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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19일 주일 설교 - 목자이신 하나님 (시 23:1-6절)(1절)
 이기남    | 2023·11·18 10:22 | HIT : 66 | VOTE : 1
* 설교 - 목자이신 하나님 (시 23:1-6절)(1절)





『시편』은 「영혼의 해부도」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직면하는 불안과 초조, 좌절과 두려움, 시기와 질투, 분노와 원망, 불신과 절망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과 시인들과의 만남은 「낭만적인 만남」이 아니라, 「적나라한 삶의 질곡 가운데서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적나라한 삶의 질곡」은 하나님을 만남으로 한결같이 <시와 노래로 승화>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편 23편>은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이 다 좋지만 이 <시편 23편>의 말씀은 언제 읽어도 은혜가 되고 힘이 됩니다.





<시편 23편>은 「자유인의 외침」입니다.





<1절>은 「욕망」으로부터 자유한 자의 외침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3절>은 「방황」으로부터 자유한 자의 외침입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5절>은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한 자의 외침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절>은 「죽음」으로부터 자유한 자의 외침입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다윗이 가졌던 이 거부할 수 없는 자유를 맘껏 찬양하고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눈을 감고 조용히 음미하면서 고백해 보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말할 수 없는 평안이 밀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별히, 힘들고 막막할 때, 이 <1절>의 고백만 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새로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답답하고 힘들 때, 문제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이 고백을 하면, <그래, 하나님이 나의 목자이시지> 하면서, 힘든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목자라는 고백」은 「다윗, 개인의 고백」이기도 하지만,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경험된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통된 고백」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셨고, 그들의 목자가 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인도한 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라 「광야」였습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현실은 「광야의 삶」이었습니다.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항상 먹을 것, 마실 것 때문에 고심해야 하는 땅입니다. 때마다 광야에 사는 원주민들의 습격의 위험에 떨어야 했습니다.



낮에는 살인적인 열기를 견뎌야 했고, 밤에는 차가운 한기에 몸서리쳐야 했습니다.



광야에 사는 맹독을 가진 곤충이나 짐승들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생활이 40년 동안이나 이어졌습니다. 그들은 이런 고통스런 생활 때문에 늘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신명기』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40년의 광야 생활을 마감하고, 약속의 땅에 들어 가기 전에 <모압 평지>에서,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을 다시 새롭게 배우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불순종하던 <출애굽 1세대>는 전부 죽고, 이제 <광야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2세대>가 가나안 땅 진입을 앞두고 있었기에, <모세>는 그들에게 다시 율법을 가르쳐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신명기 2장 7절>에서 하나님은 <광야의 삶>을 이렇게 정리해 주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다님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하시기로."





이 말씀은 참 놀라운 말씀입니다.. 분명 하나님은 광야 생활 40년 동안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어떠했습니까?



자신들의 생활에 늘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도 부족하고, 양식도 부족하고, 안전도 부족하고, 편리함도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족한 것 투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 20-26절>의 말씀을 보면, 이 부분은 「제자도의 핵심」을 말해주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20절>에서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제자도의 핵심」이 「가난하게 되는 것」이란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놀랍게도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자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가난하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게 됩니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결국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됩니다. 이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했더니 어느새 하나님께서 나를 「장악」하시고, 나의 「인도자」가 되어 주십니다. 「공급자」가 되어 주십니다. 「보호자」가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장악하시고 인도해 주시니, 이것이 「최고의 복」이요, 또한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주권」을 행사하시니, 이것이 「천국」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이 부족함이 없었다는 것」이 바로 그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부족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광야>로 나왔습니다.



거기에는 골리앗을 물리쳤을 때의 사람들의 환호와 인기도 없었고, 거기에는 생활 필수품도 없었습니다.



광야에는 안전도 없었고, 밤에 발을 편히 뻗고 누울 안락한 집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1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고백은 <우리의 사고와 안목이 완전히 전환되어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의 생활」에 대해서 늘 부족함을 느낍니다.



있어도 항상 부족함을 호소하며 때론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삶 속에 <없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돈, 건강, 인기, 명예, 시간, 여유, 힘이 없어서 우리 자신이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리고 오늘 시편의 기자 「다윗」은, 전혀 다르게 생각합니다.



우리의 <행복의 기준>, <만족의 기준>은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비록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 광야 같은 삶이라도 거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함께 계시지 않는다면> 비록 궁궐에서의 삶이라고 할지라도 한 없이 부족하고 모자란 삶인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행복과 만족>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지, <푸짐하고 기름진 음식과 안락한 잠자리>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요셉의 삶」(창 37-50장)이 좋은 예가 됩니다. 그의 인생은 계속 꼬이는데도 「성경」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창 39:2절 등)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통」이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형통」은 「순풍에 돛단 듯, 내가 원하는 일이 척척 잘 풀려 나가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형통」이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일」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개입한 사건」, 그것이 「형통」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되어진 일이라면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든 「형통」인 것입니다.





요셉의 생애가 어떻게 마무리 되었는지는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또 이 세상에 완벽한 환경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비록 우리들의 삶에, 우리들의 가정에 부족함이 있다 하더라도, 또 우리의 교회에 부족함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것은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의 눈으로 보기에 꽤 많은 것을 갖춘 것 같아도, 하나님이 거기 계시지 않으면 그곳은 부족함 투성이 입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어디에 있느냐」, 또는 「얼만큼 가졌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있느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우리는 부족함이 없습니다(1절).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양들과 함께 하시는 목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공급(provision)」과 「인도(guide)」와 「보호(protection)」입니다.





「목자이신 하나님」은 이 세 가지를 우리의 인생 가운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실행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1. 첫째, 공급(provision) 입니다..



<2절과 3절 앞 부분>을 보십시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목자의 최대의 관심사는 양들을 「배불리 먹이고, 목마름을 해소시켜 주는 것」입니다.





양들은 배고프고 목마르면 절대로 쉬지 않는다고 합니다. 불안해서 이리 저리 몸을 움직이게 되면, 살이 빠지고 털의 질이 나빠집니다.





그래서 목자의 최대의 관심사는 「양들을 잘 먹이고, 갈증을 해소 시켜서, 쉬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자는 양들을 푸른 풀밭, 잔잔한 물가로 이끌어 쉬게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배고픔과 목마름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우리가 먹지 않고 마시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인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그래서 <목자이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양식과 물을 공급해 주시는 일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믿고 신뢰해야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양들을 결코 굶주림에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는 신뢰해야 합니다.






<로마서 8장 32절>을 보십시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독생자인 자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내어 주셨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내어 주신 분이 뭐가 아까워서 그 밖의 것들을 아끼고 안 주시겠습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자신의 아들을 주신 분이십니다.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 숫자도 세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0장 30절>을 보십시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우리 가운데 자신의 머리털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관리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관심도 갖고 있지 않는 우리의 머리털 숫자>도 세고 계십니다.





「우리가 관심도 갖고 있지 않는 머리털 숫자」도 세고 계시다면, 「우리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더 철저히 관리해 주시고 계시겠습니까?





그 필요에 따라서 왜 공급하시지 않겠습니까? <마태복음 6장 25-34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예수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스스로 책임지는 자들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고 공급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공급자」도 되십니다. 지혜가 부족하면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야고보서 1장 5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적절한 지혜를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인도(guide)입니다..



우리의 목자이신 하나님은 또한 우리의 <인도자> 이십니다.



<3절 뒷 부분>을 보십시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제일 안전한 길」, 「제일 성공하는 길」, 「가장 행복한 길」은 <목자되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따라가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많은 분들이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네비게이션」과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운전을 할 때 「네비게이션」을 켜고 목적지만 설정하면 알아서 안내해 주지 않습니까?



이처럼 하나님께서 「네비게이션」이 되셔서 내 옆에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인생 길을 안내해 준다면 얼마나 편하고 좋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인도」는 그렇게 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세미한 음성」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내를 쉽게 놓쳐 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은 어디서 들려옵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라는 말씀 속에 힌트가 있습니다.





여기서 「의의 길」은 구체적으로 구약 백성에게 「율법(토라)의 길」을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성경 말씀」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야할 길을 「성경」에 다 지시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경 말씀>을 잘 들으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가이드를 잘 따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렇게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3. 셋째, 보호(protection)입니다..



우리의 목자이신 하나님은 또한 우리의 보호자이십니다. <4절>을 보십시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목자되신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되, 햇빛이 밝게 빛나는 대로로만 인도하시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음침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도록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밀려나지 않을까, 세계적인 경제 침체 속에서 파산하지 않을까, 실업자로 전락하지 않을까,



전쟁의 소식을 들으며, 이름도 희귀한 질병들의 소식을 들으며, 혹시 나도 그런 병에 걸리지 않을까 노심초사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실제로 그런 음침한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확신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셔서 든든하게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말씀대로, 심지어 죽음 조차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확신입니다. <37-39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또한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8,29절>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그래서 우리는 노래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렇게 사는 우리에게 「목자이신 우리 주님」은 「영원한 천국의 잔치를 약속해 주셨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그 잔치는 승리의 잔치요, 영광의 잔치요, 기쁨의 잔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확신하며 고백합니다. <6절> 말씀입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우리가 우리의 「목자이신 하나님」, 그 분 외에 누구를 예배하며 섬기겠습니까?



이 땅에서 뿐 아니라, 저 천국에서도 영원히 예배하고 섬길 분은 우리의 「목자이신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우리를 부족함 없이 인도하시는 「목자이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그리고 다같이 믿음으로 고백합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것이 추수감사절 아침에, 목자이신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들의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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