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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31일 주일 설교 -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한 여인들 (눅 24:1-10절)(9절)
 이기남    | 2024·03·30 13:34 | HIT : 98 | VOTE : 27
* 설교 -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한 여인들 (눅 24:1-10절)(9절)







'왜 예수님의 무덤은 비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유일한 정답은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복음의 역사에서 남자들보다 여자들의 기여와 공헌이 컷음을 인정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오늘날도 남자 성도들이 더 많은 시간을 직업과 더불어 씨름하고 있을 때, 더 많은 여 성도들이 복음 전하는 일과 교회 섬기는 일에 헌신하고 있음을 보기 때문입니다.





이런 여 성도들의 해방과 헌신은 전적으로 여성들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4장>을 통해 사마리아에서 우물에 물 길러 온 한 여인을 상대로 긴 시간을 할애하며 이 목마른 여인에게 영생의 샘물 이야기를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마리아 여인 자신에게도 충격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요한복음 4장 9절>을 보십시오.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유대인이 상종하지 않던 사마리아인, 그중에서도 한 여인을 붙들고 진지한 대화를 이어 가시던 예수님의 모습이 인상적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 여인은 마침내 동네에 들어가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요 4:29절) 하며 예수님을 증거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세계 복음화 전략으로 그분이 열두 명의 남성 제자를 먼저 선택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분은 정말 남성들만을 제자로 삼고 선교 전략을 수행하셨을까요?





<누가복음 8장 1절>을 보면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하였고"라고 기록합니다.





이 열두 제자가 그분이 사용하신 일꾼의 전부였을까요?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 이 제자들의 반열에 누가 등장합니까? <누가복음 8장 2,3절>을 보십시오.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요 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이렇게 여 성도들을 또한 여 제자로 부르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전략은 부활의 아침에도 명확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9,10절>에 보면 예수님의 부활의 사실을 제일 먼저 사람들에게 알린 것이 바로 이러한 예수님의 여 제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1절>의 예수님의 부활의 드라마는 여인들의 등장과 함께 시작됩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부활의 새벽, 예수님의 무덤을 찾은 이 여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 한 첫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이 여인들이 부활의 증인이 되기까지 겪은 변화의 단계를 주목하고자 합니다.



우리도 그들을 따라 부활의 증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1. 근심의 단계..



<3,4절>을 보면, 안식 후 첫날 아침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은 여인들의 반응이 나와 있습니다.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그들의 첫째 반응은 '근심함'(아포레오 aporeo)이었다고 기록합니다.



NIV 성경은 wondering (궁금함, 의심함)으로 옮겼고, KJV 성경은 'perplexed' (당황함)로 옮겼습니다.





<메시지 성경>은 이 대목을 "그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당황했다" 라고 옮기고 있습니다.



<표준새번역 성경>도 '당황함'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당황함'이 제일 좋은 번역일 듯합니다.





아마도 처음에 이 여인들은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체를 도둑질한 것은 아닌가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당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63,6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평소에 부활을 언급했기 때문에 그분의 시체를 도둑질하는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빌라도에게 그 무덤을 굳게 지키도록 명해 달라고 요청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로마의 관례에 의하면 중요한 무덤은 4인 1조가 되어 교대로 지키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시체가 없어졌습니다. 당황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하는 의심이 생길 만한 대목입니다.





오늘의 우리도 예수님의 부활의 설교를 들으면 첫째 반응이 이런 당황함과 의혹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체를 옮겨 놓고 퍼뜨린 가짜 뉴스는 아닐까?'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할 때 예수님의 시체를 제시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기독교의 허구를 반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 빈 무덤이야말로 역사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의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된 것입니다.





왜 그의 무덤은 비었습니까? 도둑설은 가능하지 않은 것을 이미 성찰했습니다.





기절설도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이 완전하게 사망하지 않은 채로 돌무덤에 들어가 기절하신 상태에서 시간이 경과되어 냉기와 함께 깨어나셨다는 설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흘린 것은 완전한 사망의 증거이고, 설혹 깨어나셨다 할지라도 여럿이 굴릴 수 있는 무덤 돌을 굴리고 경비병을 따돌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설정입니다.





다른 무덤을 찾아 착각했다는 설도 있고 예수님을 사모한 제자들의 환상설도 있지만, 이 모든 가설은 철저하게 역사적으로 반박되었습니다.





'왜 예수의 무덤은 비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유일한 정답은 그분이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2. 두려움의 단계..



<5절>을 보십시오.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이 두 사람은 아마도 천사의 현현이었을 것입니다. <4절>은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찬란하다'는 말은 원어로 '아스트랍토'(astrapto)라고 하는데, 이는 영어의 lightning (번개처럼 빛남)이라는 단어로서 '신적 현현'을 뜻하는 말입니다.





물론 이 여인들은 이들의 존재가 정확하게 천사라고 인식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렴풋이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5절>의 증언처럼 두려워하게 된 것입니다.





원어로는 '두려움(엠포보스 emphobos)에 들어갔다'(in + phobia)고 되어 있습니다.



이 두려움은 신적 개입이나 신적 현존을 느낀 사람들의 공통적 반응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찾아 구도할 때의 첫째 반응은 보통 당황하고 의심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구도의 여정을 그렇게 출발합니다. 그러나 이런 처음 단계를 넘어서서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기 시작할 때, 우리는 거룩한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무엇이라고 꼭 집어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하나님이 직간접적으로 내 삶에 개입하고 계시다는 자각과 마주하게 됩니다.





독일의 신학자 루돌프 오토(Rudolf Otto)는 그런 경험을 '누미노제' (numinose)라고 불렀습니다.



"나의 이성과 자아 밖으로부터 엄습해 오는 거룩한 감정, 설명하기 어려운 두렵고도 떨리는 신비한 신적 현존의 경험"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경험은 사람에 따라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주님을 받아들이는 준비로서 일어나는 비 이성적이지만 거부할 수 없는 신적 현존의 어떤 경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거룩한 두려움이 어느 날 마음을 노크하거든 준비하십시오. 하나님을 만 날 때가 된 것입니다.





3. 기억의 단계..



<6절>에서 천사들의 증언을 들어 보십시오.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무엇을 기억하라는 말입니까? <7절>을 보십시오.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 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이제 이 여인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8절)



드디어 그들은 기억의 단계로 들어갔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단계 말입니다.





짧은 시간 이 부활의 아침에 이 여인들은 당혹의 단계에서 두려움의 단계로 그리고 다시 주의 말씀을 기억하는 단계로 접어든 것입니다.





아무도 주님의 말씀이 없이 진정한 믿음 속으로 들어 갈 수는 없습니다.



복음적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유일한 흔들림이 없는 근거는 그분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적어도 세 차례 이상 미리 언급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마지막 세 번째로 주신 말씀을 보십시오. <18장 33,34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그래서 본문에 이어지는 <11절>에 보면 남성 사도들은 바로 이 부활의 사실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여기 부활의 아침의 여인들처럼 순전하게 말씀을 기억하는 복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부활의 증인이 되고자 한다면 먼저 주님의 말씀을 날마다 가까이하고, 매 순간 그 말씀을 기억하고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4. 증거의 단계..



<9절>을 보십시오.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사도들과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처음으로 알린 사람들이 바로 이 여인들이었습니다.





여기 '알리다'라는 단어는 원어로 '아팡 겔로'(apangello)라 하는데, 이는 '적극적으로 기쁜 소식을 선포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는 <10절>에서도 반복됩니다.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왜 이 부활의 기쁜 소식을 여인들로 하여금 전하게 하셨을까요?



이 소식이 빨리, 신속하게 전파되기 위해 주님은 남성 제자보다 여성 제자들이 효율적임을 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남자 아기와 여자 아기를 같이 길러 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여자 아기의 언어 발달이 남자 아기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두뇌 활동에 있어 여아들은 언어 능력을 관장하는 측두엽(側頭葉)이 잘 발달함에 반해 남아들은 운동 감각을 담당하는 두정엽(頭頂葉)에 강세를 보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여아들은 언어 발달에 탁월성을 보이고, 남아들은 운동에 강세를 보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남자들은 여자들을 말로 이길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이런 창조의 특성을 알고 첫 번째 부활 소식의 전파를 여성들에게 위임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거기다가 남자들은 여인들의 말을 더디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남성들의 성장 과정에서 빚어진 열등감의 반작용일 수 있습니다.





항상 여인들에게 말로 지다 보니 여인들의 말을 더디 믿으려 하는 것입니다.



이런 특성이 본문의 다음 구절인 <11절>에도 드러납니다. "사도들은 그들(여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그러나 <12절>에서 베드로는 자기 눈으로 빈 무덤을 확인한 후 부활의 증거에 참여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늦더라도 증인의 자리에 서는 일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주님께서 제자로 삼아 주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자기 보호에 민감하고 증언의 자리에 서기를 주저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지상 명령의 성취를 위해서 말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을 다시 기억하십시오. 이 말씀을 기록한 이도 누가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증인'이라는 말은 순교적 증인이라는 뜻입니다.



목숨까지라도 내어 놓고 그분의 증인이 되어 땅끝까지 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이 그 일을 우리가 하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는 순종만 하면 됩니다.





성령님이 가라고 하실 때 가십시오. 성령님이 증거하라고 하실 때 증거하십시오.





초대 교회 여성들이 그 일을 했다면,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사셨습니다. 예수님이 해답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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