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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19일 주일 설교 - 사귐과 선교 2 (롬 5:1-11절)(1절)
 이기남    | 2021·09·18 09:41 | HIT : 36 | VOTE : 0
* 설교 - 사귐과 선교 2 (롬 5:1-11절)(1절)








오늘 본문 말씀의 요절인 <로마서 5장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로마서는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1-4장>, <5-16장>..







<1-4장>이 우리가 하나님의 화해의 방법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일, 즉 어긋났던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잡는 일을 설명한 부분입니다..







<5-16장>은 그 이후의 삶에 대한 것입니다..







따라서 <로마서 5장 1절>은 로마서 전반부와 후반부를 연결하는 고리입니다..







정리하자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 1단계(구원=화해)이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이 2단계(신앙 생활)입니다..







지난 주의 말씀을 정리해 보면, ① 태초에 관계가 있었고, ② 인간의 범죄로 그 관계가 깨졌습니다.. ③ 하나님께서 관계 회복의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④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이것이 구원이고, 하나님과의 화해이고,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화해(구원)의 역사적 사실을 거쳐 이 땅에서 신앙 생활을 합니다..








신앙 생활은 구원, 다시 말해 「하나님과의 회복된 관계」를 누리는 삶입니다.. 여기에는 2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는 화해를 누리는 것으로 이것을 <사귐>이라 하고, 다른 하나는 아직 하나님과 화해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화해의 관계를 넓혀가는 것으로 이것을 <선교>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화해로 주어진 하나님과의 사귐, 하나님과 화해한 사람들과의 사귐>과..




<아직 하나님과 화해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화해를 전하는 선교>입니다..







「사귐과 선교」가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이며, 그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과의 <shalom>, 곧 하나님과 온전한 평화를 <누리며>, 그 평화를 <넓혀가는> 공동체입니다..




사귐과 선교를 위한 활동들과 프로그램들이 교회인 것이 아닙니다.. 교회 자체가 사귐이며 선교입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은 그 자체로 영원한 것이므로 소중합니다.. 이 사귐은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도 계속될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 간의 사귐」도 하나님 나라에까지 이어져 계속 될 것입니다..







「선교」는 영원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소중합니다..




영원에 대한 보장이 없던 사람들을 <영원한 사귐을 누리는 세계로 초청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생활의 모든 부분, 모든 활동, 모든 프로그램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사귐이 스며 들어 있어야 합니다..







성경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그 속에 사귐이 없으면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서로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교회>, <사귐에서 기쁨을 얻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중심으로> 성도들이 함께 울고 웃으며 삶을 나누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교회 생활이 선교지향적이어야 합니다..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들에게 편하고, 익숙한 예배만을 고집하는 교회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교회는 다양한 생각과 경험을 가진 이들, 다시 말해 <구원받은 죄인들>이 세상 마지막 날까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하는 사귐과 선교의 공동체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 교회에서 함께 신앙 생활을 하신다면 어떻게 하실까요?







4복음서에 모두 등장하는 오병이어의 기적은 단순히 배고픈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는 기적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한 나눔, 즉 교제(koinonia)가 살아있는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사람들과 식사하시는 모습으로 자주 등장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먹고 마시기를 탐하는 사람>,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별명으로 조롱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것을 개의치 않고 이러한 밥상 공동체로 사람들을 이끌어 들이시고 그 안에서 화해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제자들은 「사랑의 공동체」를 구성했습니다..




다혈질의 베드로, 불 같은 야고보와 요한, 좀 둔한 안드레, 생각 많은 나다나엘, 계산 빠른 빌립 등 <각자 개성이 강한 제자들>이 점차 「하나님과의 사귐을 함께 누리는 공동체」로 빚어져 갔습니다..







복음서의 예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삶에 들어오셔서 함께 먹고 마시는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을 보십시오..




(쉬운 성경) “보아라! 내가 문 앞에 서서 이렇게 두드리고 있다. 만일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우리가 마음 속 굳게 닫힌 문을 열기만 하면,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 들어오셔서 함께 생활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와 함께 밥을 드신다는 약속입니다..







친구나 지인이 <점심 같이 먹을까?> 제안을 했는데, <아니, 됐어!>하고 반응하면 요청한 사람의 얼굴이 붉어질 것입니다..




최소한 <미안한데, 오늘은 급한 일이 있어서 곤란해.. 다음 주에는 꼭 같이 먹자!> 정도의 답이 아니라면 인연을 끊겠다는 사람들도 나올지 모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을 묘사한 그림들이 여럿 있는데, 현대 작가로서는 미국의 도르셋(Patsy Arrington Dorsett) 이라는 화가가 그린 작품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작품 속 예수님은 한 없는 겸손함과 온유함이 담긴 표정으로 누군가의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빛나는 세마포 옷을 입고 계시며, 그림 전체가 예수님의 몸에서 발산되는 빛으로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아직 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예수님은 변함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문 쪽으로 숙이고 혹시 주인이 문을 열고자 다가오는지 귀를 기울이며 다시 문을 두드리십니다..







퓰러(Fuller) 신학교 교수였던 멍어(Robert Boyd Munger) 목사님은 베스트셀러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My Heart - Christ’s Home) 이라는 책에서 자신의 마음의 집에 예수님을 모셔 들이는 과정을 진지하게 묘사했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제 마음에 들어오셔서 저의 구원자요 주님이 되어 주십시오” 라는 기도를 드린 이후, 그는 먼저 자기 마음의 서재로 주님을 안내했습니다..







거기서 그는 몇 가지 부적절한 잡지들과 벽에 걸린 그림들을 치우기로 한 후, 그 방을 새롭게 꾸미는 일을 도와달라고 주님께 요청합니다..




주님은 기꺼이 도와주셨고, 성경과 주님의 초상화를 두도록 조언하셨습니다..







다음으로 그는 주님을 자기 마음의 주방으로 안내했습니다.. 그 곳은 그의 욕망의 공간이었습니다..




그의 주식(主食)은 돈, 학위, 증권 등이었고, 반찬은 명성과 성취한 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음식들을 드시지 않고 대신 그가 모르는 양식, 즉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그의 마음을 진정으로 만족시켜 줄 음식이라 소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맛이 얼마나 좋고 참된 영혼의 만족을 주는지 맛 보여 주셨습니다..







다음으로 그는 주님을 자기 마음의 거실로 안내했습니다.. 벽난로, 푹신한 의자, 책장, 소파가 있는 고요한 장소였습니다..




주님은 그 곳을 매우 좋아하셨고, 매일 아침 일찍 그 곳에서 그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자고 제안하셨습니다..




매일 아침 주님과 보내는 경건의 시간은 그에게 놀라운 영적 유익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차츰 바빠졌고, 처음에는 가끔, 나중에는 많이 경건의 시간을 거른 채 곧장 일터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가 거실에 가지 못했던 날에도 주님은 항상 거기서 그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가 주님께 죄송하다 말씀 드릴 때 주님은 거실에서의 만남에 대한 그의 오해를 지적하셨습니다..







그 만남은 멍어 목사님 자신에게만 유익한 시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를 사랑하셔서 막대한 희생을 치러 그를 구속하시고, 그와 사랑의 교제를 하는 것을 소중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언제든, 그가 주님을 원치 않는 때에도 항상 그와 함께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다음으로 주님은 그의 마음의 작업실을 보기 원하셨습니다.. 그 곳에서 주님은 그의 마음과 손을 가르쳐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내도록 이끄셨습니다..







다음으로 주님은 그의 마음의 오락실에 대해 물으셨는데, 그는 그 곳으로 주님을 모셔 가는 것을 오래 주저하였습니다..







어느 날 자기 집에 주님을 남겨 두고 친구 집에 놀러 갔던 그는 비참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는 처음에 주님이 옆에 계시면 재미있는 일을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오락실을 새롭게 꾸며 그의 삶에 기쁨이 넘치게 하셨습니다..







다음에 주님은 그의 마음의 침실에 가셔서 그의 당시 여자 친구 사진을 보시고 성(性)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성적인 기쁨을 결혼 관계에만 제약하신 이유가,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이기 때문이며, 신체적인 것을 넘어 깊은 사랑과 생명의 창조 등 훨씬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는 매우 강력한 것이기 때문이라 설명하셨습니다..







심지어 주님은 그에게 연애 코치까지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방을 보여드린 후, 그가 끝내 주님께 보여드리지 않은 집안의 공간이 있었는데, 그 곳은 마음의 벽장이었습니다..







서양 문화에서 벽장에 부끄러운 것을 감춘다는 개념이 있는데, 그 곳에서는 그의 옛 생활의 찌꺼기들이 썩어서 냄새가 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작은 벽장마저 보여드려야 한다는 상황에 화가 났습니다.. 그나마 비밀을 저장할 수 있는 정말 작은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른 방에 있더라도 벽장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 지독해서 견딜 수 없다 하셨습니다..







긴장이 흘렀습니다.. 그는 할 수 없이 그 방도 열어 드렸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그 썩은 것들이 너무 지독해서 자신이 직접 다가가 치울 수도 없으니 도와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주님은 기꺼이 벽장의 냄새 나고 죽어가는 것들을 치우시고 향기로운 공간으로 탈바꿈 시키셨습니다..







나중에 그는 주님께 아예 자기 집의 소유권을 통째로 넘겨 드렸습니다..




주님께서 그 집을 운영하시고, 자신은 주님의 친구이자 심부름꾼으로 그 집에 머물겠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최선의 삶의 비결이라 소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사람들의 삶을 아름답게 하시고, 평화를 주시고, 모든 것을 채워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은 부활하신 주님, 다시 오실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하신 말씀입니다..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교회, 많은 것을 가진 것으로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불쌍하고, 비참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다고 책망 받은 교회입니다..







그 교회 앞에서, 라오디게아 같은 마음과 삶의 태도로 일관해 온 각 사람의 마음 문을 주님께서 두드리고 계십니다..




주님은 겸손하고 온유한 모습으로 변함없이 문을 두드리십니다..







우리 삶의 크고 작은 사건, 갈등, 도전들이 사실 주님이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소리입니다..




우리는 이 소리를 무시할 수 있습니다.. 평생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우리 마음의 집으로 모셔 들일 때..




심지어 꼭꼭 묻어두고 싶은 어떤 것들이 숨겨져 있는 작은 벽장까지도 주님께 열어 드릴 때..




우리는 더 이상 불쌍하고, 비참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삶을 살지 않게 될 것입니다..







미지근하고 어정쩡한 삶을 살지 않게 됩니다.. 때로는 열정적인 사람으로, 때로는 쿨(cool)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혹시, 집에 들어오신 주님을 아직도 현관에 그대로 세워 두고 계신 분이 있으십니까?








속히 맞아 드려서, 이 방, 저 방 안내도 해 드리고, 주님과의 친밀한 사귐도 갖고, 문제들을 해결해 달라고 주님을 붙잡고 하소연도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수많은 사건들 속에서, 여러 사람들의 말들 속에서, 주님께서 벽을 두드리시며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시는 소리를 들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마음 그리스도의 집에서, 모든 방들을 주님께서 봐 주시고, 청소해 주시고, 다시 설계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는 중에, 우리가 하나님과의 화평을 풍성히 누리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태초에 관계가 있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관계의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로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사람들은 고슴도치가 되어 하나님을 찌르는 원수가 되었고, 서로가 필요하면서도 가까이 다가가면 서로를 찔러 서로에게 원수가 되었습니다..







이 깨어진 관계 회복을 위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수단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우리의 죄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손과 발을 깊이 찔렀지만,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역사적 사건을 인정하고, 그 분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영생을 주십니다..







이것이 구원이며 하나님과의 화해입니다.. 하나님과 화해하면 사람들과도 화해할 수 있습니다..







신앙 생활은 이 화해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지속적으로 누리는 <사귐>과, 아직 하나님과 화해하지 못한 이들을 구원으로 인도해서 사귐을 확장하는 <선교>로 구성됩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 마음의 문 앞에 서서 각 사람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으로 주님을 영접하면, 이 땅에 사는 동안, 그리고 영원토록 그리스도와 친밀한 사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나아가 영원한 결과를 가져오는 선교에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화해가 필요한 분들이 구원을 얻게 되는 역사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과 화해한 분들이 교회 안에서 하나님과 사귐을 가지며, 또 서로서로 친밀한 사귐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가 영원한 결과를 가져오는 이 시대의 선교 역사, 생명 구원 역사에 계속하여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히브리서 10장 24,25절>을 보십시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사도행전 2장 46,47절>을 보십시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모이고, 사귀고, 전하는 온 성도님들과 하나님의 교회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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