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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5일 주일 설교 -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수 1:1–9절)(8절)
 이기남    | 2021·09·04 11:29 | HIT : 36 | VOTE : 0
* 설교 -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수 1:1–9절)(8절)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여호수아서」의 말씀은 새로운 출발을 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인 <1장 1-9절>은 모두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번 한 주간과, 주어진 남은 생애를 향해 새롭게 출발하는 우리에게 큰 용기와 도전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여호수아서」가 어떤 책인지 먼저 2가지 점을 살펴 보겠습니다..







첫째로, 「여호수아서」는 <땅과 자손에 대한 언약>을 완결하는 책입니다..




「여호수아서」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하는 역동적인 책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구속 역사」라는 긴 흐름 가운데 놓인 매우 역사적인 책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역사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땅과 자손에 대한 언약을 「여호수아서」가 완결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모세오경」과 「여호수아서」를 하나로 묶어 「육경」(Hexateuch. 헥사튜크 <여섯 두루마리>) 이라고 부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손과 땅에 대한 언약을 하셨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5절)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노라.."(창 12:7절, 15:8절)







「모세오경」이 이스라엘이라는 큰 민족을 형성하신 역사라고 한다면, 「여호수아서」는 약속의 땅을 얻는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서」는 자손과 땅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을 완결하는 마지막 말씀입니다..







둘째로, 「여호수아서」는 일관성 있는 책입니다..




「여호수아서」의 처음과 끝에 일관성 있는 메시지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가나안 전쟁이 시작되는 <1장>과, 전쟁이 끝난 후인 <23장>에는 동일한 메시지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시작과 끝에 똑 같은 메시지가 나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언약」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언약을 맺으시고, 진행하시고, 완성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싸움의 승리」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분명해졌습니다..




하나님께 신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모습이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형통의 길」이요,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이러한 여호수아서의 일관성은 「하나님의 일관성」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일관성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서 나왔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신실하신 하나님께 대하여 신실하게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수아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수아서는 모세의 죽음으로 시작하여 여호수아의 죽음으로 끝납니다.. 여호수아서 다음 책인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란 말로 시작합니다..







이처럼 구약에 나오는 역사서들 가운데는 <누군가가 죽은 후에>란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무엘하서」는 "사울이 죽은 후에"란 말로 시작하여 다윗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합니다.. 「열왕기상」은 늙은 다윗 왕이 죽을 때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솔로몬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이처럼 어떤 지도자의 죽음과 새로운 지도자의 등장은 구약 역사서 책들에 있어서 그 싯점이 하나의 분기점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란 말로 인해 우리는 자칫 낙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를 세워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영적 지도자의 퇴장으로 인해 낙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공동체의 진정하고도 영원한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 새 시대를 열어 가십니다..







<1절>은 모세를 「여호와의 종」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모세는 「여호와의 종」이라는 특별한 호칭을 가진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도 인간이기에 죽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죽지만 그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 계십니다..




사람은 죽지만 여호와께서 살아 계셔서 그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지도자의 등장과 퇴장 가운데서도, 「영원히 살아 계신 진정한 주인으로 인해」 흔들림 없이 살아 갑니다..







오늘 <여호수아 1장 1-9절>의 하나님의 말씀은 <3개의 명령>과 <4개의 약속>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땅으로 가라>, <강하고 담대하라>, <율법을 잘 지키라> 이것이 3개의 명령입니다..




4개의 약속은 <너희의 땅이 되리라>, <너를 대적할 자가 없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입니다..




이러한 3개의 명령과 4개의 약속이 섞여 있습니다..







본문의 순서를 따라, 하나씩 말씀을 살펴 보겠습니다..







첫 번째 명령은 <1,2절>에 나옵니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든 백성과 일어나 요단을 건너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요단강을 건너서 그 땅으로 가라>, 이는 약속의 땅을 향한 하나님의 진군 명령이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요단강 동편 모압 평지에 모여 있습니다.. 평지는 넓고 평평하며 양과 소를 키우기에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계속 머무를 약속의 장소가 아닙니다.. 서쪽 요단강 너머에 약속의 땅이 있어 그리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이는 모세가 퇴장했다고 취소되는 일이 아닙니다.. 새로운 지도자를 중심으로 땀과 피를 흘려 감당해야 할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요단강은 모세의 사명지와 여호수아의 사명지를 구분하는 경계선입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일은 결코 쉽지 않고, 또 강 건너 편에는 강력한 가나안 족속들이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건너편 땅은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때부터 하셨던 그 언약을 이제 이루고자 하십니다(창 15:16절)..







또한 그 땅은 아모리 족속의 죄가 가득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심판하시고 이스라엘에게 주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게 요단을 건너 그 땅으로 가라 명령하셨고, 이 명령은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어지는 첫 번째 약속은 <3,4,6절>에 나오는 <너희 땅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그들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모두 그들에게 주셨습니다(3절)..







그 땅의 범위는 광야와 레바논에서부터 유브라데 강까지의 헷 족속의 온 땅과 해 지는 쪽 대해까지의 모든 땅입니다(4절)..




광야는 남쪽 경계, 레바논은 북쪽 경계입니다.. 유브라데 강은 동북쪽 경계, 헷 족속의 땅은 가나안 땅을 의미합니다.. 해 지는 쪽 대해인 지중해는 서쪽 경계입니다..







<여호수아서 12장>에는 땅의 경계를 요단강 동편과 서편으로 구분하여 이렇게 나옵니다..




동편의 경우는 모압과의 경계인 남쪽 아르논 골짜기에서 북쪽 헤르몬산까지 입니다..




요단강 서편의 경우는 에돔과의 경계인 남쪽 할락 산에서 북쪽 레바논의 바알갓까지 입니다..







약속의 땅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거의 비슷하게 정복되지만, 역사적으로 모두 정복되지는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순종 여부에 따라 축소될 수도 있었습니다..







두 번째 약속은 <5절>에 나오는 <평생에 너를 대적할 자가 없으리라>는 것이며, 세 번째 약속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여호수아에게는 평생에 그를 대적할 자가 없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난공불락의 여리고를 점령하고, 가나안 중부와 남부, 그리고 북부 지역까지 차례로 진군해 나갔습니다..







아이성 전투에서 아간의 범죄로 잠시 멈칫 하긴 했지만, 평생에 그를 이긴 대적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승리의 요인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임마누엘 하나님이었습니다..







여호수아란 이름은 <구원하다>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여호수아의 헬라식 이름은 「예수」입니다..




<마태복음 1장>에서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고 했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구원자, 곧 참된 여호수아인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은 임마누엘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와도 함께 하십니다..







다음으로, 두 번째 명령이 <6,7,9절>에 나오는데, 이는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라”,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그 동안 여호수아는 그의 앞에 모세가 있었기에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자기 앞에 아무도 없습니다..




여호수아 자신이 맨 앞에 서서 이스라엘을 이끌어야 했습니다.. 지도자로서 참 외롭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의 앞과 뒤에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의 앞과 뒤에 계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그는 강하고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은 부드러운 권고가 아닙니다.. 명령입니다..




여호수아는 지도자이기에 억지로라도 강하고 담대하고자 애써야 합니다.. 지도자가 약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면 백성이 낙심하기 때문입니다..







옛적에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실패(신 1:19-46절)는 지도자들의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그때처럼 지금도 강하고 담대하면 이스라엘에게 있는 그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렵게 하는 것>은 상대방을 무너뜨리는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몇 년 전 IS의 테러로 세상이 혼란할 때 어떤 유대인 학자가 이런 비유를 했습니다..




<한 마리의 파리가 도자기를 깨트리지는 못하지만, 그 파리가 소의 귀에 들어가면 두려움에 날뛰는 소가 도자기 가게의 도자기들을 다 깨트리게 된다.>







테러리스트는 한 마리 파리처럼 약합니다.. 그러나 두려움이라는 황소를 이용해서 내가 가진 도자기를 다 깨트려 버립니다..




사실 테러라는 단어의 뜻도 공포, 두려움입니다..







두려워할 것인가, 담대할 것인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명령하셨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절)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에서 많은 환난을 당하였습니다.. 일터와 공동체에서 쫓겨나 흩어져 디아스포라가 되기도 하고 순교도 했습니다..







「사도행전」과 「신약의 기록」뿐 아니라, 초대교회의 생생한 기록인 존 폭스(John Fox)의 『순교사』란 책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그 믿음을 전파한다는 이유로 예수님의 사람들에게 가해진 온갖 잔인한 고문과 형벌과 박해와 처형의 이야기, 곧 순교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을 의지하여 담대히 복음을 전하고 기꺼이 고난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강하고 담대하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건설된 하나님의 나라를 자신의 땀과 피로 전파해 나갔습니다..




이러한 옛 선진들의 담대한 믿음을 생각할 때 우리도 담대함을 얻게 됩니다..







오늘날에도 크고 작은 박해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불신적인 분위기에 눌려 위축되고 침묵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는 또 하나의 좋은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으로 충만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회개와 기도를 통해 내 안에 있는 두려움의 영을 그리스도의 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입어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눅 4:1절)..




오순절 때 간절히 기도하였던 120명의 제자들은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행 2:4절, 4:31절)..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절)




이처럼 성령님으로 충만했을 때 성도들은 모든 박해를 이기고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는 영적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인류를 구원할 진정한 여호수아였던 것입니다.. 우리도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세상을 이기기를 기도합니다..







세 번째 명령은 <7,8절>에 나옵니다.. 그것은 <율법을 잘 지키라>는 명령입니다..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왜 율법을 가까이하고 지키기에 힘써야 할까요? 특히 전쟁터에 나가는 장군에게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이는 율법이 형통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승리의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총사령관이지만, 가나안 정복 전쟁은 자신의 힘이나 군대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하는 것입니다..







이 전쟁은 500년 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에 기초한 것입니다(창 15:16절)..




이 전쟁은 가나안의 아모리 족속의 관영한 죄를 징벌하시는 심판의 전쟁인 것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구원도 하시지만 심판도 하십니다.. 이 심판에 이스라엘도 예외가 아닙니다..




지금은 이스라엘이 심판의 도구로 쓰임 받지만, 장차 그들이 죄악이 관영할 때는 이스라엘도 심판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지금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7족속의 관영한 죄에 대한 심판의 대리자로 서 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을 이끄는 총사령관 여호수아가 할 일은 여호와의 뜻을 충실히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율법책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책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여 주님의 뜻을 알고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율법책을 읽을 때 이 전쟁을 왜 해야 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 알게 되고, 주님께서 이 일을 이루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갖게 될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큰 군대를 능히 이끌어 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7,8절>에 나오는 네 번째 약속인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는 약속입니다..




<형통하다>는 말의 뜻은 일이 잘 풀리고 순조로우며, 그래서 성공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수아에게 있어 형통하다는 말은 가나안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형통하다는 단어는 <이해하다>, <지혜롭다>, <성공하다> 라는 뜻을 두루 포함합니다..




이 단어가 구약의 다양한 본문에서 지혜와 연관되어 있는 것을 볼 때, 형통과 성공이 올바른 이해력인 지혜와 관련됨을 보게 됩니다..







율법을 통해 지혜를 갖게 되고, 그러한 지혜가 형통을 낳게 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가 율법을 통해 가나안 전쟁에서 올바른 판단을 하고 지혜로운 결정을 하도록 하십니다.. 이로써 그의 길이 성공적이고 형통하도록 하셨습니다..







결국,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는 말은 「율법을 통해 얻은 지혜가 형통의 길로 인도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누구나 형통한 삶을 원합니다.. 하는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리고, 좋은 결과를 얻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형통하게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여호수아에게 주신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는 말을 들을 때, 말씀을 가까이하면 우리의 삶도 형통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먼저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여호수아서 때의 언약과 심판의 전쟁은 그 시대로 끝났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약 시대 하나님의 백성은 이러한 전쟁을 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2천년 역사 가운데서, 여호수아서를 잘못 해석하여 정복 전쟁의 근거로 삼은 오류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 하나님 백성은 이러한 칼과 창의 전쟁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본을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일을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여 사람을 살리며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섬기며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니고데모, 사마리아 여인, 38년된 병자, 맹인과 같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많은 사랑의 수고를 하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러한 예수님처럼 우리도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사랑과 섬김의 내적 싸움」을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며,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것이라 했습니다(엡 6:12절)..







이러한 영적 싸움을 하도록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말씀의 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말씀의 검은 세상의 사상과 싸우는 공격과 방어의 무기입니다.. 말씀의 검은 영적 싸움을 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도구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두려움을 이기고 담대함을 얻었습니다.. 다윗은 고난 중에 여호와의 말씀으로 기쁨을 얻고 힘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입술과 마음에 둘 때, 분별력과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 말씀으로 진리를 알고 자유케 될 것입니다..




그 말씀이 우리의 삶을 순리대로 흘러가게 하고, 형통하게 하고, 많은 열매를 맺게 할 것입니다..




좋은 밭에 떨어진 말씀의 씨는 우리 삶에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할 것입니다..







우리 앞에 다가온 우리의 남은 생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까? 어떻게 삶의 권태와 염려와 혼돈과 두려움과 탐욕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까?







전쟁터에 나가는 장군에게 주신 그 말씀을 다시 들으시기를 기도합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우리 모두 하나님 안에서, 말씀 안에서 형통한 한 주간을 향해, 형통한 남은 생애를 향해 출발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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