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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5일 주일 설교 - 고난의 사명 (요 9:1-7절)(3절)
 이기남    | 2023·11·04 10:30 | HIT : 66 | VOTE : 1
* 설교 - 고난의 사명 (요 9:1-7절)(3절)





1. 고난의 역사(役事)성..



「유명한 지휘자 <Toscanini> 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데, 악보를 모두 외워서 지휘하기로 유명했습니다.



그가 악보를 외웠던 이유는 선천적으로 눈이 나빳기 때문입니다.





원래 그는 퍼스트 바이올리니스트였는데, 눈이 아주 나쁘기 때문에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것이 어려워서, 자기 파트를 다 외우고, 그리고 남의 파트도 다 외워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언제 무슨 파트가 들어오고 나가는지를 알아야 자기 파트에서 실수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비가 많이 오면서 연습 시간에 지휘자가 나오지 못했습니다.



지휘자 없이는 연습이 불가능한데, 단원 중에서 다른 사람의 파트까지 다 외우는 사람은 토스카니니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토스카니니가 지휘자를 대신해서 지휘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악보도 보지 않고 훌륭하게 지휘를 했고, 그 후에 지휘자가 공석이 되면서 토스카니니가 그 자리를 대신 맡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토스카니니는 평생 악보를 보지 않고 연주하는 유명한 지휘자였습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피나는 노력이 있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외우지 않으면 연주할 수 없으니 다른 사람보다 몇 배의 노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그의 고난이 그를 지휘자 토스카니니로 만들었습니다.





만일 그의 눈이 좋았더라면 악보는 외우지 않았을 것이고, 더우기 지휘자는 못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고난>이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고난은 주님의 능력이 역사하는 입구요 통로>입니다.





<고난>에는 하나님의 「역사」(役事)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고난 안에는 그 고난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들어 있습니다.」 「고난에는 <사명>이 있습니다.」





2. 도덕적인 질문, 신학적인 대답..



오늘 본문에는 중요한 질문이 있고 또 중요한 대답이 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맹인된 사람>을 놓고 제자들은, 그가 맹인된 이유가 누구의 죄 때문인가를 묻고 있습니다(2절).



이것은 율법에 근거한 「도덕적인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신학적인 대답」을 하셨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쉬운성경) ".... 하나님의 일을 그 사람의 생애를 통해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만약, 제자들의 신앙이 좀 깊었더라면, "이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난 것이 하나님께는 어떤 뜻이 있습니까?" 라고 물을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율법적인 시각>으로 맹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맹인으로 태어난 것은 <죄의 결과>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인간이 당하는 고난은 모두가 죄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롭게 사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형통하고 하나님의 복이 그에게 함께 한다고 믿었습니다.





우리 안에도 은근히 이런 <율법적인 시각>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신앙도 좋고 하나님의 일도 열심히 하는데 자주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꼭 뒤에서 그 사람이 뭔가 숨기고 있는 죄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정말 못 말립니다.



이것은 <율법주의>입니다. 이런 말과 생각은 정말 위험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적으로 묻는 제자들에게 신학적으로 대답하셨습니다.



「<신학적이란>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주권으로 판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적이란 뜻입니다.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신학적인 대답>은 이렇습니다.





「이 사람에게 고난이 닥친 것은 이 사람이나 이 사람의 부모가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이 사람이 당하는 고난 속에 <하나님의 일이 있고, 그것을 나타내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고난이 스스로 감당하고 있는 역할(사명)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3. 하나님의 주권..



같은 맹인을 보는데도 <예수님과 제자들의 보는 시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제자들>은 「율법적인 시각으로」 보았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주권의 시각으로」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주권」, 곧 「하나님이 이 사건을 통해 무엇을 하시려는가」에 대해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뜻을 이루시기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묵상하셨습니다.





맹인을 바라보시며 예수님은 <하나님의 하실 일>을 바라보았고, 그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셨습니다. <5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예수님은 맹인을 바라보시며 이렇게 「영적으로 맹인되어 하나님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보십니다.





그리고는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이 맹인을 통해 바라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영적인 암흑의 세상에서 <빛의 역할을 감당하여야겠다는 소명>을 다시금 확고히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두움 가운데서 태어나 어두움 가운데서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을 밝혀 하나님을 바르게 바라보도록 하는 <빛의 역할을 감당하시고자 하시는 의지>를 굳게 하셨습니다..





「이 사람이 나면서부터 맹인이 된 것은, <예수님이 세상의 빛으로 오신 분이심>을 드러내고,



<하나님이 영적으로 맹인된 자들의 눈이 열려지기를 간절히 원하는 분이심>을 가장 효과적으로 극적으로 나타내시려는 하나님의 일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도 「어려운 상황을 당할 때, 예수님의 시각과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는 하나님의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이루기 위해 「내 자신이 무슨 역할을 감당해야 할지」를 생각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따라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4. 과거냐 미래냐..



그러면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란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과거적」이 아니고 「미래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대체로 원인을 과거에 둡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오늘 배가 아프면, 어제 무엇인가 잘못 먹었다고 원인을 과거에 둡니다.



또 오늘 가난하면 어제 게을렀기 때문이라고, 언제든지 과거가 원인이고 현재는 결과입니다.





그래서, 원인을 찾다가 궁색해지면 전생에 죄가 많아서 그렇다고 말해 버립니다. 이것은 「불교적인 인과율」입니다. 그래서 전생이 원인이고 현세가 결과입니다.





또한 현세가 원인이 되어 내세가 결과되어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교회 안에서 극성을 부리고 있는 「가계저주론」이 바로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의 고통의 원인>이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학생이 밤을 새며 일하고 열심히 공부하는데, 이것을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서 고생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어디까지나 미래 때문입니다. 앞날을 위해서 지금 고생하는 것입니다.





해산의 고통도 이와 같습니다. 고통을 당함으로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 <미래적인 의미가 있는 고통>입니다.





고난의 원인이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 때문에 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입니다.





여기 어느 사람이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감옥에 간 것은 <과거에 지은 죄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옥에 간 사실로 인해서 앞으로의 생활 자세에 변화가 오고 훌륭한 사람이 된다면, <감옥의 고난은 과거적인 것이 아니라 미래적인 것>이 됩니다.





오늘 본문의 맹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어두움 가운데 살았지만,



이제 <예수님을 만남으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미래지향적인 사역을 이루는 일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겪고있는 고난>은 과거가 원인이 되어 저주 받는 것이 아니라, 미래가 원인이 되어 주어진 복된 사건임을 잊지 마시기를 기도합니다.





5. 율법이냐 사랑이냐..



조금만 더 깊이 살펴 본다면, 사람들은 「맞냐 틀리냐」, 「옳으냐 그르냐」에 집중하지만, 모든 것을 판단하실 수 있는 주님은 이런 일들에 개입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을 주목하여 보시면서, 「하나님의 하실 일」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율법이 아닌 사랑으로」 대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어 드릴 귀한 존재로」 대하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사람을 대하는 기본입니다. 기독교 윤리의 궁극적인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마음이 맹인에게 전달되었을 때 그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자신을 죄인으로도 보지 않고, 멸시하지도 않고, 주목하여 바라 보시고,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사람으로> 여겨 주시는 것에 대해서 그 맹인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여기에 감동과 치유가 있는 것입니다. (감동은 예배로, 예배는 헌신으로 이어집니다.)





6. 고난의 목록 바꾸기..



<로마서 8장 35절>을 보십시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사도 바울이 <로마서 8장 35절>에서 열거하고 있는 「고난의 목록들」이 어디와 연결되는 문맥인지 아십니까?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苦難)은" 이라고 한 <로마서 8장 18절>과 결부가 되는 문맥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절) 하고 선언하고 있는데, 무엇에 대해서 <넉넉히 이긴다>는 것입니까?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 등이 닥쳐와도 넉넉히 이긴다는 말씀입니다.




이점에서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은, 사도 바울이 열거하고 있는 「고난의 종목들」을 유의하여 보면 일상적(日常的)인 삶 가운데서 일어나는 일들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우리들이 말하는 「고난」과는 성질이 다른, 모두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 때문에 당하는 핍박들이요,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당하게 되는 박해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런 고난들은 사도 바울 자신이 <고린도후서 11장 23절> 이하에서 술회하고 있는, 자신이 몸소 겪었던 환난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자기중심적인 「욕심」이나 일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고난들 때문에 낙망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있으니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사도 바울의 고백을 보십시오. <고린도후서 11장 22-29절>입니다.





"...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




매튜 헨리는 고난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고난 받은 성도가 잃은 건 무엇인가? 아 이 사람아 그들이 잃은 건 황금이 용광로에서 잃은 것, 곧 찌꺼기뿐일세."




고난의 목록을 바꾸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명을 가지고 고난에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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