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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9일 주일 설교 - 행복한 목회자 (살전 5:12-15절)(12,13절)
 이기남    | 2024·05·18 09:37 | HIT : 29 | VOTE : 1
* 설교 - 행복한 목회자 (살전 5:12-15절)(12,13절)





1. 목회자..




「100주년 기념교회」를 담임하시다가 은퇴하신 이재철 목사님은,



그가 「주님의교회」의 10년간의 목회를 마치고 쓴 책 『회복의 목회』에서, 「목회자는 누구인가」를 고백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1) 첫째, 목회자는 「구도자」입니다..



목회자를 가리켜 전도자라고 부릅니다. 도(道)를 전하는 자란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 도를 바로 전하기 위해서는 그 도를 먼저 「구하는 자」가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먼저 구하지 아니 하고서는 전할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목회자는 누구 보다도 먼저 「구도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목회자는 <불가의 선승>이나 <카톨릭 수도원의 수도사>들의 구도의 삶을 능가하는 깊이 있는 구도의 길을 살아 나가야 합니다.





본인이 직접 교회와 집을 청소하고, 자발적으로 자기 자신을 격리시키는 「고독 훈련」을 하고,



영적인 설교를 만들기 위해서 기도와 금식으로 「영적 투쟁」을 하기도 하고, 돈과 무관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기 이름의 집을 소유하지 않고, 통장에는 일정액 이상의 금액을 남겨두지 않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선지자나 사도들은 단순히 말씀을 입으로 말하기만 한 달변가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나선 「구도자」들 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결같이 그 시대를 밝히는 등불이 될 수 있었습니다.





(2) 둘째, 목회자는 「모두의 목사」입니다..



예수님이 모든 계층을 위해 이땅에 오신 것처럼(마 11:28절), 이 땅의 모든 목회자들은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의 「모든 교인의 목사」이어야 합니다.





모두의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교인에게 똑같은 원칙을 적용해야 합니다.



사회적으로 유력한 인사 이거나 교회의 중직자라고 해서 그들에게 예외를 둬서는 안됩니다.




아이들도 우리 교회의 교인인 이상 어른들과 꼭 같은 배려가 주어져야 합니다.





목회자는 모두의 목사가 되기 위해서 어떤 경우에도 「파벌」(목사님 파)을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모든 교인에게 똑같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비판의 소리에는 언제나 열린 귀를 가져야 하고, 목회자가 틀렸으면 지체없이 사과해야 합니다.





목회자가 모두의 목사가 된다는 것은, 교인들 모두를 목회자 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편」이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때로 고독한 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독함이 없이 어찌 모두의 목사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교인들에 의해 모두의 목사로 받아들여지는 것보다 목회자에게 더 행복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3) 셋째, 목회자는 「연출자」입니다..



목회자는 예배를 비롯한 교회의 모든 행사를 인도하고 주관하는 자입니다.



따라서 목회자가 어떤 마음으로 얼마나 준비하고 또 어떻게 진행하느냐에 따라 참여한 교인들이 받는 은혜가 달라지고 그 결과가 달라집니다.



이런 의미에서 목회자는 「연출자」이어야 합니다.





목회자가 연출자이어야 한다는 것은, 목회자는 항상 전체를 한 눈에 파악하는 안목을 길러야 함을 의미합니다.





예배당에 들어서면서, 지금 어디에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가 단번에 보여야 합니다.



설교하기 위하여 강대상 앞에 섰을 때, 교인들의 숨소리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배 도중에 일어나는 어떤 미세한 움직임도 민감하게 포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목회자는 배우나 구경꾼이 아니라 프로 연출자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자가 어느 수준의 연출자이냐에 따라, 그 교회 교인들의 영적 수준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4) 넷째, 목회자는 「예절자」입니다..



예수님의 세족식 장면에서(요 13:4,5,12절) 보듯이 예수님은 「예절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기 위하여 겉옷을 벗으셨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하실 때에는 벗어 두었던 겉옷을 입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주님의 예의」입니다.







목회란 섬김입니다. 그리고 예의 없는 섬김은 섬김일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회자는 철저한 예절자 이어야 합니다.





매사에 예의를 다한다는 것은 번거롭게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목회자가 교인들에 대하여 참된 예절자가 될 때, 교인들 역시 목회자를 향하여 진정을 다하는 예절자가 되는 것입니다.





(5) 다섯째, 목회자는 「자기 관리자」입니다..



목회자란 모든 사람들보다 제일 앞장 서서 진리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교인들에 앞서서 진리의 발자국을 남기는 사람입니다.





목회자는 그 자신이 원튼, 원치 않튼 상관없이 교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단지 그 영향이 부정적이냐 아니면 긍정적이냐 하는 것이 문제일 뿐입니다.






만약 목회자가 그릇된 발자국을 남겨 교인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그보다 더 큰 비극은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6,7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이런 의미에서 목회자는 누구보다도 투철한 「자기 관리자」이어야 합니다.





자기 관리를 바로하지 아니하고서는 사도 바울처럼 교인들 앞에서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11:1절) 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고, 이 말을 할 수 없다면 참된 목회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재철 목사님은 「이런 목회자가 되십시오」 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권면했습니다.





❒ 어떤 교인보다 더 많이 성경을 읽고, 어떤 교인보다 더 많이 기도하는 자가 되십시오. 말씀과 기도는 습관이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 새벽기도회가 끝남과 동시에 개인 기도를 충분히 하십시오. 그 시간을 놓치면 하루 중 따로 시간을 내어 기도하기는 어렵습니다.





❒ 새벽기도회가 끝난 다음 집에 가서 다시 자지 마십시오. 하루 중 그 시간보다 영성을 기르기에 더 좋은 시간은 없습니다.





❒ 심방의 대가로 어떤 경우에도 돈을 받지 마십시오. 그것은 상대에게 자신의 인격을 파는 짓이요, 스스로를 삯군으로 전락시키는 것입니다.





❒ 반드시 시간을 지키십시오. 어떤 예배이든 정해진 시간 정각에 시작하십시오. 사람이 많이 오지 않았다고 예배 시간을 늦추지 마십시오. 예배 시작 시간이란 사람과의 약속인 동시에, 그 예배를 받으실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 교인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목회자이어야 합니다. 교인들이 없다고 해서 목회자의 정체성을 망각한다면 결국 사람 앞에서는 목회자의 연기를 하는 셈인데, 연기를 통해서는 성령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 토요일은 주일을 준비하는 날이지 휴일이 아닙니다. 만약 목회자의 토요일이 휴일이 된다면, 그 순간부터 목회자는 교인과 구별되지 않습니다.





❒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위하여 교회에 금전적인 요구를 하지 마십시오. 목회자는 주어진 것 속에서 자족하며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적 권위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 교인들에게 대접만 받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먼저 베푸는 사람이 되십시오. 목회자가 나눔의 종착역이 되려 하면 스스로 썩어 버립니다.





❒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 실수를 깨달았을 때에는 즉시 사과하십시오. 실수 자체는 잘못이 아닙니다. 잘못은 실수를 깨닫고서도 사과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수를 세 번 이상 반복하는 것은 목회자의 자질 문제입니다.





❒ 자신이 행하지 못하는 것은 교인에게 요구하지 말고, 교인들에게 설교한 것은 무조건 실행하십시오. 참된 설교는 강단에서 내려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 목회 활동 중에 알게 된 교인의 비밀은 누구에게도 누설해서는 안 됩니다.





❒ 내일 떠나더라도 지금 섬기는 교회를 중간 기착지라 생각지 말고 종착역으로 여기십시오. 내일이 되기 전에 내 생명일 끝날지도 모릅니다.





❒ 명단을 작성할 때에는 교인들의 이름을 먼저 쓰고, 교역자의 이름은 제일 말미에 넣으십시오. 교인들을 위한 섬김은 종이 위에서도 나타나야 합니다.





❒ 교회 재정에 관여치 마십시오. 한 번 관여하기 시작하면 재정이 목회의 핵심이 되어 버립니다. 목회의 핵은 복음이지 재정이 아닙니다.





❒ 예배를 영어로 service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교인들에 대한 서비스 정신에 투철하지 않는 한 진정한 목회자는 될 수 없습니다.





❒ 교인 수첩 제작 등, 교인 명부를 작성할 때에 교인의 이름이 틀리거나 빠지지 않도록 유의하십시오. 사람의 이름을 빠뜨리거나 틀리게 기재하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와 인격 자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 장례식 때 하관 예배의 설교는 5분 이상을 초과하지 마십시오. 그 때가 유족들이 가장 지쳐있는 시간입니다.





❒ 하관 예배까지 다 끝난 후에는 유족의 집까지 따라가서 위로의 기도를 해 드리십시오. 장례식을 마치고 집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이 유족이 가장 외로울 때입니다.





❒ 이성이 교역자 혼자 심방해 줄 것을 요구하면 절대로 응하지 마십시오. 이성과는 단 둘이 식사도 하지 마십시오. 이성과 상담을 할 때에는 반드시 교회 사무실 공개된 장소에서 하십시오. 정신질환자인 이성이 상담을 요구할 때에는 반드시 누군가를 배석시켜야 합니다.





❒ 다른 목회자가 어떤 일을 주관할 때 반드시 자기 자신을 그 자리에 세워 보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자신에게 그 일이 맡겨졌을 때 제대로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 월요일 아침에는 자기 교구 교인 명단을 놓고, 주일에 누가 보이지 않았는지를 대조하면서 전화로 확인해 보십시오. 목회는 관심이고 관심은 쏟아야 계발됩니다.





❒ 좋은 설교는 그 전체의 내용을 한 문장 혹은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그 설교에 초점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 목회자들끼리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목회자들이 서로 사랑하지 못하면, 그 입에서 발해지는 말들은 모두 공허한 메아리일 뿐입니다.





❒ 토요일 신문이 오면 주일에 대한 일기 예보를 확인하고 필요한 조처를 미리 취하십시오.





❒ 부목사 시절에 세계문학전집 한 질은 반드시 읽으십시오. 목회의 대상은 사람이고 문학은 사람에 관한 사람의 이야기이기에, 문학은 사람에 대한 앎의 깊이를 더해 줍니다. 사람을 알지 못하는 자의 설교는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 다른 사람이 설교할 때 주의를 집중하여 설교를 경청하십시오. 타인의 설교를 소홀히 하면 다른 사람도 나의 설교에 집중치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설교에 목회자가 귀 기울이는 것 자체가 이미 교인을 향한 훌륭한 설교입니다.





❒ 지식과 정보는 반드시 공유하십시오.





❒ 교인의 모든 행사는 교역자 위주가 아니라 교인 위주여야만 합니다.





❒ 신학자는 수직적인 사고만으로도 족하지만, 목회자는 수직적인 사고와 수평적인 사고가 교직(矯直) 되어야 합니다.





❒ 절대적인 것을 위해서는 목숨을 걸 수도 있어야 하지만, 상대적인 것이라면 모두 양보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 삶은 결코 되돌아오는 법이 없기에, 목회자는 자기를 바로 세위기 위하여 중단없이 정진해야만 합니다.





2. 행복한 목회자 (살전 5:12-15절)



오늘 본문이 포함된 <12-28절>은 「데살로니가전서」의 마지막 권면의 말씀입니다.



이 부분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은혜를 끼치는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는가」를 말해 줍니다.





그런데 특히 앞 부분인 본문 <12-15절>은 「목회자를 어떻게 대하면 목회자가 <행복한 목회자>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1) 첫째, 목회자를 「알아야」합니다..



말씀으로 섬기고, 가르치고, 다스리는 목회자를 「알아야」 합니다.



<12절>에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알다」 라는 말은 <영어 성경(NIV)>과 <쉬운 성경>에서는 「respect」, 「존경하다」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감사할 때에는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감사할 때가 많습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것」 중에 <범사에 잘되는 것>, <강건한 것>에 대해선 감사를 쉽게 느끼고 구체적으로 감사도 하지만,



영혼의 문제에 있어서,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감사가 이렇기 때문에, 따라서 목회자가 성도를 위해 기도하고 말씀으로 섬기고 가르치며 다스리는 것에 대해서도 그다지 감사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감사해야 할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며, 그것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해석하여 전하는 「설교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respect」란 말은 <존경하다>는 뜻도 있지만 <존중하다> <중시하다>의 뜻도 있습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절대 절명의 중요한 영적인 강건함을 위해 수고하는 이들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 운반하는 사람들」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또한 「respect」는 <주의, 관심을 기울이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른 일로 수고하는 것이 아닌 주 안에서 수고하는 그 모든 수고들의 깊이를 알고 함께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설교자가 말씀을 전할 때 주의를 기울이며, 집중하며 듣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주의 종에 대한 최고의 「respect」입니다.







목회자를 존경하고 소중히 여기고 관심을 기울이는 최고의 표현은 바로 「말씀을 듣는 자세」에서 나타납니다..





설교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말씀을 받으며, 순종과 결단을 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알아주는 것입니다.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기계적인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충만해져서 그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의 심령」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가득차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들이 설교 시간에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목회자의 시선이 하나님의 시선이 되는 것을 빼앗는 모든 다른 요소들」은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예를들면, 예배 시간에 들락 날락 거리는것, 핸드폰 받는 것, 옆 사람과 대화하는 것, 커피 마시는 것, 조는 것 등,





이런 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의 시선이 하나님의 시선으로 가득차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이며, 목회자의 심령이 하나님의 마음이 아닌 다른 버거운 마음들로 가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는 「그렇게 행동하는 성도」의 신앙을 성장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은혜받는 것까지 방해하는 행동이며, 실제적으로 「성령님」을 훼방하는 행동입니다.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며 영적인 일을 돌보는 자들을 존경하는 것은 결국 「성도들 자신의 신앙 성장의 기반」이 됩니다.





참된 예배,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예배를 드림으로 목회자를 존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성도들이 말씀으로 섬기며, 가르치며, 다스리는 목회자를 존경하는 교회, 그 교회 목회자는 행복합니다.





(2) 둘째, 목회자를 「귀하게 여겨야」합니다..



사랑 안에서 목회자를 가장 귀히 여기며, 또한 화목해야 합니다.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긴다는 것」은 「사랑 안에서 가장 존경하라」, 「최고의 관심과, 배려와, 존경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목회자를 사랑 안에서 귀히 여기는 것을 통해, 성도들은 하나님을 사랑 안에서 귀히 여기는 훈련을 하게 됩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그리고 <갈라디아서 6장 6절>을 보십시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말씀을 가르치는 자를 존귀히 여기는 것을 통해 성도들은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는 것을 훈련하게 됩니다.





「화목」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와 화평의 관계가 깨어지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가 없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와 화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도들이 사랑 안에서 목회자를 가장 귀히 여기며 화목하는 교회, 그 교회 목회자는 행복합니다.





(3) 셋째, 성도들이 「자기의 몫을 제대로 감당」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목회자와 더불어 자신의 몫을 제대로 감당할 줄 알아야 목회자가 행복합니다.





「규모없는 자들을 권계하는 일,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는 일,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는 일,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오래 참는 일, 선으로 대하는 일 ...」





이 모든 기록된 일들은 목회자에게 부여된 일들이 아닙니다. 이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을 향하여 사도 바울이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14절>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짐을 목회자가 할 일이라며 떠넘기는 것은 말씀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라고 해서 피동적이거나 수동적인 신앙 생활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신분, 「성도」라는 신분은 피동적인 신분이 아닙니다.



가만히 앉아서 신앙을 유희하는 소극적인 신분이 아니라, 들은 말씀대로 실천하며 주변의 연약한 사람들을 돕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신분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 뿐만 아니라, 그가 편지를 보낸 교회들마다 이런 평신도 형제 자매들의 역할을 가르치고 권면하고 훈계하였습니다.





성도들이 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규모없는 자들을 권계하고, 마음이 약한 자를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은 붙들어 줄 때 목회자는 또 그런 일을 감당하는 성도들을 위해 더 무릎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자신의 맡은 직분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며, 그 직분이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 직분인지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해 나가는 것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성도와 목회자는 「진정한 동역의 관계」가 이루어지며 그 교회는 성장하게 됩니다.





성도들이 능동적인 교회, 그 교회의 목회자는 행복합니다.





목회자가 근심함으로 혼자 짐을 지게 만드는 것은 「성경적인 성도의 상(像)」이 아닙니다.





목회자가 행복함으로 즐거움으로 목회를 할 수 있는 것은 성도들에게 달려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17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이것은 히브리서 기자가 히브리 교회의 형제 자매들에게 목회자를 어떻게 대해야하는지 당부하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또한 오늘 우리 「축제교회」의 성도들에게 목회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당부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3. 저의 각오 4가지 (마 3:1-12절)



저 자신, <목회자 주일>을 맞이하여, 그 전부터 주욱 생각해 왔지만, <목사 안수를 받았을 때> 했던 저의 각오를 다시 확인해 봅니다.



<마태복음 3장 1-12절>의 말씀에 근거해서 결심한 각오입니다.





(1) 첫째, 「약대 털 옷을 입을 각오」입니다..



비단 옷이 아니라 어떤 옷이라도 입고 목양에만 힘쓸 각오를 했습니다. 이것은 주님 오시는 날까지 계속 될 것입니다.





(2) 둘째, 「메뚜기와 석청을 먹을 각오」입니다..



좋은 음식을 탐하지 않고 일용할 양식만 있으면 족한 줄 알고 목양에만 힘쓸 각오를 했습니다. 이 또한 주님 오시는 날까지 계속 될 것입니다.





(3) 셋째, 「빈들에 살 각오」입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과 손자에 이르기까지 대를이어 오직 천국만을 바라보고 이땅에서 「장막 생활」을 하며 「나그네의 삶」을 살았던 것처럼, 어디에서나 머물 곳이 있으면 족한 줄 알고 목양에만 힘쓸 각오를 했습니다.



이 또한 주님 오시는 날까지 계속 될 것입니다.





(4) 넷째, 「말씀 사역의 일사 각오」입니다..



사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설교꾼이 되지 않고, 세례 요한 처럼 하나님 중심으로 설교할 것을 각오했습니다.





이 설교하고 죽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말씀 중심으로 설교 할 것을 각오 했습니다. 이 또한 주님 오시는 날까지 계속 될 것입니다.





지난 4월 19일이 제가 목사 안수를 받은지 29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오늘 2024년 목회자 주일을 맞이하면서, 지난날 두렵고 떨림으로 결단하고 다짐했던 그 각오대로 살아가기로 다시 결심해 봅니다.



함께 기도로 도와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4. 목회자로서 붙잡는 말씀..



제가 남은 목회자의 길을 가는 동안 축제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붙잡고 나아가고 싶은 하나님의 말씀들이 있습니다.





(1) 첫째, 마태복음 6장 33절 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은 주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으로, 저의 모든 「목회의 대 전제」가 되는 말씀입니다. 저의 목회는 이 말씀의 범위를 넘어 설 수 없습니다.





(2) 둘째, 요한복음 3장 30절 입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의 고백으로, 저의 목회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한 것」이며 「나 자신을 위한 그 어떤 것도 구하지 않겠다」는 저의 「목회자로서의 자세」를 언제나 확인하는 말씀입니다.





(3) 셋째, 빌립보서 1장 21절 입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의 고백으로,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한분을 향한 「일직선의 마음으로 살아 가겠다」는 저의 「목회자로서의 자세」를 늘 확인하는 또 하나의 말씀입니다..





(4) 넷째, 다니엘서 12장 3절 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이 말씀은 다니엘서를 통해서 마지막 때에 주어질 상급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혼들을 향한 구령의 열정으로 살아가겠다」는 저의 「목회자로서의 자세」를 확인하는 또 하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목회자」가 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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