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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9일 주일 설교 - 영원한 구원 (요 6:35-40절)(39,40절)
 이기남    | 2024·06·08 20:04 | HIT : 7 | VOTE : 0
* 설교 - 영원한 구원 (요 6:35-40절)(39,40절)





1. 수정주의자들..



최근에 한국교회는 성경과 종교개혁에 뿌리를 두고 있는 <칭의론>을 수정해야 한다는 제안을 받고 있습니다.





몇몇 영향력 있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이런 제안을 하고 있고, 이 제안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심각하게 우려할만한 일입니다.





한국교회는 외부로부터는 <이단들>의 공격을 받고 있으며, 동시에 내부로부터는 <교리적 수정주의자들>로 인해 골치를 앓고 있는 형국입니다.





<수정주의자들>은 전통적인 교회에서 가르쳐진 칭의론 즉 <종교개혁의 법정적 칭의론>이 신학적으로 심각한 오류라고 주장합니다.





<죄인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할 때에 영원히 의롭게 된다>는 법정적 칭의론은 <구원파적인 오용과 남용>의 대상이 되었다고 수정주의자들은 주장합니다.





<한 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다음에는 어떤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더라도 구원이 영원히 보장된다>는 전통적인 칭의론 때문에 <교인들의 방종적이고 비윤리적인 삶>이 초래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칭의를 <전 생애에 걸쳐서 일어나는 과정>이며,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에 <선취적으로 칭의>를 받았다 하더라도,



남은 삶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해야만 종말에 최종적으로 <완성적 칭의>를 받을 수 있다는 수정적 주장을 내세웁니다.





따라서 처음 예수님을 믿은 다음 삶의 과정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지 않을 경우 종말론적인 완성적 칭의를 받을 수 없으며, 결국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한 번 칭의는 영원한 칭의이며,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전통적인 교리>가 도리어 한국 교회의 윤리적 타락의 주범이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수정주의자들의 분석이 일견 일리가 있는 주장인 것 같으나, 더 깊이 들어가보면 이런 수정주의는 매우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깊이 분석해 보면, 죄인을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인이라고 선포하는 <칭의>는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영단번의 사건이며 영원한 효력을 가집니다.>





그리고 칭의는 율법의 행위와 관계 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와 공로 때문에, 그리고 오직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때문에, 그리고 예수님의 인격과 공로에 대한 믿음만으로 완성되는 사건입니다.>





<한 번 칭의된 자는 영원히 칭의된 것이며, 한 번 칭의된 자의 구원은 영원히 보장됩니다.>





그래서 루터와 칼빈과 같은 개혁자들은 <오직 믿음과 은혜로 말미암는 칭의>가 「복음의 중심」이요, 「복음의 정체성 자체」라고 선포했습니다.





2. 성도의 견인..



정말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잃을 수 있습니까? 또 누군가가 정말로 거듭났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성도의 견인」이란 「<진정으로 거듭난 모든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권능과 뜻에 의하여 <그들의 삶이 다하는 날까지 구원의 상태가 유지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끝까지 구원의 상태로 남아 있는 자들이 진정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중간에 믿음을 떠나는 사람들>은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한 번 자신의 백성이 된 자들을 절대로 잃거나 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6장 39,40절>을 보십시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진정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마지막 부활의 영원히 복된 삶」으로 나아 가도록 예정되어 있습니다.





다른 누구도 심지어 우리 스스로도 <이 정해진 구원의 복된 운명>을 조금도 바꿀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의 약속입니다.





스스로가 믿지 않기로 마음을 바꿀 수 있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정말로 믿은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3. 구원을 의심하는 성도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성도들> 중에서도 자신이 정말로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인 동시에 해결 받아야 할 문제입니다.





하늘 나라의 시민권을 이미 가지고 있으면서도 죽는 날까지 그러한 사실을 계속 의심하면서 신앙 생활을 해 나간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믿는 성도가 자신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분명하게 가지는 것은 신앙 생활에 있어서 너무나도 중요한 일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8장, 은혜와 구원의 확신에 대하여, 참고)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에 대한 확신이 없이>, <자신의 구원을 의심하면서> 어떻게 고난을 견뎌낼 수 있겠습니까?





또한, 그런 상태로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심지어 죽음의 문턱에 다가가는 일들이 생긴다면 얼마나 무섭고 힘든 일이 되겠습니까?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믿으면서도 정작 자신이 천국에 갈 수 있을지 없을 지를 끊임없이 의심하며 살아 간다면 얼마나 두렵고 불안하겠습니까?





이러한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아는 <사탄>은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자신이 구원 받았다는 이 놀라운 사실을 믿지 못하고 오히려 의심하도록 <끊임없이 영적으로 방해하고 공격을 합니다.>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연약하고 심약한 성도들을 <구원의 의심이라는 이빨>로 물어 뜯어서 <구원의 확신으로부터 나오는 평강과 기쁨을 앗아가려고 합니다.>





<더 나아가서 전도도 못하게 합니다.> 자신의 구원을 의심하는 자가 어떻게 전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구원 받은 성도에게 다가오는 영적인 공격 중에 가장 일반적인 것>이 바로 이 「구원의 확신」에 관한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은 성도에게 <가장 우선적인 영적인 무장>은 바로 「자신이 받은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 10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사도 베드로의 이 말씀은 힘써서 구원을 받으라는 말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구원에 대한 확신을 확실하게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받은 구원을 의심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구원의 은혜를 확신하는 가운데 진정한 평강을 누리는 믿음의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4. 구원의 확신을 할 수 없는 사람들..





(1) 비성경적인 믿음을 가진 자들..



구원이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상호 작용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구원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그 믿음과 더불어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대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에 따라서 구원이 좌지우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절대로 구원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이런 「비성경적인 교리」를 믿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따라서 구원의 확신도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확신을 가지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구원이 인간의 노력이나 행위에 달린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체험을 바탕으로 확신하는 자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신비로운 체험들>을 구원의 증거들로 이야기 합니다.





예를 들자면, 꿈을 꾸었다든지, 방언을 말한다든지, 어떤 귀신을 내쫓는 체험에 동참했다든지 하는 것들을 토대로 자신이 구원을 받았을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교회를 다닌 소위 <모태 신앙>이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러한 체험들은 구원을 받은 사람들에게도 나타나는 일이지만 <그 자체만으로 구원의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이런 체험을 바탕으로 구원을 확신하는 사람들을 꾸짖으시며 그들이 구원과는 전혀 상관이 없을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장 22,23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3) 영접 기도를 따라한 것을 바탕으로 확신하는 자들..



20세기에는 많은 대학생 선교 단체들이 일어나서 교회가 다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해 냈습니다.



이러한 선교 단체들 중에서 많은 단체들은 전도에 초점을 두고 열심히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러한 노력으로 소중한 열매를 맺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잘못된 구원의 확신을 심어준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복음을 전한 뒤 그것을 들은 사람으로 하여금 영접 기도를 하게 한 후에 이렇게 말하곤 하였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고, 구원을 받았으니 절대로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사실 이렇게 영접 기도를 한 사람들 중에 꾸준히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의 비율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누군가가 복음을 듣고 영접 기도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 기도가 마음에서 나온 진심으로 드린 기도인지는 시간이 지나야만 알 수 있습니다.





* 복음의 외적인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이 복음의 내적인 부르심의 은혜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외적 부르심 - 전도, 내적 부르심 - 성령님의 역사하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0장, 효과적인 부르심에 대하여, 참고)





<하나님이 하시는 영적인 일을 인간이 마음대로 도식화해서 결론을 짓는다는 것은 아주 잘못된 일입니다.>





5. 구원을 의심하는 이유들..





(1)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너무나 부족한 자신의 모습 때문에..



사실 말씀의 높은 기준에 비추어볼 때, 스스로 너무나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때때로 말씀을 읽으면서 그 「말씀의 요구와 기준에 너무나도 미달하는 자신의 모습」을 느끼다 보면, <내가 과연 구원을 받은 사람이 맞는가?> 라는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록 말씀의 높은 기준이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기도 하지만 길게 보면 은혜가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말씀의 기준을 통해서 자신의 부족한 삶을 돌아보고, 정말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면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자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2) 죄책감 때문에..




많은 성도들은 자신이 이제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거룩한 백성이므로 <죄를 능히 이기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구원을 받은 성도라도 이 땅에서는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끊임 없이 죄와 씨름하고 또 죄의 유혹에 넘어지기도 합니다.





특별히 성격상 정의감이 강해서 자신의 잘못에 대한 죄책감을 비교적 무겁게 느끼는 사람들은 죄로 넘어진 자신을 용납하는 것을 아주 힘들어 합니다.





물론 죄는 짓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비록 죄에 넘어지더라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주어진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적용하고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당연히 구원을 의심하게 됩니다.





(3) 자신의 구원의 순간을 잘 모르는 경우..



자신의 구원의 극적인 순간을 아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이것은 결코 이상한 일도 잘못된 일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언제 영적으로 거듭났는지를 확실히 가리킬 수 있는 어떤 사건이나 계기가 없어서 자신의 구원을 의심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특히나 어떤 사람들의 극적인 회심의 간증을 듣다가 보면, 정작 <자신은 왜 그런 극적인 순간이 없을까?> <혹시 나는 구원을 받지 않은 것이 아닌가?> 라고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극적인 체험이 없더라도 하나님을 서서히 그리고 꾸준히 믿는 사람이 더 좋은 신앙을 가진 경우들도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환경 안에서 꾸준히 자랐기 때문에 그 뿌리가 더 단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자주 겪는 고난 때문에..



유독 자신의 삶에만 힘든 일이나 좋지 않은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고 생각하다가 혹시 자신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가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의 삶이 훨씬 더 불행하다고 느껴질 때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 대한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고난은 하나님께서 <당신이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더 당신께 가까이 다가오도록 끌어 당기는 도구>입니다.





야고보는 고난이 얼마나 믿음에 유용하도록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인지를 알려줍니다. <야고보서 1장 2-4절>을 보십시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이 야고보의 말씀 이외에도 성경에는 고난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시는 자녀들의 믿음을 단단하게 하시려고 자주 쓰시는 도구>인지를 알려주는 구절들이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 고난의 상황은 믿음으로 잘 적용하면 구원을 의심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의 확신을 길러주는 훌륭한 선생님이 될 수 있습니다.





6. 구원의 확신 가운데 단단해지려면..





(1) 말씀과 친숙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자신이 구원을 받았음을 알고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을 의심하는 불안함 가운데 사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요한일서 5장 11-1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사도 요한은 <구원을 받았지만 자신들이 받은 구원을 의심하던 성도들>에게 그들이 이미 영생을 얻었음을 알려 주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구원의 확신과 관련된 말씀들을 외우고 있으면, 의심의 순간이 다가올 때 아주 절대적인 도움이 됩니다.





<자신의 느낌이나 어떤 체험에 의존하는 불안한 확신>이 아니라, <가장 확실한 하나님의 객관적인 말씀>에 근거하여 사탄의 공격에 맞서 싸우고 이길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우리의 가장 확실한 무기는 <성령님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엡 6:17절).





「구원의 확신을 공격하는 사탄 마귀를 이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은 바로 「말씀을 통하여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사탄이 주는 의심과 맞서는 것」입니다.





이럴 때 마치 광야에서 주님을 시험하고 공격하던 사탄이 <말씀을 의지하신 주님>을 이기지 못하고 물러난 것처럼, 결국에는 <말씀을 의지하는 우리>에게도 더 이상 구원의 의심으로 공격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탄의 입장에서는 <말씀 가운데 확신을 얻은 사람>을 공격하는 일은 시간 낭비에 불과한 것입니다.





(2)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기도로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관해서 알아가는 것>과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이 둘 다가 중요하고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성경을 공부하거나 설교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에 관한 진리들>을 알아 갑니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님에 관한 진리>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알아가는 일>에 적용되지 못하고 단지 지식에만 머문다면 구원의 확신과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절)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알아가는 것이 영생 즉 구원을 얻은 것을 깨닫고 확인하는 길입니다.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의 성경적인 의미는 친밀한 관계와 교제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하나님과의 관계의 친밀성을 깨닫게 해 주시고 맛보게 해 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성령님의 역할>에 대해서 『로마서』에서 이르시기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나니"(롬 8:16절)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성령님은 기도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통해서 성령님께서 내면에 깨우쳐 주시는 하나님과 자신과의 친밀한 관계를 깨닫는 것이 구원의 확신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신을 구원한 <구원자>로는 받아들이지만, 자신의 주인 되시는 <주님>으로는 순종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전히 자신이 주인으로 살아가려고 하려는 삶 속에서는 참된 평안도 구원의 확신과 기쁨도 자리 잡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정말 자신의 주인 되시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믿음으로 순종하고 실천하는 삶 속에는 성령님의 충만함과 구원의 확신이 함께 주어집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구원의 확신의 기쁨을 누리는 일과는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4) 구원을 가장 소중한 보물로 인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의 선물은 결코 값싼 무엇이 아닙니다. 사실 이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큰 구원의 선물을 등한시하고 세상의 것들을 더 추구하는 마음 상태로 살아갈 때, 비록 구원의 확신을 머리로는 유지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감격과 기쁨을 마음으로 누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 가운데 살아가려면 구원의 완성이 되는 주님의 오심과 하늘 나라의 임하심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구원도 받고 세상 재미와 성공도 동시에 추구하려는 이중적인 마음으로는 구원의 확신이 주는 풍성한 은혜와 기쁨을 맛볼 수 없습니다.





7. 정리 / 관련 및 적용 질문들..





(1) 하나님의 구원을 얻기 위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엡 2:8,9절 참고)





구원은 오직 은혜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이 하나님의 선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2) 죄와의 씨름에서 넘어지면서도 어떻게 구원의 확신을 유지할 수 있습니까? (요일 1:9절 참고)





구원을 받은 성도라도 육신에 거하기 때문에 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합니다..





죄를 지을 때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우리의 죄를 위해서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다시 한번 복음의 은혜를 적용해야 합니다..





우리의 죄는 그 자체로는 나쁘지만 비록 우리가 죄로 인하여 넘어질 때라도 그 상황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모든 죄에 대한 용서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요청하고 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할 때 죄로 인하여 구원의 확신을 의심하게 만드는 사탄의 공격을 피하고 오히려 더욱 더 구원의 확신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이 정말로 나를 용서하시고 무조건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사 1:18절, 43:25절, 엡 1:4-7절, 롬 8:33-39절 참고)





오직 말씀으로만 믿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사탄이 의심을 줄지라도 아무리 스스로의 느낌이 이 죄는 도저히 용서 받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라도 오직 하나님의 객관적인 약속의 말씀만을 믿고 의지하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씻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4) 구원을 잃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주로 인용하는 말씀이 <히브리서 6장 4-9절>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이 구원을 잃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지적 이해와 믿음>의 차이, <외형적 참여와 내적인 관계>의 차이, <우리와 그들>의 차이, 그리고 <열매 있음과 없음>의 차이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히브리서 6장 4-9절>과, <히브리서 10장 29,30절>은 「거듭났다고 고백하고 거듭남의 표시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거듭나지 않은 자들을 묘사하는 본문」입니다..





<베드로후서 2장 20-22절>의 진술은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는 속담을 언급합니다..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5)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심지어 개인적인 신앙의 체험이 있다고 하면서도 실제 말이나 행동은 주로 교회의 순수성을 파괴하고 화합이 아니라 분열을 조장하는 쪽으로 나타난다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합니까?





구원을 받은 사람은 열매로 알 수 있습니다.. <말씀, 행위(열매), 간증>





(6) 구원의 확신뿐 아니라 그 기쁨 가운데 자라가는 사람에게는 어떤 열매들이 나타납니까?





성령님의 열매(갈 5:22,23절), 세상을 이기는 믿음(요일 5:4절), 소망 가운데 단단해짐(롬 5:1-4절)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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