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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12일 주일 설교 - 사귐과 선교 (롬 5:1-11절)(1절)
 이기남    | 2021·09·11 10:12 | HIT : 25 | VOTE : 0
* 설교 - 사귐과 선교 (롬 5:1-11절)(1절)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 이~었어~”




노사연의 노래 「만남」의 첫 소절입니다.. 7080 세대에게는 국민 가요이고, 그 다음 세대도 많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만약 이 노래가 제목처럼 만남의 기쁨을 흥겹게 표현한 것이었다면, 이렇게 유명해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이 노래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는 이별의 아픔을 애절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만남은 이별로 끝나고, 이별은 아니어도 뜨거웠던 사랑이 차갑게 식는 일이 흔합니다..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제시한 <고슴도치 딜레마>가 있습니다..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혹한의 겨울 밤, 추위에 벌벌 떨면서 조금이라도 몸을 녹여보려고 서로에게 다가가는 고슴도치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곧 서로의 등에 붙은 가시에 찔려 움츠리며 물러섭니다..







극한의 추위로 다시 잠시 전의 아픔을 잊은 채 서로에게 다가섰다가 상대방의 가시에 찔려 다시 물러서기를 반복하는 고슴도치들...




그 과정에서 이들은 어느 정도 서로의 온기를 느끼면서도 가시에는 찔리지 않는 적절한 거리를 발견합니다..







이 비유는 사회적 인간(호모 소시올로기쿠스, homo sociologicus <sociological man>),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지만, 함께 사는 것 또한 어려운 인간의 실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말 내 심장이라도 꺼내 주고 싶은 가까운 친구가, 내 심장을 찌르는 말을 할 때 충격을 받고 돌아서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부모와 자식 사이에, 부부 사이에, 형제자매 사이에, 나아가 함께 하나님의 자녀 되어 교회로 모인 성도들 사이에서 받는 많은 상처와 고통과 번민의 근원이 바로 관계의 문제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태초에 빛과 하늘과 땅, 해와 달과 별들, 식물과 동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모든 피조물 이후에 인간을 창조하실 때, 특별히 하나님 자신의 형상(image)을 따라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26,2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인간은 「관계적 존재」입니다.. 사람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상호 친밀한 사랑의 관계>, 그 이미지를 따라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도 동일한 맥락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로고스(logos) 하나님, 즉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요한복음 1장 1-3절>을 보십시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소통의 수단인 「말씀」이라는 예수님의 별명이, 예수님의 <관계 지향성>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유대인 종교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이것을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 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사람」도 <관계를 통해서만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 미국 오바마 정부와 현재 바이든 정부에서 공중보건 서비스단(US Public Health Service Commissioned Corps)의 의무 총감(Surgeon General)을 맡고 있는 비벡 머시(Vivek Murthy) 박사가 있습니다..




그는 「Together : The Healing Power of Human Connection in a Sometimes Lonely World」라는 책에서 외로움(loneliness)을 공중보건 문제, 즉 다수가 겪고 있는 건강 문제로 정의합니다..







오늘날 세상에 퍼져 있는 만성적인 문제들(epidemics)인 알콜 중독, 마약 중독, 폭력, 우울증, 불안증 등이 모두 외로움에 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외로움은 아이들의 성적에, 어른들의 업무 능력에 영향을 미치고, 당뇨, 고혈압, 심장병, 뇌졸중 등 많은 신체적 증상과도 연관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외로움을 겪거나, 거부 당하는 경험을 한 사람은 자신을 거부한 이들에 대한 분노와 폭력성이 표출되어, 때로는 연쇄 살인이나 총기 난사 같은 극단적인 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Murthy 박사는 그의 책에서, UCLA의 심리학과 교수인 리버만(Matthew D. Lieberman)의 기능적 자기공명영상 실험(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fMRI)을 소개합니다..







리버만 교수에 따르면 인간의 두뇌는 신경 시소(뉴우럴 시소 neural seesaw)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친구와 수다를 떨거나 함께 점심을 먹을 때는 사회적(social) 신경망이 활성화되고, 과제나 공학적 설계 작업을 할 때는 비사회적(nonsocial) 신경망이 활성화 된다고 합니다..







리버만 교수는 사람이 둘 중 어느 쪽 활동도 안 할 때, 흔히 말하는 <멍 때릴 때> 어느 쪽 신경망이 활성화 되는지 실험했는데, 그 결과는 사회적 신경망이 즉시 활성화 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그는 인간의 두뇌가 여백의 시간에는 언제든 사회적 활동을 준비하도록 <진화>되어 왔다고 설명합니다..







그의 연구 결과를 이렇게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의 두뇌는 언제든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도록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







▣ 오클라오마 의대 학장을 지냈던 울프(Stewart George Wolf, Jr.) 박사는 정신 신체의학(psychosomatic medicine)이라는 특수한 분야 연구자였습니다..




그는 1961년 미국 펜실베니아 주 로제토(Roseto)라는 이탈리아계 이주민 마을 사람들의 심장마비 발병률이 현저히 낮은 것에 깊은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 마을은 주변 마을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곳 주민들은 원거주지였던 지중해 이탈리아 지역에서 먹던 올리브유나 건강한 식단 대신에 미트볼과 돼지 기름에 튀긴 소시지를 먹었습니다..




그들은 필터 없는 여송연(stogies)을 피우거나 와인을 즐기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울프 박사는 로제토 주민들의 건강한 삶이 그 곳의 자연 환경, 식생활, 유전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 스트레스가 적은 그들의 생활 패턴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로제토 사람들은 누군가의 집 뜰에 모여 실컷 먹고 마시며 수다 떠는 것을 좋아했고, 길 가다가 만나는 사람이 있으면 한참 붙잡고 떠들어 대고 나서야 다시 길을 갔으며, 갈멜(Carmel) 산 성당에 모여 종교적인 결속을 다졌습니다..







울프 박사는 친밀한 사회적 관계를 기반으로 백세 장수하는 로제토 마을에 대한 연구를 의학계에 보고했고, 이후 친밀한 인간 관계를 통한 장수(長壽)는 로제토 효과(Roseto Effect)로 불렸습니다..







그런데 이후 50여 년 추적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로제토 주민들도 다른 미국 사회의 모습에 점차 동화되고 마을 주민들의 친밀한 사귐과 결속력은 약화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그들의 신체적 건강 상태도 다른 여느 미국 지역의 수준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고 평가할 만큼 「관계의 존재로 창조된 인간」에 대해 창조주 하나님은 <창세기 2장>에서 다시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2장 1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이 성경 구절은 흔히 교회에서 청년들의 결혼을 장려하는 근거로 활용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좀 더 본질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구절의 뜻은 「사람이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사람을 관계의 존재, 사회적 인간으로 창조하셨지만, 우리는 왜 관계를 힘들어하고, 가까이 다가가면 서로를 찌르게 되는 것일까요?




고슴도치의 가시 같이 서로를 찌르는 그것은 무엇일까요?







성경은 그것이 「인간의 죄」라고 가르쳐 줍니다..




<창세기 3장>에서, 사람이 처음 죄를 지었고, 그 직후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숨었으며, 아담은 하와에게 죄의 책임을 돌렸습니다..




<창세기 4장>에서, 아담과 하와의 아들 가인(Cain)은 그 동생 아벨(Abel)을 돌로 쳐 죽였고, 그 이후 <창세기와 성경의 모든 책들>에는 죄를 짓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수히 많이 나옵니다..







마치 성경은 죄의 전시장, 하나님을 향해, 그리고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침을 들이대고 찔러대는 인간 고슴도치들의 박물관 같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서로가 서로를 찌르는 갈등과 반목의 역사, 분쟁과 전쟁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상 모든 국가간 관계, 사회 세력간, 계층간 관계들이 서로를 찌르는 역사로 얼룩져 있습니다..







이렇게 날카롭게 찔러대는 죄의 침을 가진 인간들이 어떻게 관계의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죄인 된 인간,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서로 간의 관계도 깨어져버린 인간을 구원하신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속사..





<로마서 5장 10절>을 보십시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원수> 관계라 할 만큼 깨어져 있었습니다.. 사람들 서로의 관계도 원수 관계였습니다..




하나님과 원수된 사람이 죽어서 갈 수 있는 곳은 지옥 뿐이지만,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다면 천국에 갑니다..







화해의 방법은 낮은 사람이 아니라 높은 사람,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정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우리의 죄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으므로 우리가 가해자이고, 하나님이 피해자 이십니다..







창조주이자 피해자이신 하나님께서 화해의 방법을 정하시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화해의 방법이 무엇입니까?




착한 일을 100가지 하면 천국에 가고, 못하면 지옥에 가는 것입니까? 아니면 나쁜 일을 100가지 미만으로 하면 천국에 가고, 그 이상이면 지옥에 가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화해의 방법으로 정하셨습니다..




<로마서 5장 6절>은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기약대로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죽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착하게 살기 시작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 우리가 아직 죄인이며 경건하지 못할 때, 아무런 죄도 없는 어린 양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통해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우리를 향한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화해의 방법입니다.. 사람이 할 일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 우리와의 관계를 회복하시는 방법은 어쩌면 너무 간단해서 5분이면 다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말을 빨리하면 1,2분 안에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구원 이후의 삶은 훨씬 깁니다..







성경은 구원받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지침서와 같습니다..




천국행 티켓을 모바일 앱으로 예약해 두고는 출발 시간까지, 즉 세상을 떠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면 되는 것이 신앙 생활이 아닙니다..







<로마서 5장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로마서의 구조는 둘로 나눌 수 있는데, <1-4장>이 우리가 하나님의 화해의 방법을 믿음으로 의롭게 하심을 받는 일, 즉 어긋났던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잡는 일을 설명한 부분입니다..




<5-16장>은 그 이후의 삶에 대한 것입니다.. 따라서 <로마서 5장 1절>은 로마서 전반부와 후반부를 연결하는 고리입니다..







정리하자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 1단계(구원=화해)이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이 2단계(신앙 생활)입니다..







우리는 절제하고 근신하고 죄를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명도 엄중히 감당해야 하겠지만, 그보다도 먼저 우리의 신앙 생활의 기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C.S.루이스도 「그리스도인의 가장 특징적인 정서」는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무언가 잘못을 범했을 때 <하늘에서 벌을 내리지는 않을까> 하는 그런 두려움에 사로잡혀 노심초사하며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무서워하는 종의 영이 아닌 양자의 영을 받았다는 말로 이 진리를 선명하게 표현합니다(롬 8:15절)..








오늘 말씀을 정리해 보면, ① 태초에 관계가 있었고, ② 인간의 범죄로 그 관계가 깨졌습니다.. ③ 하나님께서 관계 회복의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④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이것이 구원이며, 하나님과의 화해이며,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화해(구원)의 역사적 사실을 거쳐 이 땅에서 신앙 생활을 합니다..








신앙 생활은 구원, 다시 말해 「하나님과의 회복된 관계」를 누리는 삶입니다.. 여기에는 2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는 화해를 누리는 것으로 이것을 <사귐>이라 하고, 다른 하나는 아직 하나님과 화해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화해의 관계를 넓혀가는 것으로 이것을 <선교>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화해>와, <하나님과 화해한 사람들과의 사귐>과, <아직 하나님과 화해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화해를 전하는 선교>입니다..







「사귐과 선교」가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이며, <교회의 본질>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과의 <shalom>, 곧 하나님과 온전한 평화를 누리며, 그 평화를 넓혀가는 공동체입니다..




사귐과 선교를 위한 활동들과 프로그램들이 교회인 것이 아닙니다.. 교회 자체가 사귐이며 선교입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은 그 자체로 영원한 것이므로 소중합니다..




이 사귐은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도 계속될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 간의 사귐」도 하나님 나라에까지 이어져 계속 될 것입니다..







「선교」는 영원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소중합니다..




영원에 대한 보장이 없던 사람들을 영원한 사귐을 누리는 세계로 초청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생활의 모든 부분, 모든 활동, 모든 프로그램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사귐이 스며 들어 있어야 합니다..







성경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그 속에 사귐이 없으면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서로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교회>, <사귐에서 기쁨을 얻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중심으로> 성도들이 함께 울고 웃으며 삶을 나누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교회 생활이 선교지향적이어야 합니다..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들에게 편하고, 익숙한 예배만을 고집하는 교회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교회는 다양한 생각과 경험을 가진 이들, 다시 말해 <구원받은 죄인들>이 세상 마지막 날까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하는 사귐과 선교의 공동체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4,25절>을 보십시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사도행전 2장 46,47절>을 보십시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모이고, 사귀고, 전하는 온 성도님들과 하나님의 교회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 5: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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