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축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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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18일 주일 설교 -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다 (요 12:20-33절)(28절)
 이기남    | 2021·07·17 12:16 | HIT : 28 | VOTE : 1
* 설교 -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다 (요 12:20-33절)(28절)







종교 개혁자 존 칼빈이 쓴 『기독교 강요』 <3권 6-8장>은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요약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다시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바로 「죽어야 산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내가 살려고 남을 죽이고 결국 자기도 죽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남을 살리기 위해 내가 죽고 결국 남도 살리고 나도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예수님의 죽으심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선포하고자 합니다..




<20절>을 보십시오..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이거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란 당시에 아직 할례를 받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을 예배하기 원하는 이방인들을 가리키는 표현이었습니다..







헬라 종교의 특징은 종교와 윤리가 분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헬라의 신들은 시기와 질투에 눈 먼 신들이었고, 수시로 간음과 불륜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신들입니다..




이에 거부감을 갖고, 대신 유대교의 도덕적 윤리적 실천을 동경하는 이방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중 일부가 유월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에 왔다가 죽었던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참에 예수님을 꼭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21,22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쭈니”







그들의 요청을 가장 먼저 접수한 제자는 빌립이었습니다.. 왜 하필 빌립이었을까요?




제자들 중 빌립만이 유일하게 헬라식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빌립의 고향 벳새다는 이방인들의 출입이 잦은 곳이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들은 빌립이 예수님과 다리를 놓기에 적임자라고 판단했던 듯 합니다..







빌립은 이런 일이 처음이라 예수님께 말씀 드리기가 좀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만만한 친구 안드레와 함께 데리고 갔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2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요한복음에는 때에 관해 여러 번 언급을 합니다.. 이제까지 예수님은 늘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말씀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예수님께서 때가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제자들은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제자들은 드디어 예수님이 왕위에 오르실 때가 임박했다고 이해했을 것입니다..







얼마 전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무리들이 열렬히 환영한 바 있습니다.. 이제 손만 뻗으면 대권을 거머쥘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유대인 뿐만 아니라 헬라인까지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음을 확인하신 예수님이 때가 왔다고 말씀하시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자들의 오해였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의 길, 죽음의 길을 가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수치와 모욕으로 죽음을 패배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로 보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1. 첫째, 예수님의 죽음은 많은 열매를 맺기 때문에 영광입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씨앗은 배아와 배젖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밀의 배젖에는 다량의 녹말과 단백질이 함유되어 있다고 합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지면 배젖이 분해되기 시작합니다.. 이때 나온 열과 영양분을 공급 받은 배아는 아래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는 싹을 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배젖이 완전히 분해되어 없어질 때쯤 싹이 스스로 광합성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성장합니다..




이때 처음 땅에 묻힌 밀알은 이미 그 존재가 사라집니다..







하지만 사실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4개월 후 그 자리에 맺히게 될 수많은 열매들 속에 들어가 있게 됩니다..




한 알의 밀은 죽어서 더 큰 백 배의 열매로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한 알의 밀은 예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낮고 천한 마굿간 구유 위에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십자가에서 죽고자 하십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예수님의 죽음이 비참하고 허망한 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으심은 결코 비참한 일도, 허망한 일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내어주는 섬김과 사랑의 극치이며, 인류 구속 역사의 밑거름이 되는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로서 많은 열매를 맺고자 하십니다.. 그 열매들 중에는 이날 예수님을 찾아왔던 헬라인도 있고 바로 우리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어서 수많은 사람들 속에 그리고 우리 속에 새 생명으로 이미 들어와 계십니다..







그런데 이 밀알의 진리가 예수님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원리가 적용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자기 생명을 사랑해야 보존할 수 있고,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면 잃어버릴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역설적이게도 자기 생명을 사랑하면 잃어버리고 자기의 생명을 미워해야 보존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자기 생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아 숭배>를 가리킵니다..




자기 자신보다 더 큰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 삶입니다..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하나님과 이웃은 늘 부차적인 대상일 뿐입니다..







이렇게 살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의 인격과 성품이 점점 파괴됩니다.. 사람과의 관계성도 파괴됩니다.. 누가 이런 사람과 가까이 하려 하겠습니까?




다들 멀리하고 피하게 됩니다.. 고립되거나 모든 사람과 원수 관계를 맺게 됩니다..







결정적인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도 파괴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과 은혜를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자기를 위해 사는 사람은 결국 자기 생명을 열심히 파괴하고 잃어버리게 하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생명을 미워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이 자기 학대나 금욕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히브리어에는 반대말로 비교급을 표현하는 어법이 있습니다..




자기의 생명을 미워한다는 것은 실제로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덜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자기 생명보다 더 나은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나를 부인하고 내가 죽는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먼저 나의 인격과 성품이 점점 더 고상해지고 거룩해 집니다.. 다른 사람과 사랑과 신뢰의 관계성을 맺게 됩니다..




그 관계성으로부터 행복이 싹트게 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성을 맺게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하늘의 복을 충만하게 누리는 사람이 됩니다..







이처럼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것이 도리어 생명을 얻고 더욱 풍성하게 얻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25절>의 내용을 더 구체적으로 부연 설명해 주십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자기의 생명을 미워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하면, 바로 「예수님을 섬기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무엇이 약속되어 있습니까?





(1) 첫째로,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함께 있게 됩니다..




십자가까지 예수님을 따라가면 예수님이 누리시는 부활의 영광, 하나님 나라 영광의 보좌에 우리도 앉게 해 주실 것입니다..







(2) 둘째로, 하나님께서 그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백화점에서는 일년에 일정 금액 이상 구매를 하면 VIP 자격을 부여줍니다..




이보다 더 높은 VIP+ 등급이 있습니다.. 더 상위급 고객은 MVG(Most Valuable Guest) 라고 부릅니다..




MVG가 되려면 일 년에 백화점에서 오천 만원 정도는 써야 된다고 합니다..







세상에서는 이렇게 돈을 많이 쓸 수 있는 사람을 귀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은 자기 생명을 대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최우선의 가치를 두는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께서 한 알의 밀이 되어 죽으신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셨듯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사람을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고 섬기는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VIP, MVG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 둘째,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기 때문에 영광입니다..


<27절> 앞 부분을 보십시오..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이 짧은 구절 속에 예수님의 깊은 고뇌가 담겨 있습니다.. 십자가를 앞 둔 예수님은 마음이 몹시 괴로웠습니다.. 너무 힘들어 말할 기운 조차 없으셨습니다..







이 장면에서 예수님께 실망했다는 사람들이 종종 나타납니다..




역사에 보면 자신의 죽음 앞에서 초연한 자세를 유지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태연히 독배를 마셨던 소크라테스도 있고, 판사에게 더 극심한 형은 없느냐고 물었다는 안중근 의사도 있습니다..




성경 안에도 해처럼 빛나는 얼굴로 돌에 맞아 순교한 스데반이 있습니다..







과연 예수님이 이런 사람들보다 더 연약하고 겁이 많아 이렇게 괴로워하시는 것일까요?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이 이 사람들과 같은 죽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모두 자기 신념을 위해 죽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자랑스럽게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의인으로 순교하신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대신해 죄인으로 죽으셔야 했습니다..




곧 죄인에게 쏟아지는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다 받으셔야 했다는 말입니다..







그 진노와 저주 중에는 하나님께 버림 받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고통보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게 되실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우셨습니다..




어떤 사람도 이 예수님의 고뇌를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오직 예수님만이 짊어지고 가야 했던 처절한 고통과 아픔이었습니다..







이렇게 괴로울 때 무엇을 해야 할까요?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역시 기도하셨습니다.. <27,28절>을 보십시오..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예수님의 첫번째 기도 제목은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였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예수님의 기도의 특징은 솔직함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소원을 가감 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아뢰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데 자신을 꾸미거나 과장할 이유가 없습니다..




마음의 생각과 소원, 아픔과 슬픔, 분노와 탄식까지 다 하나님께 토로할 수 있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러나 기도가 여기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두번째 기도 제목은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였습니다..




기도의 다음 단계는 내 뜻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도하다 보면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 하나님의 음성은 “한 알의 밀처럼 너도 죽어야 한다” 입니다.. 이때 <죽기 싫습니다.. 왜 나만 썩어야 하나요? 내가 바라는 대로 되면 안 되나요?> 이런 말이 나도 모르게 나오게 됩니다..







이런 실랑이가 계속 이어지곤 합니다.. 그래서 기도를 가리켜 씨름이라고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기도는 결국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고백하며 순종을 결심하는 것입니다.. 나의 뜻을 꺾고 하나님의 뜻을 세우는 일입니다..







기도는 나의 바람이 하늘에서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바람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에 대하여 하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28절> 앞 부분을 보십시오..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하나님은 예수님의 기도가 응답 받았음을 친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예수님의 바람대로 자기 자신을 영광스럽게 하셨고, 앞으로도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아직 십자가를 지시기 전인데 이미 영광을 받으셨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의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미 영광을 받으셨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고난과 죽으심이 어떻게 예수님께 영광이 될 수 있는가?> <어떻게 예수님께서는 낮아지심과 수치를 통하여 영광을 얻으시는가?> 에 대한 또 하나의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기쁘신 뜻을 행하시는 것이 곧 아들의 영광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들의 영광은 오직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높아지고 대접 받고 주목 받는 것에서 영광을 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온전하게 순종하는 아들이 되는 것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고 자신도 진정으로 영화롭게 되는 길임을 잘 아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얻어야 하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고난 속에 이미 영광이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난이 영광에 이르는 길이라는 교훈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만약 이런 교훈을 주고자 하셨다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부활을 내다 보시면서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을 앞에 두고 영광의 때가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십자가가 단지 부활과 승천이라는 영광의 문에 이르는 과정이 아니라, 그 고난과 죽으심 자체 안에 이미 영광을 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기로 한 순간부터 인자의 영광이 시작된 것입니다..







<3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예수님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친히 소리로 응답하신 이유는 <우리의 영광 역시 하나님께 대한 순종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고난을 잘 참고 견디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격언도 있고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는 <고진감래>라는 사자성어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믿고 이를 악물고 현재의 고난을 버텨냅니다.. 그 결과 어떤 사람은 자신이 원하던 것을 쟁취해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오로지 자기만을 위한 것이었다면 진정한 영광이라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생은 고생대로 다 했는데 낙이 오지도 않고 단 것이 오지도 않기도 합니다..




그러면 앞에 있던 고난은 전부 무의미한 것들이 되고 맙니다.. 쓸데 없이 고생한 것에 불과하게 됩니다..







신앙 생활은 어떻습니까?




한 분 선교사님은 선교지 현장에서 순교 당하셨습니다.. 코로나 19로 천국에 입성한 선교사님들도 계십니다..




회교권 국가에서는 전도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계신 선교사님은 열악한 상황 가운데 선교를 하고 있는데, 아무리 해 봐야 한 명의 양조차 얻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이분들의 수고가 모두 헛된 것입니까? 아무런 영광도 없고 수치만 남은 것일까요?




주님 보시기에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이분들이 하나님께 기꺼이 순종하셨다는 것 그 자체로 이미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전도를 해서 꼭 회심자를 얻어야만 영광스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 전파 명령에 순종한 것 그 자체로 이미 영광스럽게 된 것입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믿음으로 살았는데 승진을 못하고 인정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분명 나중에 하나님 나라에 가서 상급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마지막 날이 되어야만 영광스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주의 말씀에 순종한 것으로 이미 영광스럽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부끄러워 할 것은 누구만큼 잘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 내 삶에 힘든 일들이 많다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했기 때문에 감수해야 할 몫이었다면 그것이 도리어 영광이고 자랑입니다..







우리가 정말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은 순종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것이라도 순종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한 순간의 바람에도 날라갈 겨와 같은 것입니다..







순종으로 얻게 된 고난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은 그것을 무겁게 여기실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 중심성을 죽이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또 우리 자신도 진정으로 영광스럽게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 셋째, 예수님의 죽음은 사탄을 심판하고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때문에 영광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일어나게 될 역사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1) 첫째로, 세상 임금이 쫓겨납니다..




<31절>을 보십시오..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세상 임금은 사탄을 가리킵니다.. 십자가는 얼핏 보면 예수님이 사탄에게 패배하시는 사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사탄의 가장 큰 무기를 빼앗아 가 버리십니다..







지금까지 사탄이 인간들을 지배할 수 있었던 무기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의 죄 문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죄 문제를 해결하실 것입니다..







사탄의 강력한 무기, 지배력의 원천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패배가 아니라 위대한 승리입니다..








(2) 둘째로, 모든 사람을 예수님께 이끄십니다..





<32절>을 보십시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모든 사람 안에는 유대인도 있고 이방인도 있습니다.. 이제까지 구원은 유대인에게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장벽을 허물어 버릴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움켜쥐거나 스스로 높여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내어주심으로 세상에 생명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이론이 아니라 예수님이 직접 경험하시고 증명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똑같은 일을 요구하신다고 해서 놀랄 일이 아닙니다..




독일의 목사 디트리히 본회퍼는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나를 따르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은 와서 죽으라는 명령과 같다.>







우리는 죽음으로써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줌으로써 얻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성공이 아닌 순종으로써 영광스럽게 될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한 알의 밀이 되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는 복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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