 하는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간질병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런 병이 있어서 사도 바울은 가는 곳마다 이 병 때문에 쓰러졌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4장 1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하다 말고 간질병이 일어나서 그만 쓰러진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나 어려운 형편으로, 이렇게나 불충분한 건강으로 선교에 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3번이나 특별히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고후 12:9절)







만족스럽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Sufficient,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만족 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사도 바울은 이것을 받아 들입니다..




<나는 약할 때 강하다.. 약함이 오히려 나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게 한다..> 그래서 그는 위대한 사도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구역, 하나님께서 주신 건강을 그대로 수용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잘못된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모든 일을 하나님의 은혜로 수용하는 거기에 귀중한 신앙의 간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토를 달지 않고 그대로 받아 들이시기를 기도합니다..









7. 아름다운 생을 산 것입니다..





저는 우리 형제 자매님들이 <찬송가 478장>을 즐겨 부르시기를 기도합니다.. 제목이 <참 아름다워라> 입니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영어로는 <This is My father’s world>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세상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이다..> 그런 찬송입니다..








「한 분 남자 성도님이 돌아가셨는데, 장례식을 집례하는 목사님이 유족들에게 물었답니다..




<고인이 된 이 성도님이 생전에 즐겨 부르던 찬송이 있습니까?>







그랬더니 그 분의 자녀들이 모여서 회의를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 아버지가 찬송 부르시는 걸 못 봤는데 하면서 걱정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신앙이 좋은데 아버지는 그냥 교회는 나오긴 했지만 그렇게 신앙이 좋지 않았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딸 하나가 말합니다.. <아니야 아니야 우리 아버지가 늘 흥얼흥얼 부르시던 찬송이 하나 있어요> 하고는 그 찬송이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장례식에서 이 찬송을 불렀는데, 은혜가 컷다는 것입니다..」







한 평생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이라고 불렀다면, 그것이 내 마음에 남아있는 찬송이라면, 그분은 아름다운 생을 산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찬송을 부릅니까? 우리 안에서 계속 흘러 나오는 찬송은 어떤 찬송입니까?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이 얼마나 아름다운 찬송입니까?




주님께서 내게 줄로 재어주신 구역은 아름답습니다.. 할렐루야..







나의 생애는 아름답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게 선하셨습니다..




이것이 찬송이요, 찬양이요, 이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이요 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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