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축제교회

 


TOTAL ARTICLE : 1134, TOTAL PAGE : 1 / 57
2024년 6월 2일 주일 설교 -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마 17:22-18:35절)(17:26절)
 이기남    | 2024·06·01 09:51 | HIT : 14 | VOTE : 0
* 설교 -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마 17:22-18:35절)(17:26절)





오래 전에,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책이 있었습니다.



어네스트 W. 앵글리가 쓴 『휴거』라는 소설과, 퍼시 콜레라는 사람이 쓴 『내가 본 천국』 이라는 천국 체험담 입니다.





순진한 사람들의 가슴을 뜨끔하게 하는 책들이었습니다. 이 책들을 읽으면서 나태한 신앙 생활을 회개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내가 본 천국』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가 50일 동안 천국을 돌아다녔는데, 천국에는 다양한 종류의 집들이 있더라는 겁니다.



황금으로 지어진 집도 있고, 은과 동으로 지어진 집도 있는 반면에, 짚으로 지어진 초가집도 있더랍니다.





그곳에 누가 사는가 보니 황금으로 지어진 집에는 순교자들이 살고,



은과 동으로 지어진 집에는 이 땅에서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한 사람들이 살고,



짚으로 지어진 초가집에는 예수님을 믿기는 하지만 신앙 생활을 나태하게 한 사람들이 살더라는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과 간증으로 퍼시 콜레라는 사람은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나중에 그는 사기꾼으로 판명되었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교회가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천국에 대한 그의 말이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심지어 감동까지 주게 되었을까요?





이 세상에서 있음직한 일을 초월적인 묘사를 통해 하늘 나라에 그대로 적용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의 방식 중 가장 고상한 방식이 천국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를들어, 이 세상에서 크고 넓고 아름다운 집에 사는 것이 꿈이라면, 그 꿈이 천국에서는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무슬림의 극단주의자들은 이러한 생각을 이용해서 테러를 부추기기도 합니다. 자살 폭탄 테러로 순교하면 천국에서 일곱 처녀의 환대를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한동안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세상의 권력 구조가 그대로 천국에도 적용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천국에서 높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높은 사람처럼 특권을 누리며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그들의 중요한 동기는, 비록 이 세상에서는 높은 자가 되지 못했지만, 천국에서는 높은 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 욕심, 야망인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출세하여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예수님 때문에 사람들 위에 군림하며 살아 보겠다는 동기밖에는 없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예수님을 이용하여 자신을 높이고자 한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18장 3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이 높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높은 자들을 보니까, 그들은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돈도 마음대로 쓰고, 권력도 마음대로 행사하고,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고 입고, 사람들의 존경까지 받습니다.





제자들도 그런 사람들이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높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미 높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이 너무 너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이미 자신을 높은 사람이 되게 하셨다는 것을 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예수님은 언제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마 3:17절, 17:5절) 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예수님은 유일무이한 아들이요, 존귀한 자요,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늘 이것을 아셨고, 그 인식 가운데 사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갖지 않으셨습니다.





사탄이 세상 모든 나라와 그 영화로운 모습을 보여주며, 자신에게 절만 한다면 그 모든 것을 주겠다 유혹했지만 예수님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자신을 높은 자로 세우셨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을 높이셨고, 또 높이실 것을 아셨기 때문에, 고난과 죽음의 길도 기꺼이 가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셨습니다. <17장 22,23절>을 보십시오.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사람들의 손에 넘겨진다>는 말씀 속에는 <하나님에 의해서>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을 사람들의 손에 넘기실 것이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님을 삼일째 되는 날에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사실을 알 수도, 믿을 수도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참하게 낮아지신다고 생각하여 몹시 슬퍼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높은 사람들인가 가르쳐줄 기회가 왔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가버나움에 이르렀을 때, 성전세를 걷는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와서 물었습니다. <17장 24-26절>을 보십시오. 쉬운성경으로 보겠습니다.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당신네 선생님은 성전세를 내지 않습니까?”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내십니다.” 베드로가 집에 들어가자, 예수님께서 먼저 말씀을 꺼내셨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시몬아, 이 세상의 왕들은 관세와 세금을 누구에게서 받느냐? 왕의 자녀들한테서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한테서냐?”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당연히, 다른 사람한테서지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왕의 자녀들은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




예수님은 무슨 말씀을 베드로에게 하고자 하신 걸까요?



예수님은 물론이거니와 베드로도 왕의 자녀이기 때문에 성전세를 낼 필요가 없다는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예수님은 그렇다 치고, 베드로도 예수님과 동등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엄청나게 높은 사람, 엄청난 특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마치 왕의 자녀들 즉 왕자들이 납세의 의무를 면제받는 것과 같은 특권을 베드로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그러나 성전세 걷는 사람들을 자극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낚시를 던져 첫 번째 낚은 물고기의 입에서 은돈 한 개를 꺼내서 예수님과 베드로 몫의 세금을 내라고 하십니다(17:27절).





세금을 내게 하시는 이 방법 자체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해 줍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세금을 면제 받을 특권이 있지만, 세금을 걷는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인정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특권을 주장하며 그들과 싸우기보다는 특권을 포기하고 세금을 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①하나님께 받은 특권을 인식시켜 주시면서, ②그 특권을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사용해야 할 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특권을 받은 자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나 자신이, 그리고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서 가장 소중히 여기시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우리가 얼마나 높은 사람인지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 자부심이 다른 사람들을 자극하고, 실족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해서는 안됩니다.





①하나님을 절대적인 왕으로 모시고 섬겨야 하지만, ②세상의 질서도 존중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베드로에게만 하신 것이 제자들 사이에 문제가 된 것 같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베드로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이 질문은 "천국에서는 우리들 중 누가 가장 높은 사람입니까?"라는 질문과 같습니다.





제자들은 이번 참에 주님께서 자신들의 서열 문제를 확실하게 정리해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의 모습을 보시면서 엄청난 위기 의식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들이 계속해서 이런 생각을 갖고 돌이키지 않는다면, 예수님이 떠나신 후 교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열 두 제자들의 권력 다툼의 장이 될 것이 뻔합니다. 그들로 인해 교회의 수 많은 어린 사람들은 상처를 입고 실족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 어린 아이를 제자들 앞에 세워 놓고, 천국에서 큰 자가 어떤 사람인지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4,5절)




예수님은 여기서, 어린 아이의 여러 가지 특징 중 제자들이 배우고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이 어린 아이>의 자신을 낮추는 특징을 언급하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 세운 <이 어린 아이>는 아마도 자신을 낮추는 어린 아이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 주었던 어린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어린 아이>하면 대체로 떠올리는 이미지들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이미지로는 <철없다, 귀찮다, 고집스럽다, 말을 안 듣는다, 제 멋 대로다> 이런 이미지들입니다.





반대로 긍정적인 이미지로는 <겸손하다, 단순하다, 순진무구하다, 무엇이든지 잘 배운다, 스펀지처럼 흡수한다>등의 이미지입니다.




제자들은 이미 어른인데 어떻게 어린 아이처럼 될 수 있을까요?


어린 아이처럼 순진무구하게 될 수 있을까요? 단순하게 될 수 있을까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이 그렇게 되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어린 아이 같이 되라고 하신 것은 그들이 제자들로서의 특권 혹은 권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앞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왕의 자녀들>이라고 그들의 정체성을 새삼 일깨워 주셨습니다.





왕의 자녀들은 엄청난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이 세상 왕국의 관점에서 이 특권을 사용하려고 한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제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특권을 어린 아이처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특권이 있는데 그것을 어린 아이처럼 사용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그것이 바로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이 특권이 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이 특권을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자신을 낮추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잘 이해가 안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 자체이십니다. 예수님만이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는 양자와 양녀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보십시오. 자신이 엄청난 특권을 가진 분이시지만, 그 특권을 자신을 위해서는 조금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백 퍼센트 완전하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특권을 모두 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사용하십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어린 아이와 같이 자신을 낮추신 분입니다.




제자들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받은 특권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자신의 욕망과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은 자신을 높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이 세상에서는 큰 사람일지 몰라도 천국에서는 큰 사람이 아닙니다.





반대로, 자신이 받은 특권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인정하고, 그 특권을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맞게 온전히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 그 사람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신을 낮추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특권을 받은 사람이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는 큰 사람처럼 여겨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천국에서는 가장 높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돌이키기를 원하십니다.





높은 사람이 되고자 달음박질하는 생각을 멈추고, 진정으로 자신들이 어떤 사람들이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고, 주님의 생각대로 돌이키기를 원하십니다.





만일 그들이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들은 천국에서 큰 사람은커녕, 천국에 들어가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들이 생각을 돌이키지 않고 교회의 리더로 살아간다면, 예수님을 믿는 이런 어린 아이들을 실족시키는 엄청난 죄를 짓게 될 것입니다.





그 죄는 차라리 자기 목에 연자 맷돌을 매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더 나을 정도로 심각합니다(18:6절).





그들이 생각을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들은 사람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방해물 같은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18:7절).





그래서 제자들은 그런 사람들이 되지 않기 위해 수족을 자르는 아픔, 눈을 뽑는 희생조차 감수할 정도로 자신에게 철저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이용해서 출세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는지,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들을 속여서 자신의 유익을 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사람들을 모아서 그들 위에서 왕노릇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특권을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요소들을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만일 제자들이 하나님께서 부여한 특권을 가지고, 교회에서 특권을 누리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게 된다면, 예수님을 믿는 어린 아이 즉 신앙이 어리거나, 연약한 사람들에게 극히 잘못된 메시지를 주게 될 것입니다.





“아,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저렇게 사람들에게 영광 받고 출세하는 것이구나. 나도 출세하기 위해서 목사가 되어야겠다."





그러면 그들에게 전해 주고자 했던 생명의 복음이 왜곡되고 가려지게 될 것입니다.



신앙이 어린 사람들은 생명과 진리의 길을 벗어나 위선과 거짓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주님은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교회의 영적 리더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어린 아이는 신앙이 어린 사람들일 수도 있고, 동시에 여러 가지 이유로 교회 공동체에서 업신여김을 받기 쉬운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회적 신분이 낮다거나, 경제적으로 어렵다거나, 이방인이거나, 신체적으로 연약한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만 품고 있으면, 이런 사람들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습니다.



그들을 쉽게 무시하고 심지어 ‘저 사람은 없어도 돼.’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일깨워 주십니다.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뵙고 있다고 하십니다(18:10절).



하나님 아버지께서 천사들을 통해서 그들에게 항상 관심을 두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마치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을 때까지 찾는 목자처럼, 하나님 아버지는 이 어린 아이 중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고자 하십니다(18:12-14절).





우리가 그런 사람들이고, 우리 앞과 옆에 있는 동역자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업신여기는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돌이켜 어린 아이처럼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을 마냥 허용하기만 해야 할까요?



그들이 무슨 일을 저질러도 용납하기만 하는 것이 어린 아이처럼 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①내가 다른 사람에게 죄를 짓지 않고자 애써야 하지만(마 18:1-14절), 동시에 ②다른 사람이 범하는 죄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대처해야 합니다(마 18:15-17절).




만일 형제가 죄를 지으면, ①먼저 단 둘이 있을 때 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해야 합니다.



뒷 담화를 한다든지, 정죄를 해서는 안됩니다. 솔직하게 단 둘이서만 그 문제를 가지고 권면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말을 듣지 않으면, ②한 두 사람의 증인을 데리고 가서 다시 말해야 합니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③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공적인 판단과 치리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래도 듣지 않으면, ④이방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기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방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기라는 말씀은 교제를 끊으라는 말씀입니다.





교제를 끊는 것은 그 사람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도록 하는 충격 요법입니다.





사람이 회개시킬 수 없기 때문에, 제자들은 그 사람이 진정으로 죄를 깨닫고 회개하도록 함께 기도하라고 하십니다(마 18:18-20절).




그런데 만일 죄를 지은 사람이 회개를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마 18:21-35절)?


베드로는 예수님께, 일곱 번까지 용서해 주어야 할까요? 물었습니다.



당시 유대 랍비들은 세 번까지 용서해 주라고 가르쳤기 때문에, 베드로는 크게 인심을 쓴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일곱 번까지가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490번까지 용서하고 491번째부터는 용서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무한대로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자신에게 죄 지은 형제를 무한대로 용서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만 달란트 빚진 종과 백 데나리온 빚진 자의 비유를 통해서 왜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를 말씀해 주십니다(18:23-34절).





<18장 35절>에 이 비유의 포인트가 있습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마음으로부터>입니다.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어떤 사람을 용서하면 그 사람의 죄는 영구히 잊혀집니다. 무한대로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용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머리는 용서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외쳐도 마음으로부터는 용서가 되지 않는 것이 사람입니다.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용서하기 위해서는, ①먼저 자신의 빚(죄)이 얼마인지, ②그리고 왕(하나님)께로부터 불쌍히 여김 받아 탕감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 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죄는 만 달란트의 빚에 비유됩니다.





당시 노동자 하루 품 삯이 1데나리온이었고, 1달란트는 약 6,000데나리온이었기 때문에, 만 달란트는 일반 노동자의 16만 년의 임금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우리의 죄가 하나님 앞에서 만 달란트의 빚에 비유된다는 것은 우리가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죄 문제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죄사함을 선언해 주셨습니다.





그 동기는 <불쌍히 여겨>입니다(18:27절).



죄의 짐에 눌려 사는 것이 불쌍해서, 죄로 고통하며 살다가 자기 목숨을 댓가로 지불해야 하는 인생이 불쌍해서 그렇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 은혜를 아는 사람만이, 자신에게 죄를 짓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을 ‘마음으로부터’(18:35절) 무한히 용서해 줄 수 있고,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지은 죄는 백 데나리온에 비유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일 회개하는 형제의 죄를 그렇게 용서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자신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용서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적용점을 몇 가지 찾아보면서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이 특권은 오늘 본문 말씀뿐 아니라, 성경이 이곳 저곳에서 분명하게 선언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특권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분명한 자부심과 무한한 감사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특권을 세상 사람들(세금 거두는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그런 특권을 받은 사람들인지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특권을 행사하려고 할 때 세상 사람들과 부딪힐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에 대한 좋은 예를 보여주십니다.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17:27절)





예수님은 자신의 특권보다 그들의 실족에 더 신경을 쓰시고 배려하십니다.



실족의 위험성을 배제하기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특권을 포기하십니다.




둘째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권리를 교회 내에서 사용할 때는 어린 아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방식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머리되신 주님의 지체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오직 주님 한 분 뿐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교회를 섬기도록 각종 은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은사를 사용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은사는 자신을 낮추는 방식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자기를 주장하고, 자기를 세우라고 하나님께서 그 권리를 부여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권리는 하나님이 주신 권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방식대로, 하나님의 뜻과 목적대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저를 목사로 세워주신 것은, 제가 세상에서 출세를 못하니까, 교회에서라도 출세를 해보라고 주신 권한이 아닙니다.





교회 공동체를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맞게 교육하고 훈련하여 세우도록 주신 권한입니다.



저는 이 권한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맞게 사용해야 합니다.





열심히 성경을 연구하고, 여러분들을 가르치고,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고, 양육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권한을 사용해야 합니다.





셋째로, 죄와 용서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방식을 철저히 따라야 합니다..



죄 문제 해결은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입니다.





죄 문제를 방치하거나, 그 문제를 잘못 해결하는 과정에서 교회는 심각한 내상을 입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는 죄인들이 함께 모인 곳이기에 죄 문제로 인한 갈등, 어려움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회개와 용서로 풀어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죄 문제에 대해서 엄격하게 보고 인정하며 회개하기를 즐겨해야 합니다.



만 달란트 빚진자가 탕감 받는 감격을 하나님 앞에서 맛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의 죄 문제에 대해서 회개하도록 돕고, 그리고 언제든지 용서할 준비를 갖출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 체제의 연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 나라의 ‘대안’입니다.



교회는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그림자처럼 제시하는 곳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2024년 6월 9일 주일 설교 - 영원한 구원 (요 6:35-40절)(39,40절)  이기남 24·06·08 7
  2024년 5월 26일 주일 설교 - 겸손과 환대 (마 18:1-14절)(4,5절)  이기남 24·05·25 17
Copyright 1999-2024 Zeroboard / skin by GGAM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