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축제교회

 


TOTAL ARTICLE : 924, TOTAL PAGE : 1 / 47
2020년 7월 19일 주일 설교 -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 (창 22:1-18절)(12절)
 이기남    | 2020·07·18 11:01 | HIT : 111 | VOTE : 2
* 설교 -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 (창 22:1-18절)(12절)







우리는 지난 시간에, <21장>에서 <약속의 성취로 이삭이 태어남>을 통해, 「말씀대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배웠습니다..




그 말씀이 정직하시고 신실하시다는 것은 우리의 신앙에 큰 위로와 확신이 됩니다..




이러한 사실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하신 약속과 정면으로 충돌되는 명령>을 하셨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실제로 아브라함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그의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것인데 이건 도무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창세기의 아브라함을 통해 배웠던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은혜와 신앙>은 이 한마디 명령의 말씀으로 인해, 한순간에 다 날라가 버리게 됩니다..




정말 이 명령은 어찌보면 아브라함을 허탈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런 명령을 하시는 것일까요? 이것이 시험이라면 그 포인트는 무엇일까요?




이 시간 이 명령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함께 생각해 보면서, 이에 대한 아브라함의 반응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의 믿음>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는 하나님..




<1절>은 "그 일 후에"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 일 후에" 라는 말은 <20,21장>을 배경으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얻고>, <이스마엘 문제>도, <아비멜렉의 문제>도 다 해결하고 난 후를 말합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더 이상 문제 될 것이 없이 <영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고 있었습니다(21:33절)..







그런데 모든 것이 잘 풀려 나가고 아무 일도 없으면 괜히 긴장이 됩니다.. 꼭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아브라함에게 뭔가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1절>을 계속 보십시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고자 하셨습니다..







여기서 「시험한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느 정도까지 성장했는가>에 관한 것인데, 정말 그의 믿음은 얼마나 성장한 것일까요? 이만하면 됐다 할 정도까지 성장 했을까요?







그래서 하나님은 이것을 알아보려고 어느날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은 깜짝 놀랐습니다..




한동안 조용하다 했더니 <이 무슨 일인가?> 아브라함은 긴장하면서 <아니 하나님, 갑자기 웬일이세요?> 하고 대답한 것일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 하나님, 저 여기 있습니다..> 그의 대답은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다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은 이번에는 정말 놀랐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아들이요 또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해 후사를 이어 가시겠다고 직접 말씀하셨는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그것도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 이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줄 알면서 이러시다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바로 자식 문제 때문에 이제까지 신앙 생활을 해왔다고 말해도 틀린 말이 아닌데, <지금 한창 잘 자라고 있는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니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렇게 이삭을 사랑하는 줄 알면서 왜 이런 시험을 하시는 것일까요?







<첫째>, 이것은 그의 신앙이 「하나님 중심인가, 아들 중심인가」를 알아 보시기 위한 것입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이삭은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것인데 그게 말이 됩니까?> 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린다면, 그것은 그가 「자식 중심, 자기 중심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 보다는 내 아들, 내 인생 계획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러한 아브라함을 구속 역사에 쓰실 수 있겠습니까?




그가 아들 중심이라면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이 원하시는 <천하만민을 위한 복의 근원>이 될 수 없습니다..







<둘째>, 이것은 그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이 그에게 하신 말씀을 믿을 수 있는가」 하는 시험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15:4절)고 말씀하시고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은 그 말씀에 신실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어떤 경우에도 이 약속의 말씀을 믿느냐>는 것입니다..




설혹 지금같이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깨뜨리는 명령을 하더라도, <그래도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약속이니까 하여간에 나는 믿는다며 명령에 순종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렇게 명령하시며 순종을 요구하시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이 이전에 하신 약속의 말씀을 그대로 믿기를 원하십니다.. 모순된 것 같지만 순종하면서 믿으라는 것입니다..







<셋째>,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가」하는 시험입니다..




<자기 생각을 내세우는가?> 또 <하나님이 앞뒤가 안맞는 명령을 하신다고 따지며 하나님께 반발할 것인가?>




물론 약속 자체를 놓고 보면 하나님께라도 따져볼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의 명령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반발하고 따질만큼 그렇게 만만하신 분이십니까? 합리성(合理性)..




이 시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40년간의 약속의 말씀을 오늘 뒤집어 내 마음을 어지렵혀도 <하나님은 여전히 내가 경배하고 순종해야할 하나님이 아니신가?> 라고 묻고 있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시며 주관자 이십니다.. 모든 것을 그 뜻대로 주관하시고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피조물된 우리에게는 참으로 「엄위하신 분」이십니다.. 「God of Majesty!」







이 하나님은 우리의 상급이시기도 하면서, 우리의 무서운 심판주이시기도 하십니다..




마지막 날,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대 앞에 서서> 각기 행한대로 고해야 할 것입니다(계 20:11-15절).. 그리고 이 하나님은 우리 영혼을 지옥에도 던져 넣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기에 앞서서, 먼저 이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아담의 범죄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아내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먹어버린 것입니다..




그랬을 때 그들은 무서워 떨어야했고 그 몸을 무화과 나무 잎으로 가리고 나무 뒤에 숨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이 두려워 심판을 면해 보려고 이렇게 저렇게 변명을 일삼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크고 두려우신 분이십니다.. 이것도 모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없다면, 그것은 <참으로 무지한 질서 없는 신앙>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창조주와 피조물, 구주와 죄인이라는 이 관계가 분명히 설정되어 있지 않으면 그 신앙은 <제 멋대로의 신앙>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거짓되게 살고, 음란과 정욕대로 자기 탐심과 감정대로 함부로 살아가는 것,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매번 이리저리 핑계만 내세우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을 얼마나 가볍게 여기고 있는가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한데 그것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구원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바로 이렇게 <무너진 영적 질서를 바로 잡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외하는 신앙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만히 여겨 이삭을 붙들고 돌아설 것인가?> 아니면 <당장에는 이해가 안되어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앞에 먼저 엎드려 순종할 것인가?>




하나님은 이런 경외심이 아브라함에게 있는가 없는가를 지금 알아보고자 하십니다..








이것을 보면 「신앙」이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 위에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 이 있어야 합니다..







경외심이란 글자 그대로 「fear」 곧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은 모든 것에 우선하여 창조주요 주권자요 심판자이신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할 우리의 자세입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눈을 감으면, 이런 생각이 주욱 밀려 들어 옵니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 <나는 이 엄청나신 창조주 하나님 앞에 그저 바람과 같이 잠깐 있다가 사라져 버릴 그런 존재가 아닌가?>





<복의 근원이라?> <그것이 엄위하신 하나님 앞에서 도대체 뭐란 말인가?> <나는 무엇으로 이 하나님 앞에서 한 순간이라도 버틸 수 있을까?>








먼저 이런 생각을 하고 <하나님 아버지, 저는 아무 것도 아닌 죄인입니다> 하고 고백하기 시작하면 정신이 버쩍 듭니다..







참으로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참 버릇없이 제멋대로 살고 있다는 것, 하나님께 <이것은 왜 이렇고 저것은 왜 저렇습니까>하며 꿍시렁대고 자기 주장만 하고, 사람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도대체 누구입니까?




우리는 참으로 이 하나님 앞에 대책 없이 위태롭기 짝이 없는 자신을 생각하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만을 의지할 뿐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 살 떨리는 두려움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먼저 아무 것도 아닌 공허한 존재인 자신을 고백하며 엎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돌아서면 그때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을 다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약속만 받으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과 관계 없이 살 수 있는 것입니까? 우리의 인생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만 있는 것입니까?





2. 아브라함의 결단..





그러면 이때 아브라함의 반응을 어떠했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성경은 하나님이 명령하셨을 때 아브라함이 이것 때문에 어떤 갈등을 했는지에 대해서 아무런 기록이 없습니다..




다만 그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하나님이 정하신 곳으로 향했다는 말만 있을 뿐입니다..







물론 그도 사람이니까, 아버지니까 이 문제를 놓고 간밤에 많은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하나님이 지시한 곳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가는 길이 사흘 길이었습니다..




그는 가는 도중에 마음이 변해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분명한 결단이 있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마침내 하나님이 지시하신 곳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종들에게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하고, 자신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돌아오겠다고 하였습니다(5절)..







특별히 여기서 예배라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배란 무엇입니까?




「예배」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마음 깊이 인정하고 그 앞에 자신을 온전히 드려 하나님을 높여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아브라함이 아들을 번제로 드리러 가는 마당에, 자기는 하나님께 예배 드리러 간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배라는 말을 사용하다니> 그 자체가 놀랍습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 예배드려야하고 또 지금 예배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모든 것에 우선해서 먼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오늘 이 영상 예배에 들어 오시면서 정말 하나님께 예배하고자 들어 오셨습니까?




내 마음과 진심을 담아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을 올려드리며 말씀을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과 믿음으로 <아멘> 하셨습니까?




말씀을 들으며, <주님 이제는 주께서 주신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하고 믿음과 결심을 드렸습니까?







예배의 마음은 기본적으로 예배의 자세에서 나타납니다.. 우리가 마음과 뜻을 새롭게 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할 최고의 것은 많은 물질, 좋은 봉사, 비상한 업적 이런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예배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번제 나무를 취해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이 들고 같이 동행하는데 가는 도중 아들 이삭이 묻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하나님께 예배하러 간다면서 정작 그 핵심이 되는 제물이 없으니 이상한 노릇이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의 마음은 아팠을 것입니다.. 그러나 <8절>을 보십시오..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이렇게 순종해서 산을 올라가면서도 <그래도 여기에는 뭔가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어떻게 하지 않으시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실 제물은 스스로 준비하신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이삭을 제물로 받아서 무엇하시겠습니까?




내가 아는 하나님은 그렇게 무자비하신 분이 아니신데, 내 마음을 아프게하실 분이 아니신데, 그러니 하나님이 친히 무엇을 하시지 않으실까?







그래서 그는 이삭이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느냐고 물을 때, 하나님이 이삭 대신 받은 제물을 친히 준비하실 것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아브러함은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약속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했고 하나님을 경외하면서도 모든 것을 믿었습니다..    








3. 아브라함의 경외하는 믿음을 복을 주시는 하나님..


<9절>을 보십시오.. 마침내 하나님이 지시한 곳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아들 이삭을 결박해 나무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는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여기서의 <잡으려>(10절)는 영어로는 단순히 <kill>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slay>(NIV), 혹은 <slaughter>입니다..




이것은 제물로 바칠 때 쓰는 용어로 동물을 잡듯 무자비하게 단호하게 죽이는 것을 말합니다.. <도살하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의 결단과 마음에는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는 칼을 높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내리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때 하나님의 사자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행여나 이삭이 조금이라도 다칠까봐 그의 이름을 급히 두 번이나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손을 대지 말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12절)







결국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서 test 하고자 하신 것은 그에게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사랑하는 아들도 아끼지않고 드릴 수 있는가>, 그런 「거룩한 경외심」, <Holy fear>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제까지 아브라함과 각별한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 오셨습니다.. 그와 대화하시고 그를 동역자 삼기까지 그를 귀하게 여겨 주셨습니다..




그의 가정에 복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각별히 가까운 분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을 진심으로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변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도 이 하나님을 잘 압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이 하나님을 열린 마음으로 자유롭게 믿고 의지하며 섬길 수 있었습니다.. 그 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바로 이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셨습니다.. 이제 그것으로 모든 것은 완성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영적인 질서도 바르게 서고, 이로서 그의 신앙도 완성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그가 주시는 은혜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갖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은 어느 특정한 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전반에 걸쳐 나타나야 합니다..







라틴어로 「Coram Deo」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라는 뜻입니다..




무엇을 하든 하나님 앞에서 하듯 경외심으로 가지고 하는지, 우리에게 그것이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시고 인정하시고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것은 에덴 동산에서 처음 무너진 창조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경외심으로 나타나고 증거되어 집니다..




『잠언』의 주제는 여호와께 대한 경외심에 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잠언 1장 7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에게는 세상의 두려움이 광풍같이 임하고 재앙이 폭풍같이 이르며 근심과 슬픔이 임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삶 속에는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힘써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구원 역사도 힘차게 이루어지고, 주님의 교회도 견고해 집니다.. 이 신앙은 마귀가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그 시험을 통과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어떤 복을 주셨습니까?







첫째,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를 체험하게> 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때 한 수양이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잡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그때 예비된 다른 것으로 우리의 희생을 대신하십니다.. 하나님은 보상해 주십니다..




<여호와 이레>, 이것은 신앙의 신비이며 충성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시며 그를 <복의 근원>으로 확정해 주셨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하나님은 가장 높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제 자신을 두고 맹세하시니 이는 최종 확정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맹세하신 복이 무엇입니까? <17,18절>을 보십시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 복은 이삭, 야곱,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까지 이어집니다.. 이어 하나님은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네 씨」란 <장차 오실 메시야>를 가리킵니다.. 그가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지만 그것이 하나님과 사람의 대적자 마귀의 성을 파괴하고 정복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십자가와 부활로 사탄의 골통을 부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길을 활짝 열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또 네 씨로 말미암이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이렇게까지 키우신 하나님의 마음 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이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천하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독생자 이삭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단에서 번제로 드리듯이 자기의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이 일을 이루십니다..







이 후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더 이상 훈련하시지도 시험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더러는 실수도 하기는 하겠지만, 그 마음에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있으므로 하나님은 그를 믿을 수 있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믿음을 인정받고 이제는 안심하고 무엇을 맡겨도 되고 무엇을 하든 간섭 안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신뢰하고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동역자 삼으시고 복의 근원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키워 주셔서 우리가 하늘의 뭇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알 같이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데 귀하게 쓰임 받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2020년 7월 26일 주일 설교 - 전복(顚覆) (눅 6:20-26절)(20절)  이기남 20·07·25 126
  2020년 7월 12일 맥추 감사 주일 설교 -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 (시 16:1-11절)(6절)  이기남 20·07·11 121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GGAM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