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축제교회

 


TOTAL ARTICLE : 978, TOTAL PAGE : 1 / 49
2021년 7월 4일 주일 설교 - 복음,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 (고전 15:1-4절)(3,4절)
 이기남    | 2021·07·03 11:05 | HIT : 135 | VOTE : 1

* 설교 - 복음,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 (고전 15:1-4절)(3,4절)








1.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로마서 4장 25절>을 보면,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의 죽으심은 우리 범죄함을 위해서, 즉 죄값을 대신 지불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빚을 갚으러 간 사람이 붙들려서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찌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빚이 다 청산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첫째 아담이 「행위 언약」(창 2:17절)을 지키지 못해서 실패한 것을, 예수님이 둘째 아담이며 마지막 아담으로 이 땅에 오셔서, 직접 <사시면서> 율법의 모든 요구를 다 지키시므로, <의를 획득하셨음을 확증해 주는 것>입니다..




* 여기서 의는 「하나님 앞에 바른 관계로 정당하게 설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은혜 언약」(창 3:15절)을 성취하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고」, <살으시므로> 「행위 언약」(창 2:17절)에 따른 의를 획득하셔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한 믿음으로> 의를 전가(轉嫁)시켜 주셔서 「의롭다고 해 주셨습니다..」







* 은혜 언약은 <창세기 3장 15절>의 「원복음」을 말합니다.. <원복음(창 3:15절) - 아브라함 언약(창 22:18절) - 다윗 언약(삼하 7:12-16절) -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고전 15:3,4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세기 2장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아담」은 열매를 먹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은 먹어서 실패한 죄의 값을 지불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고>, 처음부터 요구한 언약(율법)을 다 지켜내시므로 <부활하셔서>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즉 「살아나심」은 <우리의 죄가 다 청산이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온전한 제사>로 제물이 드려지고 하나님께 열납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핵심은 <에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에 있는 것입니다..









2. 여전히 잘 모르는 복음..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진리를 한 단어로 말하자면 바로 「복음」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날 교회 안에는 이 복음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믿는지를 다른 사람에게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가 남에게 설명할 수 없는 진리>가 자신이 정말로 믿는 진리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기독교의 가장 핵심이며 더 나아가 기독교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는 <복음이 무엇인지>를 설명할 수 없으면서 <나는 진리를 믿는 기독교인이다> 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기독교의 믿음은 <복음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복음의 은혜를 체험함으로 깊어지고, 궁극적으로는 복음의 주체이신 예수님을 천국에서 만남으로 구원의 완성에 이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복음을 기독교인이 되는 기초 단계에서 접하는 어떤 지식쯤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복음은 단지 기독교의 기초 정도가 아닙니다..






「복음」은 <기독교의 기초인 동시에 그리스도인의 삶을 지탱하며 완성하는 기독교의 전부>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기독교의 시작과 과정과 그 완성 모두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복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이 기독교 그 자체인 것입니다..










3. 복음의 실체와 내용..






그렇다면 <복음의 실체와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15장 1-4절>을 보십시오.. 성경에서 복음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중요한 구절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여기서 보듯이 복음이란 아주 단순하게 요약해서 말하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겪으신 죽으심>과 <하나님께 의로운 제물로 받아들여지신 부활하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와 같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로만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만으로 이루어진 복음 안에는 <인간의 어떤 노력이나 공로>가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이루어진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은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을 자신의 자녀로 받아주십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요 14:6절, 행 4:12절)










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죄인인 인간을 용서하시고 받아주시고 사랑하시는 유일한 근거가 <인간의 노력이나 성취에 따른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음의 은혜에 의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가 사람의 노력이나 열심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이 이미 이루신 십자가의 공로에 달려 있음>을 보여줍니다..










4. 종교와 복음의 완전히 차원이 다른 원리..






「복음」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려는 인간의 종교적인 본능>을 정면으로 부인합니다..










<종교적인 사람들이 살아가는 잠재된 기본 원리>는, <나는 하나님의 법을 지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나를 인정하고 받아 들이신다..> 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작용합니다..




<복음의 잠재적 기본 원리>는, <하나님께서는 나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받아 들이시고 인정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을 순종하고 섬긴다..> 입니다..










<종교적인 사람들>은 하나님께 받아 들여지기 위해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그 반면에, <복음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이미 받아 들여졌다는 사실에 감사하여 하나님의 법을 지킵니다..










이러한 근본적인 차이를 설명해 주는 말씀을 보십시오.. <로마서 4장 3-8절>입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여기서 <의>(righteousness)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자격>을 의미합니다.. 「칭의」(롬 1:17절, 3:21절)입니다..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로움의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종교적이거나 도덕적인 노력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이 순전히 은혜로 주시는 의로움>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의로움은 인간이 만든 의로움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하여 믿음으로 주어진 의로움>을 의미합니다..






이 예수님의 의로우심이 주어진 믿는 자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흠 잡을 때 없이 늘 받아들여지는 자녀와 같은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놀라운 은혜를 자신의 아들의 십자가만을 통해서 우리 죄인들에게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럴 의무가 전혀 없으셨고, 오히려 죄인들을 심판하고 처벌하셔야 했는데, 그렇게 하시지 않고 오히려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따라서 「은혜」란 <그렇게 하실 의무가 전혀 없으신 하나님께서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들에게 일방적으로 베푸시는 호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은혜가 주어지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교회 안에는 이 복음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도 있고, 아직도 여전히 종교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종교적인 사람이나 복음적인 사람이나 겉으로는 둘 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삶을 살아 갑니다..




둘 다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려고 노력하며, 기도하고, 기꺼이 헌금을 하며, 또 가정과 교회에서는 좋은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 힘을 씁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근본적으로 극히 다른 동기를 가지고, 완전히 다른 마음으로 이런 일들을 힘쓰고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께 인정 받으려고 노력하는> 반면에, 다른 한 사람은 <하나님께 이미 인정 받았음에 감사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 생활>은 하나님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종교적인 노력이 아니라, 이미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감에 따르는 당연한 반응입니다..









「신앙이란 우리가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감동받는 것입니다..」










* 신앙 생활의 3단계..










(1단계) 성경 공부를 통해,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알고 하나님께 감동받는 단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부지런히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신학자가 되어야 합니다..)










(2단계)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리는 단계입니다.. 예배 가운데 주님을 위해 살기로 결단합니다.. (예배 드림이 기뻐서 갈급해 합니다.. 인생의 제일되는 목적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 합니다..)










(3단계)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헌신하는 단계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들고 땅 끝까지도 갑니다..










5. 복음의 은혜가 지속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이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통해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도 <복음의 은혜를 자꾸 벗어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과 교회를 향한 노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하나님도 자신을 인정하시지 않으신다고 느낍니다..






심각한 도덕적인 실패 때문에 더 이상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거듭되는 삶의 잘못과 실패 때문에 하나님의 인정과 사랑이 더 이상 예전 같을 수 없다고 체념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과 열심을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기뻐하신다고 느낀 나머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향해서 상대적인 우월감을 갖기도 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러한 모든 생각과 태도는 다 <비복음적인 것들>입니다..










신앙 생활에서의 이런 모습들은 예수님의 복음이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이나 행동을 바탕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정해 나가려는 시도들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시도들은 사실 복음을 벗어난 것들입니다.. 놓치지 마십시오..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핵심은 <예수님의 복음>이지 인간의 노력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을 때 그것을 싫어하시고 또 때로는 사랑의 매를 대시기도 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그에 따르는 그 분의 은혜와 사랑은 오직 복음을 믿는 믿음에 의해서만 주어집니다..










우리의 체험은 시시각각 변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우리의 신분, 즉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로운 신분은 절대로 그리고 조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복음을 통하여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의 절대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과의 관계의 바탕을 「복음」에 두어야 합니다..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러한 비복음적인 잘못된 길에서 영적인 방황을 할 때가 많습니까?









이 세상의 좋은 것들은 대부분 노력을 통해서만 성취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또 어떤 특권을 성취하더라도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그것을 유지하기란 불가능한 것이 일반적인 상황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들어갔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런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남다른 자질을 갖추어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번 그 직장을 들어갔다고 해서 자신의 신분과 위치가 저절로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그리고 효과적으로 계속 수행하지 못한다면 아마도 중간에 탈락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직장을 들어가는 과정에서도 노력이 필요하지만, 들어가서도 또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 세상의 직장을 얻는 일과 그것을 유지하는 일에도 이렇게 힘든 노력이 필요한데..




하물며 하나님의 영원한 인정을 받는 의로운 자녀의 신분과 자격이 노력 없이 그냥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 없이 늘 받아들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에서 이러한 대접을 받아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거듭되는 실수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늘 변함 없이 인정해 주고 받아주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믿는 사람들도 자신의 노력과 행동이 하나님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음 한편으로 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불안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비록 구원을 잃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인정 대신에 자신의 거듭되는 잘못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벌을 주시거나 자신에게 실망하신 상태라고 생각하며 살아 갑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봉사의 일을 교회 안에서 열심히 하지만..




그 근본적인 동기가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하고 감사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인정하심과 받아주심의 은혜를 잃을까봐 두려운 마음으로 그렇게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가는 자신도 힘들겠지만 이러한 삶을 바라보시는 하나님도 너무나 안타까우실 것입니다..










6. 복음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두 가지가 불가능합니다..







복음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의 목숨을 내어 주시고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느낄 수 있는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을 좋아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더할 수 없이 크신 사랑을 주셨습니다.. 바로 자신의 아들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도 아낌 없이 그리고 기꺼이 주셨습니다..









우리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는 과연 어느 정도이겠습니까?




그것은 말로 할 수 없는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 독생자를 주신 것보다 더 크신 사랑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이미 우리 자녀들에게 자신의 가장 크신 사랑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이미 자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분(롬 8:32절)이십니다..>










이것을 정말로 깨닫고 믿을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두 가지 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첫째>,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더> 사랑하시도록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자신의 아들을 주신 것보다 더 크신 사랑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통해서 이미 주신 것보다 더 큰 사랑, 더 큰 은혜, 더 큰 인정과 받아주심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둘째>, 더 놀라운 사실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이 우리를 <덜> 사랑하시게 할 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 즉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심을 통해서 보여주신 사랑은 그 자체가 더 작아지거나 더 얕아 질 수 없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절대적인 사랑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노력이나 실패가 아무리 크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사랑하시게 할 수도 또 덜 사랑하시게 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그 절대적인 사랑의 근거는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 확인점이 없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나를 보시는 그 시선으로 내가 나를 보는 것입니다..」










복음 안에서 죄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절대적>이라 함은 그 정도나 혜택이 어떤 조건 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중단 될 수 없음을 뜻합니다..










이 복음의 은혜를 깨달아 갈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불신과 경계의 마음이 사라지고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이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엄연히 현실이 되어버린 복음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아 갈수록 우리의 딱딱한 마음이 부서지고 차가운 가슴이 녹아 내리게 됩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요 14:6절)입니다..






복음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고전 15:3,4절)입니다..











<십자가에서의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겪으신 죽으심>과 <하나님께 의로운 제물로 받아들여지신 부활하심>이 복음입니다..
  
  2021년 7월 11일 주일 설교 - 하나님의 복음 (롬 3:21-26절)(21절)  이기남 21·07·10 102
  2021년 6월 27일 주일 설교 -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 (시 16:1-11절)(6절)  이기남 21·06·26 144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GGAM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