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축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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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15일 주일 설교 - 예수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눅 17:11-19절)(15,16절)
 이기남    | 2021·08·14 10:16 | HIT : 35 | VOTE : 2
* 설교 - 예수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눅 17:11-19절)(15,16절)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1.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11-14절)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마지막 사역지인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중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 한 마을에 들어 가시게 되었습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저 멀리 한 떼의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열명의 나병 환자였습니다..







요즘 우리는 코로나로 인한 비말 감염을 막기 위해 마스크 착용과 거리 두기가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병은 코로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질병입니다.. 나병은 나균에 의한 만성 감염병으로, 문둥병, 한센병이라고도 합니다..







나균은 피부, 말초신경계, 코와 구강의 점막을 침범하여 감각을 마비시키고 근육 조직을 변형시킵니다..




몸에 상처가 나도 잘 알지 못하여 반복적으로 감염되어, 손가락과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코는 내려 앉고, 눈 안구는 돌출되어,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 갑니다..







<레위기 13장>에는 나병에 대한 규례가 나와 있는데, 나병이 걸린 사람은 율법적으로 부정하게 간주되어,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 혼자 살아야 했습니다..




나병에 걸리면 옷을 찢고 머리를 풀고 윗 입술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 라고 외칠 의무가 있었습니다..







나병에 걸린 사람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모든 사회적 관계가 끊어지는 단절감, 흉하게 변한 자기 몸을 보는 좌절감, 그리고 부정하게 되고 저주를 받았다는 절망감으로 억장이 무너졌을 것입니다..




누가 이 <고통>과, 이 <슬픔>과, 이 <고독>을 이해해 줄 수 있겠습니까?







그들 중 아홉 명은 유대인이고 한 명은 사마리아인 이었습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서로 상종하지 않았지만, 나병에 걸려 동병상련으로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의지하고 동고동락하는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마을로 오고 계신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들은, 나병 환자에게 손을 대시며 고쳐주신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이미 들었습니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었습니다..







소문을 듣는 자의 귀가 이렇게 복됩니다.. 또한 그 소문을 전해주는 자의 발과 입은 더욱 더 복됩니다.. 요즘은 손가락...




(우리도 전에,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저의 경우, 미암교회, 가자고 한 친구, 그 말을 듣고 순순히 따라간 나..)(성령님의 역사하심..)







<로마서 10장 13-17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전하는 자가 얼마나 소중한지」와 「믿음이 들음에서 난다는 말씀이 얼마나 귀한지」를 다시 한번 분명하게 확인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어쨌든 이들은 예수님이 마을로 오시기만을 숨어 기다렸습니다.. 저 멀리 예수님 일행이 보일 때 그들의 가슴이 뛰었습니다..




<13절>에 보면, 다가갈 수 없는 현실의 벽 앞에서, 죽을 힘을 다해 일제히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은 절박한 심정으로 소리 지르는 그들을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보고 눈쌀을 찌푸렸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뒤로하고 그들을 향해 다가가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14절 앞 부분>을 보십시오..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당시 제사장은, 피부병에 걸린 사람들을 진단하여 격리시키기도 하고, 나았을 때는 검사하여 완치 판정을 내리는 일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신 말씀은, <나병이 완치되었으니 제사장에게 확인 받으러 가라>는 의미입니다..







아직 고침을 받기도 전인데 확인 받으러 가라 하시다니! 이 말씀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말씀입니다..




지금 완전히 흉측한 몰골인데 제사장들에게 가려면, 제사장들에게 가는 도중 나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가는 도중 돌에 맞을 위험도 있고, 만약 낫지 않았을 때 또 한번의 좌절감과 허탈감에 휘말릴 것도 무릅써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였습니다..




마치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토 달지 않고 일곱 번 요단 강물에 몸을 담갔던 것처럼 이들은 즉시 주님의 말씀대로 행했습니다..







그러자 이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4절 뒷 부분>을 보십시오..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가는 도중 어느 순간, 떨어져나간 손가락과 발가락이 새로 생겨났고, 내려앉았던 콧대가 높아졌고, 눈 안구는 제자리로 들어갔고, 고름과 진물로 지저분했던 피부가 깨끗해 졌습니다..







아~ 이보다 더 큰 기쁜 일이 있을까요?




그들은 풀쩍풀쩍 뛰면서 서로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은혜를 받은 나병 환자들은 어떻게 반응 했습니까?


2.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5-18절)




<15,16절>을 보십시오..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사마리아인 한 명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럼 똑같이 나음을 받은 아홉 명의 유대인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나병 완치 판정 진단서를 받아서 당당히 사회 생활도 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도 하고, 장가도 가고 해야 하니 좌고우면 하지 않고 제사장에게로 직행했을까요?




아니면 잘 생긴 얼굴, 건강한 신체를 회복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고향으로 달려갔을까요?




아무튼 이들은 자기의 소견에 옳은 데로 각자 자기의 길을 갔습니다..







<17,18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들은 눈이 튀어나오고 코가 문드러지고 손가락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온 피부에 진물이 흐르는 불치의 병이요 천벌과 같은 나병을 치료 받음으로 예수님께 무엇을 해도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홉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큰 은혜를 받고도 감사치 않는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통탄하시는 음성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2장 14절>에서 "청함을 받은 사람은 많되 택함을 입은 사람은 적으니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아홉 명은 예수님을 만나 육체적인 문제를 해결 받았지만, 영적인 문제를 해결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발 아래 엎드려 감사하는 사마리아 사람에게 어떤 놀라운 말씀을 해 주셨습니까?


3.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19절)


<19절>을 보십시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감사의 결과가 놀랍습니다.. 예수님은 감사함으로 나오는 그의 믿음에 복을 주시며 구원을 확정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구원」은 <KJV 성경>에서는 "네 믿음이 너를 온전하게 만들었다"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thy faith hath made thee whole."







예수님은 육신의 병을 치유하실 뿐만 아니라, 감사하며 나아온 그에게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병, 영혼의 병, 죄와 죽음의 병을 치료하여 주시고, 그에게 영혼의 구원을 확정해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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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아홉 명은 나병에서 낫는 동일한 은혜는 받았지만, 은혜를 감사하지 않고 각자 자기의 길을 감으로써 이 온전한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6장 26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이 비참하고 몰골이 흉측한 천벌의 병에서 고침 받은 것은 그들에게 마치 온 천하를 얻은 것과 같은 큰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큰 소망과 포부를 안고 각자 자기의 길을 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영혼의 구원을 얻지 못한다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이를 볼 때 사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병을 고침 받는 것이나 혹은 문제를 해결 받는 것 자체가 아니라,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예수님께 나아와 온전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는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예수님의 능력과 자비를 힘 입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그러나 이 사건 때문에 그는 곤혹스러운 일들을 겪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를 이용해서 예수님을 잡아 넣을 구실을 만들려 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그에게 이렇게 요구했습니다..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요 9:24절)




이 말에 맞장구를 쳐주지 않으면 출교를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맹인이었다가 보게 된 사람이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요 9:25절)







그는 예수님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만 한 가지 아는 것을 붙들었습니다..




한 가지 아는 것은 예수님이 나를 변화시켜 주시고 새롭게 하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한 가지 아는 것, 한 가지 은혜를 붙들었을 때 그는 구원과 영생을 누리는 복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 이 한 가지를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살전 5:18절)..







길어야 백 년을 넘지 못하는 육신의 삶 속에서도, 질병에서 놓이고 관계가 회복되는 것은 큰 소리로 외치며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마땅한 일입니다..




하물며 죄의 저주에서 풀려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은 얼마나 큰 소리로 감사하고 영광을 돌려야 마땅한 일이겠습니까?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여 성령님과 피로써 거듭난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늘의 영광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계속해서 감사하며 기쁨으로 구주를 찬송할 수 있습니다..







이 한 가지 은혜에 대한 감사를 믿음으로 굳게 지켜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감사가 여기에 있어야 합니다.. 감사는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습니다.. 말씀에 나오는 한 사마리아인처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감사는 사마리아인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고>, <구주 예수님께 와서 감사의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께 나아오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 할 때에 감사가 매일매일의 삶의 기초가 되어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충만한 구원의 은혜 가운데 능력 있고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반면 예수님께 나아오는 삶을 살지 않을 때는 상황이 나빠지면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는 어리석고 비참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께 나아오는 삶」을 살면서 감사가 충만한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구원의 은혜를 항상 붙드는」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를 섬겨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은혜를 받은 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께 나아가 감사하고, 온전한 구원의 은혜를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영육간에 크게 성장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충성스럽게 섬기는 종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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